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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경제학' 아시나요?

경불진 이피디 2019. 12. 1.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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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경제학 용어 중에 주술이 들어간 것이 있습니다. 바로 주술 경제학입니다. 다른 말로 부두경제학이라고도 합니다. 부두교는 서아프리카의 종교를 노예로 미주에 온 흑인들이 기독교 신비주의와 결합시켜 발전시킨 종교입니다. 부두교는 무당들이 시끄러운 굿판으로 통해 시체들에 마법을 걸어 움직이게 만드는 주술, 즉 좀비를 만든다고 해서 종종 영화의 소재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좀비의 어원도 부두교의 무당들이 만들어낸 시체 같은 사람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아무튼 경제학에 이같이 믿기 힘든 종교를 붙인 이유가 뭘까요. 부두교 무당처럼 시끄럽게 굿판을 벌이며 요란을 떨지만 정작 효과가 없는 경제정책을 비판하기 위해서입니다. 경제이론이나 경제효과와는 전혀 상관없이 현란한 미사어구로 국민들을 현혹시키는 경제 정책들을 바로 주술경제학이라고 부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같은 주술경제학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놀랍게도 1980년대 미국입니다. 공화당 대선 경쟁이 한창이던 당시 후보였던 조지 부시는 경쟁자인 레이건 후보를 향해 감세를 통한 성장이란 사람을 현혹시키는 연기만 피워 올릴 뿐 알맹이는 전혀 없는 주술 경제학이라고 맹공을 퍼부었습니다. 레이건의 경제 정책의 핵심인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부자 감세가 전혀 경제학적인 근거가 없다고 비난한 것이죠.

 

하지만 부시는 당시 대선 경쟁에서 패배합니다. 결국 레이건의 러닝메이트로 지명돼 부통령에 오르죠. 1981~1989년까지 부통령으로 인고의 세월을 거친 후 198941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합니다.

 

그런데 재미난 점은 주술경제학과 관련된 부시의 입장 변화입니다. 1982년 부통령에 재임할 당시 부시는 NBC TV의 기자에게 주술 경제학에 대한 질문을 받습니다. 대선 경쟁 때 레이건 대통령을 비난했던 주술경제학이란 발언이 아직 유효하냐는 질문이었죠. 하지만 부시는 영국 출신인 한 참모의 구상이었을 뿐 나는 입 밖에 낸 적이 없다. 증거도 없지 않는가. 내기를 걸어도 좋다며 발언 자체를 부인했죠. 당시에는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아 팩트 검증 등이 불가능할 것으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NBC TV에서 부시가 주술경제학을 운운하는 당시 필름을 찾아내는 데는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NBC TV는 바로 이 내용을 대대적으로 방영했죠. 부시를 한순간에 곤경에 빠뜨렸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부시는 아무렇지 않은 듯 해명합니다. “그저 농담했을 뿐이다라고 한 것이죠. 박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의 원조는 아마 부시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럼 부시가 주술이라고 규정했던 레이건 대통령의 정책, 즉 레이거노믹스는 어떻게 됐을까요. 당시에는 소련과의 경쟁에서 뒤쳐질 위기에 빠졌던 미국인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습니다. 특히 부자들이 두손 두발 들고 환영했죠. 일반 서민들도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면 이들이 돈을 쓰고 막혔던 경제가 돌아가면서 자신들의 호주머니도 두둑해질 것으로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레이거노믹스가 소련과의 체제경쟁에서도 승리를 가져올 것으로 여겼습니다. 부두교 무당이 굿을 하듯이 현란한 미사여구로 국민들을 빠져들게 한거죠.

 

이런 지지를 바탕으로 레이건은 당선되자 마자 의회에 1982년부터 3년간에 걸쳐 정부 재정 지출을 깎겠다며 세율을 30% 내려줄 것을 자신 있게 요청했습니다. 1982년에만 414억 달러를 줄이겠다고 했는데 재정 지출 삭감 대상의 대부분은 복지예산이었습니다. 레이건의 강력한 요구에 의회도 삭감율을 25%로 조정해 의결했죠.

 

그런데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잠시 반짝하던 미국경제는 서서히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레이건 행정부 14년간의 경제성장률은 10.3%로 이전 카터 행정부 때의 13.6%보다 낮았습니다. 반면 실업률은 평균 8.6%로 카터 행정부 시절의 6.4%보다 높아졌죠. 재정적자도 늘어났습니다. 복지예산은 삭감했지만 소련과 경쟁해야한다는 명목 하에 국방예산을 대폭 늘렸기 때문이죠. 연방정부 재정적자는 198158억 달러에서 1985년에는 2000억 달러로 급증했습니다. 4년 만에 무려 35배나 증가한 셈입니다. 이는 역대 행정부 재정적자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았습니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연방 예산국장을 지내다 1985년 그만둔 데이비드 스토크만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미국 재정 역사상 이보다 심한 바보짓은 없었다고 비판할 정도였습니다. 아마 현재의 한국 상황을 알았더라면 한국보다는 나았다고 자조할 지도 모르죠.

