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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의 역설’이 판치는 선거경제학···베블렌의 교훈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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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의 역설’이 판치는 선거경제학···베블렌의 교훈은?

경불진 이피디 2024. 3. 25.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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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계절이 다가왔죠. 410일 총선 관련 뉴스가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는데요. 여론조사에 따라 지지정당에 따라 웃고 울고 하는 애청자분들도 많으실 것입니다. 또 정치 이야기한다고 타박하시는 분들도 계실텐데요. 경불진에서 늘 이야기했듯이 경제는 경제 논리로만 움직이지 않거든요. 정권 잡은 집단의 철학에 따라, 각종 법률안에 따라 경제는 출렁거리를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경제에 가장 도움되는 정당,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법률안을 만들고 통과시킬 의지가 있는 후보에게 표를 줘야 합니다.

 

누구나 그렇게 투표하지 않느냐고 하실 수 있는데요. 선거 결과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은 투표를 하는 경우가 꽤 보이거든요. 노동자들이 친기업 성향 후보에게 투표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에게 표를 주는 경우가 의외로 많거든요.

 

이건 한국에서만 보이는 현상이 아닙니다. 미국도 마찬가지거든요. 왜 이런 역설이 벌어질까요? 오늘은 선거의 역설과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비법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https://youtu.be/fnLmNRnzhi4?si=PfUyPA7WJ1ivyU3g

첫 번째 역설.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상당히 도발적인 질문이죠. 그런데 책 제목이기도 합니다. 토머스 프랭크라는 미국 역사학자가 쓴 책인데요. 프랭크는 고향 캔자스의 가난한 사람들이 왜 공화당을 찍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미국에서도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당은 민주당이라고 생각하는 게 상식이었거든요. 노동자가 많은 캔자스 역시 과거, 가장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지역이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좌파운동이던 민중주의가 전역을 휩쓴 곳이기도 했죠. 하지만 2000년 선거에서 캔자스는 부시의 표밭이었습니다. 이후에도 비슷합니다. 2004년에도 부시, 2008년 존 매케인, 2012년 밋 롬니, 2016년과 2020년에는 트럼프 등 공화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습니다. 한번도 민주당 후보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죠. 노동자와 서민이 많은 낙후지역인데 선거 때만 되면 거의 어김없이 자신의 이익과 무관한 부자들의 정당에 표를 던지는 것이 너무나 이상하잖아요.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지 프랭크는 그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정치가와 풀뿌리 운동가들을 만나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하나하나 캐내는 데요,

 

프랭크는 그 이유를 '민중의 착란 현상'을 조장하는 보수 우파의 교묘하고 은밀한 집권전략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한때 가장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지역으로 꼽혔던 캔자스가 보수의 텃밭으로 돌변한 데는 우파가 장기간에 걸쳐 진행해온 정치조작이 있었다는 것인데요. 정치조작이니···.

 

저자에 따르면 보수우파들은 뉴딜 정책 이후 잃어버린 대중의 지지를 되찾으려고 1960년대 말부터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치밀하게 계획을 짰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향력 있는 언론매체를 장악하고 보수 기독교와 '가치의 연합' 전선을 구축해나갔다는 거죠. 한국의 상황과 비슷해 보이죠. 미국 정치에서 종교라는 변수가 힘을 발휘하듯이 한국 정치에서는 지역이라는 변수가 민심을 좌지우지해온 측면이 강하잖아요.

 

아무튼 미국 공화당은 보수 교회의 가치에 편승해 기독교 신자를 공화당 유권자로 편입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그 결과 현안이 돼야 할 실질적 경제 문제가 뒤로 처지게 된 반면, 정치 일선에선 보수적 구호만 요란하게 난무하며 빈곤층을 효과적으로 포획하게 됩니다. 이념이 중요하다고 외친 우리나라의 누구처럼 말이죠. 아무튼 미국에서 이런 조작이 통하는데는 바로 보수언론이 역할이 컸다고 합니다. 가짜 뉴스 등으로 보수의 이념이 널리 퍼지도록 했다는 거죠. 그러니 보수들이 집권하면 언론부터 장악하려고 하나 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죠. 이런 사실을 민주당에서는 몰랐을까요? 저자의 분석과 일맥상통하는 명대사가 있습니다. 경불진에서도 여러차례 소개했던 tvN 드라마 '환혼 빛과 그림자에서 유준상 배우가 피를 토하면서 했던 명대사.

 

“악은 이토록 거침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데 어째서 선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가?”

 

바로 이겁니다. 저자도 이점을 지적합니다. 보수는 거침없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하는데 진보는 너무 나이브하게 대응했다는 거죠. 민주당이 여러 면에서 안이했고 실책도 잦았다고 한탄합니다. 예컨대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노동자, 농민, 서민층을 버리고 일부 중도 성향의 보수파와 지식인을 포섭하려는 이른바 삼각화 전략을 폈는데요. 이렇게 되자 노동자, 농민, 서민층은 민주당이 자신들을 지지하는지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중도성향 보수파와 지식인은 아무래도 다른 부류잖아요.

