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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들의 IT 추억

경불진 이피디 2019. 11. 26.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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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이익.’

혹시 이 소리가 뭔지 아시나요. 바로 생각이 난다면 당신은 아재일 것입니다. ‘014XY’인 연결번호를 누르면 띠 디 디 디 띠디란 전화 연결음이 나온 후 모뎀에 접속됐던 이 소리를 안다면 1990년대 이야기나 새롬데이터맨 등으로 접속해 밤을 세가면 PC통신에 빠져들었던 기억도 새록새록 날테죠. 파란 배경과 하얀 글자로 이루어진 특유의 화면이 그립기도 할테고요. 이젠 모니터만 켜도 인터넷에 들어갈 수 있고 스마트폰만 터치해도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시대이지만 왠지 그때가 좋았다고 추억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너무나 빠르게 흘러가는 요즘 세태와는 달리 그 때는 기다림이란게 있어서라고 되뇌이면서 말이죠.

 

그래서 이같은 추억을 나눌 수 있는 아재들의 IT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요즘 트렌드 쫓아가기에도 바쁜데 뭔 추억놀이냐고요. 이유가 있습니다. IT만큼 트렌드변화가 빠른 연예계에도 추억놀이가 한창이잖아요. ‘응팔은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대박을 터뜨리고 있고 젝스키스 등 1990년대 활약했던 가수들도 다시 무대에 서고 있으니 당시 유행했던 IT도 살펴보자는 거죠. 게다가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란 말처럼 당시 IT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면 현재는 물론 미래의 IT변화를 예측해볼 수도 있고요.

 

그럼 첫 번째 순서로 ~~치이익의 주인공 PC통신부터 살펴보겠습니다.

 

PC통신은 개인용 컴퓨터(PC)와 다른 개인용 컴퓨터를 통신회선으로 연결해 자료를 주고받는 통신 방식을 말합니다. PC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통신망을 구축하여 통신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PC통신 서비스 회사가 통신망을 설치하고 이에 가입한 사람들에게 전자게시판(BBS) 등 각종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로 이루어졌죠.

 

PC통신의 시초는 1978년 미국 시카고에서 전화선을 통해 접속할 수 있는 최초의 전자게시판 CBBS(Computer Bulletin Board System)입니다. 이후 1979년 상업적 목적의 BBS 컴퓨서브(Compuserv)가 등장했죠.

 

 

국내에서는 1984년 한국데이터통신의 전자사서함이 그 시초입니다. 1985년 생활정보 DB, 1986년 화상정보 서비스였던 천리안, 1987년 한글전자사서함(H-mail)까지 여기저기 서비스되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개인이나 소규모 인원의 커뮤니티를 제공해주던 사설 BBS가 유행했죠. 19883월 이주희가 개설한 ‘the FIRST’과 같은 해 5월에 바이트전자가 개설하고 최승철이 운영한 바이트 네트(Byte-Net)’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후 대구의 달구벌은 접속노드를 4개까지 늘려 다중접속자 시스템을 지원해 주목을 받았죠.

 

그리고 1989년 개설된 엠팔(EMPal) BBS’1991년 개설한 최오길의 호롱불은 전국적인 사설 BBS로 유명했습니다.

 

이같은 사설BBS가 인기를 끌면서 재미난 일도 많이 벌어졌습니다. 사설BBS에 접속하려면 모뎀과 접속할 전화번호가 필요했는데 영하지 않을 때 접속하면 모뎀 스피커에서 여보세요?”가 들리기도 했죠. 여기에 대답해도 상대방에서 들리지 않기 때문에 사설BBS를 사용자중 상당수 여보세요만 반복했던 개그 같은 상황을 한두번씩 겪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설 BBS는 기술적으로나 인프라 수준에서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았죠. 사설 BBS는 개인이 구축하고 운영했기 때문에 접속인원이나, 통신 속도에 한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BBS 사업 가능성을 내다본 투자자들과 국내외의 관련 전문가들은 BBS의 형태와 커뮤니티 패턴을 응용한 대형 PC통신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3PC통신 전성시대가 다가온 것입니다.

