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샤워실의 바보’ 탓일까?···경험하지 못한 현상 줄줄이 본문
“‘9시 땡’을 해도 안 되는데, 이거 되는 사람이 있긴 한가요?”
이게 무슨 소리일까요? 유명 아이돌 티켓런 이야기일까요? 아니면 대학 수강신청 이야기일까요? 놀랍게도 주담대 이야기입니다.
천문학적인 정책금융을 풀면서 ‘빚내서 집사라2’를 외쳤던 정부가 가계부채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돌연 대출규제에 나섰는데요. 두달이나 늦췄던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를 실시하는 등 갑작스러운 방침 변화에 여기저기서 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 주담대 ‘오프런’. 명품을 살 때나 하는 줄 알았던 오픈런을 주담대를 받기 위해 해야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거죠. 선무당이 사람잡는다는 속담이 생각날 정도죠.
이유는 다들 아실 것입니다. 정부가 가계대출 억제를 지시하자 시중은행이 앞다퉈 금리를 인상했고 한푼이라도 아쉬운 서민들은 싼 금리를 찾아 나설 수 밖에 없는데요. 대표적인 곳이 바로 카뱅. 재미난 것은 카뱅의 주담대 최저금리(연 4.16%)는 하나(연 3.739%), 국민(연 3.85%), 신한(연 4.05%) 등 주요 시중은행보다 높은 상태입니다.
그러면 왜 카뱅에 몰릴까요? 업계에서 유일하게 중도상환수수료를 받지 않기 때문이죠. 중도상환수수료는 차주가 대출금을 미리 갚을 경우 은행에 내야 하는 일종의 벌금이죠. 통상 대출 실행일로부터 3년 안으로 갚을 때 부과됩니다. 하지만 카뱅에는 없으니 3년 안에 금리가 내린다면 부담없이 갈아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매일 새벽같이 카뱅 주담대를 신청하기 위해 접속하지만 성공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수준입니다. 직장인이 활용하는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대출 성공 노하우와 실패담 등이 쏟아지고 있을 정도죠. 카뱅 측은 과도한 경쟁을 막기위해 대출 접수 시간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용자들의 성공 후기 등이 온라인상에 나돌며 일반 주담대 신청은 오전 6시, 주담대 갈아타기는 오전 9시에 시작된다는 얘기가 ‘정설’처럼 퍼져 나갔고 이 시간에 맞춰 접속이 몰린다는 거죠. 하지만 짧게는 1주일, 길게는 그 이상 매일 반복적으로 시도해도 성공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이러자 카뱅은 고객 불만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면서 대출 조이기에 나섰습니다. 우리은행에 이어 주택구입자금 목적 주담대는 무주택 세대만 받을 수 있도록 바꾼 것인데요. 주담대를 받을 수 있는 고객수를 줄임으로써 오프런 등으로 고객이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하는 조치라는 게 카뱅의 설명인데요. 이해가 되나요? 오히려 오픈런이 더 길어지지 않을까요?
문제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주담대는 물론, 더 낮은 금리로 갈아타는 대환대출, 주택을 담보로 하는 생활안정자금 대출 등 주택을 담보로 하는 거의 모든 대출 한도는 줄어들고 있잖아요. 그런데 비즈워치 보도에 따르면 일부 대출차주들의 경우 신용대출은 이전보다 한도가 늘어났다고 합니다.
실제로 직장인 B씨는 급전이 필요해 신용대출을 알아보던 중 지난 8월과 비교해 9월 들어 대출 한도가 늘어난 것을 확인했다는데요. 은행원은 신용대출은 상대적으로 관리가 덜해 좀 더 받기 쉬워졌다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금융당국이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부채를 관리하자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신용대출 취급액을 올린 것인데요. 가계대출이 폭발하건 말건 난 모르겠고 이자장사는 해야겠다는 겁니다.
은행의 신용대출도 이달부터 DSR이 적용되기는 합니다. 하지만, 건당 취급액의 최대 한도가 주택담보대출에 비해 매우 적죠. 따라서 DSR을 산출할 때에도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습니다. 이를 모를리 없는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신용대출을 팔고 있는 것이죠.