 

이런 점을 간파한 보수에서는 노동자, 농민, 서민층에게 접근하죠. 우리가 너희의 편이 돼 줄게. 부자들을 대변하는 공화당에서도 모든 정책을 서민들을 위한 것으로 포장하죠. 대표적인 것이 트럼프의 이민 정책이죠. 노동자들을 위해 이민자가 미국에 들어오는 것을 막겠다고 해서 많은 미국 노동자들의 마음을 흔들어놨죠. 지금 경제가 어렵고 일자리가 없는 것은 이민자들 때문이라는 속삭임에 넘어간 것입니다. 다수의 미국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부를 빼앗아간 자본가와 의사·변호사·목사들을 이젠 우군으로 여깁니다. 이들이 돈을 벌어야 노동자들도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죠. 그래서 고속도로, 전기, 전철 등 각종 민영화에 적극 찬성하고 기업을 망치게 한다며 노조를 혐오합니다.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노조조직률도 1950년대 38%에서 9%대로 급락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정치 상황도 너무나 비슷하지 않나요? 보수정당의 효과적인 정치조작술과 자기계급적 이익과 배치되는 투표행위와 노조혐오를 보여주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죠.

 

이러니 노동자, 서민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비경제적인 판단에 따라 보수정당에 표를 주는 것이죠.

https://youtu.be/6Ba89SUGoXc?si=kPSDMcpJTMEfpTSH

두 번째 역설.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적인 이유는?

 

얼마전 유튜브에서 부산 시장 아주머니가 이렇게 이야기하던 모습을 봤습니다.

우린 다 죽어도 국민의힘이지.”

시장에서 어렵게 일하시는 분인데도 무조건 보수당을 지지하겠다는 겁니다. 실제로 이런 분들이 많죠. 가난한데 보수당을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잖아요. 이유가 뭘까요?

 

베블렌 효과(Veblen Effect)’는 누구나 다 아실 것입니다. “소비재의 가격이 상승하는데도 오히려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을 뜻하죠. 가격이 높을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물건을 베블렌재(Veblen Goods)라고 말합니다. 수요공급법칙 등 경제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죠.

 

이에 대해 베블렌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 때문이다.”

 

과시적 소비는 최소비용으로 최대효용을 얻는 게 아니라 최대한의 지출을 통해 부를 과시하는 게 목적이라는 겁니다. 예를들어 아름답고 품질 좋은 보석이라도 값이 싸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품질과 무관하게 오로지 비싼 것만 가치 있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명품의 경우 값이 비쌀수록 수요도 늘어나는 기현상이 펼쳐집니다.

 

갑자기 베블렌을 소환한 이유가 있습니다. 베블렌은 유한계급론을 통해 가난한 사람이 보수화되는 이유를 설명했거든요,


“유한계급제도는 생존 수단에 해당하는 것 중 많은 부분을 하층계급으로부터 박탈함으로써 그들의 소비를 줄이며 그 결과 이들의 에너지를 소진 시켜 학습은 물론 새로운 사유 습성의 채택에 필요한 노력을 할 수 없는 지점으로 이들을 몰아감으로써 결국 보수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

 

실제로 그렇죠. 고금리, 고물가에 허덕이는 가난한 분들은 현재의 삶을 지키기에도 급급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들에게는 개혁을 할 만한 힘조차 남아있지 않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그저 지배계급이 만들어 놓은 사회적 구조에서 살아남기 벅찹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로 유명한 조지 레이코프도 이렇게 설명하죠.

 

“사람들이 언제나 단순히 자기 이익에 따라서 투표한다는 가정은 심각한 오해이다. 요컨대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를 위한 정책 정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그들이 부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부유함이나 풍요로움 같은 부자의 가치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와 함께 수반돼 연상되는 보수적 언어를 ‘옳은 것’ 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누가 혹은 어떤 정당이 서민을 대변하고 말고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사람들은 부자를 보면 박탈감을 느끼지 않는다. 성공신화에 매료될 뿐이다. 부와 이익이라는 (그들이 생각하기에) 긍정적인 에너지에 박수를 보낼 뿐이다.”

 

정말 그렇지 않나요? 정용진의 페이스북이 화제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죠. 부자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도 정용진처럼 되고 싶어를 희망합니다. 그래서 영끌도 하고 갭투기도 하는 거죠.

 

하지만 진보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좀 거리가 멀어 보이죠. 모두 같이 잘살자는 것에 과연 나도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진보적 변화는 귀찮고 힘듭니다. 기존 생활방식과 결별해야 하죠. 그리고 변화에 적응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든 사람들에게는 이건 고역입니다. 여유가 있어야 변화에 필요한 재적응을 할텐데 이들에게는 힘이 전혀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를 보수쪽에서는 집요하게 파고들죠. 보수주의는 사회의 부유하고 명망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설파합니다. 존경받을 대상으로 띄우기도 하죠. 그래서 보수주의는 상층 계급의 특징이기 때문에 품위가 있는 반면, 혁신은 하층계급의 현상이기 때문에 저속하다고 간주되게 만드는 거죠.

