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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뒷이야기

당신은 ‘GDP 신화’에 속고 있다?

경불진 이피디 2019. 12. 1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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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년 한국 GDP, 나이지리아·파키스탄보다 낮아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회계컨설팅 네트워크 PwC가 최근 발표한 ‘2050 세계 경제 장기 전망-세계 경제 순위의 변화보고서를 인용한 기사였는데요. 아프리카에 있는 나이지리아나 아시아에 있는 파키스탄보다 우리나라가 못 살게 된다고 하니 네티즌들의 클릭이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기사 내용은 이렇게 돼 있었습니다. 세계 32개국의 잠재력 GDP 성장률 전망을 토대로 전망한 결과, 현재 13위인 한국의 GDP2030년엔 14, 2050년에는 18위로 하락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재 GDP 1위는 중국은 2050년에도 정상에서 내려오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2위인 미국은 3위로 내려가고 현재 3위인 인도가 2위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현재 4위와 8위인 일본과 인도네시아는 2050년엔 자리를 맞바꿀 것으로 예상됐고 현재 21, 22위인 이집트와 나이지리아는 급성장해 15위와 14위에 자리해 한국을 추월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현재 우리보다 앞선 순위에 있는 나라 이외에 터키(13), 나이지리아(14), 이집트(15), 파키스타(16), 이란(17)2050년이 되면 우리 경제를 제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 위에 있다 밑으로 처지는 나라는 바로 위 이탈리아(21)가 유일합니다. 게다가 우리가 다소 무시(?)했던 필리핀이 19, 베트남이 20위로 우리를 바짝 뒤쫓는다고 하니 이쯤이나 우리 경제 몰락한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네티즌들도 대한민국의 봄은 끝났다’ ‘헬조선의 시작이다등 비관적인 댓글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이같은 반응은 당연한 듯합니다물론 이같은 지적들은 합당합니다. 정부와 우리 기업인들에 대한 실망감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죠.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GDP 순위가 하락하면 불행하게 되는 걸까요. 우리 삶의 질도 낮아지는 걸까요. GDP의 불편한 진실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국내총생산, GDP는 한 나라의 영역 내에서 가계, 기업,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가 일정기간 동안 생산한 재화 및 서비스의 부가가치를 시장가격으로 평가해 합산한 것을 뜻합니다. 한 국가의 경제 규모는 물론 경제 발전 정도도 가늠할 수 있다고 여겨져 경제지표의 왕으로도 불리죠. 특히 한국가가 선진국인지 개발도상국인지를 판단하는 주요 잣대로도 사용됩니다. 게다가 GDP 성장률에 등락에 따라 일부 국가에서는 정권이 창출되기도 흔들리기도 하죠. 우리나라도 이명박의 747정책(경제성장률 7%,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경제대국 진입), 박근혜의 474정책(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 달러)라는 거짓말에 속아 이 고생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GDP라는 개념이 언제부터 쓰였을까요.

 

이렇게 중요한 지표이니 자본주의가 태동하기 시작한 17세기, 18세기 경부터 사용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GDP라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은 겨우 80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러시아 출신 미국의 경제학자인 사이먼 쿠즈네츠가 미국 경제가 대공황에서 한참 허덕이던 1934년에 만들었다는 군요. 특히 재미난 것은 미 의회가 쿠즈네츠에게 의뢰했다는 것입니다. 미 의회는 당시 길거리에 실업자가 넘쳐나고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쏟아지는데 실질적으로 경제가 얼마나 망가졌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객관적인 수치가 필요했다는 이야기죠. 이에따라 쿠즈네츠는 GDP를 만들었죠. 한마디로 GDP가 탄생한 것은 대공황 덕분입니다. 이후 GDP경제학의 최고 발명품으로 불리며 한 나라의 경제 규모와 성장 속도, ()의 정도를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로 떠올랐습니다. GDP를 신봉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득세하면서 GDP에 따라 국가 순위가 매겨지기 시작했죠. 따라서 세계 각국은 GDP수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갖은 수단을 다 동원했죠. 이 덕분에 쿠즈네츠는 197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GDP라는 개념이 탄생한지 80년이 지나다보니 시대적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최근 디지털혁명, 4차 산업혁명 같은 변화를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이죠. 실제로 구글, 애플, 아마존 등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경제가 확산되면서 GDP의 한계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택시나 호텔을 이용하면 당연히 GDP에 반영됩니다. 하지만 최근 인기있는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나 숙박 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면 GDP에 잡히지 않습니다. 우버의 경우 사용되는 차량이 개인 소유이기 때문에 생산재가 아닌 소비재로 분류됩니다. 따라서 우버로 벌어들인 수입은 부가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아 GDP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에어비앤비도 자가주거서비스이기 때문에 GDP에서 제외되죠. 또 유튜브로 무료 강의를 들으면 실제 돈이 오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GDP 통계는 변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쇼핑이나 모바일뱅킹이 늘면 소비자 효용은 커지지만 시설투자 비용이 줄어 GDP는 오히려 감소합니다. 알파고가 활약하는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 이런 문제는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GDP는 총량 개념으로 소득이 누구에게 어떻게 분배됐는지 알기가 힘듭니다. 특히 평균의 함정 때문에 왜곡이 발생해 GDP가 성장한다고 해서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예를들어 국민 90%의 소득이 늘어나지 않더라도 상위 10%의 소득만 오르면 평균소득이 올라갑니다. 국민 90%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GDP 성장률은 상승하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죠.

