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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문(꼬리에 꼬리를 무는 경제질문)

미국인들이 ‘밧줄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하는 번지점프’라고 하는 것은?

경불진 이피디 2021. 11. 30.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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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 넷플릭스

 

내부고발 게임의 세계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게임에 실패하면 검찰의 무자비한 수사를 받을 수도 있지만 성공하면 엄청난 상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게임에 도전하시겠습니까?”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오징어게임’. 넷플릭스를 넘어 이젠 CNN, BBC 등 세계적인 언론들도 오징어게임 열풍을 전하고 있죠. 오징어게임2’가 제작된다는 기쁜 뉴스도 들리고요. 그런데 이런 열풍의 배경은 오징어게임이 그냥 꾸며진 이야기가 아니라는데 있죠. 오징어게임에 못지않은 암울한 현실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이를 증명하는 사례가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꼬꼬문오징어게임의 실사판에 대해 궁금한 질문들을 하나하나 풀어볼까 합니다.

 

그럼 오징어게임의 실사판이 뭔지 궁금하시죠? 최근 ‘280억원 대 포상금이 화제가 되고 있죠. 오징어게임의 456억원에는 못미치긴 하지만 280억원은 일반인들이 꿈도 꾸기 힘든 엄청난 금액이잖아요. 그런데 이를 포상금으로 받았다니 정말 오징어게임같은 일 아닙니까?

 

그런데 다들 아실 것입니다. 이분은 현대차와 기아차의 차량 안전 문제를 내부 고발한 김광호 전 현대차 부장의 이야기잖아요. 미국 당국으로부터 282억원이 넘는 포상금을 받은 것인데 이게 왜 오징어게임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김 부장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엔진이 없는 자동차 상상할 수 있을까요? 없을 것입니다. 자동차 성능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엔진이기 때문입니다. 현대-기아차는 그러나 1980년대만 해도 독자적으로 개발한 엔진이 없었으며 일본 미쓰비시의 엔진을 라이센스 생산했습니다. 당연히 막대한 로열티도 지불했죠. 이건 마치 양복 입고 고무신을 신은 듯한 어색한 꼴이었던 거죠.

 

이를 타개하기 위해 현대차는 19839월 신엔진 개발계획을 수립했습니다. 다음해인 1984년 용인 마북리에 파워트레인 연구소도 설립했죠. 그래서 나온 첫 결실이 알파엔진입니다. 현대차 아니 우리나라가 개발한 첫 자동차용 독자엔진이었던 셈이죠. 알파엔진은 1990년에 2도어 쿠페인 스쿠프에 처음 적용됐습니다. 이후 1995년 추억의 이름 아반떼도 이 알파엔진을 썼죠. 이후 출시된 뉴 아반떼XD, 기아 세라토 등도 알파엔진으로 달렸습니다.

 

이후 현대차는 베타엔진을 개발해 아반떼, 티뷰론, 투스카니, 기아차 쏘울 등에 적용했고 이후 현대차를 대표하는 EF쏘나타에는 1998년 세 번째 자체 개발한 델타엔진을 장착했습니다. 이 델타 엔진은 옵티마, 그랜저XG, 트라제XG, 싼타페 등 폭넓게 적용됐죠.

 

이에 자신감을 얻은 현대차는 46개월 동안의 연구 개발을 통해 2004년 쎄타 엔진을 공개했습니다. 쎄타 엔진은 여러 가지로 현대자동차 엔진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앞서 설명한대로 미쓰비시에서 라이센스를 지불했었던 현대자동차가 반대로 쎄타 엔진을 통해 오히려 다임러 크라이슬러와 미쓰비시에 기술을 이전했으며 그 대가로 5700만 달러의 로열티도 받았으니까요. 가벼우면서도 정숙성까지 지닌 성능과 품질을 인정받았다는 거죠. 이에 자신감을 얻은 현대차는 쎄타엔진의 성능을 개선한 쎄타2엔진을 2007년 선보였습니다. 이후에도 현대차는 세타3, 람다, , 타우 등 다양한 자체 엔진을 개발했습니다.

