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 본문
자본주의 시대에 태어난 이상 우리는 돈을 벌어야 합니다. 돈을 벌어야 먹거리를 사고 옷도 사고 집도 구할 수 있고 자동차를 굴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아버지가 그리고 지금 우리가 직장 상사의 말이라면 속으로는 욕을 할지언정 절대 복종을 하는 이유도 다 돈 때문입니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돈. 그런데 나도 모르게 누군가가 이 돈을 가져가고 있다면, 피 같은 내 돈을 알게 모르게 빼앗아간다면 어떻겠습니까. 살인 충동을 참으면서 부장에게 굽신 거리는 것도, 싸가지 없는 고객님 면상을 할퀴고 싶지만 인내하는 것도 다 돈 때문이었는데 이 돈이 줄줄 샌다면 나의 수고와 고통과 미래는 누가 보상해준다 말입니까.
우리는 그동안 일만 열심히 하느라 내 주머니 속 돈이 나도 모르게 빠져나가는 것을 몰랐습니다. 알고 있었더라도 큰일이 아닌 양 외면해왔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각박해지는 세상에서는 더욱 돈을 벌기 힘들어질 듯합니다. 결국 기대에 미치지 않는 돈일지라도 이를 잘 간수하는 게 중요해진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무엇이 우리 돈을 가져가는 걸까요. 주인 몰래 돈을 가져가는 자를 도둑이라고 합니다. 바늘 도둑, 소도둑이 있듯이 큰 도둑과 좀도둑이 있습니다. 큰 도둑이 더 큰 데미지를 준다고 행각하지만 좀도둑은 권투로 치면 잽을 워낙 자주 날리는 탓에 그 피해가 큰도둑 못지않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직장인이 가장 좋아하는 날은 월급날이죠. 그런데 이때뿐입니다. 바로 신용카드 대금, 다양한 할부금, 휴대전화 통신료, 정수기 렌탈료, 딸 아들 학원비 등의 명목으로 내 통장은 그야말로 탈탈 털립니다. 다시 텅빈 통장을 보며 우리는 또 다음달을 기약합니다. 지옥버스와 지옥철을 타면서 말이죠.
우리 통장이 곧바로 비는 건 앞서 말한 도둑 탓입니다. “신용카드, 할부금, 전화료, 렌탈료, 학원비가 도둑이라는 말이냐”라고 하신다면 “그렇습니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하겠습니다. 원시인도 아니고 신용카드나 전화를 쓰지 않고 어떻게 사느냐고 반문하시겠지만 문제는 이들 물건과 서비스가 아주 교묘하게 소비자, 즉 우리를 기만하고 있다는 겁니다.
현대인의 ‘악마같은 벗’ 휴대전화를 간단하게 살펴볼까요? 일반적인 휴대전화 사용자는 보통 1년 2개월마다 새 단말기로 교체합니다. 스마트폰의 대명사 아이폰이 국내에 처음 상륙한 게 2009년입니다. 3GS라는 버전의 제품으로 시작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한 대 값이 약 100만원입니다. 2009년에 20세였던 사람이 80세까지 산다고 할 때 총 51.4회를 교체합니다. 즉 한 평생 스마트폰에만, 그것도 단말기 사는 데만 5140만원을 쓴다는 계산이 나옵니다.(물론 전화기를 변기에 빠뜨리거나 만취 후 택시 뒷좌석에 놓고 내리지 않았다는 가혹한 조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100만원짜리 고가의 전자기기를 1년2개월마다 바꾸는 걸까요? 그러고 보니 훨씬 싼 압력밥솥도 10년은 쓰는데 말이죠. 이유가 있습니다. 기업은 저마다 매출을 올리기 위해 ‘계획적 노후화’를 실행합니다. 이 말을 쉽게 바꾸면 ‘고객이 새 제품을 빨리 사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기기의 수명을 단축시킨다’ 정도 되겠습니다.
