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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버로 대표되는 ‘긱경제’ 희망일까 재앙일까

경불진 이피디 2019. 11. 1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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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잔치는 끝났다등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시인 최영미(55)가 2016년 저소득층을 위한 근로장려금 지급 대상이 된 사실을 스스로 공개해 주변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최 시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마포세무서로부터 근로장려금을 신청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내가 연간 소득이 1300만원 미만이고 무주택자이며 재산이 적어 빈곤층에게 주는 생활보조금 신청 대상이란다고 올렸습니다.

그는 이어 약간의 충격. 공돈이 생긴다니 반갑고 (베스트셀러 시인이라는 선입견 없이) 나를 차별하지 않는 세무서의 컴퓨터가 기특하다. 그런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라고 탄식했죠. 그러면서 최시인은 자신의 책을 낸 출판사에 전화해 근로장려금 대상자임을 내세워 2년 넘게 밀린 시집 인세를 달라고 협박3년 전 발행한 책의 인세 89만원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이 글에는 접한 많은 네티즌들이 좋아요를 눌러댔고 저도 비슷한 처지마음이 아프네요등의 댓글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왜 이 글에 공감한 네티즌들이 많았을까요. 물론 베스트셀러 시인이 근로장려금 지급 대상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놀랍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유롭게 시간을 쓰면서도 돈도 잘 버는 줄 알았던 프리랜서가 사실은 빛 좋은 개살구였다는 점도 충격적이죠. 하지만 그 이면에는 혹시 나도 저런 처지에 몰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요.

 

실제로 알파고가 준 충격으로 인해 일자리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에게 일자리를 빼앗기는 암울한 미래가 다가올 것이라는 우려도 많죠. 안정적이었던 일자리를 모두 인공지능에게 넘기고 결국 인간에 남은 일자리는 프리랜서 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프리랜서가 근로장려금 지급 대상이라니 충격적입니다.

 

문제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당장 일자리를 빼앗는 것은 아니지만 스마트폰 앱을 통해 일자리가 거래되는 소위 긱 경제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긱경제란 무엇일까요. 일단 긱(gig)이란 용어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긱은 1920년대 공연에 필요한 연주자들을 임시로 섭외해 시행한 재즈연주회에서 나온 용어라고 합니다. 이것이 현대로 오면서 변형돼 고정적으로 계약하지 않고 필요할 때만 일시적으로 일하고 돈을 버는 형태를 뜻한다고 합니다. 즉 일종의 초단기 계약형태가 긱인거죠. 따라서 임시 계약직인 프리랜서 형식과도 매우 비슷합니다. 다만 기존과는 달리 스마트폰 앱을 통해 고용이 진행되는 것이 차이나죠. 이 때문에 긱경제는 온 디맨드(on-demand)경제’, ‘플랫폼(platform) 경제등으로도 불립니다.

 

그런 어떤 것이 있을까요. 차량공유업체 우버(Uber)와 리프트(Lyft), 숙박공유업체 에어비앤비(Aitbnb) 등의 고용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그럼 이같은 긱 근로자가 얼마나 될까요. 아직까지 전체 고용시장에서 긱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차량공유는 물론이고 숙박 서비스, 음식배달, 심부름 대행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버의 성공 모델을 따라 하는 업체들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고용 흐름으로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자영업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20111500만 명이던 미국 내 자영업자가 20141800만 명으로 급증했다고 합니다.

 