 

문제는 다들 아시다시피 세타2에서 터졌습니다. 쏘나타, 그랜저 등 현대차를 대표하는 인기모델에 세타2 엔진을 장착했는데 달리던 차의 시동이 갑자기 꺼지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불까지 나는 일이 발생했거든요. 특히 엔진에서 금속성 소음이 난다는 지적도 끊이질 알았습니다. 운전자들은 피해를 호소했지만, 현대기아차는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현대차는 세타2 엔진 결함 문제는 설계상의 문제가 아니라 공정상의 문제라는 거죠. 세타2 엔진을 생산되는 미국 알라바마 공장에서 일부 엔진 베어링 부분에 이물질이 유입돼 발생한 일이라며 엔진 자체의 문제, 즉 설계 문제는 결코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그러고도 계속 차량 결함이 신고 되자 결국 미국에서는 2015년 리콜을 실시했죠. 이후 대규모 리콜이 이어졌는데 한국에서는 한동안 리콜을 하지 않았습니다. 역차별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됐지만 현대차는 미국산에서만 생기는 문제라고 일축했죠. 하지만 국내에서도 문제가 불거지자 결국 리콜에 들어갔죠.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듭니다. 달리던 차의 시동이 갑자기 멈추고 불까지는 나는데도 왜 리콜을 하지 않았을까요? 현대차가 원인을 몰랐기 때문일까요?

 

놀랍게도 현대차가 세타2엔진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은 안 것은 2011년부터라고 합니다. 세타2 엔진을 처음 선보인지 4년 후에 알았다는 거죠. 당시 엔진 개선 TFT’라는 조직까지 만들었다는 군요. 그런데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덮으려고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282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포상금을 받은 김광호 전 현대차 부장은 20153월부터 9월까지 현대차 품질본부 품질전략팀 리콜 담당자였다고 합니다. 리콜을 할 건가 말 건가, 리콜 결정하는 그야말로 전략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핵심 부서에서 일했다는 거죠.

 

그런데 2011년부터 세타2 엔진의 연료 분사시스템이 MPI(간접분사)에서 GDI(직접분사)로 바뀌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현대차도 문제를 파악하고 외부는 알지 못하게 개선작업을 하고 있었고요. 그런데 20156월달에 미국 고속도로에서 달리던 세타2 2대가 불이 나면서 문제가 외부로 드러났죠. 그런데 좀 이상하죠. 엔진에 문제가 있으면 바로 알 수 있을텐데 왜 4년이나 지나서야 문제가 발생했을까요?

 

엔진에 문제가 있다고 바로 사고가 나는 것은 아닙니다. 내구성 문제이기 때문에 쌓이고 쌍이다가 터진다는 거죠. 세타2 엔진도 대략 4년 이상 주행해야 문제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그런 4년이란 시간이 있는데도 왜 현대차는 4년 가까이 개선작업만 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돈과 정강이 때문입니다. 돈은 알겠는데 정강이는 무슨 이야기일까요?

 

일단 돈 문제. 문제가 불거지기 직전인 2014년 말가지 세타2 엔진을 장착한 차가 무려 240만 대가 넘게 팔렸습니다. 그런데 대당 리콜 비용이 250만원 정도 듭니다. 따라서 전체를 리콜하면 5~6조원이라는 어머어마한 비용이 들죠.

 

그래도 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거나 하는 거보다는 돈을 쓰는 것이 나을텐데 그것도 힘든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정강이.

 

김광호 부장이 언론과의 인터뷰를 한 것에 따르면 신규 개발한 엔진의 출시 결정은 품질본부장이 합니다. 즉 품질본부장이 사인을 해서 시중에 나왔다는 거죠. 그런데 출시 후 얼마 안되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본인이 사인했는데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윗선에 보고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윗선에 보고하면 어떻게 될까요? 현대차 관련 유명한 이야기가 있죠. 정몽구 회장이 맘에 안 들면 간부들의 정강이를 찼다고. 그런데 현대차가 야심차게 만들어서 대대적으로 홍보까지한 세타2 엔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정 회장이 알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정강이만으로 끝났을까요.

 

그래서 쉬쉬하면서 개선하자고 했던 것으로 의심됩니다. 그러다 4년이란 시간이 흘렀고요. 그 사이에 세타2240만대가 넘게 팔렸고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된 셈이죠.

