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악몽’ 되살아난다?···용산 100층 랜드마크 괜찮을까?

 

지난해 7월 ‘‘부동산 바닥론’ 믿다가 미래에셋처럼 털린다?‘란 방송을 기억하시나요?

 

미래에셋증권 등 국내 금융사들이 홍콩의 한 랜드마크 건물을 담보로 빌려준 2800억 원을 모두 날리는 상황에 처했다는 소식이었는데요. 홍콩 최대 갑부 중의 한명인 ‘판수통(Pan Sutong)’이 공동으로 보유하고 있는 오피스 빌딩이기 때문에 떼일 걱정이 없다고 생각했다가 수천억원을 날렸다고 했었죠. 당시 부동산 경기가 살아난다는 뉴스를 경계해야 한다고 경불진은 강조했습니다. 해외 상업용 부동산이 공실률 악화로 무너지기 시작하면 그 여파가 우리나라에도 닥칠 수 있다고 우려했었는데요. 안타깝지만 그 우려가 점점 현실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5일 ‘마천루의 여왕’이 퇴진한다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영국 여왕이 아니라 마천루의 여왕은 누구 일까요? 바로미국 뉴욕 부동산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 중 한 명인 다시 스태콤 CBRE 캐피탈 마켓 그룹장.

스태콤 그룹장은 뉴욕 맨해튼을 대표하는 고층 건물들의 기록적인 매각을 성사시켜 ‘마천루의 여왕’으로 불립니다. 15세 때 아버지의 회사 우편실에 근무하며 부동산 업계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22년 동안 1450억달러가 넘는 판매, 금융, 합작 투자, 임대차, 개발 거래를 성사시켰다고 합니다. 2006년엔 110개의 개별 건물과 뉴욕 피터 쿠퍼 빌리지, 스튜이브샌트 타운 등 부동산 자산을 54억달러에 매각하는 과정을 이끌었죠. 또 2008년에는 28억달러 규모의 제너럴모터스 빌딩 매각을 비롯한 다수의 대형 거래를 주도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같은 화려한 이력의 그가 갑자기 회사를 떠난다고 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최근 뉴욕 상업용 부동산 위기가 심화된 데다 향후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엔데믹이 끝나면 다시 각광받을 것이란 기대와는 달리 상업용 부동산은 그야말로 죽을 쑤고 있습니다. 국내 언론들은 미국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끝내고 속속 사무실 근무로 돌아오고 있다고 전하지만 실상은 다르다고 합니다. 코로나 당시 경험했던 재택근무에 대한 평가와 만족도가 높기 때문에 여전히 재택근무를 실시하는 기업들이 많다는 거죠. 지난해 4분기 기업의 62%가 일부 원격 형태의 근무를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전년(51%) 대비 약 10%포인트 증가한 수치입니다. 과거 주 5일 사무실 출근이 일반적이었지만 주 2.5회 출근과 같은 하이브리드 형식의 근무 형태가 늘고 있죠.

 

이에따라 미국 상업용 부동산 공실률이 기록적인 수준으로 치솟고 있습니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 정보 분석 업체 코스타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사무실 공실률은 지난해 11월 기준 13.6%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공실률이 증가하면 부동산 보유자들은 임대수익이 줄어 대출 이자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죠. 여기에 고금리로 부동산 보유자들의 채무 부담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습니다. 부동산 매입 당시에는 사상 최저 수준의 금리로 돈을 빌렸지만, 금리가 급등하면서 훨씬 많은 이자 부담을 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자 상업용 부동산 대출 연체액은 10년 만에 최대치로 치솟았습니다. FT는 금융정보회사 뱅크레그데이터 자료를 인용해 미국 은행이 임대 목적 상업용 부동산 보유자에게 빌려준 대출 중 지난해 7~9월 한 번이라도 납기가 밀린 금액은 177억달러(약 23조원)에 달한다고 전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상업용 부동산의 위험이 미국 금융시스템까지 흔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 지역은행 뉴욕커뮤니티뱅코프 주가는 7일 22% 급락해 1997년 이후 가장 낮았게 떨어졌습니다. 뉴욕커뮤니티뱅코프는 상업 부동산 투자 용도로 빌려준 대출이 부실화하면서 작년 4분기에 예상의 10배가 넘는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난주에만 40% 넘게 폭락했는데 여기에 더 떨어진 것입니다. 이에 이 은행 일부 주주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부실을 숨겼다며 연방법원에 집단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이러자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까지 나섰는데요. 옐런은 미 의회에 출석해 “미 상업용 부동산 침체가 우려되기 때문에 몇몇 금융기관들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이라며 “은행감독당국이 이 문제에 집중하고 있고, 대출기관들의 준비금과 유동성이 충분한지를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러자 많은 투자자들은 지난해의 악몽을 떠올릴 수 밖에 없습니다. 다들 기억나실 겁니다. 지난해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거죠.

