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악의 평범성과 빈부격차 본문
악의 평범성은 많이들 아실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범재판에 회부된 아이히만을 보고 아렌트가 제시한 개념인데요. 1961년 진행된 전범재판에서 아이하만은 반인륜적 학살을 일으킨 전범으로 보기 힘들 정도의 ‘지극히 평범한 외모’로 세상을 놀라게 했죠. 33차례의 공판에서 “독일의 군인 공무원으로서 지시대로 했을 뿐이다. 나는 유대인을 죽이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해 분노를 샀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유태인 출신의 아렌트는 이렇게 경고했죠. ‘유태인을 대학살한 나치의 아이히만도 직접 만나보면 살아 있는 악마는 아니었고 오히려 칸트의 도덕률을 실천했노라고 자부하는 보통 사람이었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못한 사유 불능이나 사유 거부, 자발성의 총체적 결여 같은 것들이었다. 이런 것들이 그를 극단적인 악의 대리자로 만들었다.’
즉 평범한 사람도, 도덕적이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도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맹목적으로 따르면 누구나 악마가 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마치 70대 노인을 다치게하고도 나는 시키는대로 했다고 주장하는 버팔로 경찰처럼 말이죠. 더나아가 민주화운동에 나선 광주시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하고 성폭행해놓고서도 전두발이가 시켰기 때문이라고 변명하는 계엄군처럼 말이죠. 백남기 농민을 살수차로 무참하게 죽여놓고선도 명박이가 시켜서 그랬다고 핑계대는 우리나라 시위진압경찰처럼 말이죠. 이들도 집에가면, 친구들만나면 너무나 착하고 평범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려 악마가 됐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죠. 그렇다고 이들을 용서해야 할까요? 절대 안되죠. 이들을 단죄해야 생각없이 악마가 되는 잘못된 관행을 막을 수 있겠죠. 또 이런 지시를 내린 전두발이나 503호도 당연히 단죄해야 하고요.
미국내 불평등이 얼마나 심할까요? 이는 미국을 대표하는 투자은행인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마저 이미 경고했을 정도입니다. 제이미 다이먼은 지난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3억5000만달러(약 3957억원) 규모 고용 촉진 프로그램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작심한 듯 미국 경제 양극화 현실을 꼬집은 적이 있습니다.
다이먼 CEO는 “지금은 미국이 둘로 쪼개진 상태”라면서 “기업이 잘된다고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뒤처져 있는 것도 모르는 귀머거리 CEO이고 싶진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잘 운영되는 기업이 있는 지역을 보면 사람들이 대부분 잘살고 있지만 그 뒤에 가난한 사람이 훨씬 많다”고 지적하며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곧 살기 좋은 나라는 아니라”고 비판했습니다. 즉 미국 경제 문제는 인종주의 같은 차별을 넘어 근본적인 ‘반(反)빈곤’에서 비롯됐다는 것이죠.
그는 “미국인 중 40%가 시간당 15달러(미국 연방 평균 최저임금)도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15%는 최저임금을 번다. 매년 7만명이 오피오이드(마약성 진통제) 때문에 죽는다”면서 “미국인 40%는 병원비와 자동차 수리비같이 기본 삶에 필요한 400달러도 감당하지 못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어 “당신이 미국 어느 마을에 가서 살든지, 당신이 백인이든 히스패닉(라틴계)이든 혹은 흑인이든지 간에 (경제적으로) 뒤처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습니다. 미국 재계를 이끄는 사람의 경고가 정말 섬뜩하지 않습니까? 안타까운 점은 우리나라의 재계, 금융계에서는 이런 경고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죠.
아무튼 미국의 빈곤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미국 연구기관 유나이티드웨이는 2018년 ‘미국인의 40%가 기본생활비에 허덕인다’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실업률이 사상 최저를 향하고 증시 수익률은 최고 수준에 이르렀던 2016년께 소득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미국인 중 40%가 임대료, 교통비, 아동 보육비나 휴대폰비 같은 기본 소비를 하는 데만도 휘청인다는 것이죠. 3470만가구가 절대 빈곤은 아니지만 이런 빈곤에 시달리면서 잊힌 집단으로 전락했다고 합니다.
미국 인구조사국과 노동통계국 최근 데이터를 보면 월스트리트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이후 미국 지니계수는 꾸준히 늘어 0.5를 향해가고 있습니다. 2017년 지니계수는 0.482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통상 지니계수가 0.5를 넘으면 폭동 등 극단적인 사회 갈등에 이를 만큼 불평등이 ‘매우 높은 상태’라고 보죠.
