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일본 청소차는 낮일…한국은 왜 밤에 할까 본문
한겨레신문이 의미있는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일본 청소차는 낮일…한국은 왜 밤에 할까’ 제목부터 도발적이죠. 한번도 이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는데 기사를 읽고 많은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여기는 것들 중에도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에서요.
한겨레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일본의 수도인 도쿄 환경미화원들은 낮에 작업을 한다고 합니다. 도쿄 23개 자치구의 생활쓰레기를 처리하는 환경미화원은 모두 4200여명으로 이들은 오전 7시40분에 출근해 오후 4시25분에 퇴근한다는 군요. 그 이유에 대해서 도쿄에서 45년간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은퇴한 오시다 고로는 “재활용 분리 상황을 직접 확인하고 잘못된 배출 방법을 바로잡는 행정조치를 하려면 낮에 일해야 한다. 밤에 일하면 소음이 심해 주민들도 불편하고 무엇보다 환경미화원들이 다칠 위험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낮에 청소하는 덕분에 일본의 청소차는 놀랄 만큼 깨끗하다고 합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환경미화원들은 대부분 밤 11시부터 이튿날 아침까지 밤샘 청소작업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가 이른 아침이나 야근 후를 제외한 대낮에 환경미화원을 마주치는 경우가 매우 드문듯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뭘까요. 강원도 원주에서 청소노조를 결성한 뒤 환경미화원으로 5년째 일하는 이선인 민주노총 일반노조협의회 의장은 한겨레에 “지방정부가 청소업무 지시서에 ‘시민이 출근하기 전에 생활쓰레기를 다 치워야 한다’고 적어놓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 환경미화원은 낮에 한국 환경미화원은 밤에 일한다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청소를 낮에 하건 밤에 하건 뭐가 다를까’ ‘청소는 밤에 깨끗이 끝내놓아야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이 기분좋을텐데.’ 하지만 이런 생각에는 보이지 않는 차별이 숨어있는 듯합니다. 지방정부는 물론 우리 스스로도 환경미화원을 전문가가 아닌 소모품 취급하는 것이죠. 실제로 한겨레가 전한 우리나라 환경미화원의 현실은 처참합니다.
작업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불법’도 감내해야 한다는 군요. 현행 도로교통법은 차량 운행 시 사람은 차량 안에 탑승하게 돼 있지만 환경미화원들은 청소차 뒤쪽 발판을 밟고 한 손으로 매달린 채 이동하기 일쑤라고 합니다. 다른 안전장치도 없기 때문에 청소차에서 떨어지거나 다른 차량에 들이받혀 다치는 사고가 종종 생긴다고 합니다.
실제로 한국직업건강간호학회의 ‘환경미화원의 작업별 산업재해 발생 형태에 관한 연구’(2011년)를 보면, 생활쓰레기를 수거하다 다치는 경우가 36.3%로 가장 많았다는 군요. 산재 형태로 보면, 넘어짐(27%)이 많고 떨어지거나 교통사고를 당하는 비율도 각각 17.2%와 10.6%로 높은 편이라고 합니다. 이 때문에 2012년 환경부는 지방정부에 청소차 발판을 철거할 것 등을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위험한 관행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답니다. 왜 일까요. 우리가 외면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한겨레는 지적합니다. 발판을 없앤다면 청소차를 타고 내리기 힘들어 주어진 시간 내에 관할 구역 청소를 끝내지 못해 청소 인력을 늘려야 하는데 용역업체가 이를 할 리 만무하다는 설명이죠. 그런데 이 대목에서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청소는 지방자치단체가 하는 줄 알았는데 왜 용역업체가 등장할까요.
한겨레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95년 이전까지는 청소 업무를 지방정부가 직접 관리했지만 1995년 쓰레기 종량제 도입으로 생활폐기물 처리를 대행할 수 있도록 폐기물관리법이 개정되면서 민간 위탁의 길이 열렸다고 합니다. 이후 대부분의 지방정부가 용역업체를 선정해 대행수수료(이윤 및 일반관리비의 15~20% 보장)를 지원하며 청소 업무를 외주화했다는 설명입니다.