 

군대같은 현대차의 기업문화가 사태를 키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과 오징어게임은 뭔 연관이 있는 것일까요?

 

일련의 상황을 지켜본 김광호 부장은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엔지니어 출신인 김광호 부장은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인데 그냥 넘어가서는 안된다고 여긴 것이죠. 그래서 20158월달에 감사실 찾아서 제보를 했다고 합니다. 내부제보를 한 것이죠. 그런데 희한하게도 1년 동안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뻔하죠. 감사실에서 묻어버린 것입니다. 윗선인 회장에게 보고해야 하는데 감사실장의 정강이가 남아나질 않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을 보고 김광호 부장은 절망했다고 합니다. 내부에서 바뀔 가능성은 없다고 여긴 거죠. 그래서 정치인의 도움을 받기 위해 국토교통위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의원실에 연락해서 제보하겠다는 뜻도 밝혔다고 합니다. 그래서 면담까지 했었는데 국회의원 코빼기도 못봤다는 군요. 그냥 비서가 이야기를 듣더니만 언론사 보도국장 명함만 주더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귀찮으니까 떠넘긴 거죠. 도대체 어떤 국회의원인지 궁금하네요.

 

그래서 김광호 부장이 찾은 사람은 민주당의 박용진 의원이었다고 합니다. 재벌 저격수로 알려진 박 의원 덕분에 세타2엔진 문제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고요. 이 과정에서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에도 제보하게 된 것고요. 당시 미국에서는 이미 47만 대가 리콜됐는데, 대상이 누락됐을 가능성을 알린 것입니다.

 

미 교통안전국은 이 제보를 본격적으로 조사한 결과를 지난 11월에 결론을 내놨습니다. 세타2를 장착한 160만대의 차량에 대해 시기적으로 부적절한 리콜을 했고, 엔진의 결함에 대해서도 NHTSA에 중요한 정보를 부정확하게 보고했다고 판단한 것이죠. 김광호 부장의 제보가 사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미 교통안전국은 현대·기아차에 과징금 8100만 달러를 부과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이런 내보고발에 대한 법이 있다고 합니다. 100만 달러 이상의 과징금으로 귀결되는 중요 정보를 제공한 내부고발자에게 과징금의 최대 30%를 포상금으로 지급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이 법령에 따라 김광호 부장은 과징금 8100만 달러 중 지급 가능한 최대 비율인 30%282억원의 포상금을 받게 된 것입니다. 자동차 공익 신고 관련 역대 최대 포상금입니다.

 

그야말로 김광호 부장에게는 해피엔딩이 된 것이죠. 그런데 오징어게임과의 연관성은 아직 없는데요라고 할 수 있는데요. 문제가 생기면 임원들의 정강이부터 걷어차는 현대차의 기업문화가 이번 사항을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내부제보를 했을 때 첫 대응은 업무배제였습니다. 그러다 미국 교통안전국과 한국 국토교통부에 제보하자 회사 영업비밀을 유출했다는 혐의로 해임합니다. 1991년에 입사해 25년째 다녔던 회사에서도 쫓겨난 것이죠.

 

이걸로 끝났을까요.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까지 합니다. 이 때문에 검찰 수사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없는 죄도 만들 수 있다는 의심을 받는 검찰 수사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자택 압수수색을 2번 당해 노트북, 휴대전화도 다 빼앗겼으니 공포가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입니다. 길을 걷다가, 차를 몰다가 언제 테러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생겼을 테고요. 김 부장만이 아니겠죠. 가족들이나 지인들은 얼마나 많은 회유와 협박을 받았을까요? 목숨을 걸고 오징어게임하는 심정 아니었을까요?

 

김 부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119일에 제가 공익제보한 지 1,928일째입니다. 제보를 한 후 하루하루를 머릿 속에 놓아본 적이 없습니다.”

 

자신을 물론 가족, 지인들도 쥐도 새도 모르게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동안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나요?

