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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전투 승리 비결로 일본 불매운동도 이길 수 있다!! 본문

경제 뒷이야기

봉오동전투 승리 비결로 일본 불매운동도 이길 수 있다!!

경불진 이피디 2019. 8. 16.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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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오동 전투-독립전쟁의 서막을 열다’ 편  다큐의 한 장면

우리 독립운동사에 길이 빛날 첫 승리 봉오동 전투. 승리 비결은 뭘까요? 최근 이를 분석했던 다큐가 하나 있습니다. 지난달 23KBS에서 방영했던 다큐세상 봉오동 전투-독립전쟁의 서막을 열다편인데요. 이 다큐에서는 우리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봉오동 전투가 벌어진 현장을 방문해 사람들의 증언과 각종 기록을 바탕으로 승리 비결을 분석해주더라고요. 기회가 되시면 애청자 여러분들도 KBS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보실 수 있는데요.

 

아무튼 살짝 요약해드리겠습니다. 191931일에 일어난 ‘3.1 만세운동이후 국내외 정세는 조선 독립군의 무장투쟁을 활발하게 만들었습니다. 만주와 연해주를 비롯한 국외 독립운동 기지에서는 60여 개가 넘는 무장 독립 단체가 세워져 일제와의 독립 전쟁을 준비했죠.

 

19201월부터 6월까지 독립군 단체들이 28차례나 국내진공작전을 벌이기도 했답니다. 이에 일제는 국경 지역에 더 많은 병력을 배치하고 조선 독립군 및 독립 투쟁 세력을 토벌하는 작전을 폈죠. 이 때 64, 중국 국경을 침범한 일본군은 삼둔자 마을에 몸을 피한 독립군을 추격하다가 놓치자 민간인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봉오동전투 영화에도 나오는 것을 알고 있는데요. 아무튼 기존의 병력으론 독립군을 토벌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일본군 지휘부는 야스카와 추격대대(월강 추격대)를 편성하여 간도 독립군 섬멸 명령을 내리죠. 독립군의 움직임에 불안함을 느낀 일본군은 단단히 준비한 군대를 보내고 국경을 넘는 무리수까지 둔 셈입니다.

 

단단히 준비한, 청나라나 러시아까지 물리쳤던 일본 관동군을 대상으로 우리 독립군이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이 뭘까요? 다큐세상에서는 4가지를 꼽습니다.

 

첫째 ‘연합의 힘’. 흩어진 독립군 단체들은 대통합을 이루어 봉오동 전투에 임했다고 합니다. 여러 독립군 단체들은 접촉하기 좋은 위치인 봉오동에서 전투 한 달 전부터 통합 논의를 나누었죠. 그 결과 최진동 형제가 이끄는 군무도독부, 홍범도 장군이 지휘하는 대한독립군, 안무가 통솔하던 대한국민회 등이 손을 잡고 독립군 연합체인 대한북로독군부를 결성해 일제에 대항한 것이죠.

 

둘째, ‘보급의 힘’. 이게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당시 일제의 탄압을 피해 북간도에 거주하는 조선인의 숫자는 18만 명에 달했습니다. 경제적인 기반을 마련한 이들은 조선 독립군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었죠. 이들의 도움을 바탕으로 학교를 세워 교육으로 독립사상을 고취하고 전문적인 군사교육을 시켰습니다. 특히 봉오동 전투에서 사용한 독립군의 무기는 주목할 만합니다. 많은 분들이 우리 독립군들이 조총 수준에 불과하던 화승총을 썼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심지어는 동학농민혁명 때처럼 죽창을 들도 싸웠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텐데요, 기관총 앞세운 일제를 감안하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죠.