 

그래서 이런 말도 있죠.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가장 멸시합니다. 동자동 쪽방촌 사람들은 노숙자 같다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고 하죠. 버트란드 러셀은 이렇게 말합니다.

 

거지들은 자기보다 많은 수입을 올린 다른 거지를 시기할망정, 백만장자를 시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화되는 것입니다.

https://youtu.be/mqJNR7d9eYA?si=1AwEr2uH8taA8y_K

세 번째 역설. 지역주의가 통하는 이유는?

 

그래도 정말 이상하죠. 가난한 사람이 보수화되고 노동자들이 보수정당에 표를 주는 것은 이율배반이잖아요. 이에 대해서는 이런 설명도 가능합니다.

 

2002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사람은 생각할 때 두 가지 패턴을 따른다고 지적하는데요. 하나는 빠르게 생각하기’, 다른 하나는 천천히 생각하기라는 시스템.

 

예를 들어 누군가가 “11?” 하고 질문한다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2”라고 답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답할 때, 사람들은 하나와 하나를 더한 뒤 계산해서 답을 말할까요? 그럴리 없죠. 이건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이 아니잖아요. 바로 평소에 암기한 내용을 그대로 답하는 거죠. 바로 이것이 카너먼이 이야기하는 빠르게 생각하기입니다. 다른 말로는 직관이라고도 하죠.

 

반면에 천천히 생각하기시스템은 다르겠죠. 예를들어 “478+325이를 암산할 수 있다면 정말 수학천재인정. 대부분은 머릿속으로 열심히 계산할 것입니다. 그런데 틀리기도 하고요. 이때 사용되는 두뇌의 생각 시스템은 11을 답할 때와 전혀 다르다는 거죠.

 

카너먼은 이러한 두 사고 체계가 완전히 다르다는 의미에서 전자를 시스템 1(빨리 생각하기 혹은 직관)’이라 부르고, 후자를 시스템 2(천천히 생각하기 혹은 이성)’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설명하죠.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이성적 판단인 시스템 2보다 직관적 판단인 시스템 1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받는다.”

 

또 한가지. 이것도 예를 들어볼께요? 100만원 상금이 걸린 퀴즈대회 마지막 문제에서 이피디는 3번을 선택했습니다. 맞으면 100만원. 정말 신나겠죠. 그런데 사회자가 바꿀 의향이 없느냐고 물어봅니다. 이피디는 갈등을 느낄 수 밖에 없겠죠.

 

‘3번 같긴한데 사회자가 혹시 틀렸다는 힌트를 주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2번으로 갈아탔는데 웬걸 사회자가 속인 것입니다. 답은 그대로 3.

 

반면에 박피디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꿎꿎하게 자신이 고른 3번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답이 2. 둘다 땅을 치고 후회하겠죠. 이피디는 왜 답을 바꿨을까. 박피디는 왜 답을 바꾸지 않았을까.

 

여기서 카너먼이 질문을 던진다. ‘두 사람 모두 후회스럽겠지만, 실제로 누가 더 크게 후회할까?’ 논리적으로는 두 사람 모두 똑같아야 정상입니다. 하지만 실험해보면 결과는 의외입니다. ‘선택을 바꾼 이피디가 후회한다는 답이 무려 92%, ‘선택을 안 바꾼 박피디가 후회한다는 답은 고작 8%였습니다. 즉 사람은 가만히 앉아 있다가 손해를 본 경우보다 선택을 옮기는 적극적 선택을 했다가 손해를 봤을 때 훨씬 후회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결과 역시 앞서 설명한 빠르게 생각하기가 천천히 생각하기보다 더 큰 영향력을 지냈기 때문입니다. 신중히 생각해 보면 똑같은 결과인데,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이피디는 그때 왜 그랬을까?’라며 선택을 바꾼 사람을 더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거죠.

 

선거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천천히, 이성적으로 생각하기에 앞서 빨리, 직관적으로 결론을 내리는 경향이 강합니다. ‘, 나는 저 후보와 같은 지역 사람이지? 저 사람 학벌이 좋다면서따위의 황당한 직관이 합리적인 사고를 방해합니다.

 

특히 변화를 주장하는 진보보다는 현재를 고수하는 보수에 더 끌리게 되죠. 바꾸고 후회하는 것보다 가만히 있다 후회하는 것이 덜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투표의 역설이 존재한다는 거죠.

 

사실 오늘 언급한 투표의 역설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적인 이유는?’ ‘지역주의가 통하는 이유는?’ 등이 작동하는 이유는 한가지로 통합니다. 우리가 경제적인 판단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생각해보고 따지기만 해도 우리에게, 노동자에게, 서민에게 더 유리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수의 조작에 넘어가서, 삶의 여유가 없어서, 귀찮아서 타성적으로 표를 던진다는 거죠. 이 때문에 표를 던져놓고 매번 후회하게 되고요.

 

따라서 이번 총선에서는 가장 경제적인 투표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가장 우리에게 유리한, 우리의 삶을 나아지게 만들 수 있는 정당과 후보에게 표를 줘야 합니다. 그게 가장 경제적인 판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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