 

더 큰 문제도 있습니다. 사회적 복잡성을 무시한 채 건조한 숫자로만 평가하다보니 성장만능주의가 만연하게 됩니다. 성장에 따른 부작용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나쁜 경제성장이 늘어난다는 것이죠. 예를들어 공장에서 매연을 내뿜어 암에 걸리는 국민이 늘어나도 공장 생산이 늘고 치료비가 증가하게 돼 GDP는 늘어납니다. 경제도 성장한 것으로 여겨지죠. 심지어는 환경 파괴나 전쟁 등도 생산 활동으로 분류돼 GDP가 급증하게 됩니다.

 

실제로 유럽연합(EU)2013년 일부 기호약물과 매춘 등도 GDP를 계산할 때 포함하기로 결정하자 대부분의 EU국가 GDP가 상승했습니다. 특히 영국의 경우에는 GDP0.7%나 늘어나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이미 이같은 지적은 오래전부터 재기돼 왔습니다. 1968년 미 대통령 선거에 나선 로버트 케네디는 GDP의 모순을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GDP는 대기오염과 담배광고, 네이팜탄도 계산에 넣고 핵탄두도 계산에 넣으며 폭동을 진압할 경찰 장갑차도 계산에 넣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놀이가 들어갈 자리는 없습니다. GDP는 모든 것을 간단히 계산해 냅니다.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만 제외하고 말입니다.”

 

이렇게 오래전에 GDP의 모순이 지적됐는데도 아직까지 왜 사용되고 있을까요. 케네디가 이런 모순을 지적한지 3개월 만에 암살된 사실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을까요.

 

GDP의 절대적 권위에 대한 불신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계기로 더욱 불거졌습니다. 2009년 유럽위원회가 공식 보고서를 통해 GDP 문제의 심각성을 거론하기도 했죠. 2012년에는 UN까지 이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이미 세계 각국은 GDP대안 찾기에 한창입니다. 프랑스는 이미 2008년 대통령직속위원회를 통해 GDP 대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캐나다 등도 탈 GDP 시대를 대비하고 있죠.

 

경제학계도 마찬가지입니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클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석좌교수는 GDP 수정론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입니다. 2011‘GDP는 틀렸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스티클리츠 교수는 생산 총합인 GDP는 정작 생산한 것들이 누구의 주머니로 어떻게 들어가는지를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면서 “91%의 생산물이 상위 1%에게 돌아가고 나머지 99%의 삶은 GDP가 늘어나기 전보다 더 피폐해졌지만 GDP에는 이런 상황이 전혀 반영되지 못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스티클리츠 교수는 이어 양보다 질적 변화가 중요하고 환경 교육 건강을 비롯해 개인의 주관적 만족도가 지표에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죠. 이에따라 스티클리츠 교수는 IWI라는 지표를 제안했습니다. ‘포괄적 부로 풀이되는 이 지표는 물적자본, 인적자본, 자연자본, 지식, 인구 등 한 나라의 경제가 보유한 모든 자본자산의 잠재가치의 합을 지수화한 것입니다. 국가의 경제적 부는 물론 자연환경, 자원고갈 문제까지 고려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예측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GDP 플러스라는 개념 도입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가사일과 같은 무보수 일과 서비스의 질 개선, 수명 증가, 소득 계층별 다른 소비패턴, 기술발전 등 다양한 경제적 요인들을 반영하는 것이 특징이죠.

 

OECD는 주거, 소득, 직업, 교육, 환경, 건강, 삶의 만족도, 안전 등 11개 부문을 평가해 국가별 삶의 질을 가늠하는 더 나은 삶 지수2011년부터 발표하고 있습니다.

 

최근 가장 각광받는 GDP의 대안은 GNH입니다.

 

국민총행복지수로 풀이되는 이 지표는 심리적 웰빙, 건강, 생활수준, 시간사용, 공동체 활력도, 굿 거버넌스, 문화적 다양성, 생태학적 다양성·회복력 등 9가지 영역으로 평가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GNH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2007년부터 OECD는 국민총행복을 목적에 따라 평균행복, 행복수명, 행복불평등, 불평등조정행복의 4개의 세부 행복지수로 구분해 발표하고 있습니다.

 

특히 GNH가 주목받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1인당 GDP3000달러에도 미치는 못해 세계 128위에 불과한 부탄이 세계 1위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히말라야 고산중봉으로 둘러싸인 부탄은 1970년대초 GDP대신 GNP를 국정최고 과제로 삼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흡연이 금지된 나라, 거리에 신호등이 없는 나라가 됐습니다. 그런데도 2010년 영국 유럽신경제재단(NEF) 조사결과 국민의 ‘97%가 행복하다고 할 정도로 행복도가 높은 나라입니다. 부탄보다 1인당GDP10배가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겨우 5%만 행복하다고 답했습니다. 덕분에 지난해 GNH 순위는 58위에 불과하죠. 이것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 본격화되기 전에 발표됐기 때문에 실제로는 100위권 밖일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현재의 행복지수가 형편없는데 2050GDP가 나이지리아·파키스탄보다 낮아진다는 걱정이 무슨 소용 있을까요. GDP 순위 떨어지지 분배보다는 성장에 더 매진해야 한다는 정부와 일부 언론들의 주장에 더 이상 현혹돼서는 안 됩니다. 성장을 해봤자 99%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동안 똑똑히 목도했지 않았습니까. GDP를 버린 후에 행복을 찾은 부탄의 비법을 우리도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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