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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뒷이야기

원유 가격에 감춰진 비밀

경불진 이피디 2019. 2. 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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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강세와 중국발 수요 부진 등이 겹치며 원유 가격이 미친 듯이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배럴당 50달러 붕괴가 임박했다는 소식도 들리는군요. 불과 1년 전 만해도 100달러를 넘나들었던 것을 감안하면 반토막 난 셈입니다. 도대체 원유가격이 이렇게 요동치는 이유가 뭘까요.

 

일단 중·고등학교 경제시간에 배운 탄력성 개념부터 떠올려야 합니다. 원유는 대표적인 비탄력 재화입니다. 가격이 올랐다고 원유 생산을 바로 늘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원유를 개발하려면 막대한 재원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또 가격이 내렸다고 수요를 늘리는 것도 만만치 않습니다. 지하철 탈 것을 자가용을 몰고 가는 것은 가능하지만 쓰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공급과 수요에 조그만 변화가 있어도 가격은 엄청나게 변하게 됩니다.

 

그럼 원유의 수요과 공급을 좌우하는 요인은 무엇일까요. 우선 원유의 수요는 세계 경제와 큰 연관이 있습니다. 경제가 좋아지면 당연히 원유수요가 늘어난다는 이야기입니다. 반면 경제가 악화되면 원유수요는 급감하게 되죠.

 

2008년 상황을 보면 수요 때문에 유가가 얼마나 급등락할 수 있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087월 유가는 140달러를 웃돌았습니다. 원유생산이 정점에 이르렀다는 피크오일이론이 확산됐기 때문입니다. 2조 배럴 정도로 추정되는 전 세계 원유 중에서 생산하기 쉬운 것은 이미 다 소비했고 앞으로는 생산단가가 올라간다는 주장이죠.

 

쉽게 이야기하면 우리 키 높이에 달린 나무 열매는 다 따먹고 앞으로는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는 수고스러움을 겪어야 열매를 딸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이라크 전쟁까지 터지면서 원유에 대한 가수요가 급증했고 유가는 급등하기 시작했습니다. 메릴린치 등에서는 배럴당 200달러를 돌파할 것이란 전망까지 내놓았죠.

 

그런데 2008년 미국경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혼수상태에 빠지면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석유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기 시작하자 유가도 급락했습니다. 유가는 5개월 만인 2008년 말 40달러 이하로 급락했습니다. 5개월 사이에 유가가 무려 100달러가 움직인 셈입니다.

 



미국 셰일혁명으로 세계 최대 산유국 넘봐

이와같은 급등락은 최근에도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런 이번 급등락은 2008년과는 달리 공급 변화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20146106달러 정도였던 유가는 2015343달러로 추락합니다. 8개월 만에 60달러가 떨어진 셈이죠. 이같은 변화의 원인을 전문가들은 미국의 셰일혁명에서 찾고 있습니다.

 

셰일가스는 대량의 물과 모래, 각종 화학 물질을 혼합한 용액을 지하 퇴적암층에 쏘아 가스를 뽑아내는 방식으로 생산됩니다. 따라서 채굴이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어 주목받지 못했죠. 하지만 신기술 개발로 대규모 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미 매사추세츠 공대가 발간하는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 따르면 5년 전에 비해 셰일 오일 생산에 드는 굴착 시간은 50% 단축됐고, 한 번에 팔 수 있는 굴착 거리도 2배 이상 길어졌습니다. 덕분에 미국의 원유생산량이 하루 평균 958만 배럴 수준으로 늘어났다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는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1033만 배럴에 근접하는 수치죠. 전문가들은 머지않아 미국이 사우디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OPEC의 치킨게임


그런데 미국은 왜 이렇게 원유생산을 늘리고 있을까요. 아까 얘기했듯이 원유는 비탄력적이기 때문에 조금만 생산을 조절하면 더 큰 수입을 올릴 수 있을텐데 말이죠.

 

일단 석유수출국기구(OPEC)와의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유가 결정권을 놓고 미국과 OPEC은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석유의 역사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석유의 역사는 불과 150여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185911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서는 석유를 뽑아내기 위해 유정을 파면서 시작됐습니다. 이후 텍사코, 걸프오일, 로얄 더치 셀 등 미국 메이저 업체들이 중동지역 석유까지 생산하면서 세계 석유 자원의 85%를 미국이 좌지우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1970년대 중동에서 석유 민족주의를 내걸고 OPEC이 부상하기 시작했죠. OPEC1960년 중동, 남미의 산유국들이 미국의 유가 인하 공세를 저지하기 위해 결성한 정부간 기구인데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사우디, 베네수엘라 등 5개국이 초기 결성에 참여했고 이후 카타르, 리비아, UAE, 알제리, 나이지리아, 에콰도르, 앙골라 등이 가입해 현재는 12개국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OPEC은 세계 원유 생산의 40% 내외, 세계 수출에서는 60% 내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OPEC은 한동안 석유가격 결정권을 행사해 왔죠. 1,2차 오일 쇼크가 발생한 것도 이때입니다.