따라서 용역업체는 일반적으로 환경미화원의 노동 강도는 높이고 임금은 줄여 지방정부가 책정한 대행수수료보다 더 많은 이윤을 챙기려 한다는 군요. 특히 일부 용역업체들은 노동자 수나 청소차 가격 등을 부풀려 돈을 빼돌리거나 환경미화원의 임금을 야금야금 떼먹기도 합니다. 실제로 최근 서울 강동구 청소용역 ㄱ업체는 구청에서 청소차 보험료로 4800만원을 책정받고도 사고가 발생하면 환경미화원에게 수십만원씩 배상금을 청구했다는 군요. 환경미화원이 강동구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하며 항의하자 그래서야 ㄱ업체는 2013~2016년 환경미화원에게 공제했던 275만원을 돌려줬다고 합니다. 청소노조 관계자는 “우리 정부가 민간 위탁하는 환경미화 예산은 연 1조5000억원 정도인데, 통상 이 중 30%가 용역업체의 몫”이라며 “공공서비스를 민간에 떠넘김으로써, 종사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은 더 나빠지고 서비스 품질은 더 낮아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마디로 귀찮고 힘들도 더러운 것들을 외주화하는 대기업처럼 지방자치단체도 논란이 생기기 쉬운 환경미화 업무를 외주업체에 떠넘긴 셈입니다.
반면 일본의 상황은 어떨까요. 일본과 과거에는 환경미화원들이 쓰레기처럼 다뤄졌다고 합니다. 일본도 예전에는 한국처럼 밤에 일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제대로 된 작업복도 보호구도 없어 위험한 환경에서 많은 노동자가 목숨을 잃기도 했다는 군요. 하지만 우리와 다른 점은 인간다운 노동환경을 쟁취하려는 청소노동자이 싸움을 수십년째 지속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1971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출신인 미노베 료키치 도쿄도지사가 ‘쓰레기와의 전쟁’을 선언하면서 싸움은 결심을 맺기 시작했다는 군요. 미노베 도지사는 임시직이던 환경미화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임금도 크게 올렸습니다. 또 작업복과 보호구를 정기적으로 지급하고 목욕과 세탁 시설도 마련했죠.
도쿄청소노조도 지방정부와 손잡고 환경미화원 근무환경개선에 나섰습니다. 우선 조수석에 타기 쉽도록 청소차 높이를 낮추고 자동 슬라이딩 도어를 달았습니다. 배기 가스통 출입구를 앞쪽으로 빼내 청소차를 뒤따라오는 환경미화원들이 배기가스에 직접 노출되지 않도록 했습니다. 이는 노사가 참여하는 노동안전보건위원회에서 위험한 작업 방식은 고쳐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덕분이라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런 노력의 결실을 환경미화원만 누린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시민들에게 돌아간 혜택도 놀라울 정도입니다. 도쿄의 경우 고령자나 장애인이 요청하면 아파트 현관 앞까지 찾아가 쓰레기를 수집하는 ‘문전 수거’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홀로 사는 노약자가 며칠 동안 쓰레기를 내놓지 않으면 환경미화원이 자치구 사회복지사에게 연락하기도 한다고 하네요. 게다가 도쿄청소노조가 지역 초등학교를 방문해 재활용 분리 및 배출 방법을 교육하고 폐기물공장 견학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진행합니다. 한마디로 환경미화원을 청소 전문가로 대우한다는 이야기죠. 도쿄청소노조 관계자도 “환경미화원은 어떻게 하면 생활쓰레기를 줄이고 지역을 깨끗이 유지할지 지역 주민과 계속 대화하는 청소 전문가”라는 자부심을 나타냈습니다.
