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서울에 사니 전기요금 더 내라?···‘지역별 차등 요금제’의 불편한 진실은? 본문
요즘 전기요금이 부쩍 오르면서 대박 난 곳이 있다고 합니다. 마트나 전자매장의 선풍기 코너.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실제 수치로도 나타났습니다. 이마트의 경우 지난 15일 전기료 인상 소식 직후 3일간은 매출이 200% 이상 급증하기도 했습니다.
이만큼 우리국민들이 전기요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이야기인데요. 그런데 전기요금 관련 주목받는 기사가 하나 더 있습니다. 앞으론 사는 지역에 따라 전기요금을 더 내거나 덜내게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요. 일명 전기요금 지역별 차등제. 이유는 있습니다.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와 송배전 설비는 대표적인 혐오시설이죠. 화력은 오염물질을, 원전은 방사능과 언제 떠질지 모른다는 위험을, 수력은 주변 지역이 물속에 잠기기 고통을 감내해야 하잖아요. 송배전 설비도 전자파 등의 문제가 있고요.
반면에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전기를 가져다 대부분 쓰기만 하죠. 이건 형평성이나 공정성에 위배된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틀린 주장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같은 전기요금 지역별 차등제에는 숨겨진 불편한 진실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불편한 진실을 벗겨보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뉴스를 보셨을 것입니다. 전기료 지역별 차등제 시행 근거를 담은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지난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중앙집중형 전력 체계를 지역으로 분산하는 법안으로, 발전소 유무와 송배전 비용 등에 따라 지역별로 전기요금을 다르게 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뼈대입니다. 국가균형발전과 분산에너지 활성화 차원이란 설명도 붙고요. 법은 1년 유예를 거쳐 내년부터 시행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 법이 시행되면 전국 어디서나 똑같은 현재와는 달리 발전소가 가까워서 송배전 비용이 덜 들면 그만큼 전기요금이 싸지게 됩니다. 따라서 발전소가 있는 지자체는, 특별법 통과를 반기고 있습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KTX가 거리에 따라 요금을 더 부과하듯 전기요금도 발전소 거리에 따라 차등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두겸 울산시장도 지난 2월 “모두가 위험하다고 기피하는 원자력발전소가 울산에 여러 개 있는데도 전기요금 혜택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반면 발전소가 주변에 거의 없는 수도권 등에서는 반발이 있을 수 밖에 없겠죠. 그럼 어느 지역의 반발이 가장 거셀까요? 아무래도 전력 자급률이 낮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도권일 것 같은데요.
2022년 기준 우리나라 17개 시도의 전력 자급률은 216.7% 대 2.9%로 차이가 어마무시 합니다. 그럼 216.7%는 어느 곳이고 2.9%는 어느 곳일까요?
놀랍게도 216.7%은 우리나라 제2의 도시 부산입니다. 그리고 2.9%는 대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214.5%인 충남이 2위, 212.8%인 인천이 3위, 201.4% 경북이 4위, 195.5%인 강원이 5위입니다. 반면 광주는 8.4%로 끝에서 2위, 서울이 8.9%로 3위, 충북이 9.4%로 4위, 대구가 15.4%로 5위입니다. 상위권과 하위권의 차이가 너무나 크죠.
당연히 이것은 누가 봐도 불공평하죠. 그래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은 불공평을 바로 잡는 법으로 여겨집니다. 발전소 인근 지역민에게 할인 혜택을 주고, 타지역민에 차등 요금을 적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거죠.
게다가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명분에도 부합합니다. 전기 생산지의 전기료가 싸면 비용 절감을 위한 기업 유치에도 유리할 수 있고 지역 중소기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거죠. 이로 인해 일자리가 늘어나면 청년들도 지역에 정착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전력자급률이 높은 부산, 인천, 경북, 강원 중 인천을 제외하고는 인구나 기업이 줄어서 걱정인 지역이죠. 이런 지역의 전기요금이 싸다면 기업과 인구가 증가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전기료 지역별 차등제를 반대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주로 전력자급률이 낮아 전기요금 인상이 걱정되는 지역일텐데요. 서울, 대전, 광주 등의 반말이 있을 수 밖에 없겠죠. 이 때문에 실제 시행은 쉽지 않을 것이란 주장도 있습니다.
안재균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전이 2000년 전후 지역별 차등 요금제에 대한 가격 측정 기준을 마련했지만 기준이 모호하고 책정 근거가 빈약해 지금까지 도입 움직임이 전무한 상황”이라며 “지역별 차등 요금제는 장기적 관점에서 납득 가능한 명확한 요금 책정 기준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뭔가 기시감이 오지 않나요? 2000년부터 추진하다 막혔던 것을 왜 이번에 다시 추진할까요?
전기료 지역별 차등제의 기초인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문재인 정부 시절입니다 문 정부는 탈원전, 탄소중립을 위해 2021년 6월 분산에너지 활성화 추진 계획을 세웠고, 의원 입법을 통해 특별법 제정에 나섰습니다. 대형 원전, 화력발전소 등에 의존하는 중앙집중식 전기 공급 방식을 재생에너지 공급 등을 활용한 지역분산형으로 바꾸는 게 목표였죠. 그럼 윤석열 정부가 문 정부의 정책을 이어받은 것일까요? 전 정부가 했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는데 이상하죠.
이유가 있습니다. 문 정부 시절 추진했던 정책은 말그대로 에너지원의 지역 분산입니다. 태양광, 풍력 등을 통해 각 지역에서 생산하는 전기량을 늘리겠다는 거죠. 따라서 이번에 추진되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과는 큰 차이가 한가지 있습니다. 바로 지역별 전기료 차등제.