 

실제로 봉오동 전투 때 사용된 무기는 러시아제 최신 무기였다고 합니다. 독립군이 러시아제 무기를 어떻게 구입했을까요? 독일과 함께 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오스트리아는 자신들이 식민지였던 체코인들을 징집해 전선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 러시아로 탈출했던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는 군요. 무려 7만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이 탈출 체코군인들로 러시아는 체코군단을 만들어 전투에 내보냈죠. 그런데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것이죠. 따라서 체코군단을 지원하던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게다가 러시아는 1차세계대전에서 발을 빼죠. 러시아군에 소속됐던 체코군단으로써는 싸울 상대가 없어진 것입니다. 엎친데덮친격으로 러시아에서는 적군과 백군 간의 내전이 벌어지죠. 이에 체코 독립운동 지도자인 토마스 마사리크는 체코군단에게 러시아 내전에 휘말리지 말로 프랑스로 이동하라고 명령합니다.

 

문제는 내전이 한창중인 러시아를 돌파하고 독일을 건너 프랑스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체코군단은 아예 동쪽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프랑스로 가겠다는 계획이었죠. 실제로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한 체코군단은 선박을 구하는대로 프랑스로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1년이 넘는 기간이 걸리기도 했죠. 이렇게 출발하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무기를 팔기도 했습니다. 당시로는 최신예 무기인 러시아제 무기 모신나강과 미국산인 맥심기관총도 있습니다. 이 소식을 알았던 독립군이 자금을 마련해 상당수를 체코군단으로부터 구입했던 것이죠.

 

잠시 샛길로 빠져보면 이 때 숨겨진 영웅 최운산 장군의 활약이 매우 컸죠. 간도 제1의 갑부였던 최운산 장군은 모든 재산을 팔아 독립군의 무기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최운산 장군에 대한 스토리는 지난달 28일 방송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도 나오는 데요. 당시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8명의 영웅이 있었다고 합니다. 최명길은 신한촌 건설, 최풍은 군사학교를 세워 사병 양성, 최만익은 막대한 독립 자금 지원, 첩보활동으로 정보 수집한 최복, 외국과의 무기 거래로 독립군 무장시킨 최고려, 무장투쟁에 앞선 최문무, 최빈까지. 그런데 알고보니 그들은 사실 모두 같은 사람인 최운산이었다고 합니다. 홍길동이 분신술을 벌인 것처럼 최운산 장군도 여러 인물인 것처럼 일본군을 속였다는 것이죠. 이렇게 일본군을 속이고 체코군단으로부터 최신예 무기를 구입해 봉오동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입니다.

 

그런데 좀 궁금하시죠? 최운산 장군이 얼마나 돈이 많길래 비싼 무기를 살 수 있었을까요? 최운산 장군은 1885년 중국 지린성에서 3남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중국어에 능통했던 최 장군은 중국 고위관료들과도 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국인 고위관료들로부터 간도지방의 토지정리 사업을 시작한다는 정보를 입수했죠. 그래서 최운산 장군은 가족·지인들로부터 돈을 모아 황무지를 헐값이 불하받습니다. 그리고 이 황무지를 일제를 피해 도망쳐 온 조선인들과 개간을 했죠. 개간작업이 끝나자 토지가격은 폭등을 했고 이 돈으로 축산, 미곡, 무역에 주류, 제면, 성냥, 비누 공장까지 운영하는 간도 제 1의 거부가 된 것이죠. 한때 최운산 소유의 토지가 부산면적의 6배에 달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1910년 경술국치가 벌어지자 이렇게 힘들게 모은 재산은 최운산은 미련없이 독립운동에 쏟아부었습니다. 군사학교를 만들어 독립군도 양성했죠. 특히 신한촌이란 마을을 만들어 독립운동 기지로 삼기도 했습니다. 이 덕분에 봉오동 전투에서 우리 독립군이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빛나는 승리를 거둘 수 있었죠. 이후에도 일본의 감시를 피해 독립군을 조력하던 최운산 장군은 이후 일제에 체포되어 수차례 투옥과 고문을 겪다 안타깝게도 광복 40일 전 순국했다는 군요. 이런 분의 이름은 우리가 길이 기억해야겠죠.