 

천리안, 100만 명 돌파로 PC통신을 주도하다

 

천리안은 데이콤(LG유플러스의 인터넷 사업분야 전신)에서 서비스한 VT 기반 PC통신 서비스입니다. 198510생활정보 DB’를 구축한 후 시범 서비스에 들어갔으며 다음 해 9월에 본격적인 서비스가 시작됐죠. 1989년부터는 천리안 사용자를 위해 단말기를 보급하기 시작했습니다. 19918월에는 뉴스, 날씨, 경제, 기술, 사회, 건강, 쇼핑, 문화 등 매우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19941월간 천리안가족 잡지가 창간됐고 같은 해 인터넷을 연결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본격적인 WWW(World Wide Web)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 건 19954월이었습니다. 199410월에는 유료 이용자가 20만 명을 돌파했고 미국, 일본, 호주, 캐나다 등 여러 국가의 교포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하기도 했습니다.

 

천리안의 전성기는 90년대 중후반에입니다. 199712월에는 가입자 수가 100만 명을 돌파하면서 대한민국 대표 PC통신 서비스로 자리를 잡았죠. 천리안이 WWW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대중들은 인터넷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이후 웹브라우저 프로그램인 천리안98’, ‘천리안2000’CD에 담아 무료로 보급하면서 인터넷 시대에 대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PC통신 업체가 그랬듯, 천리안도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자리를 내주게 되면서 힘을 잃게 됩니다.

 

인터넷 포털이 무료로 서비스하면서 이용자들을 흡수했고, 이러한 현상을 막을 정도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내세우지 못했던 PC통신은 경쟁력을 잃게 됐습니다. ADSL(Asymmetric Digital Subscriber Line)을 지원하는 초고속인터넷이 보급되면서 PC통신은 상황이 더욱 안좋아졌죠.

 

천리안은 인터넷 포털과 경쟁하기 위해 미국 웹 솔루션 업체인 잉크토미로부터 검색 결과를 도입하기도 했고, ‘하나로통신과 서비스 제휴로 점유율을 지키려 노력했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습니다.

 

천리안에서 유명한 동호회는 네모동(네트워크 & 모뎀플레이)’이 있었숩니다. 주로 멀티플레이 게임과 관련된 주제를 다뤘으며, 모뎀플레이를 즐기기 위한 모임이 활성화 됐었습니다. 시뮬레이션 동호회도 활발했으며 비행 시뮬레이션 전문 모임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특히 이곳에는 정품 고전게임이 많이 올라와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이밖에 프로게이머 팀인 페가수스를 운영했고 국내 힙합 뮤지션들을 모아 ‘1999 대한민국앨범을 발매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급격한 사용자 감소로 천리안은 2007PC통신 서비스를 중단한 채 메일 서비스 등 명맥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이텔의 추억

 

tvN ‘응답하라 1994’에서 등장해 추억 몰이를 했던 하이텔의 역사는 198611월 한국경제신문 뉴미디어국에서 한국경제 프레스텔(Korea Economic Prestel)을 개통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이듬해 이름을 케텔로 바꿨죠. 처음에는 뉴스 위주의 서비스를 공급하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 뒤로 PC통신의 상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시판, 채팅, 동호회 등을 갖춘 서비스로 발전했습니다. 무료로 서비스됐던 케텔은 이용자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수익성이 없어 1990년에 들어 매각됐죠. 이를 인수한 회사는 한국PC통신이었습니다. 이후 케텔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1992년 코텔(KORTEL)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됐지만 같은 해 7월 우리에게 익숙한 하이텔이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변경돼 서비스가 시작됐다.

 

하이텔은 19927월 유료로 전환했습니다. 사용요금은 월 9,900. 기존 무료 정책에 익숙해진 일부 시민들이 유료화에 반대하기도 했지만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죠.