환경미화원을 소모품 취급하는 우리나라와는 정말 차이가 많지 않나요. 왜 이런 차이가 벌어졌을까요. 물론 정책당국자 인식의 차이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죠. 하지만 우리 스스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을 하고 있지는 않을지 반성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안 그런 분들도 많겠지만요.
한겨레가 전한 거리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빌딩이나 건물을 청소하는 환경미화원들의 상황도 처참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 분들도 용역업체를 통해 고용됐기 때문에 근무환경이 매우 열약합니다. 최악의 노동 강도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 수준의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최근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은 열악한 처우는 물론이고 성추행 횡포까지 벌어져 파업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50명이 안 되는 인원으로 하루 최대 7만명이 이용하는 김포공항 청소 업무를 도맡아야 해야 하는 살인적인 노동강도에도 불구하고 30년 넘게 일한 근로자도 월 126만원으로, 최저임금 수준인 6030원에 불할 정도로 처우가 처참하다고 합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공항공사는 협력업체 소관이라며 팔짱을 끼고 있다고 합니다. 이유가 있죠. 김포공항과 청소 등의 용역계약을 맺고 있는 16개 업체 관리소장은 대부분 공항공사 퇴직자들이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하지만 이유가 이것만일까요. 우리의 외면, 방조도 한 몫하지는 않았을까요.
이런 점에서 요즘 대학가에 불고 있는 연대 움직임이 눈길을 끕니다. 숙명여대는 한 학생이 대자보를 통해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약한 근무환경을 전하자 SNS 서명 운동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무려 4500여명의 학생이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근로조건 개선에 서명했다고 하네요. 특히 학생들은 용역업체와 직접 협상에도 나섰고 협상과정도 실시간 페이스북으로 공유했다고 합니다. 이 덕분에 환경미화원들의 임금은 전년 대비 30만원가량 인상됐고 당시 무인경비시스템 도입으로 해고위기에 빠졌던 경비원들은 전원 고용 승계를 약속받아내는 쾌거도 이뤘다고 하네요.
서울대의 경우도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플랫폼 ‘빗소리’를 학생들이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서울대 셔틀버스 하도급업체 소속 기사가 분신자살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고 하는 군요. 특히 청소·셔틀버스·경비·식당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심층 인터뷰해 페이스북 페이지,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 등에 올리면서 비정규직에 대한 편견을 지닌 학생들의 인식 개선에 나서고 있다고 합니다.
또 서강대 학생들은 학내 환경 미화원들을 위해 컴퓨터·영어 교실, 네일 아트, 팔찌 만들기, 춤·노래 교실 등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화답이라고 하듯 환경미화원들도 학교 축제때 ‘어머니 손맛’ 주점을 운영해 수익금 중 일부를 학생들을 위해 내놓고 있다는 군요.
또 성균관대는 미화원들에게 점심식사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도시락업체와 제휴해 도시락을 후원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외국어대는 미화원들과의 소통을 통해 ‘깡통과 페트병은 작은 쓰레기통에 버립시다’ ‘정수기에 라면 국물을 넣지 맙시다’ 등 안내 문구를 곳곳에 붙여 환경 개선 효과를 얻어냈다고 합니다.
정말 놀랍지 않나요. 이렇게 조그마한 관심, 작은 연대로도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다니 말이죠. 대학 뿐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도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주변 곳곳에서 살인적인 노동 강도와 열약한 근무환경을 개선하려는 환경미화원들의 투쟁을 외면만 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일본처럼 깨끗한 청소차가 낮에 돌아다니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번 내용을 조사하면서 또 놀란 점이 있습니다. 엄청난 등록금 마련, 취업난에 남을 돌아보기 힘든 어려운 상황의 학생들이 이렇게 환경미화원들을 위해 나서는 모습에서 우리 사회가 아직은 살만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언론에서 요즘 대학생들의 이기적이고 나쁜 점만 부각시키는데 이처럼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주변을 살피는 대학생들도 많다는 것도 깨닫게 됐습니다. 역시 단군이래 최고 스펙, 최고의 인재들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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