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주식 리딩방’ 보일 때마다 타이슨을 떠올려야 하는 이유는? 본문
“이번 주에 급등 종목 알려드립니다. 회원들에게만 극비 투자 정보 공개합니다.”
이런 문자 한번 씩들 받아보셨을 것입니다. 저한테도 하루 걸러 하나씩은 오는 것 같은데요.
‘혹시 정말일까?’라는 호기심에 링크를 클릭하는 경불진 애청자분들은 없으시겠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런 유혹에서 완전히 벗어나시라고 오늘 방송 준비했습니다. 지금부터 잘 들어보시고 한방을 노리는 헛된 꿈을 꾸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전설적인 권투 선수 마이크 타이슨이 남긴 무시무시한 명언이 있잖아요. “누구에게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다. 나한테 처맞기 전까지는”
지난 16일 금융감독원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자본시장 불법행위 대응·협력 강화를 위한 MOU를 체결했다고 합니다. 연말까지 4개월간 불법 투자설명회 등을 특별 집중 단속할 계획이라는데요. 개인투자자 피해 방지를 위해 불법 리딩방, 상장사 회계부정, 금융사 임직원 사익추구 행위 등을 뿌리 뽑겠다는 방침이라고 합니다.
갑자기 왜 MOU까지 체결했을까요? 정부기관끼리 MOU를 맺는 것도 이례적인데요. 주가조작에 연류된 임창정 사건이 큰 공분을 일으킨 이후에도 불법 리딩방 등을 통한 불공정거래는 물론 투자 사기, 상장사 등의 회계부정, 금융회사 임직원 등의 사익추구 행위 등의 불법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슈퍼개미 김정환 사건도 터졌잖아요. 주식 리딩방과 유튜브 채널까지 운영하던 김 씨가 알고 보니까 자신이 미리 투자해 놓은 주식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자그마치 58억 원 수익을 올리고 자기는 먼저 빠져나왔다고 하는데요. 이런 사례가 넘쳐난다는 겁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죠? 임창정, 김정환 등 각종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경고가 쏟아지잖아요. 주식리딩방에 속지 말라고요. 그런데도 왜 이런 사건이 끊이질 않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3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 직접 투자비율이 높다.
카카오톡의 개방형 채팅 서비스 오픈채팅에서 2000명 이상에게 ‘하트’ 표식을 받은 주식 관련 채팅방이 몇 개나 될까요?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40여개에 달합니다. 이중 다수가 특정 일당이 특정 종목을 정해 매수를 유도하는 일명 주식 리딩방이죠.
그런데 이들이 활개 칠 수 있는 비결이 바로 다른 나라에 비해 이례적일 정도로 높은 개인의 직접 투자 비율에 있다는 건데요. 무려 82%에 달한다는 조사결과도 있습니다. 이는 펀드 등 전문가를 믿지 못하는데다 수수료도 아까워 내가 공부해서 직접 굴리는 것이 훨씬 낫다고 여기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들이 공부한답시고 일명 리디방에 눈을 돌린다고 합니다.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여기면서요. 그러다 털리는 거죠.
둘째, 리스크가 적고 기대수익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게 뭔소리냐고 하실텐데요. 바로 리딩방으로 사기칠 경우 이야기죠. 앞서 언급했던 카카오 오픈채팅이나 텔레그램을 비롯한 익명 메신저 서비스를 통해 비대면으로 투자자들을 모집합니다. 그런데 이용자가 당국 등에 신고·제보 등 조짐이 보이면 ‘방폭(메시지 방을 폐쇄)을 ’하고 계정명만 바꿔 새 방을 만듭니다. 이것 만으로도 대부분 처벌 위험을 쉽게 피해갈 수 있다는 군요.
도대체 금융당국은 뭐하냐고 하실 수 있는데요. 미리 적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항변합니다. 이유는 있습니다. 리딩방을 비롯한 유사투자자문업 영업·운영이 개인간 사적 대화를 기반으로 이뤄지죠. 사생활 보호 이슈 때문에 불법 행위 증거를 확보한 내부자의 제보가 없는 한 금융감독당국이 조사나 제재에 나서기 어렵다는 거죠.
물론 내부자 고발 포상제도도 운영합니다. 금감원은 작년 리딩방 불공정거래에 대해 구체적인 제보를 한 이들 두 명에게 총 1억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증거수집이 쉽지 않기 때문인 듯 합니다.