 

하지만 최운산 장군의 이름을 처음 들어보시는 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저도 부끄럽게도 서프라이즈에서 처음 접했습니다. 그래서 최운산 장군의 이름이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유를 살펴봤죠. 최운산 장군은 토지소유주, 즉 지주였다는 이유로 친일파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다행히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에서는 이는 최운산 장군이 남긴 행적에 비하면 흠결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죠. 너무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최운산 장군의 아내인 김성녀 여사는 남편의 명예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특히 이승만을 몰아낸 덕분인지 1961년에는 국가로부터 건국훈장을 주겠다는 연락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서훈 업무를 맡았던 총무처 직원이 뒷돈을 요구하는 황당한 일이 있었다는 군요. 그래서 최운산 장군의 아들인 봉우가 주먹을 날려 서훈이 취소되는 안타까운 일을 겪었다고 합니다. 정말 너무하지 않나요? 네가 그 직원을 찾아 아구창을 날려주고 싶군요. 아무튼 1977년이 되어야 간신히 독립운공자로 선정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같이 독립운동을 했던 동생 최치홍 선생은 100년이 훨씬 지난 올해까지도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지 않았다는 군요.

 

더 안타까운 점은 오늘날 삼성과 비견되는 엄청난 재벌이었던 최운산 장군이 40여년에 이르는 무장 독립운동으로 그 막대한 재산을 거의 다 소진했다는 점입니다. 말년에 남은 것이라고는 살고 있던 집과 그에 딸린 수남촌 토성리 일대의 땅 뿐이었다는 군요. 재드래곤 못지않는 재산을 모을 수도 있었던 최운산 장군의 가족 중 아들 석호씨는 서울 화곡동 14평짜리 빌라에서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주는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에 대한 불매운동과 함께 이승만·박정희 등 친일파 때문에 굴곡진 우리의 역사도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문재인 대통령이 독입운동가에게 최고의 예유를 다하겠다고 약속하셨으니 빠른 시간내에 바로 잡힐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봉오동 전투 승리 비결로 돌아와서요. 우리 독립군들이 조총 수준의 저급한 총을 들고 있을 것이라 여겼던 일본군이 크게 당했다고 합니다. 갑자기 맥심기관총에서 불을 뿜으니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그래서 일본군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것이고요.

 

그런데 생각하면 역사의 톱니바퀴가 기가막히게 돌아갔습니다. 오스트리아가 체코군을 징집하지 않았다면,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봉오동 전투에서 우리 독립군들은 일본의 최신예 무기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가 없어 아마도 승리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역사는 이처럼 전혀 연관 없을 것 같던 우연들이 겹쳐 필연처럼 펼쳐지는 것이 많습니다. 봉오동 전투의 승리도 우연들이 겹치면서 만들어진 필연 아니었을까요?

 

셋째 무명 독립군들의 힘도 빼놓을 수 없죠. 바로 이름을 남기지 못한 수많은 독립군의 희생. 이를 이번 영화 봉오동전투에서도 집중 조명하고 있고요.

 

마지막으로 작전의 힘을 언급해야겠죠. 독립군은 산세가 험하고 산림이 우거졌으며 고립된 골짜기이지만, 꽉 막혀 퇴로가 차단된 공간이 아닌 봉오동의 지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최선의 작전을 세웠습니다. 독립군은 봉오동을 둘러싼 산마다 부대를 매복시켰죠. 독립군의 화력을 화승총 수준으로 오판한 일본군은 매복의 가능성을 무시하고 추격 작전을 벌이다가 속절없이 무너졌습니다. 독립군이 쏴대는 맥심기관총에 정말 맥이 빠졌을 것입니다. 게다가 갑작스레 기상이 나빠져 우박이 내리는 통에 일본군은 적과 아군의 식별마저 어려웠죠. 그래서 일본군끼리 서로 오해하고 서로 죽이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죠.