 

아무튼 레이거노믹스는 미국 국민들의 생활도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복지예산 삭감으로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빈곤층이 최빈곤계층으로 주저앉았습니다. 반면 최상위 1% 부자들이 미국 전체에서 차지하는 순재산이 레이건 임기초 8%에서 12%로 급증했습니다. 부자들만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부시가 이런 식견이 진짜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론적으로는 부시의 지적이 맞았습니다. 레이건의 경제 정책의 핵심인 낙수효과가 전혀 작동하지 않은 셈이죠. IMF마저 지난해 낙수효과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공식 보고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특히 IMF는 고소득층의 수입 증가가 오히려 경제 성장률의 감소로 이어져 왔다고 주장합니다.

 

IMF 소속 경제학자들은 150여 개국 사례를 분석한 결과, 상위 20% 계층의 소득이 1%포인트 증가하면 이후 5년의 성장이 연평균 0.08%포인트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는 이야기죠. 반면 하위 20%의 소득이 1%포인트 늘어나면 같은 기간의 성장이 연평균 0.38%포인트 확대되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덧붙였습니다.

 

IMF 보고서는 높은 수준의 소득불평등은 가난한 사람들이 보건과 교육비를 지출하는데 더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경제성장을 오히려 가로막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결론은 하위 계층의 소득을 늘리고 중산층을 유지하는 것이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죠.

 

한마디로 레이거노믹스가 소리만 요란했던 주술경제학이라는 것을 진보진영에서도 아닌 IMF에서 인정한 셈입니다.

 

재미난 것은 부시는 자신이 내뱉었던 말 때문인지 대통령에 집권할 때 감세정책을 적극적으로 취하진 않았습니다. 레이건 때보다는 소득세율을 살짝 높이기도 했죠. 하지만 빌 클린턴 이후 대통령에 오른 아들 부시는 아버지가 맹공을 퍼부었던 레이거노믹스의 신봉자였습니다. 전쟁까지 일으키며 레이건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했죠. 덕분에 서서히 회복되던 미국 경제는 다시 추락했습니다. 최상위 1%가 차지하는 순재산이 무려 33%까지 늘어났고 미국의 국가부채는 11조 달러를 훌쩍 넘어섰습니다.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 경제가 레이거노믹스라는 정체불명의 굿판 두 번으로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을 짚어볼까 합니다. 두 번의 레이거노믹스는 초반에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언론과 경제학자들을 동원해 레이거노믹스를 대대적으로 홍보했기 때문이죠. 근거가 부족한 수치와 현란한 그래프로 사람들을 현혹시킨 것입니다. 마치 부두교 무당이 굿을 하듯 말입니다. 특히 이런 일이 가능했던 또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바로 국제정세입니다. 레이건은 당시 소련과 군비경쟁을 치열하게 벌였습니다. 아들 부시는 악의 축 사담 후세인을 축출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죠. 이런 국제정세 때문에 국민들은 현란한 주술경제학을 꼼꼼히 살펴볼 여력이 없었던 겁니다. 그냥 정부에서 이야기하는대로 믿어버린 거죠.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더 짚어볼까합니다. 이 굿판을 벌인 주체가 누구일까요. 레이건이나 아들 부시가 경제에 대한 식견이 있어서 이렇게 했을까요. 당연히 아니겠죠. 월스트리트로 대변되는 미국 기득권들이 레이건이나 아들 부시에게 감세정책을 쓰도록 뒤에서 조정한 것입니다. 현란한 경제용어를 앞세워 레이건과 아들 부시의 생각을 지배한 것이죠. 부두교 무당이 시체를 좀비로 만들어 마음대로 다루듯이 말이죠. 그리고는 뒤에서 자신들은 엄청난 부를 챙겼습니다.

 

그럼 주술경제학의 마법에서 깨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장 만능의 환상에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알아서 결정해 줄 것이라는 마법같은 말에 이제는 의문을 던져야 한다는 이야기죠. 시장 만능, 보이지 않는 손은 경제학 서적이나 프로그램 상에서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현실세계에서는 불가능하죠. 감세를 통해 부자들을 배불리면 자연스럽게 서민들에게 떡고물이 떨어진다는 낙수효과도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자는 주술경제학에서 벗어나 좀 더 인간답게 따뜻한 마음으로 경제를 바라봐야 합니다. 주술경제학에 맞서 서민, 노동자들이 따뜻한 연대를 해야 합니다. 200여년 전 영국의 경제학자 앨프레드 마셜이 강조했던 ‘냉철한 머리, 따뜻한 마음’이라는 경제학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이 되지 않은 대통령과 보수언론, 재벌 등에 일침을 가해야 합니다. 선무당이 정말로 나라를 잡기 전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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