 

하지만 90년대 중반부터 인기가 폭발했습니다. 한국통신은 이를 활용해 01410 접속만 가능한 전용 단말기를 무상으로 대여해주기도 했죠. 이 단말기를 활용할 경우 속도가 14.4kbps에 불과해 채팅이나 정보 검색만 가능하고 대용량의 파일은 다운로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통신은 이 단말기를 대여하고 제대로 회수하지 않아 현재까지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 단말기는 중고시장에서 거래되기도 한다는 군요. 옥션, 11번가 등에는 이 단말기가 10~3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하이텔의 유명한 동호회로는 개오동(케텔 오락 동호회)’을 들 수 있습니다. 게임 제작 동호회로 프로게이머로 유명했던 김대기, 김동준 선수가 이 곳에서 활동했죠.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심도있게 다룬 동호회로 유명했습니다. 이 밖에 일본 애니메이션을 다룬 애니메이트도 있었습니다.

 

하이텔에는 유명한 판타지소설들이 연재되기도 했죠. 드래곤 라자, 퇴마록, 데프콘 등 작가 중심의 커뮤니티가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하이텔은 2004년 메가패스, 한미르와 합쳐져 파란닷컴으로 다시 태어났다. 파란닷컴은 20126월 문을 닫으면서 하이텔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나우누리의 약진

 

나우누리는 뒤늦게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젊고 활발한 동호회 활동으로 하이텔, 천리안에 이어 3PC통신으로서의 명성을 쌓아갔습니다.

당시 유료 PC통신망 중에서 가장 먼저 14,400bps 통신속도를 지원했고, 각 지방의 통신망까지 연결하며 서비스를 확대하기도 했죠. 부산과 경상남도는 아이즈(Eyes), 전라도는 포커스(Focus), 대전과 충청도는 센티스(Centis) 등의 통신망과 연계했습니다. 이후 나우누리는 2006년 나우콤에서 분사한 나우에스엔티로 이관돼 운영됐죠.

 

나우누리 역시 1999년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으로 PC통신 이용자가 줄어들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습니다. 2004년부터 2012년까지는 모뎀을 지원하지 않았고, 텔넷(telnet)을 통한 VT접속이 가능했죠. 이후 2013131일 서비스 종료를 선언하면서 나우누리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PC통신 춘추시대

유니텔 - 삼성SDS에서 운영. 현재는 포탈 사이트로 변경. 그리고 플래티넘 회원 한정으로 전용 클라이언트 서비스를 여전히 지원하고 있다.

 

넷츠고 - SK텔레콤에서 운영. 후에 네이트로 흡수.

 

신비로 - 전신은 현대전자 시절 동사에서 근무하던 김택진 씨가 1995년에 만든 국내최초 인터넷 기반 PC통신 서비스인 '아미넷'이었다. 이후 1996년에 현대정보기술()로 이관되면서 '신비로'로 바뀌었다가 1999년부터 모기업인 현대그룹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온세통신으로 서비스가 넘어갔다.

 

채널아이 - LG멀티미디어인터넷이라는 회사가 운영. 후에 천리안과 합병됨 (현 데이콤멀티미디어인터넷)

 

에듀넷 - 당시 에듀넷에서도 PC통신망을 구축하였으나, 21세기 초에 사라졌다.

 

키텔 - 당시 잘 없던 무료 PC통신. 강원도를 주축으로 한 통신망이었다. 인터넷전화 붐이 일 때 갑자기 VoIP 업체로 갑툭튀하더니 자취를 감춰버렸다.

 

KIS - 한국전력에서 운영하던 무료 PC통신.

 

KIDS - 한국통신의 인터넷 IPSKornet에서 운영하는 서비스. 텔넷으로만 접속이 가능하고, 아직도 살아 있다.

 

하지만 PC통신의 역사는 급변하는 IT환경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당시 이들 커뮤니티는 지금의 포털사이트에 비해 다소 폐쇄적이었지만 이용자들은 동호회 활동을 통해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등 움직임이 활발했다. 이 과정에서 나름대로의 규칙이 존재하기도 했다.

 

당시 PC통신 세대들은 전화선을 활용한 모뎀 접속 방식으로 인해 높은 통신비에도 불구하고, 동호회를 통해 함께 울고 웃었던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다. 새로운 정보 소통 방식을 제시하여 사이버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1990년대를 정점으로 2000년대 이후 초고속인터넷이 보편화하면서 이용자가 급격히 감소해 쇠퇴했죠. 현재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네이버·페이스북·카카오 등도 20년 후에는 어떤 모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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