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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다보면 깨닫게 되는 경제적 자유와 힐링의 가치

경불진 이피디 2022. 3. 14.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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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주 마음이 너무나 무겁더라고요. 역대급으로 치열했던 대선 경쟁 때문에 결과가 나왔는데도 홀가분하기 보다는 머리만 복잡하더라고요. 가슴 한편이 뻥 뚫린 듯 한 느낌까지 들고요.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재미난 예능프로그램도 웃기지 않고···.

 

아마 저와 비슷한 증세를 앓는 분들이 꽤 계실 듯한데요. 이럴 때는 뭔가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잖아요. 혹시 상처난 마음을 치유해줄 수 있는 책이 없을까요? 이런 고민을 하던 발견한 책이 하나 있습니다. 정처없이 인터넷 바다를 해매고 있는데 책을 읽으니 힐링된다는 제목의 블로그 글이 있더라고요. 이 글은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란 부제를 붙여놨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동네책방 소개 블로그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휴남동은 어디에 있지? 서울에서는 못들어본 동네인데, 지방인가?’란 생각도 스쳐지나갔죠.

 

그런데 블로거는 책 소개를 이렇게 써놨습니다.

 

‘이 책은 우연히 서점에서 보고 보면 뭔가 차분하고 힐링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급하게 지른 책이다. 이북으로 먼저 나온 작품이던가,’

 

뭔가 마음 추스릴 것이 필요했기 때문에 차분하고 힐링될 것 같다는 말이 정말 끌리더라고요. 그리고 이북으로 먼저 나왔다기에 이용중인 밀리의 서재에서 바로 검색해 봤습니다.

 

평범한 서점에서 펼쳐지는 감동스토리, 밀리의 서재 톱10 베스트셀러란 문구가 반갑게 맞이하더군요. 이어 크고 작은 상처와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휴남동 서점이라는 공간을 안식처로 삼아 살아가는 법은 배운다란 설명에 이끌려 바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혐오와 갈등으로 갈라진 대한민국은 사라지고 서로를 위하는 따뜻한 이웃이 가득한 휴남동 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갔습니다. 우리 동네가 휴남동이길 바라면서요.

 

이 소설의 매력은 단지 마음만 따뜻하게 만드는데 있지 않습니다. 현실의 문제, 즉 경제의 문제도 담아내고 있으니까요? 성공을 위해 자기 스스로를 희생해야만 하는 직장인의 삶, 단군이래의 최고 스펙을 자랑하지만 취업문턱을 넘지 못하는 젊은이의 좌절, 대기업에 눌려 갈수록 쪼그라드는 자영업자들의 애환, 이런 어른들을 보며 희망까지 놓아버린 청소년의 방황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칠 사연들이 가득합니다. 골치 아프고 때론 피하고 싶은 이런 사연들이 휴남동 서점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만나 버무려지면서 절대 인위적이거나 과하지 않게, 꼭 이렇게 해야한다는 자기계발서의 꼰대같은 지적과는 사뭇 다르게, 잔잔하고 서서히 해소되는 과정이 너무나 매력적입니다. 그래서인지 책을 잡고, 아니 모니터를 응시하고 세시간 여만에 다 읽게 되더라고요. 책은 읽었던 세시간은 물론 지금까지도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느낌이 남아있습니다. 애청자 여러분들도 이 느낌을 꼭 맞보시길 바랍니다.

 

이 책의 저자는 황보름 작가입니다. 책을 너무나 재미나게 읽어서 어떤 작가인지 궁금했는데 네이버 인물사전에는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찾아보니 인터넷 서점 예스24에서 운영하는 웹진 체널예스에 인터뷰가 실렸던데요. 사진의 모습은 매우 젋더라고요.

 

작가 설명에는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LG전자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했다. 몇 번의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면서도 매일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은 잃지 않고 있다. 지은 책으로 매일 읽겠습니다, 난생처음 킥복싱, 이 정도 거리가 딱 좋다가 있다고 돼 있습니다.

