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반도체·자동차보다 넷플릭스가 먼저?!···3.3조 투자유치에도 업계 반응 싸늘 본문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 방문하고 있죠. 12년 만의 국빈 방문이라고 대통령실과 언론들은 강조하던데요. 이렇게 정말 중요한 국빈방문이라면 첫 스타트를 어디서 끊을지에 대한 관심이 높잖아요. 그런데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시작했더라고요. 더 놀라운 것은 관련 업계 반응도 뜨뜨미지근 합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일단 우리경제의 가장 큰 현안을 꼽으라면 뭐니뭐니해도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 IRA잖아요. 우리 경제의 핵심인 반도체와 자동차가 걸려있는 문제니까요. 대통령실도 이번 경제 외교의 초점은 ‘첨단 기술동맹 강화’로 반도체법과 IRA,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가장 큰 현안이라고 밝히기도 했고요.
다들 아시겠지만 왜 두가지가 시급한지 짧게 정리해보면 반도체 지원법은 보조금을 줄 테니 너희 내부 영업 자료 비밀에 가까운 것들을 미국에게 공개하고 영업이익이 나면 미국과 나눠라는 말도 안되는 규제죠. 또 IRA는 현대, 기아차가 전기차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됐는데 대통령실과 언론들은 일본, 독일차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못받는다고 했지만 일부 차종은 우회해서 받을 수 있다고 알려졌죠. 온전히 우리차만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둘 다 굳건한 동맹이라는 우리나라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조항이죠.
그래서 이런 현안을 풀기 위해 이재용, 정의선 등 4대 그룹 총수는 물론, 6대 경제단체장까지 무려 122명이나 대동하고 갔고요. 역대 최대 규모라고 대통령실은 자랑하더라고요.
따라서 윤 대통령의 첫 방문지는 당연히 삼성전자가 22조 5000억 원을 들여 짓고 있는 텍사스주 테일러 등 미국 공장을 들린다거나 현대차그룹과 SK온이 오는 2025년 하반기 가동 목표로 조지아주 바토우 카운티 짓고 있는 배터리 공장에 들릴 줄 알았거든요. 바이든에게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으니 우리나라에게 너무 불리한 반도체법과 IRA 조항을 수정해 달라”라고 요구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게다가 어제도 잠시 전했지만 한미 정상회담 앞두고 미국이 우리에게 중국으로 반도체 대체 물량을 수출하지 말라는 황당한 요청을 했다는 외신 보도까지 나왔잖아요. 마이크론이 중국에서 판매 금지를 당하면 중국 수요를 대체할 수 있는 곳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밖에 없는데 중국이 요청해도 팔지 말라고 압박한 것인데요. 우리나라가 미국의 속국도 아니고 지나친 요구죠. 게다가 우리나라가 공산주의 국가도 아닌데 뚜렷한 이유 없이 정부가 나서서 중국에 수출하지 말라고 규제하는 것도 말이 안되고요. 이에 대한 항의의 차원에서라도 미국에 있는 반도체 공장에 들려서 자꾸 압박하면 이재용과 함께 “미국 공장 짓는 것을 다시 고려하겠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대통령실이 공개한 방미 일정에는 반도체나 자동차, 배터리 공장 방문 계획은 없습니다. 정상회담과 함께 경제 일정은 CEO 30 여명과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첨단산업포럼, MIT 석학 대담, 한미클러스터 라운드테이블 등만 있고요. 눈에 띄는 것은 나사 방문이거든요. 그래서 혹시 5월24일로 예정된 누리호 3차 발사를 지원하기 위한 협력을 하는 것인가란 기대를 했는데요. 그동안 우주분야에서 협력했던 러시아와의 관계가 최근 껄끄러워지면서 미국의 도움이 필요한 시점이거든요. 그런데 나사 국장 등을 만나는 것이 나사에서 일하는 한국계 미국인 과학자들은 만난다고 합니다. 대통령실은 팸 멜로이 나사 부국장이 안내한다고 강조하던데요. 빌 넬슨 국장은 뭐한다는 걸까요? 국빈 대우라는데 정말 이해하기 힘들죠,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은 대통령실이 밝힌 주요일정에도 나와 있지 않는 곳에서 방미 첫 일정이 시작됐다는 점인데요. 그곳이 바로 넷플릭스.