 

봉오동전투

이 놀라운 비결이 시너지효과를 내서 결과가 어땠을까요? 일단 전투에 참가한 인원은 독립군이 900, 일본은 1200명입니다. 우리보다 1.3배나 많았죠. 그런데 일본군은 패배한 이후 처음에는 10명정도 사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공식기록에는 무려 157명이 전사하고 600명이 부상당했다는군요. 그럼 우리 독립군의 피해는? 사망 4명에 부상 3. 장난아니죠. 대승도 이런 대승이 또 있을까요? 이 전투의 승리가 이어져 4개월 후 청산리에서는 일본군 3300명을 전사시키고 800명을 부상시키는 대첩을 이뤄냅니다. 청산리에서도 우리 독립군은 60명 사망에 부상 90,

 

그런데 이런 놀라운 승리의 비결이 이번 아베의 무역 도발에도 모두 적용될 것 같습니다. 우선 첫 번째 승리 요인이었던 연합의 힘’. 봉오동 전투에 앞서 흩어져 있던 독립군 단체들이 힘을 합쳤잖아요. 일본 불매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와 다소 거리를 뒀던 재계에서도 힘을 보태기 시작했죠.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일본은 치밀하게 정부 부처 간 공동 작업까지 해며 선택한 작전으로 보복을 해오는데 우리는 서로 비난하기 바쁘다지금 밥그릇 싸움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 도와야 할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불매운동 무용론을 설파하는 전경련이나 반일 타령에 급급한 경총 등 왜구단체들과는 완전히 다른 행보죠.

 

또 있습니다. 시중은행들도 일본의 무역도발로 당장 수입선이 끊기는 등 피해가 예상되는 기업에 유동성을 공급해 비가 올 때 우산을 뺏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일본 수출 규제로 피해가 예상되는 중소·중견기업에 신규 자금을 지원하고 대출금리를 최대 2.0%포인트(p) 깎아주는 등 금융지원책을 마련, 이르면 오늘부터 시행하기로 한다는 군요. 특히 우리은행은 총 3조원, 신한은행은 총 1조원 등 구체적인 지원 규모도 밝혔습니다. KB국민은행은 아예 한도는 정해두지 않고 해당 기업이 위기를 넘기는 데 필요한 만큼 도움을 주기로 한다는 군요. (그동안 우리 시중은행들이 돈 놓고 돈먹기만 한다고 비난했던 것 반성해야 겠네요. 물론 우리 국민들과 정부에 눈치가 보여 내놓은 지원책이겠지만 잘한 것은 잘했다고 칭찬해줘야죠.)

 

두 번째 보급의 힘이었죠. 일본군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도록 최신예 맥심기관총까지 갖췄던 보급의 힘이 이번에도 발휘될 조짐입니다. 일본군을 산산히 조각냈던 맥심기관총 못지않은 최신예 무기가 우리에게도 있거든요. 그게 뭘까요?

 

바로 불매운동입니다. 냄비처럼 금방 사그라들 것이라는 아베의 장담과는 달리 불매운동은 점점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맥심기관총처럼 숨겨진 일본 제품까지 찾아내 촘촘히 저격하고 있죠. 일본 언론들도 한국내 불매운동이 끊이지 않으면서 조직적으로 전개되는 모습에 감탄을 드러내는 듯합니다. 소나기와 폭염도 무릅쓰고 촛불을 그제 광화문 소녀상 앞에서 열린 대규모 촛불집회에 15000명이 넘는 엄청난 인파가 몰렸잖아요. 이에 일본은 당황하는 눈치고요. 아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우리의 최신예 무기에 놀라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무명 독립군들의 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국민들이 보이는 놀라운 불매운동의 집중타킷인 유니클로가 벌써 비틀거리고 있잖아요. 저도 주말에 잠시 구경차 롯데몰에 있는 유니클로 매장 앞에 가봤는데 정말 일하는 노동자 말고는 손님은 한명도 없더라고요. 심지어 지나가는 손님들도 멀리 돌아가는 모습이 재미있었습니다. 덕분에 유니클로가 종로3가점에 임대현수막을 내걸로 영업을 중지했잖아요. 물론 임대료 탓이라고 핑계를 대긴 하지만 지난번 유니클로 사과가 진정성 없는 6가지 이유편에서 살펴봤듯이 유니클로는 지난해에만 국내에서 15000억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이런 회사가 임대료 때문에 매장을 닫는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요? 7월 한달간 일본 맥주 매출은 전월 대비 30~50% 감소했다고 하죠. 일본차는 지난달 판매량이 20~35% 급감했다고 하고요. 일본 여행객도 급감하면서 노선을 감축하는 항공사도 늘어나고 있고요. 여기에 방학을 맞아 아이들이 좋아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 도라에몽은 개봉을 무기한 연기했다고 합니다.

