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언론들이 극찬하는 한미정상회담, 우리가 얻은 것이 진짜 있나? 본문
지난 주말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죠. 윤석열 대통령의 첫 외교무대. 대부분의 언론들은 잘했다는 칭찬을 쏟아냅니다. 도대체 기대를 어떻게 했길래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요. 오늘은 이번 정상회담이 갖는 경제적 의미를 살펴볼까합니다. 우리가 이번 회담을 통해 얻은 것을 뭘까요?
일단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서 미국 언론들은 이번 정상회담에 만족하는 분위기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원했던 것을 거의 다 얻었기 때문이죠. 특히 바이든 대통령의 관심사는 다들 아시다시피 외교나 안보가 아닙니다. 바로 경제입니다. 지난해 4월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웨이퍼’를 흔들며 반도체 중요성을 강조했던 모습 다들 기억나실 것입니다. 미중 패권경쟁으로 반도체 수급불안이 극심해지자 인텔과 대만의 TSMC, 그리고 삼성전자와 화상회의를 하며 반도체의 중요성을 강조했죠.
그러면서 삼성전자에게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고 압박했습니다. 이에 삼성전자는 170억달러(약 21조원)를 들여 미국 텍사스에 초미세 공정의 파운드리 공장을 짓기로 방침을 발표했었죠.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 첫날인 20일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시설을 제일 먼저 들인 이유도 이것 때문입니다. 삼성전자가 텍사스에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한 것에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21일 한-미 정상 공동기자회견 머리발언에서도 “한국의 삼성 같은 기업들이 현재 미국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투자를 통해 우리는 더욱 가까워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같은 일련의 과정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요? 삼성전자한테 빨리 약속 지키라고 압박하는 것입니다. 지난해 한미정상회담 과정에서 삼성전자가 약속한 170억 달러 규모의 투자 의지를 삼성전자 총수인 이 부회장으로부터 재확인 받으며 행여 약속을 어길 생각은 말라고 못 박은 것입니다.
현대차도 마찬가지입니다. 방한 마지막 날인 22일 바이든 대통령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자신의 숙소인 하얏트호텔에서 만났습니다. 바이든 대통령과 정 회장은 20분 간 1대1로 면담을 가졌다고 합니다. 현대차그룹 회장이 미국 대통령과 독대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군요.
그런데 이 자리에서 백악관이 마련한 연단에 오른 정 회장은 50억 달러의 추가 투자 보따리를 내놨습니다. 정 회장은 "21일 미국 전기차 공장에 투자하기로 한 55억 달러 이외 로보틱스, UAM, 자율주행, AI에 5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한다"고 밝힌 것이죠.
https://www.podbbang.com/channels/9344/episodes/24354069?ucode=L-nShQDMYB
현대차그룹은 앞서 21일 조지아주에서 55억4000만 달러를 투자해 전기차 전용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발표 후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조지아주로 날아가 주지사와 투자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이를 통해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모두 105억 달러(약 13조원)를 미국에 직접 투자하게 됩니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감사와 환영의 뜻을 전하며 "현대차그룹의 투자는 미국에 8100명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면서 "미래에 좋은 길을 만들어나가는데 한국과 함께할 것"이라고 화답했습니다.
삼성과 현대차만이 아닙니다. 한화그룹도 바이든 대통령 방한 기간 태양광 분야에서 미국과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은 21일 한미 산업 담당 장관이 마련한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한미 간 태양광 사업 협력 강화를 강조했습니다.
한화솔루션은 2019년부터 미국 조지아주 돌턴시에서 미국 내 최대규모인 1.7GW(기가와트) 규모의 태양광 모듈 공장을 가동 중이며, 최근에는 미국에 약 2000억원을 추가 투자해 1.4GW 규모의 태양광 모듈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신규 투자 공장은 2023년 상반기 중에 가동 예정인데요. 가동이 시작되면 한화솔루션은 미국 내 단일 사업자로서는 최대 규모인 3.1GW의 모듈 생산능력을 확보하게 됩니다.
LG에너지솔루션·SK온(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자회사)·삼성SDI 등 국내 완성 배터리 제조업체 3사도 미국에 합작법인 공장 7개와 단독 공장 4개 설립을 위해 2025년까지 17조 5000억원에 이르는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유통이 주력인 롯데도 최근 미국 시러큐스의 미국 제약사 바이오의약품 공장을 인수한 데 이어 추가 투자도 할 예정입니다. 많은 언론들이 우리 기업들의 미국 투자를 극찬합니다. 미국 대통령이 나서서 칭찬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졌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좀 찝찝한 점이 있습니다. 주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인지상정이죠.