“기기가 빨리 고장 나면 경쟁사의 제품이 득을 볼텐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라고 물으실 겁니다. 그런데 이 제품이 양말이나 팬티처럼 누구나 만들 수 있고, 어떤 걸 착용하더라도 큰 차이가 없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처럼 타사 제품으로 갈아타기가 쉽지 않은 경우 충분히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대놓고 말해 볼까요? 삼성전자의 갤럭시S, 애플의 아이폰. 갤럭시S를 쓰던 사람이 아이폰으로 교체하는 것, 아이폰을 쓰는 분이 갤럭시로 갈아타는 것. 어떤가요? LG G5나 샤오미, 화웨이 제품으로 바로 바꿀 수 있나요? 여러분의 경험을 비춰 생각해보시면 답이 나옵니다.
물론 기업 측에서는 ‘계획적 노후화’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를 인정했다가는 최악의 경우 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고객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제품을 망가뜨리는 겁니다. 이런 문제는 일반 가전제품은 물론이고 자동차, 옷, 집 등 다양한 대상에서 발생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본문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게 끝이라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우리에게는 더 큰 도둑이 있습니다. 좀도둑은 감시를 잘 하고 대비를 잘 하면 어느 정도 막거나 잡을 수 있습니다만 큰도 둑은 잡기도 어렵고 대놓고 우리의 돈을 빼앗아 가기 때문에 더욱 심각합니다.
현실을 사실적으로 다루는 영화를 보면 종종 등장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사채업자와 어쩔 수 없이 사채를 써야하는 고객이 만났습니다.
사채업자: 1000만원을 빌린다고 하니 선이자 100만원 떼고 900만원을 드리죠. 이자는 월 10%입니다.
고객: 월 10%는 너무 합니다. 요즘은 은행이자도 연 1%대란 말입니다!
사채업자: 아직 여유가 있는 분이군요. 그럼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고객: 아,, 아닙니다. 어쩔 수 없죠. 그거라도 있어야 제가 지금 연명할 수 있습니다.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입니다. 1000만원을 다 쓰고 이자를 내는 것과 선이자를 떼고 900만원을 쓰면서 이자를 내는 건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요. 그런데 사채업자는 어차피 첫 달 이자도 100만원인데 미리 떼는 게 뭐가 문제냐는 입장입니다. 고객 역시 듣고 보면 크게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처럼 여깁니다.
우리가 매달 받는 월급이 이와 같다면 믿겠습니까. 다양한 명목으로 빠져나가는 세금, 그리고 4대 보험료까지. 사채업자가 선이자를 떼는 것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 역시 본문에서 상세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내 돈을 가져갔을까’는 이처럼 우리도 모르게 지갑을 털어가는 도둑을 고발합니다. 그리고 이들 도둑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현실적으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돈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할 수 없을 때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라고 한탄합니다. 돈보다 시간을 먼저 언급한다는 것은 시간 없는 것이 더 괴롭다는 것이죠. 그런데 돈이 없는 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왜 시간도 없을까요. 도둑에게 돈은 털렸으니 시간만이도 여유가 있다면 살만할 텐데 말이죠. 하지만 ‘시간은 금이다’라는 격언이 있지 않습니까. 시간이 바로 돈이라는 이야기죠. 돈과 같은 시간을 그냥 나둘 도둑들이 아니죠. 시간마저도 알게 모르게 탈탈 털어갑니다. 현대인들이 ‘시간의 노예’가 된 듯 늘 시간에 쫓기는 것도 바로 도둑 때문입니다.
한나라 시대 한 선비가 밤에 공부하다 도둑이 들어와 대들보 위에 숨었습니다. 이를 본 선비가 식구들을 불러 모아서 “처음부터 도둑으로 태어난 자는 없다. 어려운 상황을 맞아 부득이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감탄한 도둑이 대들보에서 내려와 선비에게 절을 하며 잘못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마주치는 도둑은 이처럼 잘못을 반성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겁니다. 도둑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시스템이고, 거대 기업이고, 계란과 맞짱뜨려는 바위이기 때문입니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은 아니더라도 번만큼은 써야하지 않겠습니까. 한방울 한방울 떨어지는 물이 바위를 부숴버리듯이 조금씩 새나가는 돈을 사전에 틀어막는다면 당신은 부자가 될 수 있는 준비운동을 마친 겁니다. 부자는 아니더라도 ‘고독사’는 면할 수 있겠죠. 너무 삭막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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