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흑해곡물협정’이 뭐길래···식량전쟁에 가장 취약한 나라는? 본문

꼬꼬문(꼬리에 꼬리를 무는 경제질문)

‘흑해곡물협정’이 뭐길래···식량전쟁에 가장 취약한 나라는?

경불진 이피디 2023. 7. 26. 06:32
반응형

영화 '인터스텔라' 한장

“병충해 때문에 밀을 다 불태우고 옥수수를 키웠지만, 사방이 다 흙먼지라서 마시지 않기 위해 천 쪼가리로 코와 입을 가렸어요.”

 

아마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것입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초반에 나왔던 대사죠. 기후위기로 밀, 감자 등이 이미 사라진 지구, 이젠 옥수수 밖에 남지 않았지만 이마저도 언제까지 인류를 먹여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죠. 그래서 주인공은 인류의 새로운 희망을 찾아 블랙홀에 뛰어들죠. 아마 다들 기억이 새록새록 올라올 것 같은데요.

 

문제는 이런 식량위기가 영화 속 상상만이 아닐 수 있다는데 있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했던 기후위기는 물론 식량전쟁 위협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런 위기에 가장 취약한 나라 중 하나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그럼 우리는 이런 위기에 대한 대비를 잘 하고 있을까요?

 

최근 깜짝 놀랄 뉴스가 전해졌죠. 러시아가 흑해곡물협정에 참여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것인데요. 이 소식에 국제 밀가격이 바로 3%나 급등했다고 하죠. 도대체 흑해곡물협정이 뭘까요?

 

흑해곡물협정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라 중단된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 재개를 위해 20227, 4개월(120) 기한으로 체결된 협정을 뜻합니다. 당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유엔과 튀르키예의 중재 하에 흑해 항로를 통한 양국 곡물 및 비료를 안전하게 수출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은 4자 흑해 곡물수출 협정을 맺었는데요.

 

이 협정의 왜 중요하냐면 우크라이나는 밀과 옥수수, , 해바라기유 등의 세계 최대 수출국 중 하나거든요. 전 세계 인구 4~5억명이 우크라이나 산 곡물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2022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흑해가 봉쇄되면서 연간 6000~8000t에 달했던 곡물 수출이 모두 중단됐었습니다. 지도를 보면 바로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데요.

 

흑해는 유럽 남동부와 아시아 사이에 있는 내해죠. 그런데 우크라이나가 식량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흑해를 이용해야 합니다.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바다가 없거든요. 그런데 러시아 해군하면 흑해함대가 가장 먼저 떠오르죠. 이 흑해를 막아버리면 우크라이나로써는 방법이 없습니다.

 

물론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육로 혹은 다뉴브강을 이용해 수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운송량이 줄어들고 비용도 급격히 높아집니다. 그러면 우크라이나 농부들의 이익을 크게 줄겠죠. 즉 농사를 포기하는 농부가 늘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국제 곡물가가 급격히 상승했었죠. 국제 밀가격이 7%가 넘게 급등해서 빵이나 과자 가격도 덩달아 올랐잖아요. 그냥 가격이 오른 것만이 아니죠.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등에 극심한 식량난이 초래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죠.

 

이러자 유엔과 튀르키예가 러시아 설득에 나섰습니다. “이러다 다 죽어라면서요. 결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산 밀, 옥수수 등의 수출을 막지않기로 한 것이죠. 해상 안전을 보장한 것입니다. 그 결과 202281일 출항이 재개되면서 국제 밀가격 등이 다시 안정된 바 있습니다.

 

문제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격화되면서 흑해곡물협정도 백척간두에 놓였다는 점입니다. 202210월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흑해함대 공격을 빌미로 러시아가 흑해 곡물 수출협정의 이행 중단을 선언했거든요. 이 때문에 전 세계적인 식량난이 다시금 우려됐었죠.

 

하지만 다행히도 협정 기한 만료를 이틀 앞둔 20221117일 다시금 4자간의 4개월 연장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한차례 더 연장됐는데요. 문제는 우크라이나가 크림대교를 공격했다고 주장하며 러시아가 더 이상 연장은 없다고 선언했다는 점입니다. 즉 지난 717일 흑해곡물협정의 종료를 선언한 것이죠.

 

이에 그동안 봉합돼 있던 세계 식량 문제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사태가 장기화하면 큰 식량 위기를 부를 가능성도 높거든요. 왜냐면 우크라이나보다 더 많은 밀을 생산하는 나라가 있거든요. 바로 러시아.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세계 최대 밀 생산국은 중국입니다. 그리고 인도, 3위가 놀랍게도 러시아인데요. 우크라이나는 미국, 프랑스, 캐나다, 독일, 파키스탄, 호주에 이은 10위입니다.

