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매파’로 변신한 파월이 숨기고 싶은 것은?···한국 금리에 미치는 영향은? 본문
요즘 가장 관심있는 경제기사를 꼽으라면 역시나 금리관련일 것입니다.
한 때 8%에 육박하던 주담대 금리는 물론 5%를 넘었던 정기예금 금리도 최근 들어 많이 떨어졌잖아요. 정기예금 3%는 물론 주담대도 3%가 곧 나올 것이란 기사도 있고요.
그래서
- 머니투데이 ‘주담대 3% 시대 성큼… 빚 폭탄 영끌족, 저금리 대출 갈아타볼까’
- 아시아경제 ‘3%대 예금·대출 등장…금리 하락도 빠르다’
와 같이 금리하락세를 전하는 기사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뉘앙스가 오는 23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도 동결될 것이란 기대감이죠. 가뜩이나 경기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한은이 금리를 올리지는 않을 것이란 주장입니다.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폭락하는 부동산 시장이 바닥을 찍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데 설마 여기에 찬물을 끼얹지는 않을 것이란 이야기죠. 부동산 바닥론은 너무 길어지는 논외로 하고요, 그러면서 이런 주장도 덧붙이죠. 그동안 금리를 자극했던 김진태 사태, 일명 레고랜드 사태로 마무리되는 수순이고 1400원대를 넘었던 환율도 1200원대로 안정됐고 주담대도 1월에만 6000억원이나 줄어들면서 가계부채 위기에 대한 숨통도 틔었으니 무리하게 금리를 올릴 까닭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에 대해서도 할 일 이야기는 많지만 오늘 갈 길이 머니 다음으로 미루고요.
오늘 이야기하려는 것은 우리금리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외국금리입니다. 특히 미국 등의 금리가 심상치 않거든요. 지난 7월에 역전된 한미기준금리가 아직도 그대로거든요. 특히 금리차가 1.25% 포인트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금리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해외로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발언 때문인데요. 많은 언론들이 지난 2일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결정하며 파월 의장이 물가상승세 둔화가 시작됐다고 말했다며 환호했는데요. 지속적으로 금리를 올리수도 있다는 파월의 이야기는 블러핑이라 믿지 못하겠다며 주가가 뛰기도 했고요.
하지만 당시 경불진에서는 “생각보다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게 오래 걸릴 수 있다”는 파월의 이어진 발언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었는데요. 블러핑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그래서 언론이나 일부 전문가들이 기대하는 연내 금리인하는 아마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었죠.
https://www.podbbang.com/channels/9344/episodes/24624130?ucode=L-cYlmqQUB
그런데 파월 의장은 경불진의 주장처럼 자신의 말이 블러핑이 아니라고 증명하고 싶었는지 8일 워싱턴 DC 경제클럽과의 대담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디스인플레이션의 아주 초기 단계로, 주택 서비스를 제외한 서비스 부문에서는 아직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의 메시지는 디스인플레이션 과정에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은 알겠는데 디스인플레이션은 뭘까요?
디스인플레이션은 물가가 오르긴 하지만 그 폭이 점차 줄어드는 걸 말한다는데요. 예컨대 전년 대비 5%였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 3%로 내려가면 디스인플레이션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물가 상승률이 -1%, -2%로 추락하면 경기침체를 뜻하는 디플레이션이고요. 디스인플레이션과 달리 임금과 물건값 모두 내려가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뜻합니다.
즉 디스인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의 중간 쯤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물가가 아직 높기는 하지만 심각하게 높지도 낮지도 않은 단계라는 거죠. 즉 가장 이상적인 골디락스는 아니지만 골디락스를 향해가는 과정이라고 봐도 됩니다.
