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이피디 픽]11년 만에 최고 성장률 '4%'···전문가 대신 현장가가 필요한 이유? 본문
작년 4분기 경제성적표가 나왔습니다. 마지막 학기 성적표가 잘 나와야만 정부가 목표했던 작년 성장률 4%가 달성되는 것인데 결국 달성을 했죠. -0.9%로 뒷걸음질 쳤던 2020년보다 4% 상승하면서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는데요. 2020년 5% 감소했던 소비가 3.6% 성장했습니다. 무엇보다 수출액 737조 원을 넘어서며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운 수출이 큰 몫을 했습니다.
이같은 성과는 전 세계적으로 봐도 회복 속도가 가장 빠른 편입니다. 분기별로 보면 1분기 1.7%, 2분기 0.8%를 기록한 뒤 3분기에는 0.3%로 좀 떨어지면서 올해 4%는 어렵겠구나, 했는데 4분기에 민간소비가 살아나고 수출 증가세가 유지되면서 1.1% 성장하며 4% 달성에 성공했습니다.
한국은행은 이에 따라 3만 천 달러대 까지 떨어졌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 5천 달러대까지 늘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이에 대해 홍남기 부총리는 성장률 발표 이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위기에 강한 경제임을 입증했다고 자평했습니다.
올해 전망도 상대적으로 양호합니다. 국제통화기금, IMF가 우리나라의 올해 경제 성장 전망치를 수정 발표했는데요. 3%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지난해 10월 전망치보다 0.3% 포인트 낮춘 것이죠.
하지만 세계 경제 성장률도 지난번 전망치보다 0.5% 포인트 낮은 4.4%로 전망했습니다. 주요국 성장률 전망치도 대부분 하향조정됐는데, 미국이 1.2% 포인트 유로존과 중국은 각각 0.4% 포인트, 0.8% 포인트 전망치를 낮췄습니다.
따라서 지난해는 물론 올해도 우리경제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셈입니다.
문제는 이런 성과를 국민들이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OECD 산업생산지수. 미국, 일본, 캐나다 등 주요국들이 2020년 이후 지난해 3분기까지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지만 한국은 이미 재작년 3분기부터 회복세가 뚜렷합니다. 산업 생산에 차질이 적었던 건 선제적 봉쇄조치 대신 일상 속 방역 조치로 감염률을 낮출 수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희생은 자영업자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코로나 기간 영업 제한조치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젠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거죠. 여행업 숙박업 같은 손실보상 사각지대에 있는 자영업자들이 머리를 깎고 나섰습니다. 자영업 총연대는 신속한 영업재개와 온전한 손실 보상을 요구하며 다음 달 초 대규모 투쟁을 예고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지난해 11월 홍남기 부총리는 영국에서 열린 한국경제설명회에서 “2021년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20%보다 한참 낮지만 2019년 37∼38% 수준에 머물렀던 이 비율은 내년 50.3%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습니다. 즉 곳간이 빌 것이 걱정된다는 거죠. 그래서 역대급인 60조원에 육박하는 세수 오차를 발생시킨 것입니다. 오차 비율이 무려 20%에 달합니다. 특히 지난해 7월과 11월 두차례에 걸쳐 세수 전망을 크게 수정했지만 또 틀려서 올 1월 추경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홍남기는 지난 17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세제 전문가만 모이다 보니 상당히 소통이 취약했다”며 “세제실을 대상으로 과감한 인사 교류, 세수 추계 모형 재점검, 조세심의회 신설, 성과 평가 지표 운영 등 4가지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게 뭔 말일까요? 세제실 인력이 전문성을 빌미로 고인 물이 되었기 때문에 역대급 오차가 발생했으니 벌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수 전망이 틀리면 인사조치하겠다는 말입니다.
과연 이걸로 세수오차가 줄어들까요? 책상에 앉아 수치만 따지면서 제대로 된 전망이 나올까요? 이건 마치 공장에서 반도체만 설계하는 엔지니어에게 올해 반도체 수요를 예측하라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이 때문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정부 또는 기획재정부 관료들의 책상머리 생각들 때문에 진척이 잘 안 된다”고 한탄한 것입니다.
얼마전 한계레와 인터뷰한 배리 아이컨그린 미 버클리대 교수도 이렇게 강조합니다.
참고로 아이컨그린 교수는 국제금융과 통화체제의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는 세계적인 석학으로 한국은행의 외국인 자문교수로도 약 10년간 활동하는 등 한국 경제에 대한 관심도 높은 분입니다.
아이컨그린 교수는 이런 지적부터 합니다.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한국은 2020년 국가채무비율(일반정부 기준)은 5.8%포인트 상승한 반면 민간부채는 19.1%포인트가 올랐습니다. 반면 주요20개국(G20)의 한국을 포함한 선진국 10개국 평균은 국가채무비율은 12.4%포인트가, 18.4%포인트 늘었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국가채무가 민간부채보다 더 많이 늘어난 반면 대한민국은 반대죠. 즉 나라가 빚을지지 않으니 국민들이 그 부담을 다 떠앉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국가부채가 늘어나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있죠. 홍남기를 비롯해 일부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적정 채무비율을 자주 언급하잖아요. 90%가 넘으면 큰일 나기 때문에 미리 곳간을 채워넣어야 한다면서요.
그런데 아이컨그린 교수는 이에 대해 “마법의 수치는 없다”고 단언합니다.
“과거 일부 경제학자들은 국내총생산의 90%를 넘는 국가채무는 지속 불가능하다며 마치 ‘마법의 수치’가 있는 것처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연구 결과는 이런 주장을 지지하지 않죠. 얼마나 많은 국가채무가 지속 가능한지는 당장은 물론 미래의 경제성장률, 실질금리, 재정 수지 등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떄문에 국제통화기금은 개별 국가의 상황에 맞춰 ‘채무 지속 가능성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백화점에서 기성복을 사는 것보다 재단사가 만들어주는 맞춤 정장을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과 같습니다.”
정말 그렇지 않나요? 각 나라의 정치, 사회, 문화 등의 상황이 제각각인데 동일한 숫자의 잣대로 재단하듯이 국가채무비율이 얼마를 넘으면 위험해라고 하는 것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아집과 횡포 아닐까요? 나그네들을 집으로 초대해 철제 침대에 누이고는 키가 크면 다리를 자르고 작으면 몸을 늘려 죽였다는 그리스 신화의 독선과 독단 아닐까요?
이런 독선과 아집에 벗어나기 위해 아이컨그린 교수도 숫자에 매몰되지 말고 각 나라의 상황에 맞게 재정 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자영업자가 망해가고 서민경제가 망가지는대도 “국가부채가 한계상황”이라는 황당한 말만하는 윤석열 국민의 당 후보는 이에대해 뭐라할지 궁금하네요.
따라서 오늘 내용 정리해보면 우리나라 경제가 상대적으로 양호한 것은 서민과 자영업자들의 희생 때문이다. 국가채무 비율같은 숫자의 굴레에서 벗어나 이를 보듬을 수 있는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입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험난한 파고를 넘기 위해서는 책상에서 숫자놀음만 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국민 속으로 들어가서 숫자 뒤에 숨겨진 아픔까지 보듬는 현장가가 필요합니다. 그 현장가가 누구인지 다들 아시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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