잠시 시계를 1년 전으로 돌려볼까요? 1년 전 이맘때, 한미 정상회담 기자회견장.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한국 기업인들을 일으켜 세우며 화끈하게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삼성과 현대, SK와 LG 등에서 250억 달러 이상 등의 신규 투자를 약속했는데 회사 대표들 일어나보시겠습니까? (박수) 감사,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우린 함께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 만찬에서는 주요 10대 그룹의 총수와 경제단체장 등 80여 명이 초청됐습니다. 이 자리에서 중국을 겨냥해 '경제 안보' 강화를 위한 다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다짐이 뭘까요? 미국에 대한 직접 투자입니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1년 연간 및 4분기 해외직접투자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직접투자액은 758억7천만달러였습니다. 전년 대비 187억4천만달러 증가했습니다. 해외직접투자가 코로나19로 위축되기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해도 17.0% 늘었습니다. 이는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68년 이후 가장 많은 수준이죠.
그런데 국가별로보면 대미투자액이 275억9천만달러로 가장 많았습니다. 이는 2019년(157억6천만달러)보다 75.1%, 2020년(151억7천만달러)보다 81.8% 급증한 수치입니다. 반도체, 배터리 등에 주력하는 한국 기업들이 미국 현지 투자를 늘린 결과죠. 이번 회담으로 앞으로 더 크게 늘어날 것이 확실해졌죠.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보고서가 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발표한 '글로벌 외국인직접투자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인데요. 이에 따르면 '그린필드'(Greenfield)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유럽에서 미중 무역갈등을 기점으로 빠르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린필드 FDI는 외국 자본이 투자 대상국의 토지를 직접 매입해 해당 국가에 공장을 짓는 방식으로, 대표적인 FDI 유형 중 하나죠. 삼성전자, 현대차 등이 미국에 공장을 짓는 것이 이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미중 무역전쟁(2018년 3월) 시점을 기준으로 이전 3년간 그린필드 FDI 평균과 이후 3년간의 평균을 비교해보면 EU 지역 내 그린필드 FDI 증가율은 47.0%로 1위였습니다. 이어 중국(13.5%), 일본(12.1%), 미국(5.7%) 등의 순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되레 32.6%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우리기업들은 미국에 공장을 짓고 일자리를 늘려주는데 미국 기업들은 오히려 한국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번 방한 때 바이든과 함께한 미국 공식 수행원이 몇 명이나 될까요? 겨우 17명입니다. 생각보다 너무 적죠.
특히 질 바이든 대통령 영부인이 오지 않았습니다. 바이든 여사가 불참한 것은 남미 방문 일정 때문이라고 하지만 좀 그렇죠.
미국 외교를 총괄하는 토니 블링컨 미 국무 장관도 바이든 대통령을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블링컨 장관 역시 다른 일정 때문이라고 설명했다는데요. 그런데 22일 일본 방문 일정에는 합류한다는 군요. 많이 찝찝하죠. 직책상 방한 가능성이 높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도 이번엔 명단에서 빠졌습니다.
블링컨 장관과 오스틴 장관이 오지 않는 대신 지나 러몬도 상무 장관이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했습니다. 이번 회담의 의제가 북핵 대응 뿐 아니라 안보와 경제 전반으로 확대됐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게 미국 언론들의 평가입니다. 하지만 협력보다는 빚 받으러 왔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미국 수행단에 이름을 올린 미국 기업인으로 눈에 띄는 사람은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최고경영자(CEO) 밖에 없습니다. 퀄컴은 모바일 통신칩을 삼성에 공급하고 삼성은 퀄컴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셔(AP)를 위탁생산하죠. 다른 것은 됐고 반도체 내놔라하는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바이든이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이든의 현재 머리 속에는 이것이 크게 들어있거든요. 이게 뭘까요?