그럼 디스인플레이션이었던 때가 있었을까요? 하루 저녁에 기준금리를 4%포인트나 끌어올린 후 살해 위협에 권총을 차고 다녔다는 연준의장 폴 볼커. 볼커가 활약했던 1980년 후반과 2000년대 사이를 꼽을 수 있는데요. 석유파동으로 물가가 급등하자 볼커는 기준 금리를 연 20%까지 끌어올리는 극약 처방을 한 덕에 서서히 물가는 진정됐죠. 이후 연준은 여유롭게 통화정책을 펼쳤고, 미 경제는 황금시대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 파월은 제2의 폴 볼커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파월은 추가 금리인상의 필요성까지 강조했습니다. 물가는 잡혀가고 있지만 미국 고용시장이 계속 강하기 때문에 금리를 더 인상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주장입니다. 실제로 미국 고용시장은 지금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지난달에 신규 일자리가 51만개 생겼고 실업률은 3.4%로 1969년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습니다. 트위터, 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해도 말이죠. 이는 전에도 이야기했듯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엄청난 수혜를 입고 있는 군수업체들이 인력을 대규모로 빨아들이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또 코로나 이후 힘든 일자리를 기피하는 현상이 강해지면서 아예 일자리를 찾는 수요도 줄어든 여파도 있고요. 서비스업에서도 빠르게 전개될 줄 알았던 AI, 로봇 등으로 일자리 대체가 생각보다 더디게 진행되는 탓도 큽니다. 서빙 로봇을 들였던 많은 가게들이 다시 사람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일들이 겹치면서 일자리는 많은데 일할 사람이 부족해 임금은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런 임금상승이 물가상승을 부추기는 악순환을 낳고 있고요.
따라서 파월도 고민중입니다. 물가가 잡히는 것 같지만 혹시나 임금상승으로 다시 튈지 모른다고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죠.
“우리는 1월 고용지표가 그렇게 강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강력한 노동시장에서 긴축이 왜 상당 기간 필요한 절차인지 보여주는 겁니다.”
파월 뿐만이 아닙니다. 매파 인사들이 다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는데요.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미국의 기존금리를 4.75%인 현재보다 훨씬 높은 5.4%까지는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죠.
그래서 벌써 이런 이야기도 흘러나옵니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6%까지도 올라갈 수 도 있다.”
물론 아직 소수의견이긴 하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거든요. 문제는 만일 이 주장처럼 진짜 미국의 기준금리가 5%를 훌쩍 넘어 6%까지 올라간다면 한국은 어떻게 될까요? 언론들의 주장하는 것처럼 기준금리를 계속 동결하고 3.5%에 머물러 있을 수 있을까요? 이건 누가 봐도 힘들겠죠.
https://www.podbbang.com/channels/9344/episodes/24611684?ucode=L-cYlmqQUB
게다가 더 불안한 뉴스도 들려옵니다. 지난 1월 30일자 ‘금리 인상 중단 시사한 캐나다 중앙은행, 포커고수가 분석한다면···’ 편에서 알아본 캐나다의 움직임인데요, 당시 캐나다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만 올리는 베이비스텝을 해서 금융시장이 환호했었죠. 미국보다 기준금리를 더 빨리, 더 공격적으로 올렸던 캐나다 중앙은행이 이렇게 속도조절을 한다면 미국도 속도조절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었는데요. 이미 캐나다가 금리인하로 피벗을 했다는 성급한 주장도 나왔고요. 하지만 당시 경불진은 캐나다 중앙은행이 금리인하로 방향을 튼 것은 아닐 수 있다고 지적했었죠.
당시 캐나다 중앙은행장이 “경제와 물가 정세가 현재 전망대로 진행하면 기준금리를 현행 수준으로 유지한다”고 말했는데 무조건도 아니고 앞에 전제가 붙은 것은 블러핑일 수도 있다는 것이였는데요. 저희의 주장이 맞을 수 있다는 지표가 나왔습니다.
캐나다도 미국처럼 일자리 대박이 터졌거든요, 캐나다 통계청이 지난 10일 밝힌 고용동향 보고서를 보면 일자리가 2개월 연속 큰 폭으로 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큰 폭도 너무나 큰 폭이더라고요, 경제계의 증가 예상치 1만5000개보다 무려 10배 많은 15만3000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특히 전달 증가분 6만9천 개를 합해 두 달 사이 무려 22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늘어났다는 거죠.
이 때문에 캐나다은행장이 이야기했던 ‘경제와 물가 정세가 현재 전망대로 진행하면’이란 전제 조건을 크게 벗어납니다. 즉 지난달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 15년 만에 가장 높은 4.5%로 결정하면서 금리인상이 멈출 것이란 시장의 기대가 꺾일 가능성이 커졌다는 거죠. 이 때문에 다음번 기준금리 결정 땐 동결이 아니라 베이스텝 또는 빅스텝을 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동결시킬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이런 의문도 드실 것입니다. 금리를 역대급으로 올렸는데 왜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일자리가 대박 나고 물가는 빠르게 떨어지지 않을까요?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한가지 통계를 접했는데요. 혹시 이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번뜩 들더라고요. 도대체 무슨 통계일까요?
로이터 통신이 지난달 26일에 전한 기사인데요.
