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항공권 취소 공포’ 확산···‘돌려막기 폭탄’ 또 터진다!!! 본문
“누구에게나 그럴싸한 계획은 있다. 한 대 맞기 전까진.”
주먹 하나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권투 선수 마이크 타이슨이 했던 유명한 말이죠. 인생의 쓴 맛을 느낄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으실텐데요.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습니다. 이 말처럼 지나친 자만심 때문에 ‘참교육’을 당할 위기에 놓인 곳이 있거든요. 도대체 뭘 이야기하는 걸까요?
“티몬에서 파는 문화상품권 너무 싼데 쟁여둘까요?”
최근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쇼핑 정보 공유 카페에 이런 질문이 자주 올라왔다고 합니다. 5만원짜리 상품권 값이 최대 4만5900원까지 내려갔기 때문인데요.
할인율이 무려 9.2%. 정말 파격적이죠. 이건 무조건 질려야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사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등 만류하는 답변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최대 9.2%나 할인해서 살 수 있는데 왜 말릴까요? 혹시 자기들이 사기 위해서?
당연히 그건 아니겠죠. 티몬과 관련한 문제가 불거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티몬을 소유한 싱가포르계 e커머스 기업 ‘큐텐’(Qoo10)이 일부 입점사들에 판매대금을 정산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거죠. 이같은 사태는 이미 지난해말부터 시작됐다는데요.
물론 처음에는 일부 지연이었지만 지난 5월부터는 지연정도가 심각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큐텐측은 판매 대금 정산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해 일부 정산이 지연됐다고 해명했습니다.
지난 17일 판매자 공지를 통해서는 연이율 10%의 지연 이자 지급, 지연 금액의 10%포인트 지급 등 보상안과 함께 이달 말까지 정산을 마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죠. 급기야 지난주부터는 하나투어, 모두투어, 노랑풍선 등 주요 여행사들이 티몬과 위메프에서 여행 상품 판매를 잠정 중단했다는 군요.
여행사들이 판매한 6월 예약분에 대한 정산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데요. 이 때문에 출발을 불과 하루 앞두고 비행기표나 호텔 예약이 취소되는 황당한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투어와 모두투어는 티몬과 위메프에 밀린 대금을 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내 유사시 법적 대응을 예고하고 있는데요.
실제로 티몬에서 여행 상품을 산 한 고객이 올린 글을 보면 충격적입니다.
‘항공운임 미입금으로 최종 항공 취소로 간주되어 확보된 항공권을 최종 취소합니다’라고 적혀있는데요. 그 다음이 더 화가 나더라고요.
‘당사 직권 취소 접수 권한은 없으므로 티몬 마이페이지/고객센터를 통해 취소 신청 바랍니다.’
들뜬 마음으로 준비했던 여행이 아무런 잘못없이 취소된 것도 열불이 나는데 취소신청도 따로 하라니 불난 집에 부채질도 아니고 말이죠.
그런데 왜 이런 사태까지 일어났을까요?
큐텐은 G마켓 창업자인 구영배 대표가 2010년 싱가포르에 설립한 이커머스 업체입니다. 자회사인 큐익스프레스를 나스닥에 상장시키려는 원대한 계획을 갖고 있다는데요.
이를 위해 티몬은 물론 인터파크, 위메프, AK몰 등을 잇따라 인수해 몸집을 키웠습니다.
문제는 인수한 업체들이 사실상 ‘쭉정이’였다는 점입니다. 2022년 기준 티몬의 자본총계는 -6386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입니다.
유동부채가 7193억원으로 전년대비 22% 증가하는 사이 유동자산은 1309억원으로 22% 줄었습니다. 유동부채가 유동자산보다 크다는 건 모든 것을 팔아도 빚을 못 갚는다는 이야기죠.
위메프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위메프의 지난해 유동부채는 3098억원으로 전년 대비 37% 늘었고, 유동자산은 617억원으로 전년 대비 21% 줄었습니다. 위메프 역시 2019년부터 완전자본잠식 상태.
그러자 큐텐은 나름 계획을 실천했는데요. 바로 ‘돌려막기’. 카드 돌려막기도 아니고 유통업체가 어떻게 돌려막기를 할까요?