“모니터링을 통해 잡아낼 수 있지 않느냐”고 항의할 수도 있는데요. 카카오톡 오픈채팅에서 ‘주식’을 검색하면 수많은 방이 나옵니다. 그런데 단순히 불특정 다수가 모여 섹터·종목 관련 정보를 나누고 토론하는 ‘스터디방’인지, 종목 매수를 유도해 주가를 띄우려는 리딩방인지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들 방에 전부 가입해서 일정 기간 대화를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인력이 몇 명이나 될까요? 금감원의 경우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유사투자자문업자의 주가 조작 행위 등을 모니터링하는 인원 수는 겨우 5명. 쉽지 않다는 거죠. 따라서 인력보강이 시급한데 현정부는 공무원 숫자를 줄이려고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할 수 없이 경찰청과 MOU까지 맺은 것인데요. 하루가 멀다하고 흉악사건이 벌어지는 요즘 경찰 인력은 여유가 있을까요? 어차피 아랫돌 빼 윗돌 꾀는 꼴 아닐까요?
셋째, 구멍 뚫인 법.
다른 사람에게 주식 투자를 조언할 수 있는 유사투자자문업자의 자격은 어떻게 될까요? 아무래도 전문자격증을 갖추고 혹시나 있을 투자자들의 손해도 물어주려면 자본금도 넉넉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런데 그런 것 전혀 없습니다. 특정 자격이나 전문성, 최소 자본금 등을 증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누구든 당국에 신고만 하면 유사투자자문업자가 될 수 있습니다. 즉 주식에 대한 기초 개념이 전혀 없는 사람도 당국에 신고하면 바로 유사투자자문업자로 투자 권유를 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죠.
이 때문일까요? 금융당국에 등록된 유사투자자문업자는 지난 19일 현재 2182곳에 달합니다. 올 들어서만 무려 174곳이 새로 생겼습니다.
그런데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유사투자자문 관련 피해구제신청은 2809건에 이릅니다. 2017년(475건)에 비해 5년간 6배 급증했죠. 특히 피해자들은 대부분 투자 경험이 별로 없는 고령자나 주부 등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즉 투자에 대한 기본 정보도 없이 말이나 얼굴만 앞세워 희생양들을 끌어모으고 있다는 거죠. 특히 이들 중 상당수는 투자대회 성적이나 저서, 수익률 등을 내세워 ‘전문성’을 강조하며 유료 리딩방 가입을 유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유사투자자문업의 기준을 강화하는 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다행히도 최근 불법 주식 리딩방에 대해 제재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법안에는 유사 투자자문업자의 허위·과장 광고 금지 의무 신설, 손실 보전이나 이익을 보장한다는 약정 금지, 허위·과장 광고의 금지 의무 위반 시 형사 처벌 또는 과태료 3000만원 부과 내용 등이 담겼는데요.
따라서 앞으로는 100% 이익 보장 등 수익률을 명시하는 식의 과장·허위 광고도 불가능해집니다. 또 오픈 카톡방 같은 양방향 소통 채널을 이용해 유료 회원제로 영업하는 경우 투자자문업자로 보아 투자자문업 등록을 의무적으로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법망을 빠져나갈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카톡이 아닌 텔레그램 등을 통해 불법을 이어나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순진한 사람을 벗겨먹는 사기는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래로 끊이질 않았거든요. 대표적인 것인 1920년 대 폰지 사기죠. 다들 아시다시피 폰지는 외국에서 사들인 만국우편연합 국제반신권을 미국에서 내다팔 때의 차익을 이용해 사기를 쳤는데요. 투자자들에게 45일 내에 50%의 수익률을, 그리고 90일 내에 100%의 수익률을 낼 수 있다고 광고했죠. 당시 한 달 사이에도 현재 가치로 수백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신규 투자자들의 투자금을 기존 투자자들에게 지급해주는 다단계사기였죠. 1년도 지나지 않아 언론에 폰지의 사기가 드러나고 폰지는 구속됩니다. 피해금액만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수천억원에 달하죠,
미국만일까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사기는 끊이질 않았는데요. 우리나라 증시 사상 첫 불공정거래로 적발된 사건은 1988년 적발된 ‘광덕물산’입니다. 광덕물산 대표이사 회장이던 김성기 씨가 1986년부터 2년간 유·무상증자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사고팔아 2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취했죠. 당시 서울 서초동 30평대 아파트값에 맞먹는 금액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1990년 대부터 세력이 등장해 사기를 치면서 거의 매년 주식 사건이 끊이질 않았죠. 무려 35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5개월 만에 주가가 180배가량(2000원 → 36만원) 폭등했다가 급락했고 결국 상장폐지된 리타워텍, 다단계를 수법으로 2006~2008년 주가가 무려 50배 넘게 폭등했던 루보, 무자본 인수합병(M&A), 불성실 공시, 대주주 횡령, 작전 전문 브로커, 명동 사채업자, 투자 회사 개입 등 온갖 작전 세력이 동원된 ‘UC아이콜스 사건’ 등 많은 개미들을 털어먹었던 사건을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최근 라임사태, SG증권발 폭락 사태를 비롯해 김여사가 연루됐다고 알려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사건도 있고요. 이런 사건들이 이젠 리딩방을 통해 알게 모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죠.