긱경제와 자영업자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쉽게 국내의 택배·퀵서비스·대리운전·화물·레미콘 기사, 학습지교사, 방송작가, 보험설계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간병노동자 등을 생각하면 됩니다. 이들은 회사에 소속돼 일하는 것 같지만 법적으로는 프리랜서, 즉 개인사업자입니다. 긱 노동자 또한 회사에 소속된 것 같지만 개인사업자, 즉 자영업자가 된다는 이야기죠. 다시 말하면 정규직 일자리를 잡지 못한 실업자나 낮은 연봉으로 기업에 다니는 직장인들이 부업형식으로 긱 관계를 맺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긱 노동자들도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자신을 위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장점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안정적인 직장보다는 화려한 프리랜서를 꿈꾸는 젊은 세대에게는 긱이 딱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마크 저커버그를 꿈꾸며 창업을 준비하기에도 안성맞춤이라는 이야기죠. 긱 경제가 기업인이 될 수 있는 장벽을 낮춰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 시킬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그런데 문제도 당연히 있죠. 긱 경제가 노동자 보호를 회피한다는 주장입니다. 국내 택배·퀵서비스의 사례만 봐도 회사로부터 지시와 감독, 통제를 받으며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지만, 법적으로는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죠. 긱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버의 경우도 기사들이 드라이버 파트너라는 이름으로 개별 계약을 맺기 때문에 노동법에서 보장하는 최저 임금이나 건강보험 혜택 등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 기사들은 법원에 집단소송을 제기했죠. 논란이 불거지자 미국 노동부도 우버 기사 같은 독립적 계약자는 피고용인(employee)’으로 봐야 한다는 새로운 노동 지침 초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더 큰문제도 있습니다. 긱 경제 확산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임금이 오르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긱 경제의 선두인 미국의 경우 실업률이 완전고용 수준인 4%대로 확 떨어졌는데도 7년째 임금이 게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영국 경제학자 필립스가 1958년 발표한 실업률과 임금상승률은 역의 상관관계에 있다는 필립스 곡선 이론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미국뿐만 아닙니다. 일본 실업률이 3% 초반까지 떨어졌고, 영국은 10년 만에 최저 실업률을 기록했지만 임금 상승세는 실망스러운 수준입니다. 이같은 필립스 곡선이 먹혀들지 않는 최근 상황을 전문가들은 ‘임금 상승 수수께끼(wage growth conundrum)’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수수께기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가 뭘까요. 전문가들은 긱 경제의 확산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임시로 인력을 고용해 일을 맡기는 긱 경제가 저임금 일자리만 양산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긱 노동자간의 양극화가 극심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JP모간체이스인스티튜트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410~20159월 미국 소득 상위 20% 구간에 있는 근로자들이 하위 20%보다 긱 경제를 활용해 더 많은 소득을 올렸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고소득층은 자신들이 보유한 주택이나 자동차를 대여해 더 많은 추가 소득을 얻은 반면 저소득 근로자들은 많은 경우 우버 운전기사로 일하는 방식으로 저임금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긱경제에서도 돈이 돈을 버는 양상이 반복된다는 이야기죠. 긱 경제가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시킬 것이란 주장도 허구일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긱경제는 이제야 시작된 것이라 앞으로 어떤 형태로 변할지 모릅니다. 장점이 부각돼 경제를 활성화시킬지 아니면 단점이 두드려져 경제 붕괴를 몰고 올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미래는 준비하는 사람에게만 열리는 법. 일단 정부는 정규직 위주로 짜여있는 얼마 있지 않은 사회안전망이라도 빠른 시간 내에 독립 노동자 등 새로운 고용형태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시급히 정비해야 합니다. 예상보다 빠른 스마트폰 확산에 놀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또다시 벌여졌다가는 고용시장이 송두리째 흔들릴지도 모릅니다.

 

개인들도 준비해야 합니다. 알파고를 보며 인공지능의 개인기에 감탄만 할 때가 아닙니다. 자녀세대의 일이 아니라 긱경제의 형태로 4차 산업혁명은 이미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이런 험난한 파도를 혼자서 헤쳐 나가겠다는 생각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습니다. 최근 긱 경제와 흡사한 특수고용직 노동자들도 노동조건을 스스로 개선하기 위해 노조를 만들거나 협동조합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가혹한 노동환경과 열악한 처우로 고통 받았던 방송작가들이 오는 6월 노동조합 출범을 앞두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습니다. 혼자서는 힘을 내지 못하지만 함께 한다면 긱경제의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긱경제의 도래를 외면하고 나만 아니면 되라고 생각하면 근로장려금 지급 대상으로 전락하는 다음 주자가 바로 나 자신이 될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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