 

그런데 중국과 인도 등은 자국내 소비가 많거든요. 밀수출국 순위는 크게 다르다는 건데요. 1위가 놀랍게도 3730만 톤을 수출하는 러시아입니다. 생산량의 43%를 수출하고 있죠. 러시아 다음으로 미국(2610만톤), 캐나다(2610만톤), 프랑스(1980만톤), 우크라이나(1810만톤), 호주(1040만톤), 아르헨티나(1020만톤) 순으로 1000만 톤 이상 해외 수출을 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즉 밀수출 1위와 5위가 수출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식량위기가 심각해질 수 밖에 없다는 거죠.

https://youtu.be/wYDXOL8e44M

이에 흑해곡물협정이 파기되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기아에 직면한 수억명의 소비자들과 세계적인 생활비 위기에 직면한 소비자들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마자 전세계가 곡물가 급등에 비명을 질렀었죠. 식량가격지수는 전쟁이 터진 직후인 지난해 3월 역대 최고치인 159.7까지 치솟았습니다. 식량가격지수는 곡물, 육류, 유제품, 식물성 기름, 설탕류의 2014~2016년 수출 가격 평균치를 100으로 삼아 산출하는 지수인데요. 단순 계산으로 식량 가격이 60%나 폭등했다는 이야기죠.

 

다행히 흑해곡물협정이 발효되면서 지난달에는 122.3으로 약 23% 하락했는데요. 이번 협정 파기로 다시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여기에 극심한 엘리뇨까지 겹치면서 세계는 그야말로 식량전쟁에 돌입할 태세인데요.

 

최근 남부유럽을 휩쓴 극한의 폭염으로 프랑스 농장지대는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옥수수밭이 갈라지는 등 최악의 상황인데요. 프랑스에 풍년이 들면 유럽이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프랑스는 유럽의 대표적인 농업 생산국이지만 올해 프랑스는 극심한 가뭄으로 작황이 최악의 수준을 보이고 있습니다. 유럽 전체가 식량난에 빠질 수 있다는 거죠.

 

대표적인 밀 수출국인 호주에서도 국지적인 가뭄으로 수확량이 줄어들 전망입니다. 올해와 내년도 밀 수출량도 예년과 비교해 3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는데요,

 

이로 인해 곡물가격이 급등하면 또다시 아프리카·중동의 빈국을 중심으로 식량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몰도바·레바논·튀니지·파키스탄 등 개발도상국들이 우크라이나산 밀을 많이 수입했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막히면 당장 기아에 빠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죠. 우리나라도 식량전쟁 한가운데 내버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식량전쟁이 벌어지면 가장 위험한 나라가 어디일까요? 아프리카나 남아시아의 개발도상국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으실텐데요. 안타깝게도 한국을 꼽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패트릭 웨스트 호프의 저서 식량의 경제학에서는 한 나라의 식량 공급 구조를 고립형과 개방형으로 나눕니다. 대부분의 식량을 자국에서 조달하면 고립형, 다른 나라로부터 도입하는 것이 우세하면 개방형 식량 구조라는 거죠.

 

그러면 대한민국이 어디에 속하는 지는 다들 아실 것입니다. ‘신토불이라는 말이 유행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나라 먹거리 중에 신토불이가 거의 없다는 것이잖아요. 그럼 얼마나 없을까요? 이를 엿볼 수 있는 것이 자급률이겠죠. 크게 곡물자급률, 식량자급률로 나눌 수 있는데요.

 

식량자급률은 한 나라의 전체 식량소비량에서 자국산 식량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얼마나 될까요?

 

우리나라는 2020년 기준 45.8%입니다, 1970~80년대만해도 73.3%였는데 절반 가까이 떨어졌습니다. 이 때문에 이코노미스트의 세계식량안보지수를 보면 72.1점로 113개국 중 29위입니다. 이 정도면 높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30위권 내 국가들이 대부분 OECD 가입국입니다. OECD 중에서는 최하위권이라는 이야기죠. 일본만 해도 77.9점으로 9, 싱가포르마저도 75.7점으로 20, 우리나라보다 높았습니다.

 

더 큰 문제는 곡물자급률. 최근 3개년(20202022) 평균 19.5%에 불과했습니다. 국내 소비 곡물 80%가 외국산인 셈이죠. 자급률 관련 국제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00년만 해도 한국의 자급률은 30.9%였지만 20년 새 11.6%p나 추락했습니다. 2020년 기준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최하위.

 

곡물 수출국인 호주(327.9%)미국(120.1%) 캐나다(192.0%) 등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특히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일본과 비교해도 상당한 격차가 있습니다. 일본도 27.7%에 그쳤지만 우리나라보다는 높습니다.

 

https://youtu.be/kZLvsn8kLzs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이 이렇게 낮은 이유가 뭘까요?

 

가장 큰 원인은 경지면적 감소입니다. 2020년 기준 한국 국토 면적 대비 경지면적 비중은 15.6%였다. 이같은 비율은 201217.3%201416.9%201616.4%201815.9%로 지속 감소하는 추세죠.