실제로 스트레스 DSR 규제 2단계 시행 첫날 가계대출이 8000억원 이상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는데요. 규제 시행 직전인 8월 마지막 날에 주택담보대출만 1조6000억원 늘어난 것과 비교해서는 대출 증가 폭이 줄어들었지만, ‘대출 광풍’이 일어나기 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대출 증가세는 가파른 수준입니다. 특히 2일 하루 가장 많이 늘어난 대출은 신용대출로 무려 4046억원이나 증가했습니다. 신용대출은 8월 한 달간 8494억원 증가했는데, 9월 들어 단 하루 만에 8월 증가 폭의 절반에 가깝게 대출이 늘어난 셈입니다.
어차피 돈이 급한 사람들이 신용대출이라도 빌릴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자는 어떨까요? 주담대에 비해 상당히 높습니다. 카뱅의 경우 주담대 최저는 연 4.16%이지만 신용대출은 4.887%나 됩니다. 최고 금리는 15%가 넘고요. 따라서 가계의 이자부담은 늘어날 수 밖에 없죠.
문제는 이런 신용대출도 저신용자에게는 언감생심입니다. 현재 은행에서는 고신용자에게만 신용대출을 해주고 있기 때문인데요. 게다가 금융당국이 신용대출이 급증하자 신용대출 한도를 연봉의 일정 비율 이하로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실질소득이 줄어 가뜩이나 돈이 없는 직장인들은 “누가 마통을 쓰고 싶어서 쓰냐”는 분통이 터질 수 밖에 없죠.
아무튼 당장 돈이 급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 오르는 풍선효과가 커질 수 밖에 없는데요.
상호금융권과 저축은행 등 제 2금융권으로 대출수요가 몰리고 있다는 거죠. 특히 재미난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주담대를 받기 위해 보험사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데요. 이유는 뻔합니다. 보험사 주담대 금리가 더 싸기 때문이죠. 금리만이 아닙니다. 대출만기, 대출한도 등이 은행보다 경쟁력 있다는데요.
3일 기준 삼성생명의 주담대 금리는 최저 3.23%에서 최고 6.83%로 같은 날 KB국민은행의 주담대 금리(3.41~3.7%)보다 최저 금리가 더 낮습니다. 게다가 수도권 주택을 담보로 하면 대출 만기도 보험사가 더 길죠. 국민은행이 수도권의 주담대 만기를 종전 최대 50년에서 30년으로 대폭 줄였지만 삼성생명의 대출 만기는 최장 40년까지. 대출 만기가 길어지면 원리금 상환 부담이 낮아집니다. 이러니 보험사에 주담대 받으러 간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러자 삼성생명도 유주택자 주담대를 제한한다고 하는데요.
이런 혼란은 언제까지 지속될까요? 정부와 은행권은 스트레스 DSR 규제 효과가 이달 중순이나 돼야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하는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큰 산을 넘어야 하는데 쉽지 않아 보입니다.
5년 전인 2019년 고정형(혼합형) 주담대가 대거 금리 갱신을 앞두고 있기 때문인데요. 그 규모가 자그만치 20조원에 달한다는 군요. 당시 금리는 얼마나 됐을까요? 2019년 4분기에 취급한 신규 고정형 주담대 평균금리는 불과 2.37%였습니다. 1년 전인 2018년 4분기(3.24%)와 비교해도 0.87%포인트 낮았고 관련 집계가 시작된 2001년 이후 현재까지 통틀어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따라서 이때는 대출받지 않으면 바보라는 말까지 나왔었죠.
문제는 국내은행이 판매하는 고정금리 대출은 대부분 혼합형 혹은 주기형으로 5년 고정금리 적용 후 변동금리로 전환됩니다. 이례적으로 낮은 수준의 이자를 납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도상환수수료 면제 기간인 3년이 지났다 하더라도 미리 금리를 갱신할 필요성도 대부분 느끼지 못했고요. 그러다 금리가 급등하면서 날벼락을 맞기 일보직전이라는 거죠.
최근 은행들이 주담대 금리를 대거 올린 바람에 갱신 금리는 4%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기존보다 2배 가량 높아지는 셈이죠. 게다가 향후 기준금리 인하로 대출금리가 줄어든다고 해도, 향후 3년간 중도상환수수료 부담을 피할 수 없습니다.
물론 변동금리를 선택한 후, 추후 기준금리 인하의 혜택을 받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방침에 따라 은행권은 변동금리 수준을 고정금리보다 높게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선택이죠. 이 때문에 조만간 대환대출 ‘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 이미 예견됐는데도 금융당국에서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197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말한 ‘샤워실의 바보’를 떠올린 것은 경불진만이 아닐 것입니다. 냉수와 온수를 왔다 갔다 하듯 널뛰는 정책에 애먼 서민들만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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