따라서 다이먼 CEO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집권 이후 일자리가 늘고 실업이 줄었다고 성과를 자랑하지만 다수 시민이 최저임금 수준으로 돈을 주는 직장에서 근근이 일하면서 제대로 된 생활비도 벌지 못한 채 싸구려 마약성 진통제에 중독돼 죽어가는 현실은 인간적일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실제로 다이먼 CEO는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도 하고 있다는 군요. 그는 “JP모건은 2005년 모집 부문별로 대졸 학력란을 지우기 시작했고, 2018년 기준으로 미국 내 JP모건이 모집하는 일자리 75%에서 대졸 학력란을 지웠다”고 강조했습니다. 그 이유로 그는 “지나고 보니까 대학 학위가 별로 가치가 없었다는 것을 종종 깨닫곤 한다”면서 “기업들은 하버드나 프린스턴 같은 명문 대학을 돕는 게 아니라 아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충고를 하는 CEO가 있다면 좋을텐데요.
그런데 미국에서도 다이먼CEO는 매우 드문 게이스겠죠. 미국 주류의 대부분을 백인 남성이 공공한 성을 쌓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국 경제학계조차 백인남성들이 지배하고 있다는군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미국 최초의 여성 중앙은행장을 역임한 재닛 옐런 전 연방준비위원회 의장(74)은 얼마전 미국경제학협회(AEA) 연례총회에서 돌직구를 날렸습니다.
“경제학계가 소수인종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충분히 있다. 지난 수십 년 간 인종 다양성 문제는 조금도 진보하지 않았다”고 폭로한 것이죠. 실제로 AEA의 2016~2017년 조사에 따르면 미 경제학 학사와 박사 중 흑인의 비율은 각각 5%, 3%에 그쳐. 과학, 기술, 공학, 수학 영역의 학위 취득 비율보다도 낮았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2017년 기준 흑인, 히스패닉, 아메리카 원주민 등 소주인종의 경제학위 취득비율이 16%로 전체 학계 평균 23.7%보다 낮다고 보도한 바 있죠.
옐런 전 의장은 “이러한 차별은 재능낭비”라며 “학계에서 이러한 문화를 바꾸는 것이 우리 공동의 의무다. 좀 더 포용적인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이에 흑인인 트레본 로건 오하이오주립대 교수는 몇 해 전 AEA 총회에 참석했을 때 “남자애(boy)란 소리를 들었다”며 “학계에서는 그 누구도 동료 학자를 아이 취급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와이 출신의 비(非)백인계인 랜덜 아키 캘리포니아대학교 교수도 “인종차별에 관한 연구가 동료 학자들에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낙담한 적이 있다”고 가세했습니다. 경제학계가 인종차별에 앞장서고 있으니 최저임금법 등 소수인종을 위한 정책이 시행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는 미국만의 일일까요? 우리나라 경제학계의 주류를 누가 차지하고 있을까요? 이에 대한 정확한 조사자료가 없지만 삼척동자도 알지 않을까요?
그런데 문제는 이같은 불평등이 점점 악화되고 있는데 그 원인이 트럼프라는 점입니다. 사회적 불평등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는 로버트 라이시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님을 다들 아실 것입니다. ‘1대 99를 넘어’라는 책으로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져 있죠. 특히 “한반도에 평화가 지속된다면 노벨 평화상을 받은 자격이 잇는 사람은 트럼프가 아닌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돌직구를 날린 분으로도 유명하죠. 그런데 라이시 교수님의 뛰어난 재주가 있더군요. 바로 삽화그리기입니다. 경제학을 좀더 쉽게 삽화로 설명해보라는 영화감독인 아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유튜브에 실제 삽화로 설명한 것을 올렸는데 대박이 났죠. 복잡한 경제를 너무나 쉽게 설명해주니까요? 경불진도 이런 방식의 유튜브를 기획했었는데 삽화를 그릴 재주도 없고 편집도 어렵고 가장 큰 문제는 라이시 교수님 만큼 잘 설명할 능력도 안되고요.
아무튼 이런 인기에 힘입어 라이시 교수님이 책도 펴냈습니다. 바로 까치출판사에서 내놓은 ‘미국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인데요. 이 책은 미국 경제의 문제점을 앞서 설명한 삽화를 곳곳에 넣어 아주 쉽게 설명해줍니다. 특히 트럼프의 잘못된 경제정책은 물론 트럼프 탄핵까지 거론하더군요. 미국 대통령 탄핵 절차에 대해서도 쉽게 알려줍니다. 그런데 이책이 출간된 해가 언제일까요? 바로 2017년입니다. 트럼프가 취임하자마자 책이 나왔죠. 물론 국내에는 그 이듬해인 2018년에 출간됐지만요. 라이시 교수님은 트럼프가 당선되자마자 탄핵 위기에 몰릴 것이라 미리 예견했던 것입니다. 놀랍죠.