 

이유가 뭘까요? 농사가 돈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1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농가 및 어가 경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농가의 평균 소득은 4615만원에 그쳤습니다. 전년보다 161만원(-3.4%)나 줄었습니다. 특히 본업인 농업소득이 20211296만원에서 지난해 949만원으로 무려 348만원(-26.8%)이 줄어든 영향이 컸습니다. 이는 1962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큰 감소 폭입니다.

 

이러다 우리 농촌에 씨가 마를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죠. 이래서는 다가오는 식량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해법을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까요? 최근 요미우리신문과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후위기, 세계적인 인구 증가에 대비해 식량안보 강화에 나선다고 보도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이날 총리 관저에서 '식량 안정공급·농림수산업 기반강화 본부' 회의를 열어 평시에도 국민의 식량안보를 확보하고 농업과 식품 생산을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결정했다는데요.

 

이를통해 일본 정부는 평상시에도 국내외 식량 수급과 물류 상황을 파악하고, 밀과 콩 등 수입 의존도가 높은 작물의 자국 내 생산을 늘릴 계획입니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말에는 밀이나 콩, 옥수수와 같은 농작물의 경작지를 확대하고 자국 내 비료 생산을 늘리는 식량 안보 강화 정책도 내놨습니다. 해외 수입 비중이 높은 밀··옥수수의 경우 오는 2030년까지 경작지를 지금보다 9%, 16%, 32% 늘린다는 목표라는 군요.

 

중국의 움직임은 더 빠릅니다. 지난 4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식량 안보를 올해 6대 국가 최우선 과제로 삼고 2032년까지 식량 수요의 90% 이상을 자국 내에서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습니다. 이를 위해 중국은 올해 식량비축 예산을 1329억 위안(251725억원)으로 편성해 지난해(1136억 위안)보다 16.9%나 늘렸다고 합니다. 2020~2022년 관련예산 규모가 1100~1200억 위안 수준이고, 연간 평균 증가율이 2.3%에 그친 점을 감안하면 올해 예산 증가폭은 이례적으로 크다는 거죠.

 

https://youtu.be/84yjGN1U3xg

****그나무상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식량안보 강화를 위한 법안을 속속 발의되고 있는지 여당이 아닌 야당주도라는 점입니다. ‘식량주권 확보가 윤석열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인데도 여당은 관련 입법에 소극적이라는 거죠.

 

최근 소병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더불어민주당·경기 광주갑)이 정부가 5년마다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설정·고시할 때 식량자급력목표치도 포함하는 내용의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습니다.

 

식량자급력은 농지·노동력·기술 등 한 나라의 농업 자원을 총동원했을 때 확보 가능한 식량의 잠재적 생산량을 뜻합니다. 식량안보 강화를 위해 우리 농업 자원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게 개정안의 취지.

 

윤준병 민주당 의원(전북 정읍·고창)식량안보 특별법 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제정안은 정부가 5년 단위 식량안보 강화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국무총리실 산하에 식량안보 컨트롤타워인 식량안보위원회를 두도록 규정했습니다. 정부가 식량 증산 시책을 펼치고, 국민이 6개월 이상 먹을 곡물을 비축할 책무도 부여했습니다. 정부가 양곡을 차상위계층에 무상 지원할 수 있는 근거도 담았죠.

 

이에 앞서 같은 당 김승남 의원(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은 올초 식량자급 인지 예·결산제도도입을 위해 국가재정법5개 법률 개정안을 패키지로 발의했습니다. 정부 예산이 식량자급률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고 그 결과를 예산 편성 때 반영하도록 해 식량자급률 목표치에 걸맞은 예산이 확보되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문제는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부가 식량안보를 수호하도록 법적 장치를 만들고 이를 위한 재정 지원을 명문화하려는 노력이 여당이 아닌 야당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죠. 여당인 국민의힘은 할 일은 안하고 일단 정부를 믿고 지켜보자는 입장인 듯합니다. 특히 갈수록 곳간이 비어가기 때문인지 상당한 재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난색을 표하는 듯하다는 거죠.

 

문제는 이러는 사이에 골든타임이 다 지나버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갈수록 농촌을 떠나는 인구는 늘어나고 경지는 줄고 자급률이 떨어져 수입 농산물에 목을 매다 다른 나라가 식량을 무기로 위협하면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먹을 것은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맨 처음 언급했던 인터스텔라에는 이런 명대사도 나옵니다.

 

“순순히 멋진 밤을 받아들이지 마세요. 노년은 날이 저물어감에 불타오르고 몸부림쳐야 합니다. 분노하고 분노하세요. 사라져가는 빛에 대하여”

 

모호하면서도 중의성을 띠고 있는 대사지만 의미는 명확합니다. 필요한 일에는 수수방관하지 말고 어떤 행동이라도 해야 한다는 메시지죠. ‘인터스텔라의 최고의 명대사인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렇듯이도 그냥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불의에는 항거하고 행동해야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z9vc4CO1Jfo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