 

특히 우리 무명 독립군들은 숨어있는 일본 제품과 식재료까지 찾아내서 불매운동을 하고 있죠. 이러니 아베가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요. 게다가 아베 규탄 시민행동은 오는 15일 광복절을 맞이해 대규모 광화문 집회를 열 예정이라고 합니다. 저희도 반드시 참석해 무명의 힘을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애청자 여러분들도 동참하실 거죠?

 

넷째는 작전의 힘입니다. 지형지물을 이용한 매복작전으로 청나라와 러시아를 물리쳤던 일본군을 무참히 깨부셨잖아요. 이번일본의 무역도발에서도 문재인 대통령 등 우리 정부는 놀라운 매복을 보이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대표적인 예가 강경화 장관이죠. 강 장관이 고노를 자극하자 아세안 장관들을 향해 한국도 다른 아세안 국가들과 같아지는 것이라고 자백했잖아요. 그런데 이를 들은 아세안이 일본이 우리를 무시한다고 반발하고 나섰고요. 게다가 미국 언론들마저 이번 무역도발은 경제적인 문제라기 보다 정치적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일본 관동군을 봉오동 골짜기 깊숙이 끌어들였던 독립군처럼 우리 정부도 아베를 과거사에 대해 제대로 반성도 하지 않고 정치보복을 하는 치졸한 국가라는 구렁텅이로 멋지게 몰아넣을 것입니다. 이런 매복에 빠진 것을 뒤늦게 눈치 챈 아베가 지금 살기 위해 총칼을 다 집어던지고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아베를 그냥 나두면 안되겠죠.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봉오동 전투의 승리 4가지 비결이 이번 일본 불매운동에서도 보이지 않나요? 이런 4가지 비결을 갖췄으니 봉오동 전투의 빛나는 승리에 버금가는 승리를 이번 불매운동에서도 거둘 수 있지 않을까요?

 

덕분에 어제 말씀드렸던 아베의 무역도발 덕분에 우리가 깨달은 5가지.

 

1. 일본 편에 선 정치인이 많다는 사실.
2. 일본 편에 선 언론이 많다는 사실
3. 일본 식민경제산업이 많다는 사실
4. 주적이 북한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사실
5. 앞으로 모든 선거는 한일전에 임하는 자세로 똘똘 뭉쳐야겠다는 사실

 

에 한가지 더 붙일게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

 

봉오동 전투의 빛나는 전통을 물려받은 우리가 결코 질리 없지 않잖아요. 물론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우리의 승리를 의심하고 방해하는 토착왜구들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특히 대표적인 토착왜구 나베는 이번에 통과된 일본 수출규제 대응 추경 예산을 16%나 더한 것이 아니라 깎았다며 자랑하고 있습니다. 한푼이 아쉬운 판에 정부안보다 무려 11432억원이나 감액한 것이죠. 나베는 대부분 연구용역과 성능 테스트 지원 예산이라 성과가 나오려면 5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며 당연히 깎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일본 소재를 대체하기 위한 연구가 겨우 1·2년 만에 뚝딱 끝난다는 이야기인가요? 성능 테스트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인가요? 이건 아베가 마음대로 주먹을 휘두르도록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 아닙니까. 이런 나베 등 토착왜구당은 다음 총선에 그냥 둬서는 결코 안되겠죠.

 

독일 나치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처칠이 남긴 말로 마무리 할까 합니다.

 

“싸워본 나라는 다시 일어나도, 싸우지도 않고 항복한 나라는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봉오동전투에서부터 싸워봤기 때문에 설령 한 두번 잠시 지더라도 반드시 다시 일어나 일본과의 전쟁에서 결국 승리할 것입니다. (우리민족이 이런 끈질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아베가 깜놀하고 있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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