아무튼 이 책에는 트럼프의 황당한 정책에 대한 비판이 가득 담겨있는데요. 그 중 이번 시위과 관련된 눈에 띄는 몇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트럼프의 경제 정책중 생각나는 것이 뭐가 있나요?
아마 감세정책을 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야당이나 보수경제지들도 트럼프의 감세정책을 거론하며 문재인 대통령도 배워야 한다고 압박했잖아요. 특히 기업세금을 깎아줘야 경제가 돌아간다고 하면서요. 그런데 라이시 교수님은 이런 지적을 합니다. 미국에는 주별로 세금이 다르잖아요.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보수성향이 강한 텍사스는 트럼프의 정책처럼 세금과 임금이 낮고 규제는 최소하고 합니다. 반면에 캘리포니아는 세금, 특히 부유층에게 부구하는 세금이 가장 높고, 임금도 높으며 규제, 특히 환경규제가 강하다는 것이죠. 한마디로 트럼프나 보수의 논리대로라면 텍사스는 기업하기 좋은 주고 캘리포니아는 기업하기 힘든 주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자료를 찾아봤더니 미국 법인세는 주별로 0~12%까지 차이가 크다고 합니다. 텍사스는 당연히 0%겠죠. 반면 캘리포니아는 8.84%나 됩니다. 특히 캘리포니아 바로 옆인 네바다 주도 텍사스처럼 법인세 0%입니다.
트럼프와 보수주의자들의 주장대로라면 기업하는 사람들이 법인세가 비싼 캘리포니아에 회사를 만드는 것은 말도 안되죠. 바로 옆 네바다로 가면 법인세가 제로인데요. 텍사스나 워싱턴주, 사우스다코다주, 와이오밍주, 오클라호마주도 법인세가 제로고요. 특히 텍사스, 네바다, 워싱턴, 와이오밍, 사우스다코다 주는 소득세마저 제로입니다. 그렇다면 부자들은 다들 이들 주에 몰려가야 하겠죠. 기업도 여기에 만들고요.
그런데 다들 아시잖아요. 텍사스나 워싱턴주, 사우스다코다주, 와이오밍주, 오클라호마주에 있는 대기업 기억나시는 것 있나요? 물론 마이크로소프트 본사가 워싱턴주 시애틀근처 레드먼드에 있긴 하지만 그곳은 그야말로 상징적인 곳이고요. 소프트웨어 부문과 파워포인트 등 핵심 시설들은 주로 캘리포니아에 있습니다. 그 밖에 기억나는 기업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반면 캘리포니아는 셀수도 없는 많은 기업들이 있죠. 비싼 법인세, 소득세를 감수하면서요. 라이시 교수님은 이런 점을 보더라도 “낮은 세금과 임금, 적은 규제가 기업친화적 경제의 성공열쇠라는 보수 측의 주장이 얼마나 헛소리인지 알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런데도 감세를 외친 트럼프가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이번 사태를 야기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라이시 교수는 빈부격차의 원인으로 소득보다는 재산을 거론합니다. 집을 사거나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거나 자녀에게 대학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 저축하는 등 재산을 모으기 시작하려면 충분한 소득을 거둬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미국인들이 대부분 저축을 하지 못하고 재산은 거의 없다시피 하죠. 미국인 상위 1%가 국가 전체 재산의 40% 보유하고 하위 80%는 7%만 차지하고 있다는 군요. 이 때문에 저소득 유색인종 가정은 저축을 하거나 부를 상속받는 경우가 극히 드물어 특히 빈곤하다는 것이죠. 이런 구조적 불균형, 출발선이 다른 미국 사회 시스템이 계속 쌓이면서 백인 가정의 평균 순 자산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가정과 라틴계 미국인 가정보다 10배 이상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이번 사태가 확산됐다는 것이고요.
이는 미국만의 일이 아니죠. 우리나라도 상위 1%가 전체 예금의 45.5%나 차지하죠. 금융소득 상위 1%, 월급쟁이 1%보다 18배 더 번다는 통계도 있고요. 상위 1%가 보유한 부동산 비율도 17.4%나 되죠. 상위 10%는 무려 50.2%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고요. 우리사회도 빈부격차가 더 극심해지면 미국과 같은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보수야당이나 언론에서는 감세를 주장하면 소득주도 성장을 비판하기에 여념 없죠. 돈에 눈이 어두워 나라 망하는 것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죠. 조선말기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들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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