최근에는 딱 보면 알만한 ‘증권사 애널리스트’, 심지어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을 사칭한 리딩방도 있다고 합니다. 아직도 SNS에서 볼 수 있던데요. ‘이재용 코인 무료지급 선언’이란 광고. ‘삼성전자가 직접 개발하고 투자한 가상자산이며 400% 이상의 고수익이 가능하다’는 내용인데요. 당연히 사기죠.
또 박현주 회장 사진을 SNS 프로필에 올린 뒤 2차전지 추천종목을 소개하는 ‘박현주 리딩방’까지 등장했다고 합니다. ‘박현주 리딩방’ 링크를 접속하면 카톡 일대일 채팅방으로 연결된다고 하는데요. 사기꾼들은 투자자가 일단 초반에 돈을 벌게 한 뒤에는 이후 일정 회원료를 내면 뜨는 주식 정보를 알려준다고 유인을 한다는 군요. 돈을 받은 이후에는 당연히 뜯기기 시작하고요.
게다가 투자자들을 ‘물량받이’로 이용하는 사례도 많다고 하는데요. 자신이 미리 사뒀던 5개 종목을 회원들에게 추천해 주가를 끌어올린 뒤, 본인만 먼저 팔고 나오는 수법을 쓴다는 거죠.
혹시 피해보상을 받을 수는 없을까요?
사기꾼들이 다행히 잡혀서 처벌을 받게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사기당한 돈을 돌려받으려면 민사소송을 걸어야 한다는데요. 현실적으로 이게 쉽지 않다는 거죠. 특히 시세조종 범죄 피해의 경우 범죄 행각과 손실 규모 간의 인과 관계를 입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광인데
그럼 이런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돈을 받는다고 좋은 정보를 알려주는 경우는 없다.
누군가 ‘투자 정보를 원하십니까’라는 메시지를 보내오면 100% 허위·거짓말입니다. 돈을 냈으니 돈 값을 하겠지라고 순진하게 생각하면 안된다는 거죠. 100%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는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유료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비법을 전수할까요? 가족도 아니고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그냥 혼자서 투자만 해도 금세 재벌이 될 텐데요.
혹시 무료는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무료로 할까요? 앞서 이야기처럼 총알받이를 끌어모으려는 수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둘째 기대 수준을 낮춰라.
대부분의 리디방에서는 수익 50% 보장, 단기간에 수익률 100%를 보장이라고 광고하는 데요. 그런데 세계적인 투자전문가인 워런 버핏이나 피터 린치도 수익률이 얼마일까요? 연 26~29%입니다. 이들도 이 정도 수익에 만족하는데 수익률 50%, 100%는 임창정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종교 영역이죠. 이런 광고를 하는 사람들은 사이버 교주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셋째. 공포감에 속지 말자.
리딩방 등 사기에 당하는 분들의 사례를 보면 공포감에 빠진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리딩방에서 알려주는 타점을 잡아서 매수한 결과 이렇게 벌었다’는 등의 사례가 올라오면 나만 돈을 못버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게 되거든요. 전문용어로 포모라고 하죠. Fear of Missing Out·모두 돈 버는 상황에서 나만 소외된다는 불안감이 생긴다는 거죠.
코로나가 터진 직후에 이런 포모 현상이 커졌습니다. 전 세계가 팬데믹 위기를 넘기고자 천문학적인 돈을 풀었고 덕분에 증시도 호황을 맞았고 덕분에 이른 나이에 경제적 자유를 이뤄 '파이어족' 삶을 꿈꾸는 사람도 많았거든요. 이들을 보고 나도 해봐야지라고 생각하며 주식투자에 뛰어든 사람들도 많고요.
하지만 올해 들어 장밋빛으로 가득했던 주식시장에 폭풍이 몰아쳤죠. '그럴듯한 계획들'은 속절없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이렇게 시장 전체가 거대한 먹구름에 삼켜졌을 땐 개인 투자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죠. 빨리 손을 빼는 것이 상책이죠.
하지만 남들은 벌었는데 나는 손해봤다는 공포감에 더 많은 투자에 집착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특히, 투자 손실을 한 방에 해결하기 위해 무리한 베팅을 하게 되는데요. 더 어두운 수렁으로 빠질 수 있죠,
위험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나는 아니겠지’ ‘나는 괜찮겠지’ ‘이번 한 번만’ ‘남들도 하는데’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면 당장 멈춰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타이슨의 명언을 되뇌는 것이 좋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다. 나한테 처맞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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