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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통화와 SDR, 누가 더 쎌까?

경불진 이피디 2019. 4. 5.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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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통화

(Key currency)는 국제간의 결제나 금융거래의 기본이 되는 통화를 뜻합니다. 로버트 트리핀 예일대 교수가 금 이외에 달러가 국제 외환시장 등에서 주로 거래되는 것을 보고 처음 주장한 용어죠. 트리핀 교수는 4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기축통화의 지위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첫째 자유교환성(free convertibility) 내지는 자유대체성(free transfer ability), 둘째 국제적 신뢰와 통화가치의 안정성 보장, 셋째 풍부한 통화공급량과 통화수요, 넷째 해당 통화를 보유한 국가의 국제금융시장 수행 능력 등입니다.

 

전세계 250여 개국 대부분의 통화는 이같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용범위가 자국 내로 한정돼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사용하기 힘들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 돈도 일부 동남아 국가를 제외하고는 받는 곳이 없는 것처럼 말이죠.

 

반면 달러는 세계 어느 나라로 여행을 가더라도 유용합니다. 관광산업이 발달한 나라에서는 해당 국가 통화로 굳이 환전하지 않더라도 달러로 손쉽게 계산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어디서나 공신력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죠. 그야말로 국제 통화라고 봐도 손색이 없습니다.

 

그런데 달러가 옛날에도 이런 지위를 누렸을까요

. 물론 서양의 시각이긴 하나 기축통화의 가장 오랜 역사를 뒤져보면 15세기 스페인까지 올라갑니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해상무역권을 장악했던 스페인은 막대한 금과 은을 유럽으로 들여왔습니다. 100여년 간 스페인을 통해 유입된 금의 양은 150, 은은 7400톤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될 정도입니다. 2015년 현재 우리나라 금 보유량이 104톤 내외이니 얼마나 많은 양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덕분에 스페인이 주조한 은화 페소 데 오초는 국제화폐 노릇을 했습니다.

 

그런데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에 완파당하면서 스페인의 기축통화는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이때 떠오른 나라가 네덜란드죠. 네덜란드는 17세기 초 동인도회사를 세우고 암스테르담에 최초의 근대적 은행을 두고 수표를 만드는 등 발달한 상업국가로서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이 시기 네덜란드의 길더화가 국제통화의 역할을 했죠. 하지만 네덜란드의 지위는 한 세기도 미처 가지 못했습니다.

 

해적을 앞세운 영국이 전 세계 바다를 점령하면서 파운드화가 기축통화의 자리를 꿰찼죠. 영국은 스페인이나 네덜란드보다는 지위를 오래 유지했습니다. 금에 연계하는 금본위제를 도입했고 세계 각국은 파운드화를 교역할 때 결제용도로 사용했습니다. 19세기 후반에 파운드화가 세계 교역 결제통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파운드화의 전성시대는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막을 내립니다. 미국 달러화가 패권을 차지한 거죠. 이미 미국의 경제규모는 1872년 미국을 뛰어넘었습니다. 1915년에는 수출 규모까지 따라잡았죠. 하지만 1940년까지 전세계에서 유통되는 파운드의 양이 달러의 두 배에 달해 금융 패권을 빼앗지 못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기간에도 파운드는 핵심 화폐 역할을 지켰죠.

하지만 194444개국은 미국 뉴헴프셔주 브레턴 우즈에 모여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삼는 금환본위제에 합의했습니다. 이에 따라 금 1온스는 미국 35달러에 고정됐으며 이듬해 국제적으로 달러화의 사용량이 파운드화를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70년간 달러화는 국제 통화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죠.

 

 

물론 달러가 순탄하게 지위를 유지했던 것은 아닙니다

. 특히 한때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던 일본 엔화의 도전이 만만치 않았죠. 하지만 1985년 플라자 합의를 거치면서 일본 경제는 주춤했고 곧 잃어버린 20으로 불리는 장기불황에 빠졌습니다.

또 유럽연합(EU)이 탄생하며 유로화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역시 저성장에 빠지면서 달러화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달러화에 도전하는 다음 타자는 중국 위안화입니다. 중국이 IMF SDR 통화바스켓 편입을 시작으로 기축통화의 지위를 확보하고 세계적으로도 위안화의 자리를 다질 것으로 보입니다.

 

SDR이 뭔데 기축통화 지위까지 좌우되는 걸까요. SDR1970년 발동된 국제준비통화의 한 종류입니다. IMF의 운영축인 금과 달러를 보완하기 위한 제3의 세계화폐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SDR이 필요한 이유는 유동성 공급 때문입니다. 금의 생산에는 한계가 있고, 달러의 공급은 새로운 화폐를 찍어내지 않는 한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에 의해서 가능하기 때문에 달러의 신인도를 떨어뜨린다는 딜레마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SDRIMF가맹국이 규약에 정해진 일정조건에 따라 IMF로부터 국제유동성을 인출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한마디로 IMF가 발행하는 장부상의 가상 화폐인 셈이죠. 가상화폐이기 때문에 신인도 추락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흔들리는 그리스 경제에 자금을 대준 것도 바로 SDR이었습니다.

 

초기에는 1SDR1달러였습니다. 하지만 1972년 미국이 금값을 기준으로 달러화 환율을 정하던 고정환율제를 포기하면서 16개국의 통화를 편입시켜 SDR을 구성하는 바스켓 방식을 취했습니다. 그런데 16개국 통화로 바스켓을 구성하다보니 SDR 화폐 계산이 지나치게 복잡해져 잡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자국 화폐를 바스켓에 넣어달라는 주문도 거셌죠.

 

IMF는 이 같은 부작용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1980년부터 달러, 파운드, , 마르크, 프랑화 등 5종 화폐로 바스켓을 단순화했습니다. 이 때문에 SDR 구성 통화들은 국제적인 기축통화의 지위를 누리게 돼 해당 국가는 세계 경제의 엘리트로 인정받게 됩니다. 특히 2000년 유럽연합이 탄생하며 마르크화와 프랑화가 유로화로 바뀐 것을 빼면 15년간 SDR 바스켓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9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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