 

그런데 아직 남겨진 질문이 있습니다. 김광호 부장이 공익제보를 한 곳이 미국만이 아니거든요. 국회의원을 찾아갔다가 까인 다음 국토교통부도 찾아갔거든요. 그런데 우리 국토교통부는 뭐했을까요? 그리고 김광호 부장이 받은 포상금이 자동차 공익 신고 관련 역대 최대라고 하는데 다른 분야의 포상금은 이보다 많을까요? 오늘도 궁금한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어제 설명드린대로 김광호 부장이 세타2엔진 결합에 대해 공식 제보하는 것은 2016년입니다. 1년전 내부 감사실에 제보했는데 까이면서 미국 도로교통안전국과 한국 국토교통부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죠. 이보다 전에는 국내 국회의원을 찾아갔으나 여기서도 까였고요. 이후 우리나라 국토교통부도 관련 사항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25년 잘 다니던 현대차에서 해고 통보였죠. 더 나아가 소송에도 시달렸고요. 이 때문에 두 번이나 자택 압수수색을 당해 쓰던 노트북, 휴대전화도 빼앗겼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 내부고발자란 빨간딱지가 붙어 재취업을 시도했지만 받아주는 회사가 없었다고 합니다. 2016년부터 그야말로 손가락만 빨게 된 것이죠.

내부고발자를 돕는 제도는 한국에도 있지 않느냐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김광호 부장은 내부고발자로 인정받아 2018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습니다. 청렴교육 전문강사 자격을 취득해 한달에 한두번 공무원 상대로 강연이라도 했습니다. 2019년에는 국민권위원회로부터 포상금도 받았죠. 그런데 포상금이 얼마였을까요? 그동안의 고통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는 액수였을까요? 앞서 미국은 282억원이었잖아요. 안타깝게도 겨우 2억원입니다. 너무 차이나죠.

 

미국은 공익제보 기여도에 따라 10~30%로 보상 비율이 정해지고 상한액도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보상의 모수가 되는 정부 과징금도 한국보다 미국이 훨씬 크죠. 하지만 한국에서는 공익제보로 인한 정부 수익금이 높아질 수록 보상비율은 20%에서 4%로 낮아집니다. 최대로 받아도 30억원이 한계입니다. 지난해 6월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보상비율을 30%로 단일화하고 상한선을 없애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국무회의를 통과하지 못해 무산됐다는 군요. 왜 무산됐을까요? 김광호 부장의 도움을 매몰차게 거절한 국회의원은 알지 않을까요?

 

이러는 사이에 국토교통부는 뭐 했을까요? 자동차 리콜에 관해 국토교통부가 직접 할 수 있는 인력이 없다고 합니다. 황당하죠. 그래서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조사를 담당한다는 군요. 김광호 부장도 화성에 있는 자동차안전연구원에 직접 방문해서 제보를 했고. 그 이후에 담당팀장을 2회 정도 직접 만나서 추가 설명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미국과의 큰 차이점을 발견했다는 군요. 그게 뭘까요?

 

미국은 공익제보를 하면 공개적으로 진행한다고 합니다. 홈페이지에 가면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공익제보자는 물론 누구든지 지금 진행 현황을 간략하게 언제부터 리콜 적정성 조사가 시작됐고 지금 어느 정도 단계가 진행되고 있고 리콜은 지금 했으면 몇 퍼센트 정도 진행이 됐는지 등을 매월 업데이트한다는 군요. 그리고 결함이 발생되어서 신고가 되면 그 신고도 계속 업데이트해서 모든 사람이 어떤 불량이 발생되었는지 100% 다 공개가 돼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밀실에서 조사하는 듯하다고 합니다. 관련 조사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제보자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군요. 진행 과정에서 공개되는 것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물론 공익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공익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일까요?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일가요?

 

현대차 세타2 결함 사건에만 있는 특수한 경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선박왕 사건을 들어보셨나요?

 

20111월 국세청이 역외탈세와의 전면전을 선포했습니다. 탈세 수법이 진화하면서 스위스, 홍콩, 케이만군도 등 해외의 조세피난처가 활용되고 있다는 언론 폭로가 나오자 국세청이 전담팀을 꾸려 세금 징수에 나선 겁니다.

 

그 결과 3개월 만에 일명 '선박왕'으로 불렸던 시도상선 권혁 회장을 역외탈세범으로 지목됐습니다. 이 양반은 10조 원 규모의 해운회사를 운영하며 선박 160여 척을 가동하는 거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서류상으로는 조세피난처에 있는 페이퍼컴퍼니로 소유권을 돌려놓아 국내에선 제대로 세금을 내지 않았던 거죠. 이 사실을 밝혀낸 국세청은 권 회장을 상대로 세금 4101억 원을 추징하기로 했습니다. 사상 최대 규모였죠. 국세청이 보도자료까지 뿌리며 언론에 대대적으로 알렸습니다.

