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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뺏기 게임의 진실

경불진 이피디 2019. 12. 2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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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뺏기 게임 다들 아시죠? 야유회 등에 가서 하는 놀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8명이 게임을 할 경우 사람 수 보다 한 개 적은 7개의 의자를 가운데에 놓죠. 그리고 참가자들은 신나게 노래를 부르면 둥글게 돌다가 삑 소리가 들리면 재빨리 의자를 차지하는 게임. 의자를 차지하지 못하는 사람은 탈락하게 되고 그 다음은 또다시 의자 숫자를 줄여 한명이 남을 때까지 게임은 진행되죠. 다들 신나게 웃고 떠들면서 게임을 하지만 간혹 참가자들이 서로 의자를 차지하기 위해 격렬하게 다투다 싸우기도 하죠. 즐겁게 시작했던 게임이 울면서 끝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놀이인줄만 알았던 의자뺏기 게임이 현실에서도 종종 벌어지죠. 대표적인 것인 박근혜 시장 도입하려다 실패했던 성과연봉제입니다. 성과연봉제는 노동자들의 업무능력과 성과를 등급별로 평가해 임금에 차등을 두는 제도잖아요. 이렇게 차등을 둔다는 의미가 뭘까요? 성과가 나쁜 사람은 알아서 나가라는 것이죠. 의자뺏기 게임에서 행동이 늦거나 삐 소리를 빨리 듣지 못해 의자를 차지하지 못한 사람이 게임에서 쫓겨나듯이 말이죠.

 

이런 성과연봉제의 폐해를 자세히 다룬 책이 있습니다. 바로 저희가 썼던 누가 내돈을 훔쳤을까에 나와 있는데요. 오늘도 책 선전한다는 이야기를 들을까봐 책이 있던 내용 일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엔론이란 기업 다들 기억나시죠? 1990년대 미국을 대표하던 기업이었잖아요. 1985년 설립 이후 2001년까지 16년 동안 ‘1700% 성장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을 정도로 성과가 대단했죠.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1996년부터 2001년까지 6년 연속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회사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하버드, MIT 등 미국 최고 명문대학 MBA 출신들의 인재들이 앞 다퉈 들어가려고 했던 회사이기도 했죠. 현재의 애플이나 구글보다도 당시 미국인들의 사랑을 더 많이 받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던 엔론은 무려 15억달러(17000억 원) 규모의 분식회계가 드러나며 2001년 한순간에 붕괴하고 말았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회사로 뽑히자마자 망했으니 미국인들에게는 9·11테러 못지않은 충격을 줬죠. 당시 외신들은 엔론 직원들의 윤리의식 부족을 대대적으로 성토했습니다. 영국 신문 데일리텔레그래프의 경우 엔론에서는 사내 불륜이 만연했고 고위 임원들의 이혼이 전염병처럼 유행했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엔론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보통 여기까지입니다. ‘수조 원대의 회계부정 스캔들이 일어났는데도 이를 묵인할 정도로 직원들의 윤리의식이 부족해 잘나가는 회사가 무너졌다는 설명에서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엔론과 같은 사태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직원 윤리의식을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죠.

 

그런데 벨기에 정신분석학자 파울 페르하에허는 재미난 해석을 하죠. 엔론의 몰락을 등수 매겨 내쫓기모델 때문이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등수 매겨 내쫓기는 최고의 생산성을 올린 직원에게 보너스를 몰아주고 생산성이 제일 낮은 10%의 직원은 해고하는 방식의 인사정책을 뜻합니다. 특히 이름, 사진, 달성 목표를 기업 사이트에 공개하죠. 박근혜 정부에서 도입하려 했던 성과연봉제와 매우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이 어떤 문제를 일으켰을까요. ‘등수 매겨 내쫓기가 도입된 이후 재미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하위 10%에 포함되지 않으려는 직원들의 몸부림이 시작된 것이죠. 더 열심히 일했냐고요? 물론 그런 직원들도 있었지만 자칫 미국 최고의 기업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고 공포가 직원들을 지배했습니다. 꼼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친 것이죠. 앞서 언급했던 의자뺏기 게임에서 의자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난리를 치는 것처럼 말이죠.