 

그런데 최근 셰일오일이라는 신무기를 장착한 미국이 OPEC에 빼앗긴 석유가격 결정권을 다시 찾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동안 석유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해왔던 OPEC 국가들은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이야기죠. 이에 맞서기 위해 OPEC에 꺼내든 카드는 증산이었습니다. 과잉공급을 통해 유가를 떨어뜨리면 상대적으로 생산단가가 높은 미국 셰일오일업체들이 나가떨어질 것이란 판단 때문입니다. 전문가들도 유가가 60달러대로 떨어지면 셰일 산업은 연쇄 부도사태가 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런데 OPEC의 이런 도박은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기술혁신을 통해 생산성은 높인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이 유가 급락에도 오히려 생산량은 더 늘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장조사기관 IHS에 따르면, 지난 5월 미국의 셰일오일 하루 평균 생산량은 457만 배럴로 1년 전에 비해 80만 배럴이 더 늘어났다고 합니다.

 

상대편이 손을 들 때까지 한번 해보자는 식으로 미국과 OPCE가 증산에 나섰으니 유가가 급락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죠.



 

미국, 중국의 원유 허브 흔들기에 나서

그런데 더 중요한 이야기가 남아있습니다. 미국이 노리는 것은 OPCE만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세계 경제 패권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중국과도 석유자원을 놓고 한판 힘겨루기에 들어간 상황입니다.

 

최근 경제력을 급격히 키운 중국이 자원외교에 나서고 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중국이 노리는 것은 위안화 파워를 앞세워 글로벌 원유 거래 허브 구축입니다. 쉽게 말하면 미국 주도의 원유 거래 질서를 뒤흔들어놓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원유는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는 석유 텍사스 중질유(WTI), 런던 ICE 거래소에서는 북해산 브렌트유가, 싱가포르 현물시장에서는 중동에서 나는 두바이유가 거래되고 있습니다. 이때 사용되는 화폐가 달러입니다. 이는 미국의 최대 경제 대국인데다 최대 석유 수입국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미국의 석유 수입량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경제력이 급격히 커진 중국은 미국을 뛰어넘어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으로 떠올랐죠. 중국은 석유수출국들에게 귀찮게 달러로 거래하지 말고 위안화로 결제하자고 압박할 수 있는 카드가 생긴 셈입니다. 2009년 경부터 사우디 등이 이같은 압박에 넘어갔다는 이야기가 솔솔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러시아 3대 석유생산업체 가스프롬 네프트가 중국에 수출하는 원유를 달러화가 아닌 중국 위안화로 결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서방이 경제제재를 가하자 러시아는 위안화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된 셈이죠.

 

이에 자신감을 얻은 중국은 상하이 선물시장에 원유선물 거래를 개설하기 위해 본격적인 세부 작업에 나섰습니다. 이를통해 위안화를 기축통화의 지위에 올리겠다는 복안도 깔려있습니다. 원유는 거래량이 석탄이나 천연가스보다 2배 이상 많고, 철의 10배가 넘기 때문에 원유 결제에 쓰이는 화폐의 영향력은 엄청나죠.

 

미국으로써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자칫하면 세계 경제의 중심위치를 중국에게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때마침 미국에게 신의 선물같은 셰일 오일 터졌습니다. 미국 내 수요를 충분히 감당하고 남을 만한 양입니다. 이 때문에 미국이 조만간 석유 수출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1973년 아랍 산유국들의 원유 수출금지에 대한 대응책으로 1975년부터 국내에서 생산된 원유에 대해서는 수출을 금지했지만, 최근 유럽으로의 일부 수출을 허용한 바 있습니다. 미국은 중국의 원유선물 거래에 찬물을 끼얹질 수 있는 석유 수출이라는 조카를 가진 셈입니다. 미국이 석유가격을 마음대로 조정하며 중국의 원유 거래 허브 구축을 흔들 것이라는 사실은 불보듯 뻔한 일입니다.

 

정치 상황 변화도 살펴야


그럼 앞으로 원유가격은 어떻게 될까요. 당분간 유가가 급등하는 것은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셰일업체와 OPEC의 힘겨루기가 끝나지 않은데다 미국과 중국의 허브 경쟁도 아직 진행중이기 때문입니다. 한가지 염두에 둘 점은 셰일오일이 미국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중국도 아직 개발되지 않은 엄청난 셰일오일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중국마저 셰일오일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선다면 유가는 또다시 요동칠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유가는 2~3년 간은 더 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아직까지 석유공급의 절대량을 차지하고 있는 중동에서 정치적 위기가 발생한다면 반대의 상황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유의해야 합니다. 미국-이란의 관계가 급격히 좋아지고는 이지만 IS(이슬람국가)가 아직 건재하기 때문에 무슨 일이 발생할지 예측하기 힘든 상태죠. 정치적 불안감이 조성되면 가수요가 발생해 유가가 급등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유가를 예측하는 것은 경제적 상황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정치 상황 변화도 살펴야 하니 참 힘든 작업입니다.



http://www.podbbang.com/ch/9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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