 

그런데 이 선박왕이 어쩌다 잡혔을까요? 국세청 직원들이 사명감에 열심히 추적해서? 이 사건에 숨겨진 비밀이 있습니다.

 

국민재산되찾기운동본부라고 들어보셨나요? 세금도둑을 잡기 위해 시민단체와 민주당 안민석 의원 등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최순실 최태민 전두환 이명박은 물론 재벌들의 부정재산을 환수하는 것이 목표죠. 이 단체의 안창용 사무국장이 바로 선박왕과 관련이 있습니다. 안 국장은 선박왕이 운영하던 시도상선의 회계책임자이자 비서실장 역할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그런데 뭔가 수상한 점을 발견했죠. 그래서 시도상선의 수상한 자금 흐름을 남몰래 정리했고, 페이퍼컴퍼니들의 소유 관계를 정리한 기밀 문서들을 국세청에 넘겼습니다. 검찰에 고발장도 제출하고 청와대와 법무부로 제보했습니다. ‘선박왕의 탈세 사건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며 역외탈세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그러면 안 국장은 어떻게 됐을까요? 당연히 포상금을 받았겠죠.

 

그런데 안 국장은 국세청에 제보했다는 괘씸죄로 회사의 끈질긴 보복 소송에 시달렸습니다. 더 큰 문제는 안 국장은 공익신고자로 보호받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2011년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시행됐지만 탈세 제보는 공익신고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죠. 게다가 포상금 역시 한 푼도 못 받았습니다. 특히 국세청의 대응이 기가 찹니다.

 

안국장이 제보한 탈세 제보자료는 국세청이 이미 세무조사로 확인한 것과 같다고 주장합니다. 이미 국세청 직원들이 조사하고 있었다는 거죠. 진짜 그랬을까요? 아무튼 국세청은 안국장에게 줄 포상금은 없다고 강조합니다. 기가막히죠.

 

지난 5년간 국세청이 탈세 제보로 추징한 세금은 66000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내부 고발자들의 용기와 희생이 없었다면 걷을 수 없었던 세금입니다. 하지만 포상금으로 지급된 금액은 얼마나 될까요? 앞서 미국은 30%이지만 우리나라는 그보다 훨씬 낮은 20%에서 4%라고 했잖아요. 그러니 적어도 2600억원이 넘어야 정상이죠. 이것도 너무 적지만요. 하지만 통계를 보니 지급한 포상금은 666억 원에 불과합니다. 추징세액의 겨우 1%. 앞서 선박왕 사례처럼 지들이 먼저 조사했다는 등 갖은 핑계를 대며 포상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공익신고를 할 수 있는 대상 법률은 의료법, 식품위생법, 근로기준법 같은 무려 471개에 달합니다. 이에 대한 위반 사항을 신고하면 공익신고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10년 전에 180개에 불과했지만 471개까지 늘어난 셈입니다. 이걸로 만족해야 할까요? 늘어난 471개 중에 조세범 처벌법은 빠져 있습니다. 선박왕 같은 탈세범을 신고해도 포상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선박왕이 난리쳐서? 어의 없게도 국세청과 기획재정부가 이를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군요. “과세정보에 대한 비밀 유지 의무를 어길 수 있다는 게 이유입니다. 탈세 제보가 공익신고로 인정되면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신고를 대리하고 국세청에 자료를 요청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과세정보가 외부로 새나갈 수 있다는 게 국세청의 주장입니다. 과세정보가 새나가면 무슨 문제가 생긴다는 걸까요? 지들이 일 안했다는게 들통 날까 두려운 것일까요?