대통령실은 24일(현지시각)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방문 첫 일정으로 만난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고 전하더라고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향후 4년간 K콘텐츠에 25억달러(약 3조3375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고 합니다. 서랜도스는 이번에 발표한 투자금액이 “2016년 이후 현재까지 한국 창작물에 집행한 투자액(약 1조5000억원)의 두배에 달하는 규모”라고 설명했다고 강조하고요.
이에 윤대통령은 “서랜도스 대표가 넷플릭스와 한국 콘텐츠 기업의 관계가 마치 한미 동맹과 같다고 말했는데, 100% 공감한다”며 “한미 동맹은 자유를 수호하는 가치 동맹인데, 자유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서는 문화가 필수 요건”이라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콘텐츠 같이 만든다고 한미동맹이라니···. 넷플릭스가 중국에서 서비스되고 있진 않지만 중국 오리지널 드라마나 영화는 많잖아요. 같은 논리면 미국이 넷플릭스를 통해 중국과 동맹한다는 건가요?
다시 돌아와서 대통령실은 이번 투자에 대해 이런 해석을 내놓고 있죠.
“대통령이 방미 일정 중 처음 만난 기업인이 넷플릭스 대표라는 건 나날이 커지는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규모와 높아진 K콘텐츠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일단 투자규모부터 따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한 것은 2016년. 그 이듬해인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를 시작으로 2019년 드라마 ‘킹덤’을 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작품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넷플릭스가 공식적으로 밝힌 2021년 한국작품 투자 규모는 5000억원으로 오리지널 시리즈 15편을 제작했죠. 이후에도 25편 가량의 한국작품에 투자했는데 공식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지난해 투자규모가 8000억원 규모에 이른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미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강동한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 총괄(VP)은 “올해(2022년)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은 시리즈·영화 등 25편 이상을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혀 당시 언론들은 한국 콘텐츠 투자액이 8000억원 전후로 추산된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미 2022년에 말이죠.
그러면 단순 계산으로 지난해와 같은 규모로만 4년간 투자해도 총투자액은 3조2000억원. 그런데 이번 방미에서 밝힌 투자규모는 3조3375억원. 약 1300억원 늘어난 셈이네요. 비율로는 0.4%가 채 안됩니다. 이건 늘어난 것도 그대로 인 것도 아닌 개콘 ‘같기도’ 같은 상황 아닌가요?
겨우 이 정도 가지고 첫 방문 성과라고 하기에는 좀 부끄럽지 않을까요? 게다가 시급한 반도체, 자동차를 제쳐두고 말이죠. 그래서 대통령실의 이 설명이 관심을 끄는데요.
“(넷플릭스 투자 유치 과정에서) 콘텐츠에 관심이 많았던 영부인(김 여사)에게도 보고드린 적 있다.”
설마 김 여사 관심 사항이기 때문에 첫 번째 방문지로 결정한 것은 아니겠죠?
그런데 이런 논란이 불거지자 문체부는 즉각 반발합니다. “분명한 윤 대통령의 방미 성과”라면서 “관련 일자리가 대폭 늘어날 것”이라 해명하고 나선 것이죠. 그러면서 콘텐츠 산업 관련 일자리 6만 8000여개가 새로 생기는 등 MZ 세대가 선호하는 콘텐츠 산업이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투자규모가 별로 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넷플릭스가 향후 얼마만큼 투자하겠다고 지금까지는 밝히지 않았는데 윤 대통령 방미 이후 이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확정했기 때문에 이는 분명한 성과”라고 주장합니다.
