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애플 세금폭탄과 G20, 그리고 차도살인 본문
중국 고전 ‘한비자’에는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춘추전국시대 정나라 환공은 이웃 회나라를 공격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회나라에는 영웅호걸, 충신, 명장은 물론 지혜가 뛰어난 자들이 많아 섣불리 공격하기 힘들었죠. 그래서 환공은 꾀를 하나 냈습니다. 우선 회나라의 영웅호걸, 충신, 명장, 지혜가 뛰어난 자, 전투에 능한 자 등의 명단을 조사했습니다.
그리고는 일단 회나라를 쓰러뜨리면 이들에게 좋은 땅과 벼슬을 나눠주겠다고 대내외에 공포했습니다. 특히 회나라 국경 근처에 제단을 차리고는 작성한 명단을 땅에 묻은 뒤 닭과 돼지의 피로 제사를 올리며 영원히 약속을 어기지 않겠노라 맹세까지 했습니다. 이 소식은 곧장 회나라 왕의 귀에도 들어갔죠. 회나라 왕은 명단에 있는 인물들이 정나라와 내통했다고 의심했습니다. 정나라가 공격하면 이들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한 거죠. 회나라 왕은 명을 내려 명단에 들어있는 인물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맙니다. 그 이후는 안 봐도 비디오죠. 나라를 지킬 인재가 사라진 회나라를 손쉽게 점령했습니다. 바로 손자병법의 36계 중 제3계인 ‘차도살인’의 좋은 사례입니다. 자신의 칼에 피를 묻히지 않고 남의 칼을 빌려 적을 제압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차도살인의 계책은 인류역사와 함께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쓰였습니다.
2016년 주목할 만한 국제뉴스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는 중국에서 열리고 있는 주요 20개국(G20) 정상 회담입니다. 지난 4일부터 시진핑 주석을 비롯해 박근혜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 20개 회원국의 정상은 물론 중국이 초청한 아시아 및 아프리카 지역 8개국, 국제연합(UN),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등 7개 국제기구도 이번 회의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지난해 11월 터키 안탈리아에서 테러 대응책을 주제로 개최된 지 10개월 만에 열리는 이번 회의에서는 세계경제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된다고 합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개회사를 통해 “부채증가로 인해 세계경제에 리스크가 쌓이고 있다”면서 “각국이 무역과 투자를 늘리고 보호무역주의를 회피하기 위한 조치에 착수해야 하며 공허한 대화가 아닌 실질적 행동으로 공조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시 주석은 이어 “이번 G20 회의가 거시경제 정책 공조, 혁신 주도의 성장, 보다 효율적인 세계 경제금융 거버넌스, 견조한 교역과 투자, 포용적이고 상호 협력적인 발전 등 세계경제에 필요한 다양한 현안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많은 언론들은 이번 회의를 통해 브렉시트 이후 보호무역주의 대두와 포퓰리즘 확산을 막고 포용적 성장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무역원활화협정(TFA) 연내 비준 촉구, 보호무역조치 동결 및 철폐 공약 연장에 대한 G20 공동의 입장을 밝히고 세계무역성장전략 및 국제투자정책수립 가이드라인 등을 마련할 계획이란 설명입니다. 이미 각국은 세계경제의 하방 리스크를 경고하고 견조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끌어가는 것을 골자로 한 ‘항저우 컨센서스’를 마련했다는 뉴스도 나왔습니다.
IMF가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3.8%로 제시했다가 최근 3.1%로 낮출 정도로 악화된 세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주요국 정상들이 ‘매우’ 노력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외신은 애플 관련입니다. 아이폰7 출시 소식이 아니라 세금관련입니다.
유럽연합(EU)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의 애플을 상대로 130억 유로(약 16조원)의 세금을 부과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거 EU경쟁담당 집행위원은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아일랜드 정부가 거대 기업 유치를 위해 애플에 세금 혜택을 후하게 부여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죠.
외신들은 유럽연합이 애플을 상대로 강력한 세금 폭탄 카드를 뽑아든 데는 세계에서 시가 총액이 가장 높은 이 우량기업이 유럽에서 천문학적 돈을 벌고도 정작 세금은 쥐꼬리만큼 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애플은 세계 각지에서 아이폰 판매 등을 통해 얻은 수익 중 상당 부분을 합법적으로 아일랜드 지사로 이전한 뒤 낮은 세율을 적용받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아일랜드의 법인 세율이 미국(35%)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12.5%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일랜드 정부가 애플에 매긴 세금은 이보다도 훨씬 적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애플이 이 나라에 낸 세금의 실효세율은 2014년 0.0005%에 불과하다는 거죠. 애플이 올린 매출액 100만 유로 당 고작 50유로 정도의 세금을 물었을 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베스타거 집행위원은 “아일랜드 정부가 거대 기업 유치를 위해 애플에 지나치게 후한 세금 혜택을 부여했다”며 “EU회원국은 특정 기업을 골라 세금 혜택을 줘서는 안 된다”고 질타했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죠. 미 재무부는 이번 판결을 “불공평하다”고 정의하고 “유럽에서의 외국인 투자와 기업 환경은 물론 미국과 EU의 경제 파트너십을 약하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에따라 대부분의 언론들은 미국과 EU 간 조세 전쟁이 벌어질 조짐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가지 상황이 좀 모순되지 않나요. 미국과 EU 간 조세 전쟁과 G20 회담 말이죠. 우선 조세전쟁은 보호무역주의에 기반한 것입니다. 다국적기업이 세금 낮은 나라로 떠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G20에서는 보호무역주의를 배격하겠다고 회의를 한다고 합니다. 앞에서는 보호무역주의를 타파하자고 하면서 뒤로는 보호무역주의의 깃발을 더욱 높이 든 셈입니다. 국제 정세야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워낙 이합집산하기 때문에 당연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기가 너무 애매하지 않나요. 좀 시차를 두고 할 수도 있을텐데 말이죠. 다른 뒷배경은 없을까요.
