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7.6 강진에 日 소부장 쑥대밭···한국 경제 반사이익 얻나? 본문
새해벽두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인플레이션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회복세에 접어들어야 할 세계 경제가 일본 지진이라는 암초를 만났는데요. 게다가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에 착륙하던 일본항공 소속 민항기가, 활주로에 있던 화물 수송기와 충돌하며 불까지 나 난리가 났고요. 이런 혼란의 영향이 어느 쪽으로 튈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다만 비교해볼 수 있는 사례는 있거든요. 과거 일본의 지진들이 끼친 경제적 피해와 파장을 통해 이번 지진이 세계 경제, 특히 우리 경제에는 어떤 영행을 미칠지 예측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다들 아시다시피 새해에 대한 희망에 부풀러 있을 1일 오후 4시10분께 일본 혼슈 중부 이시카와현 노토 반도에서 규모 7.6의 강진이 발생했죠. 이는 2011년 발생한 규모 9의 동일본대지진 이후 가장 강한 지진입니다. 일본에선 최근 3년 동안 506번의 지진이 발생했지만, 규모 7 이상의 강진은 2018년 훗카이도 지진이후 5년 만이고 이시카와현에서 관측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문제는 비슷한 규모의 지진이 또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인데요. 일본 기상청은 앞으로 일주일 사이에 규모 7 이상의 강진이 한 번 더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이미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습니다. 최소 57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고 가옥과 건물 수백채가 무너져 내려 5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경제적 피해도 엄청날 것 같은데요. 얼마나 될까요? 일단 이번 지진이 발생한 지역은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죠. 우리 관광객이 찾는 도쿄나 오사카, 후쿠오카, 훗가이도와는 떨어져 있고요. 우리나라와 동해를 맞대고 있는 지역이어서 우리국민들에게 알려진 것이 별로 없죠. 그나마 유명한 곳이 야마시로 온천인데요. 온천이야 일본의 다른 지역들도 유명해서요. 인구도 110만 명에 불과한 다소 소외된 지역인 듯 한데요.
하지만 일본 경제에서는 매우 중요한 지역입니다. 왜냐면 이 지역에는 일본 정보기술(IT) 산업의 젖줄이 되는 다양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체가 몰려 있기 때문인데요. 도시바를 비롯해 샤프, 파나소닉홀딩스, 재팬디스플레이(JDI)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곳이 많습니다.
우선 도시바는 이시카와현 노미시에서 전력용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2022년에 1조원가량을 투자해 기존 생산시설을 2.5배 증산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등 관련 반도체의 핵심 생산기지로 꼽히죠. TV용 LCD 패널을 생산하는 재팬디스플레이와 휴대폰용 LCD 패널을 공급하는 샤프도 이시카와현에 공장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들 아시다시피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내진 설계죠. 라인 작업을 통해 생산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번 지진으로 이들 공장이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 지진 규모가 매우 큰데다 여진이 이어지고 있어 안심할 수 없는 상태죠.
파나소닉홀딩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시카와현 가가시에서 구동 모터를 생산하고 있는데요. 이번 지진으로 공장이 정상 가동하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무라타제작소도 이시카와현에 인접한 후쿠이현 에치젠시에 있습니다. 강진의 여파가 충분히 미칠 만한 지역이죠. 그런데 이곳에서 무라타제작소는 전 세계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시장에서 40%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적층 세라믹콘덴서는 세라믹 소재를 사용한 유전체와 전극을 여러 층으로 쌓아 만든 콘덴서인데요. 전자기기의 필수 부품으로 스마트폰, 웨어러블 단말기 등에 많이 사용되며 특히 하이엔드 스마트폰에는 약 900~1100개가 탑재되는 등 소형화, 대용량화 니즈가 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전자 산업의 쌀’로 불리는 제품이죠,
문제는 새해 첫날 지진이 발생하면서 최소 3일까지, 최장 8일까지 새해 연휴를 가지는 일본 특성상 피해 상황을 확인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각 회사는 지진 발생과 동시에 통신망 등을 통해 직원들의 안전을 확인했지만, 현지 교통 상황 문제 등으로 공장 내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따라 현지에서는 연휴 이후 정식 출근일인 4일이 돼야 구체적인 피해 상황과 복구 계획 등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럼 과거 일본 지진 때 경제적 피해는 어느 정도 였을까요?
우선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일본이 입은 피해 규모는 천문학적이었습니다. 일본 정부에 따르면 당시 지진 및 쓰나미로 인해 사망자, 부상자, 행방불명자를 포함해 2만8000여명의 인적 피해가 발생했고 114만가구가 파손됐죠. 이후 쓰나미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까지 발생하면서 47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요,
경제적 피해 규모는 20조엔(183조원) 이상입니다. 이는 당시 일본 GDP(국내총생산)의 0.5%에 달했죠. 지진 피해로 인해 2011년 일본 경제성장률은 –0.9%에 그쳤습니다.