 

달라구트 꿈 백화점의 이미예 작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김초엽 작가도 공대출신이던데요. 문학은 문과출신만 한다는 편견이 깨지고 있는 것같아 너무나 반갑네요. 제가 대학 다니던 시절만 해도 공대 여대생은 정말 드물었는데 이제는 공대에도 여학생이 늘어나고 있고 이렇게 늘어난 덕분인지 공학과 문학을 융합하는 통섭의 지혜까지 발휘한다니. 통섭의 학자로 불리는 최재천 교수님이 흘러넘쳐야 새로운 것이 생긴다는 거품예찬이 정말이구나란 생각이 다시 한번 들게 하는군요.

 

정말 통섭의 지혜가 가득한지 책 내용을 살짝 엿보겠습니다.

 

이 책은 서울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동네의 후미진 골목길.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은 가정집들 사이에 평범한 동네 서점 하나가 들어서면서 시작됩니다. 바로 휴남동 서점. 슬픈 사연을 갖고 있는 사람처럼 얼굴에 아무런 의욕도 보이지 않는 서점 주인 영주는 처음 몇 달간은 자신이 손님인 듯 일은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책만 읽죠.

 

그렇게 잃어버린 것들을 하나둘 되찾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소진되고 텅 빈 것만 같았던 내면의 느낌이 서서히 사라지던 어느 순간 영주는 깨닫습니다. 자신이 꽤 건강해졌다는 사실을. 그 순간부터 휴남동 서점은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변신하는데요. 사람이 모이고 감정이 모이고 저마다의 이야기가 모이는 공간으로.

 

그래서 바리스타 민준, 로스팅 업체 대표 지미, 작가 승우, 단골손님 정서, 사는 게 재미없는 고등학생 민철과 그의 엄마 희주 등 크고 작은 상처와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휴남동 서점이라는 공간을 안식처로 삼아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나갑니다.

 

이 책은 자극적인 소재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흥미로운 스토리의 영상물이 가득한 요즘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와는 결이 다릅니다. 흥미를 끄는 반전, 주인공을 둘러싼 자극적인 갈등이나 다툼도 없습니다. 그냥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소소한 사연들이 가득합니다. 자칫 민민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던지는 대사들이 너무나 중요하지만 우리가 잊고 살고 있는 것을 건드리는데요. 몇가지 대사만 살펴볼까요?

 

무력감에 빠져있는 고등학생 민철에게 주인공인 영주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책을 읽다 보면 알게 되는 게 있어. 저자들이 하나같이 다 우물에 빠져봤던 사람이라는 걸.

방금 빠져나온 사람도 있고, 예전에 빠져나온 사람도 있고.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 앞으로 또 우물에 빠지게 될 거라고.

 

우리는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힘을 낼 수 있거든. 나는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저 사람들도 다 힘드네? 내 고통은 지금 여기 그대로 있지만 어쩐지 그 고통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지는 것도 같아.

태어나서 죽을 떄까지 마른 우물에 한 번도 빠진 적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 없을 것 같다는 확신도 와.

 

그렇다면 이제 이렇게 무력한 상태로는 그만 있어볼까 하는 마음이 드는 거야. 그래서 웅크린 몸을 쭉 일으켜 세웠는데, 글쎄! 우물이 그리 깊지 않았던 거야. 이것도 모르고 우물 속에서 그렇게 음침하게 살고 있었구나 싶어서 웃음이 나.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오른쪽 35도 각도쯤에서 살랑살랑 미풍이 불어오는 거야. 문득, 살아 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바람에 너무 기분이 좋아져서.“

 

영주를 좋아하는 작가 승우도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느냐는 민철에 질문에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그럼 잘하는 일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잘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환경도 마련돼 있지 않다면...”

 

"마찬가지지."

 

승우가 인상을 잔뜩 찌푸린 민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환경 탓만 하며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도 없긴 하지.”

 

“그럼 어떻게 해요?”

 

“미래를 어떻게 알겠어. 우선은 해보는 수밖에. 내가 그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알려면.”