 

이는 미국만의 일이 아닙니다. 일본의 중견은행인 아오조라은행은 1분기 예상 실적을 흑자에서 대폭 적자로 고쳐 잡았습니다., 독일 글로벌은행 도이체방크는 대손충당금 규모를 크게 늘렸는데요. 둘 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에서 발생한 투자 손실이 원인입니다. 스위스 3대 은행인 율리우스베어은행에선 최고경영자(CEO)가 파산한 유럽 부동산 재벌 시그나그룹에 대출해준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도 했습니다.

그럼 여기서 궁금해지죠. 우리나라는 괜찮을까?

 

미래에셋처럼 저금리 때 미국 등 해 상업용 부동산 투자를 크게 늘린 금융사들이 많습니다. 해외 부동산 공모 펀드에 돈을 넣은 개인 투자자가 2만3000여 명에 이르죠. 게다가 국내 금융사가 해외 부동산에 대체 투자한 55조8000억 원 중 20%는 올해 만기를 맞습니다.

 

상업용 부동산에 투자한 일부 해외 부동산 펀드는 이미 손실을 보고 있습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미래에셋맵스 미국 부동산9-2호 펀드’는 9786억원에 매수한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오피스 빌딩을 지난해 10월 20%가량 손해를 보고 7879억원에 매각했습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트리아논 빌딩에 투자한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229호’도 펀드 설정 이후 누적 손실이 80%를 넘어섰죠.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해외 부동산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국내 상업용 부동산은 괜찮을까요?

홍대, 이대, 강남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권들이 초토화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상권이 무너졌던 명동 등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상권도 있지만 대부분의 상권들이 공실로 몸살을 앓는 중입니다.

 

한국부동산원의 상권별 중대형 상가 공실률 자료를 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강남대로 공실률은 8.3%로 5년 전인 2018년 4분기(2.6%)의 3배 수준입니다. 코로나19 유행과 거리두기로 공실률이 정점을 찍은 2020년 3분기(16.4%)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고 할 수 있지만 여전히 너무 높죠. 신촌·이대는 더 심각합니다. 이 지역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무려 18.3%.

전국적으로 봐도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7.3%로 코로나19가 절정이던 2020년 4분기(7.1%)를 웃돌았습니다. 이는 부동산원이 분기별 공실률을 공개한 201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월급은 그대로인대 물가는 오르고 그러니 소비는 줄고 결국 자영업자들이 몰락하며 공실률은 줄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고요.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엉뚱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는 점인데요. 5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뜬금없이 서울에 남아 있는 마지막 금싸라기 땅인 용산 철도정비창 일대에 100층 안팎의 랜드마크 건물을 만들겠다고 했죠. 업무복합존 9개 건물의 45층을 연결하는 보행전망교(1.1㎞), 여의도공원(23만㎡) 두 배 규모의 입체 녹지공간 등을 마련해 용산을 ‘세계 최대 규모의 수직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인데요. 사업비만 51조원를 투입해 2025년에 착공, 2030년에 입주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넓은 공간을 뭘로 채우려는 것일까요?

 

여기서 떠오르는 용어가 있죠. 바로 마천루의 저주. 초고층 건설 열풍이 불면 시장이 과열됐다는 증거로 경제 위기 가능성이 크다는 경험적 가설인데요. 예를들어 1930년대 미국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102층, 381m)이 완공됐을 때 대공황이었습니다. 1997년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트윈타워(88층, 451.9m)가 지어졌을 때는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했고요.

 

혹시 우리나라에서도 마천루의 저주가 재현되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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