그럼 지난해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 총괄(VP)의 인터뷰는 뭘까요? 게다가 이렇게 방미 성과라고 주장하려면 구체적으로 윤 대통령이 넷플릭스에 어떤 요청을 했는데 이렇게 결정됐다는 내용도 나와야 할텐데요. 문체부는 “그것까지는 알 수 없다”고 발뺌합니다. 과연 요청은 했을까요?
https://www.podbbang.com/channels/9344/episodes/24684233?ucode=L-cYlmqQUB
게다가 더 중요한 문제도 있죠. ‘오징어 게임’이 전세계적인 인기를 모았을 때 정작 제작사는 손가락 빨고 있었다는 이야기 다들 아실 것입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넷플릭스가 제작비 전액을 대는 대신 모든 지적재산권을 넷플릭스가 가져가기 때문이죠. 그래서 ‘재주는 제작사가 넘고 돈은 넷플릭스가 가져간다’는 비판이 나왔는데요. 이같은 IP(지적재산권)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지도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한 제작사 대표는 “지금도 넷플릭스가 제작 원가 회수와 겨우 5~10%의 수익배분이라는 노예계약을 강요하고 있지만 당장 국내 투자 받기가 어렵기 때문에 넷플릭스의 제안을 거절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난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나 ‘작은 아씨들’등 주요 인기 드라마들은 케이블 채널에서 선공개 뒤 넷플릭스에 공개하는 식으로 IP를 유지하는 방법을 쓰기도 했지만 작은 제작사의 경우는 언감생심이라는 거죠. 이 때문에 정부에서 강조하는 6만 8000여개의 일자리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 대체적인 업계 반응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도 생기죠. 넷플릭스에 대항하는 티빙, 웨이브 등 국내 OTT도 있잖아요. 하지만 지난해 티빙은 매출 2476억원을 거둬 전년보다 갑절 가까이 늘었지만 영업손실이 무려 1192억원. 전년보다 50% 가까이 늘었습니다. 가입자 정체를 겪고 있는 웨이브의 영업손실은 1217억원으로 전년보다 2배가 넘는 적자폭을 기록했고요. 이 때문에 두 회사 모두 오리지널 작품 제작 편수가 넷플릭스의 절반에도 이르지 못합니다. 이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할텐데 현재까지 정부에서 내놓은 것은 거의 없는 상태죠.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까지 넷플릭스와 관계를 돈독히 하겠다고 하니 자칫 국내 OTT는 고사단계로 빠져들 수 있다는 두려움까지 나옵니다. 또 이들 기업이 만일 파산이라도 하면 여기에서 일하는 노동자 300여명은 어디로 가야 하나요?
게다가 넷플릭스는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만 전년 대비 22%나 늘어난 7733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요. 2021년 말 단행한 월 구독료 인상 효과가 큰 몫을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죠. 그런데 우리나라에 납부한 법인세는 겨우 33억원. 7733억원의 매출중 무려 6772억원이 해외 그룹사로 송금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법인세를 적게 내기 위해 꼼수를 썼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요. 이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을까요?
게다가 넷플릭스가 연간 7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기 위해 국내 인터넷 망을 쓰고 있는데요. 이에 대한 사용료는 내고 있을까요? 그냥 공짜로 쓰고 있습니다.
이런 넷플릭스의 갑질은 그대로 나둔채 3조가 넘는 투자를 유치했다고 기뻐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거죠.
오늘은 미국을 국빈방문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첫 방문지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반도체, 자동차 등 시급한 현안을 재껴두고 넷플릭스를 찾았다고 해서 그동안 국내에서 끊임없이 제기돼 왔던 넷플릭스 갑질에 대한 해법을 찾았다고 기대했지만 역시나였다는 점에서 실망이 너무나 크네요. 일정이 30일까지 남았으니 뭔가 반전의 성과를 보여주려고 이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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