 

승우는 좋아하는 일을 5년 했고, 좋아하지 않는 일을 5년 했다. 어떤 삶이 더 나았을까? 글쎄. 굳이 따지자면 후자의 삶이다. 더 편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아서가 아니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다 보니 공허해졌고, 공허감을 이기려 한국어에 몰입했고,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삶은 일 하나만을 두고 평가하기엔 복잡하고 총체적인 무엇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불행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이 아닌 다른 무엇 때문에 불행하지 않을 수 있다. 삶은 미묘하며 복합적이다. 삶의 중심에서 일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렇다고 삶의 행불행을 책임지진 않는다.

 

명문대를 졸업했지만 취업을 하지 못해 부모님을 실망시켰다는 죄책감에 빠진 아르바이트생 민준의 이야기도 눈길을 끄는데요.

 

‘민준은 이제 그만 흔들리기로 했다. 흔들릴 때 흔들리기 싫으면 흔들리지 않는 무언가를 꼭 붙잡으면 된다는 걸 배웠다. 그래서 커피를 붙잡았다. 마음을 비우고 커피에 집중했다. 마음을 열고 커피에 집중했다. 흔들리지 않는 무언가를 붙잡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기. 어디 내놓기에도 민망한 이런 평범한 생각이 민준에게 꽤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민준은 커피를 내리면서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정말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거다. 할 수 있는 만큼 해도 실력이 늘었다. 커피 맛이 좋아졌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이런 속도로, 이런 마음으로 성장해도 충분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세계 최고 바리스타가 돼서 뭘 하겠는가. 삶을 갈아 넣은 후에 최고라는 찬사를 받아서 뭘 하겠는가.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서 민준은 지금 자기가 신 포도의 여우가 된 건가 싶었지만, 아니라고 결론을 냈다. 목표점을 낮추면 된다. 아니, 아예 목표점을 없애면 된다. 그 대신 오늘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거다. 최선의 커피 맛. 민준은 최선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또 어려운 서점 형편이지만 아르바이트 생에게 생활이 가능한 월급을 주는 영주는 노동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는데요. 독서토론에서 일하지 않을 권리라는 책을 읽고 토론하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노동과정에서 인간성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끌어들이고 착취하는 특징을 지닌 소외가 나타난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노동자가 노동을 하면서 자기를 표현하거나 동일시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게 아니라, 거꾸로 자기를 일에 완전히 결합시키고 책임 의식을 가지라 요구받는 데 있다.’

 

이 밖에도 이 책은 휴남동 서점이라는 제목처럼 다양한 책을 소개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매력적인데요. ‘고슴도치의 우아함’ ‘호밀밭의 파수꾼’ ‘에이미와 이저벨‘ ’옳고 그름‘ ’빛의 호위‘ ’세계사 편력‘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 ’너무 한낮의 연예‘ ’쇼코의 미소‘ ’소유냐 존재냐‘ ’니코마코스 윤리학‘ ’저녁의 해후‘ ’서 있는 여자‘ ’태풍이 지나가고‘ ’그리스인 조르바‘ ’밤에 우리 영혼은‘ ’프래니와 주이등 너무 많더라고요. 이중 반정도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황보름 작가를 믿고 하나하나 도전해 볼까합니다. 애청자 여러분들도 함께 해보시면 어떨까요?

 

마지막으로는 시기가 시기인 만큼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소개할까 합니다.

영주와 승우가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인데요.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보신 분들은 공감하실 수 있을 거여요.

 

“저도 따라한 게 하나 있긴 해요. 소설 속 그 장면 작가님도 좋아할 것 같아요.”

“춤추는 장면이요?”

“네 그 장면. 그 장면을 읽고는 나도 이런 삶을 살자 했어요. 실망해도 춤을 추자, 실패해도 춤을 추자, 심각해지지 말자. 웃자. 웃자 또 웃자.”

 

대선 결과에 실망하셨다면 저와 같이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을 읽으면서 힐링 받으시고 춤을 추고 웃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래야 다시 힘껏 일어설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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