즉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인 2022년 11월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이 대표발의하면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에 지역별 전기료 차등제까지 넣은 것입니다. 그런데 왜 없던 지역별 전기료 차등제를 넣었을까요? 앞서 언급했던 형평성,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물론 그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역별 차등요금제가 오히려 형평성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구준모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기획실장은 “지금까지 시민 모두가 단일한 요금제를 쓰면서 차등 없이 전기를 공공재로 공급한다는 의미가 있었다”면서 “지역별 차등요금제가 도입되면 그런 공공재 성격을 약하게 하거나 뒤흔들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또 “전기요금 할인은 오히려 발전소, 송배전 시설 인근 주민들의 희생을 고착화되거나 강화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전기요금을 깎아줬으니 불편을 참으라고 강요할 수 있다는 거죠.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번 지역별 차등 요금제는 윤석열 정부가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 민영화로 가는 수순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민영화에 대한 국민적인 저항이 크기 때문에 지역별 차등 요금제를 통해 민영화에 한발을 들이밀 수 었다는 거죠.
이런 걱정을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역별 차등 요금제를 이미 실시중인 나라들이 있는데요. 미국, 호주, 유럽 등 해외 주요 국가들은 전기요금을 지역별로 차등 부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국가의 전력 판매시장은 우리와는 많이 다르죠. 이미 시장이 민간에 개방돼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최근 놀라운 소식이 들여왔죠. 7월 1일부터 호주의 전기요금이 최대 25%나 오른다고 합니다. 언론들은 호주정부가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노후 석탄 발전소들을 폐쇄하고 있지만, 그만큼 신재생에너지 발전 설비 확보는 늦어지면서 전력난을 겪은 탓이라고 분석합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죠. 바로 민영화. 호주는 1991년부터 전력 공급을 민영화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대란이 벌어지자 지난해 전력 시장 거래를 중단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기도 했습니다. 이유는 민간 에너지 회사들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전력 생산을 일방적으로 줄였기 때문입니다. 호주 국민들이 전기를 쓰지 못해 고통을 받건 말건 상관할 바 아니라는 거죠.
호주만이 아니죠. 전세계에서 민영화율이 가장 높은 나라하면 빠지지 않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일본. 거의 모든 공공부분이 민영화 돼 있죠. 특히 동일본 대지진 때 멜트다운된 후쿠시마 원전도 도쿄전력이라는 민간업체 소유라는 사실도 다들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도쿄전력은 원전에 문제가 생기는데도 숨기기만 급급하다가 결국 큰 사고를 치고 말았죠. 만일 민영화가 되지 않았다면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란 주장도 있습니다. 물론 역사적 가정은 아무런 의가 없긴 하지만요.
그런데 문제는 일본도 전기요금 때문에 난리입니다. 일본 전력회사 7곳이 가정용 전기요금을 다음 달에 올리는 방안을 사실상 확정했다고 언론들이 전하고 있는데요. 이들 업체의 인상폭은 28~48%. 물론 일본 정부가 14~42%로 인상폭을 낮추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도긴개긴이죠.
그런데 이런 보도도 연이어 터져 나왔습니다. 일본 공정거래위원회가 일본 내 대형 전력회사들의 담합사실을 적발해 역대 최대 규모인 1000억엔(약 9800억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는 건데요. 이들 민간 전력회사들은 오피스 빌딩이나 공장에 들어가는 사업자용 전력판매를 둘러싸고 서로 신규 고객 확보를 제한하는 카르텔을 맺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이에 공정위는 “이는 경쟁을 막는 악질 카르텔”이라며 역대 최대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하는데요. 민영화의 민낯을 제대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런데도 일부 국내 언론들은 호주나 일본의 경우 전기요금을 20~40%나 올리는데 지난 16일 결정된 우리나라의 전기요금 인상폭 5%는 현정부가 국민 부담을 최소한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다들 아시겠죠? 만일 우리나라도 전력시장이 민영화됐다면 호주나 일본 못지않게 인상하지 않았을까요?
따라서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쉬운 현 정부가 지역별 차등 요금제를 내걸고 민영화를 시도할 것이란 의심이 든다는 거죠.
그럼 이런 질문도 하실 수 있습니다. 민영화도 안되고 지역별 차등 요금제도 반대한다면 한전의 누적적자 문제와 발전소·송배전소 주변의 불편은 어떻게 하냐는 거죠.
해결책은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복잡할 수 있습니다. 간단히 몇가지만 살펴보면
첫째, 한전은 누적적자 30조로 허덕이고 있는데 재벌기업들이 소유한 민간발전사는 역대급 수익을 올렸다는 지적을 예전에도 했었죠. 지난해 상반기 포스코, SK, GS 등이 소유한 7개 민간 발전기업이 벌어들인 영업이익은 무려 1조 9000억 원. 이 불공평한 구조부터 시급히 바꿔야 합니다.
둘째, 많은 언론들은 산업용 전기가 가정용 전기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주장하는데요. 일반적인 경우는 그렇죠. 하지만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는 심야시간에 훨씬 싼 요금을 기업들은 적용받잖아요. 이 제도가 오히려 전력 과소비를 부추기고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늘리는 역행을 합니다. 이런 구조도 빠르게 타파해야 겠죠.
셋째,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재생에너지 정책의 복귀입니다. 현정부가 전기료 지역별 차등제로 실체를 가렸지만 분산에너지 활성화의 핵심은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원을 늘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정부는 태양광 등을 적폐를 규정하고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와는 달리 소형원전을 늘리겠다고 하죠. 분산에너지 활성화의 취지에 맞춰 용산 대통령실 앞에 소형 원전을 지으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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