이런 점에서 애플의 최고경영자 팀 쿡은 아일랜드 국영 TV와 가진 인터뷰를 주목할만합니다. 팀 쿡은 EU의 세금 추징에 극렬반발하면서 애플이 해외(유럽)에 쌓아 둔 현금을 내년에 미국으로 가져가겠다고 밝혔습니다. 더 이상 EU와는 안 놀겠다는 이야기죠. 애플이 이렇게 나선데에는 세금을 조금이라도 깎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애플이 해외에서 관리 중인 현금 상당액은 6월 말 기준 약 2150억달러(약 24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는 지난해 전 세계 군사비지출 2위인 중국의 국방비와 맞먹는 엄청난 액수입니다. 따라서 세율 1%, 아니 0.1%에도 엄청난 금액이 왔다갔다 합니다.
따라서 EU에 기습을 당한 애플은 미국에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미국으로 모든 돈을 빼가겠다고 선언하면 EU에서 세금을 낮추겠다고 나설 것이라 내다본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실제로 미국으로 돈을 뺄 생각도 있는 듯합니다. 쿡은 인터뷰에서 “미국 송금은 내년으로 예상한다”며 “26% 정도가 적정한 세율 수준”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이는 미국 정부와 세율을 놓고 협상할 수 있다는 점을 노골적으로 내비친 셈입니다.
재미난 것은 애플이 실제로 해외에서 거둔 수익을 미국으로 송금할지는 미지수이지만 미국 정부는 웃고 있을 거란 점입니다. 해외에서 거둔 수익을 미국으로 가져온다면 엄청난 조세 수입이 생겨서 좋고, 설령 가져오지 않는다고 해도 앞으로 생기는 수익을 지금처럼 해외에 쌓아두긴 힘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애플 사태를 지켜본 구글·스타벅스·아마존 등 미국 출신 기업들도 해외에 쌓아둔 2조달러가 넘는 돈의 상당부분을 미국으로 들여올 가능성도 큽니다. 미국정부로써는 ‘꿩먹고 알먹고’인 셈입니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국가가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힘이 세진 글로벌 기업들을 견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죠. 글로벌 기업들의 국내 유턴을 유도하기 위해 오바마 정부가 많은 공을 들였지만 성과는 크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미국 정부가 섣불리 글로벌 기업을 공격하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자칫 글로벌 기업들이 미국을 떠나겠다고 선언한다면 미국 정부로써는 낭패일 수 있겠죠. 이 때문에 대신 글로벌 기업을 공격해줄 상대를 찾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쯤되면 뭔가 의심되지 않나요. ‘차도살인’ 고사에서 명단을 적국에게 제공했던 환공처럼 미국도 애플의 탈세 행위를 EU에 이르지 않았을까요. 그동안 잠잠했던 EU가 갑자기 애플에 세금 공세를 때릴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몰래 흘린 정보 때문 아닐까요. 이를 숨기기 위해 미국은 EU의 세금 폭탄에 과장되게 반발했을 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미국과 EU 간의 조세전쟁이기 보다는 미국과 글로벌 기업간의 전쟁일 수도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내놓은 묘수가 현재까지는 기가막히게 성공한 것이고요.
G20회의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서로를 향해 활짝 웃고 있는 정상들이 뒤에서는 남의 칼로 적을 무찌르기 위한 묘수 전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 거죠. 민감한 정보를 슬쩍 흘려 상대국을 자극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박 대통령도 이런 묘수 하나쯤은 있겠죠.
'경제 뒷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 (0) | 2019.12.01 |
---|---|
일본 청소차는 낮일…한국은 왜 밤에 할까 (0) | 2019.11.27 |
아재들의 IT 추억 (0) | 2019.11.26 |
피곤하면 명품 못 만든다 하루 딱 8시간만 근무 (0) | 2019.11.26 |
강도와 절도의 차이, 누가 더 큰 도둑놈일까요? (0) | 2019.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