여기서 생각나는 사건이 하나쯤 있을 것입니다. 일단 2022년 온라인호텔 예약 대행업체인 ‘에바종’. 정가보다 최대 70% 할인된 가격에 국내외 호텔·리조트 상품을 팔아왔지만 어느 순간 먹튀를 했죠.
이보다 앞서 2021년에는 머지포인트로 결제할 경우 20%의 할인 혜택을 제공해 사세를 불렸던 머지포인트가 먹튀를 했고요.
암호화폐 루나·테라를 발행한 테라폼랩스의 권도형 대표도 연 20%의 수익을 무조건 보장한다며 투자를 독려했지만 수많은 피해자만 남겼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죠. 비현실적인 수익률이나 할인 혜택을 내세우는 폰지사기 구조를 띤다는 점입니다. 이런 폰지사기의 본질이 바로 돌려막기죠.
이런 점에서 큐텐도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티몬 등은 소비자들이 결제한 대금을 갖고 있다가 입점한 판매자들에겐 나중에 정산을 해줍니다. 바로 돌려막기로 악용될 수 있다는 거죠.
이런 의혹은 최근 화제를 모은 티몬과 위메프의 선불충전금과 문화상품권 대규모 할인행사로 더욱 불거지고 있습니다. 선주문 방식으로 판매하는 이 할인 행사에서 맨 처음 언급했던 문화상품권은 최대 9.2%나 깎아줬거든요.
문화상품권만이 아닙니다. 해피머니, 컬쳐랜드 등도 10%가량 할인된 가격에 팔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왜 문제가 될까요?
판매할 때 조건이 말이 안 되거든요. 예를들어 지금 구매하면 4주 뒤에 상품권을 받을 수 있다는 안내가 들어있다는 거죠. 이건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죠.
즉 상품권 판매한 대금을 받고 상품권 발송을 나중에 한다면 그 시차만큼 판매대금을 활용할 수 있잖아요. 유동성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꼼수일 수 있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 낸 판매대금으로 다시 상품권을 사는 ‘돌려막기’처럼 악용될 수도 있고요.
이 때문에 ‘제2 머지포인트’ 사태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이건 불법 아닐까요?
황당하게도 불법은 아니라고 합니다. 머지포인트 사태 이후 개정된 전자금융업법은 주된 규제 대상을 ‘유통사’가 아니라 ‘발행사’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데요.
즉 티몬 등이 자체적으로 상품권이나 포인트를 발행해 자금을 유통하는 행위는 불법이지만 문상이나 해피머니 등 다른 업체가 발행한 것을 유통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라는 거죠.
이렇게 법방을 피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위기에서 벗어나진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업체들이 티몬, 위메프 등에서 물건을 빼고 있거든요. 그럴싸한 계획은 있었지만 크게 한방 맞은 셈입니다.
큐텐은 이번 사태를 매듭짓기 위해 구영배 대표가 최근 싱가포르에서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언론에 알렸습니다. 새로운 정산시스템을 도입하고 고강도 구조조정 등 대책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고 하는데요.
이 보다는 미지급된 대금부터 정산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뒤늦게 금융당국은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공정거래위원회도 이미 현장조사를 했다고 하고요. 그런데 왜 사태를 막지 못했을까요?
앞서 살펴본대로 거의 매년 폰기사기 의혹 사건이 반복되는데도 왜 소잃고 외양간도 못 고치고 있을까요?
여기서 한가지 더. 이런 사태의 피해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판매업체라면 어쩔 수 없이 해당 플랫폼의 재무제표까지 봐야 할 듯한데요. 장사하기도 바쁜 와중에 이게 가능이나 할까요? 따라서 플랫폼에서 갑자기 상식 밖의 할인이나 행사를 강요한다면 의심을 해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소비자들도 터무니없이 할인폭이 크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자칫 여행 하루 전날 비행기표가 취소되는 황당한 일을 겪을 수도 있거든요.
https://youtube.com/shorts/fgFdoOxmTJs?si=n_r_d0MReMkWyLG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