이런 직접적인 피해보다 더 큰 것이 간접적인 피해죠. 후쿠시마 원전 파괴 등으로 일본 정부에 대한 신뢰는 무너졌습니다. 도쿄전력이라는 사기업에 휘둘려 원전 피해를 막지 못한 책임은 두고두고 져야 할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죠. 비용 문제 때문에 원전 핵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는 것을 일본 정부가 막지 않고 있죠. 오히려 조장하고 있고요.
아무튼 이로 인해 피해가 커지고 전력 문제도 불거지면서 일본 기업들은 해외로 떠나게 됩니다. 일본 산업 공동화가 진행된 것이죠. 여기에 일본을 찾는 관광객이 줄어 관광산업 타격이 컸습니다. 재해복구비용으로 인해 정부의 재정건전성도 악화했죠.
여담으로 앞서 이번 이시카와 지진으로 도시바 공장이 피해를 입었을 수도 있다고 전했는데요. 놀라운 소식이 있습니다. 도시바는 우리국민들도 대부분 아는 기업이잖아요. 14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의 대표 기업 중 하나죠. 노트북과 반도체 낸드플래시메모리 등을 세계 최초로 만들기도 했고요. 도쿄 증시에도 1949년에 상장됐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20일 도시바가 상장폐지됐다고 합니다. 무려 74년 만에 일본 증시에서 쫓겨났는데요. 이유가 뭘까요?
표면적인 이유는 2015년 회계 부정 문제와 2017년 미국 원자력발전소 자회사의 거액 손실 등으로 위기에 빠져 경영 재편을 모색하다가 투자 펀드에 2조엔(18조 1000억원)에 매각된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바로 지진.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폭발했던 후쿠시마 제1원전 3호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3호기를 만든 곳이 어디일까요? 바로 도시바. 당시 설계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잖아요. 당연히 이 후로 도시바의 원전 수출길이 막혔고 2016년에만 원전에서 7000억엔대 거대 손실을 냈죠. 이런 일이 또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잖아요.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30년에 빠진 이유 중의 하나도 지진이 거론됩니다.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일본 부동산 버블 붕괴로 휘청거리던 일본 경제가 1995년 고베 대지진으로 결정타를 맞았는데요. 당시 야마이치 증권, 산요 증권, 홋카이도 타쿠쇼쿠 은행, 오랜 역사를 자랑하던 일본의 거대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잇달아 폐업과 도산을 당했죠. 이후 일본 경제가 본격적인 나락으로 접어들었고요.
이번 이시카와 지진의 경제적 피해가 동일본 대지진이나 고베 대지진 때 만큼은 아니더라도 회복세를 보였던 일본경제에 찬물 끼얹을 가능성이 매우 충분해 보입니다. 특히 일본 정부가 사활을 걸고 있는 반도체 산업 재기도 차질이 불가피하죠.
대만 TSMC는 현재 구마모토현에 공장을 건립하고 있으며 두 번째 공장 건설도 검토 중입니다. 미국 메모리 업체 마이크론은 5000억 엔(4조8000억원)을 투자해 일본 히로시마현에 차세대 D램 공장을 증설하며, 삼성전자도 요코하마시에 400억엔(3600억원) 규모의 첨단 반도체 연구개발 거점을 세우기로 했죠. 일본 대기업들의 합작사인 라피더스도 홋카이도에 반도체 제조 시설을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지진으로 계획이 틀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반도체 생산 라인은 한번 멈추면 재가동하는 데 짧게는 수일에서 길게는 수개월이 걸리는데 잦은 지진으로 중단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일본 지진이 세계 경제와 우리 경제에 끼치는 영향은 어떨까요? 아직 현지 피해 규모를 정확히 알기 힘들기 때문에 예단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자칫 일본 소부장 업체가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드러나면 코로나 당시 전세계를 흔들었던 IT공급망에 차질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도 악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죠. 다시 물가폭등이라는 악몽에 직면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일각에서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 우리경제가 반사 이익을 얻은 측면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1년 한국의 대일 수출 증가율은 40.8%로 2010년 29.4%보다 크게 증가했고 수입증가율은 감소하면서 대일 무역수지 적자가 75억달러 감소했다는 것인데요. 한국경제연구원도 일본 대지진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0.25%포인트(p)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을 당시 내놓기도 했는데요.
이번에 이런 기대를 해도 될까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몇 번째 교역국일까요? 중국, 미국, 베트남에 이어 4위입니다. 양국 간의 지리적 위치와 산업 연계 등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무역 규모는 크지 않은 편입니다, 게다가 지난 20여 년 동안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한·일 무역 규모는 2005년 724억 달러에서 2022년 853억 달러로 불과 17.8%가 늘어났으며 같은 기간 대일 무역적자도 약 244억 달러에서 241억 달러로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과거 동일본 대지진 때 잠시 반짝 했던 것이 금세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의 가전, 자동차 등 주요 소비재는 일본시장을 뚫지 못하고 중요 원자재, 기자재 등은 여전히 일본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여행수지마저 적자를 나타내고 있죠.
이번에도 잠시 반짝 효과는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장기적인 기대는 하기 힘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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