 

혹시 외국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미국 국세청은 공익제보로 인해 추징한 세액에 대한 포상금을 평균 18.3%나 주고 있다고 합니다. 만일 안국장의 제보를 미 국세청 평균만큼 포상했다면 738억원이나 됩니다. 김광호 부장이 미국에서 받은 포상금보다 훨씬 많게 되는 거죠. 그런데 안국장은 한푼도 포상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내부제보자 최대 포상금 기록은 얼마일까요? 2015년 한국전력 납품 업체가 한전에 수입 기계를 납품하면서 263억원이나 바가지를 씌운 사실을 납품 업체 직원이 국민권익위원회에 고발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포상금이 11600만원인데 이게 최고 기록이라는 군요.

 

그럼 외국의 기록은 얼마나 될까요? 2009년 스위스 금융그룹 UBS 직원이 비밀 계좌를 가진 미국인 고객들의 탈세를 미국 국세청에 제보했습니다. 미 국세청은 UBS 미국인 고객 4500명으로부터 세금 4억달러(4800억원)를 추징했습니다. UBS에도 78000만달러(9600억원)의 벌금을 부과했죠.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국세청이 다 알고 있으니 자진 신고하라고 부자들을 압박했죠. 지금 내지 않으면 엄청난 과징금을 부과하겠다고 경고한 것이죠. 그러자 제 발 저린 미국 부자 14000명이 세금 50억달러(6조원)를 자진 납세했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하죠.

 

이 덕분에 미 국세청은 7조원이 넘는 세금을 추징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 이를 제보한 UBS 직원이 받은 포상금은 얼마였을까요? 오징어게임 두 번을 성공해야 받을 수 있는 1400만달러(1200억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엄청나죠.

 

그런데 이 기록이 최근에 깨졌다는 군요. 10년 전 바클레이즈, 도이체방크, 소시에테 제네랄레 등의 은행들이 부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은행 간 초단기 거래 금리인 리보를 수십 년간 조작해온 것이 드러나 국제 금융에 혼란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비밀스러운 일이 밝혀진 것도 도이체방크 직원의 내부제보 덕분이었습니다. 이에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무려 10년이라는 긴 조사 끝에 해당 은행들에게 30억달러(36000억원)가 넘는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그러면 이를 제보한 도이체방크 은행원은 얼마나 많은 포상금을 받았을까요? 무려 2억달러(2400억원)이라는 군요. 역대 포상금 최고액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 내부제보자들에게 이렇게 엄청난 포상을 할까요? 미국에서조차 내부제보자에 대한 시선이 마냥 고운 것은 아닙니다. 피고발자 입장서 보면 일탈이자 배신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밥 먹으면서 동고동락했는데 한순간 밥상을 걷어차는 행위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내부 고발엔 가혹한 뒤끝이 따라오곤 합니다. 이른바 왕따혹은 '역적'과 같은 꼬리표가 붙는 것이죠. 이 때문에 공익제보를 이렇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밧줄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하는 번지점프’.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몸을 던지는 용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내부제보자를 휘슬블로어, ‘공익의 호루라기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선뜻 내부제보에 나서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막대한 포상금을 거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요.

 

하지만 조직과 사회가 맑고 투명해지기 위해서는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잘못을 지적하는 호루블로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미국 등 선진국에서 형성돼 있다고 합니다. 정부나 시민단체들도 휘슬블로어가 더욱 많이 나올 수 있도록 각종 시스템 등을 정비하고 있죠. 나중에 가래로도 막지 못할 것을 미리 호미로 막는 것과 같은 지렛대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실리콘밸리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노동자들이 비밀 유지 족쇄에서 벗어나 기업 비리를 자유롭게 고발할 수 있게 하는 침묵중지법(Silenced No More Act)’을 제정,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요즘 미국 언론은 알고리즘 조작 등 페이스북의 치부를 고발하는 내부 직원의 폭로도 이런 움직임 덕분이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일선에서 늘 강조한 사항이 있습니다.

 

나쁜 소식은 빨리 퍼트려라! (Bad 뉴스 must travel fast!)”

 

이번 현실 오징어게임의 당첨자인 김광호 부장은 언론에 포상금 사용처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공익제보전략연구소와 자동차제작결함연구소를 만들 계호기이라고. 호루라기재단과 함께 미래의 공익신고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고 광고주에 흔들리지 않고 차량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고.

 

5년 동안 당했던 오징어게임같은 고통의 대가를 다시 국민들에게 환원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정말 박수를 보내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현대차 임원들의 표정은 어떨까요? 또 정강이 걱정하고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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