지난 20일 가장 먼저 삼성 반도체공장을 방문했던 바이든은 '피터'라는 이름의 미국인으로부터도 관련 설명을 들었습니다. 피터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이자 삼성 협력사인 KLA 직원으로, 이 자리에서 KLA가 삼성 반도체 제조에 기여한 바를 소개했죠. 그런데 설명이 끝나자 바이든 대통령은 뜬금없이 "피터, 투표하는 것을 잊지 말라. 당신이 여기에서 살 수도 있지만, 투표하는 것을 잊지 말라"며 투표를 독려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바이든이 한국에서 6월1일 지방선거가 있다는 것을 알고 했던 말일가요? 그럴 리가 있나요? 바이든이 언급한 투표는 11월 8일 열리는 미국 중간선거입니다.
미국 중간선거는 4년마다 치러지는 대통령선거 사이에 실시됩니다. 중간선거일은 대통령선거처럼 11월 첫 번째 월요일이 지난 후 화요일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11월 8일이죠.
그런데 미국은 왜 중간선거를 할까요?
중간선거에서는 미국 연방 상원 100석 가운데 3분의 1인 34석, 연방 하원 435석 전부가 바뀝니다. 50개주 가운데 36개주 주지사와 주 의회 의원, 주검찰총장 선거도 함께 진행되죠. 따라서 선거 결과에 따라 정권의 향방이 바뀌게 됩니다. 특히 현직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평가하는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중간선거의 패배는 대통령 연임 실패로 이어지곤 하거든요.
그런데 최근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영 시원치 않습니다. 40%를 왔다갔다 할 정도 밖에 안됩니다. 따라서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할 것이란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바이든의 지지율이 이렇게 낮은 이유는 높은 인플레이션과 불확실한 경제 상황, 코로나19 대유행 대처 혼선, 지난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뤄진 혼란스러운 철군 등이 이유로 꼽히는데요. 엎친데 덮친격으로 분유사태까지 겪고 있죠.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에서 분유가 없어 아이들이 굶고 있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물론 이유는 있습니다.
미국 분유가 대표적인 독점 산업이거든요. 애보트 등 4개 회사가 무려 98%를 점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 독점 기업의 횡포 때문에 외국산 분유는 미국에서 2% 밖에 소비되지 않는다는군요.
그런데 가장 점유율이 높은 애보트 분유를 먹은 영아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공장 가동이 중단됐습니다. 대규모 리콜 사태까지 겹치면서 분유 대란이 벌이지고 있는데요.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SNS)에는 분유를 구하려고 몇시간씩 운전을 하거나 기다려야 했다는 경험담이 수만개가 올라오고 있고 분유 한 통을 100달러에 판매한다거나 수제 분유를 만드는 법을 알려준다는 글도 많습니다. 특히 과거 동화속에서나 봤을 법한 젓 동냥을 하는 엄마들도 있다는 군요. 저개발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미국에서 또 벌어진 셈이죠. 그러니 미국인들이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인식이 좋을리 없겠죠.
그래서 바이든 대통령은 방한 중에도 분유를 챙기며 심지어는 분유를 실어나르기 위해 군용기까지 동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해외 원조를 주는 것이 아니라 해외 분유 원조를 받는 국가가 미국이라는 믿기지 않죠.
이런 상태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신경 쓰이는 사람이 누굴까요? 바로 트럼프입니다. 2024년 대선에 도전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니잖아요. 따라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인들에게 “내가 트럼프보다 미국과 미국인을 더 챙길 수 있다”고 소리칠 수 밖에 없습니다. 트럼프보다 더 크게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것 말고는 중간선거 판세를 뒤집기 힘듭니다. 그래서 이번 우리나라와 일본의 방문이 철저하게 비즈니스 적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약속 받은 것 이외에 더 많은 것을 뜯어내려고 벼르고 방한을 한 것이죠.
이 때문에 현대차의 정의선 같은 경우에는 원래 약속보다 두배나 더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한 것이잖아요. 바이든은 이를 미국인들에게 강조할 것입니다. 내가 트럼프보다 더 많은 것을 한국으로부터 받아냈다고요. 또 일본으로부터도 마찬가지겠죠.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미국 방문을 통해 줄 것은 줬지만 당시 가장 시급했던 코로나 백신을 받아내고 한미동맹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도 강화했습니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도 크게 훼손 시키지 않습니다. 중국 정부나 언론들도 크게 문제삼지 않았고요.
하지만 이번 바이든 방한에서 우리가 받아낸 것은 뭐가 있을까요? 퍼준 것 말고는 보이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특히 중국에서는 한국이 기존의 외교정책에서 전환해 미국과 함께 중국을 억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며 보복이 있을 수도 있다고 경고까지 했습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이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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