연준이 집계한 지난달 M2 통화량은 21조2000억달러(약 2경6000조원)로 계절조정 기준 전월 대비 무려 1474억달러(약 181조원)나 줄었다고 합니다. 이는 5개월 연속 감소했다는 거죠.
특히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한 지난해 3월 이후로는 무려 5300억달러(약 652조원)이나 줄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M2는 넓은 의미의 통화량 지표로 현금·요구불예금·수시입출금식 예금(이상 M1) 외에도 머니마켓펀드(MMF) 등 곧바로 현금화할 수 있는 단기 금융상품 자금을 포함하죠. 따라서 M2가 줄어야 물가도 안정된다고 경제학에서는 이야기하는데요. 이런 M2가 수백조 단위로 줄었으니 물가가 떨어지지 않을 수 없겠죠.
그런데 코로나 당시 M2는 얼마나 늘어났을까요? 지금 600조 넘게 줄었으니 당시에도 그 정도 늘어나지 않았을까요? 아닙니다. 놀랍게도 연준은 코로나19 대확산(팬데믹)에 따른 경기침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 매입을 통해 시중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늘어난 M2가 무려 6조3000억달러(약 7747조원)에 달합니다. 코로나 기간동안 통화량이 4%도 아니고요 무려 40% 급증했던 것이죠.
이렇게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통화량이 지난해부터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겨우 600조원대. 7700조원이 넘게 늘어났는데 아직 10%도 회수되지 못한 셈입니다.
물론 코로나 당시에만 통화량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은 아니긴 합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장기적인 제로금리를 유지하면서 미국의 M2는 무려 80%나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연준 목표치인 2%를 넘은 적이 없었습니다. 저가의 중국산이 물밀 듯이 들어오면서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등 여러 효과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덕분이었죠. 이런 상황을 믿고 파월은 코로나 당시 엄청난 유동성을 뿌려댔습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고가 있긴 했지만 이렇게 돈을 풀었는데도 물가가 2%도 안되는데 무슨 걱정이냐며 미친 듯이 달러를 찍어냈죠.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상황은 악화됐습니다. 국제 유가와 곡물가가 미친 듯이 올라가기 시작했죠. 뒤늦게 파월이 금리를 올렸지만 한번 오름세를 탄 미국 물가도 미친 듯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파월이 빅스텝, 자이언트스텝 등 과감한 금리인상으로 맞서고 있는 것입니다.
즉 비둘기파인 줄 알았던 파월이 갑자기 매파 발언을 쏟아낸 것은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은 없다고 맹신했던 자신의 실수를 감추기 위한 것일 수 있다는 거죠. 돈 풀기를 멈춰야 한다는 지적에도 2021년 상반기까지 여유를 부리던 파월은 그해 9월부터 물가가 올라가기 시작하자 뒤늦게 긴축을 언급했지만 너무 늦었다는 거죠. 그래서 물가가 과거 석유파동때 만큼이나 올라갔고요. 이런 실수를 숨기기 위해 과거 물가를 잡아 영웅이 됐던 폴 볼커를 흉내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따라서 시장이 기대하는 것처럼 빠르게 파월이 금리 인하로 돌아서진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연내 금리인하는 없다는 말이 단순히 블러핑이 아니라 진짜 그럴 수 있다는 거죠. 더 나아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코로나 기간 40%나 늘어난 통화량이 회수되려면 생각보다 오랜 기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두 달 동안 10%도 회수하지 못했으니 단순계산으로 1년 반이 넘는 기간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거죠. 이 기간을 줄이려면 기준금리를 더 큰 폭으로 인상해야 할 지도 모르고요.
따라서 저희가 보기에는 오는 23일 기준금리는 물론 앞으로도 여러 차례 국내 기준금리도 올라갈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과의 금리차가 적어도 1.5%포인트 이상으로 벌어진다면 정말 큰 위기가 닥칠 수도 있고요.
이 때문일까요? 안정적으로 떨어지는 우리나라 국고채 3년물 금리가 다시 상승세입니다. 3.11%까지 떨어졌다 다시 3.45%까지 올라갔습니다. 1227원까지 떨어졌던 환율도 1279원까지 훌쩍 뛰었고요.
좋지 않은 기운이 스멀스멀 다가오는 느낌인데요. 하지만 일부에는 금리 떨어졌다고 그동안의 손해를 한방에 만회하려는 영끌 빚투 분위기가 감지되더라고요. 정말 위험할 수 있습니다. 투자를 하더라도 시장의 방향성, 파월의 발언이 블러핑인지 진심인지 명확히 확인한 후에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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