 

따라서 이 제도가 도입된 후 5년도 지나지 않아 거의 모든 직원들이 실적 조작에 나섭니다. 성과 수치를 실제보다 높게 앞 다퉈 보고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감사가 없었냐고요. 감사마저도 자신들의 실적을 조작했습니다. 자신들이 열심히 감사한 덕분에 부정은 없다고 보고한 거죠.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습니다. 이런 대규모 사기극의 결말은 어떻게 됐을까요. 수조 원대의 회계부정으로 확대됐고 결국 회사는 순식간에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엔론 만의 일이었을까요? 하위평가자 10%는 가차 없이 저성과자로 분류해 해고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제너럴 일렉트릭(GE)도 있습니다. GE‘20세기 경영의 귀재로 불린 잭 웰치가 1981년 회장에 취임하면서 3등급 상대평가를 도입했죠. 전체 구성원의 상위 20%에겐 성과급과 승진 기회를 제공하고, 중위 70%는 상위 등급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반면 나머지 10%에겐 퇴출을 권고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구성원 간의 치열한 경쟁을 야기 시킨 이 방식은 세계적인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여겨질 만큼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죠. 구성원 간의 불필요한 경쟁까지 유발시킨 것입니다.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협업을 해야 하는 21세기 경영환경에는 적절치 못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죠. 이런 문제가 불거지자 GE30년 넘게 고수했던 상대평가를 2015년 중단하고 절대평가 도입을 선언했습니다. 또 협업을 독려하기 위해 연간 한 번 하던 평가를 스마트폰 앱을 통한 수시 피드백으로 변경한 것이죠. 관리자도 부하 직원에게 명령하고 평가하던 지위에서 벗어나 팀원 간의 협업과 협력을 도모하는 협력자 역할로 전환한 것입니다. 협업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경영트렌드에 맞춰 경쟁보다는 협력으로 회사 방침을 바꾼 것이죠.

 

또 있습니다. 한때 전·현 직원들로부터 가장 파괴적인 절차를 지녔다고 비난 받았던 마이크로소프트(MS)도 마찬가지입니다. MS는 한동안 1등급에서 5등급까지 상대평가에 따른 일정비율을 강제할당 했습니다. 이 때문에 유능한 직원이 다른 유능한 직원과 함께 일하기를 꺼렸습니다. 이미 고목을 쳐낸 상황에서도 또 4등급과 5등급이라는 최하위 등급을 매겨야 하는 부조리도 발생했죠. 10년간 유지해오던 이런 불합리를 MS2013년 말 과감히 폐지했습니다. 관리자와 직원들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커넥트 미팅을 만든 것이죠. 직원 간 경쟁보다는 협력을 장려하는 새로운 성과관리 방식을 시험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 덕분에 추락하던 MS의 성과가 요즘 들어 크게 나아지고 있다는 군요.

 

맥킨지가 발행하는 맥킨지 쿼털리’(20165월호)에서 성과관리제의 미래라는 보고서도 눈길을 끕니다. 보고서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성과연봉제 등 직원 성과평가라는 연례행사가 엉터리라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는 것이죠.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열에 아홉은 상대주의적 성과평가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직원 성과를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는 바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업무수행을 해칠 수도 있다고 지적하죠.

 

이유가 뭘까요. 맥킨지는 성과관리 상대평가제가 평가에 시간만 잡아먹고, 오히려 지나치게 주관적이라고 설명합니다. 등급 평점과 보수에 대해 당사자들을 전전긍긍하게 만들지만 평가결과를 납득하지 못하게도 만들어 동기를 부여하기보다는 동기를 잃게 한다는 이야기죠. 궁극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는 것에 평가하는 관리자나 평가받는 직원 모두 공감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맥킨지는 기업성과를 높이기 위해 상대주의적 성과평가제보다는 협력을 장려하라고 조언합니다. 이에 따라 GEMS가 변신했다는 것이죠. 실제로 상대평가 제도를 운영하는 미국 기업은 199050% 수준에서 201114%로 크게 감소했습니다. 이젠 워낙 줄어들어 관련 조사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와 달리 한국은 대기업의 74%(2015년 노동연구원 501개 기업 설문자료)가 아직도 매년 상대평가로 직원들을 줄 세우고 있죠. 바로 의자뺏기 게임을 노동자들에 강요하는 것입니다.

 

의자뺏기 경쟁이 만연한 곳이 우리나라에도 많습니다. 겉으로는 우리는 협업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투명하고 수평적인 기업문화에요라고 떠벌리지만 정작 내부에서는 박 터지는 의자 뺏기 경쟁이 치열한 경우가 많잖아요. 옆 팀 또는 옆 동료가 망해야 내가 산다는 심정으로 험담도 하고 명퇴는 어려움이 닥쳐도 나만 아니면 돼라는 문화가 만연한 것이 사실이잖아요. 바로 서로가 서로를 감싸기 힘들게 만드는 의자 뺏기 경쟁을 시키기 때문입니다.

 

의자는 뺏기 게임을 하기 위한 도구가 절대 아닙니다. 의자는 함께 앉기 위한 도구입니다. 재미도 없고 싸움만 부추기는 의자뺏기 게임은 더 이상 할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많은 노동자들이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의자뺏기 게임을 멈추자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애청자 여러분들도 의자뺏기 게임을 멈추라는 목소리에 동참해 주실거죠? 혹시라도 네이버가 잠시 멈추거나 버벅 거리더라도 2016년 지하철 노조 파업 때 보내주셨던 응원의 메시지를 네이버 노조에게도 보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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