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쌍둥이’ 때문에 사라지는 것들은?···근로자햇살론·학자금이자면제법·전세사기특별법의 공통점은?··· 본문
지난 월요일자 ‘미국이 파산한다고?···우리 경제 영향은?’편에서 미국의 디폴트 사태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원인인 국가부채상한이 제 1차 세계대전 때 생겨났는데 이후 레이건 때부터 ‘쌍둥이 적자’가 불거지면서 문제가 반복돼 왔다는 설명을 드렸었죠. 무역과 재정이 모두 적자를 기록하는 쌍둥이 적자 때문에 미국이 90차례가 넘는 파산 위기에 빠졌지만 결국 막판 아니면 직후에 타결됐는데 6월 1일로 다가온 이번 위기도 극적 타결 가능성은 높다고 말씀드렸죠. 하지만 어제 바이든과 공화당 지도부의 만남에서 네 탓 공방만 치열하게 전개돼 타결은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요. 내년 대선이 있기 때문에 공화당에서는 물고 늘어지겠죠.
그런데 정작 문제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일 수 있다는 이야기도 했었는데요. 미국 못지 않은 쌍둥이 적자에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벌써 우려스러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일단 우리나라의 쌍둥이 적자가 얼마나 심한지 살펴볼텐데요.
우리나라가 얼마나 잘 벌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경상수지가 3월 2억7000만달러 소폭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상품수지는 –11억3000만 달러, 서비스수지는 –19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지만 본원소득수지, 그중에서도 배당소득 수지가 31억5000만달러 흑자를 올렸습니다. 서학개미들이 배당금을 많이 받은 덕분이죠.
하지만 지난 1월(-42억1000만달러)과 2월(-5억2000만달러) 적자를 합치면 경상수지는 1분기에만 무려 44억6000만달러 적자입니다. 분기 기준 경상수지 적자는 2012년 1분기(-12억9000만달러) 이후 11년 만이죠. 게다가 경제를 망쳐놨다고 그렇게 비난했던 문재인 정부 시절과 비교하면 처참하기까지 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첫 번째 맞은 1분기인 2018년 경상수지는 109억9400만달러 흑자입니다. 2019년 1분기 105억4900만 달러, 2020년 1분기 49억5700만 달러, 2021년 1분기 189억7100만 달러, 2022년 1분기 148만8100만 달러 흑자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44억 6000만 달러 적자. 적게는 94만 1700만 달러에서 많게는 234억3100만 달러나 까먹은 셈입니다. 기가막히죠.
문제는 개선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다는 점이죠. 4월을 물론 5월 들어서도 수출이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는데요. 5월들어 1~10일까지 집계한 무역수지가 무려 41억6900만달러 적자입니다. 연간 누계로 보면 올해 1월 1일부터 5월 10일까지 무역적자는 294억1200만달러. 지난해 연간 적자인 477억8500만 달러의 절반을 넘어섰죠.
게다가 앞서 3월 경상수지는 배당소득 덕분에 소폭 흑자를 기록했다고 했는데요. 4월에는 우리기업이 외국 투자자들에게 배당을 주게 됩니다. 그러면 4월 경상수지는 적자가 불보듯 뻔하다는 거죠.
무역이 이렇게 빨간 경고등 크게 들어왔는데 재정은 어떨까요?
기획재정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세수입이 전년 동기 대비 24조원 감소한 87조100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세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소득세 7조1000억원, 법인세는 6조8000억원, 부가가치세는 5조6000억원이나 줄었기 때문입니다. 기업들이 장사를 못하고 경기가 나쁜 탓도 있지만 윤석열 정부들이 종부세, 법인세를 대폭 깎아준 영향도 매우 큽니다.
이에 따라 벌써 세수부족 문제가 심각합니다. 연말까지 지난해와 같은 수준의 세금(284조8000억원)을 걷는다고 가정해도 연말 기준 국세 수입은 371조9000억원에 불과합니다. 올해 세입 예산(400조5000억원) 대비 28조6000억원 부족하죠.
그런데 현실은 더 참담합니다. 기재부에 따르면 올 들어 3월까지 관리재정수지는 이미 54조원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정부가 예상한 올 한해 적자 전망치(58조2000억원)에 육박하는 수준입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재정적자 규모가 100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우려도 나옵니다. 물론 코로나19 사태 이후 3년간 재정적자가 100조원 안팎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19 사태를 벗어났는데도 100조원대 적자를 다시 내는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는 거죠.
특히 대통령 공약과도 차이가 크죠.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시절 문재인 정부가 국가를 방만하게 운영했다고 비난하면서 재정준칙을 만들어 빚을 관리하겠다고 약속했는데요. 코로나에서 벗어난 올해 빚이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2022년말 기준 가계 빚은 1870조원, 기업 빚은 2590조원이나 되니 걱정이 클 수 밖에 없죠. 국가부채 1068조원까지 합치면 우리나라 전체 빚은 약 5500조원. 2150조원인 우리나라 GDP의 두배가 훌쩍 넘습니다.
이렇게 빚은 늘어나는데 무역·재정에서 구멍이 펑펑 뚫리니 황당한 일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소득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 신용대출, 근로자 햇살론. 1500만 원까지 빌려줘서 인기를 끌었죠. 정책서민금융상품 만족도 조사에서도 무려 80.2점을 기록할 정도 였죠.
그런데 지난 12일 갑작스런 공지가 떴다는 데요. ‘근로자 햇살론 보증 한도 변경’, 1500만 원이었던 대출한도가 800만 원까지 떨어졌다는 겁니다. 축소된 한도 규모는 이용자 등급마다 상이한데 최대 800만 원까지 줄어든 것으로 매뉴얼에서 확인됐습니다. 거의 절반으로 줄어드는 셈이죠. 당장 돈이 필요한 저소득 직장인들은 난감할 수 밖에 없겠죠.
근로자햇살론은 서민금융진흥원이 대출 금액의 90%를 보증해 줍니다. 이를 바탕으로 저소득직장인들에게 저축은행들과 상호금융권에서 최고 11.5% 금리로 대출을 내줍니다. 문제는 올해 공급 목표액은 2조 6000억 원인데, 경기 악화 속에서 올해 들어 수요가 빠르게 늘어났다는 점입니다. 이런 추세로 가면 취급을 못 하게 돼 적정 수준으로 균일하게 공급하기 위해 한도를 일시적으로 조정했다는 거죠,
경기가 어려워 돈을 빌리는 사람이 늘어나면 공급 목표액을 늘려야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이게 불가능할 수 있다는 거죠. 앞서 살펴본대로 재정·무역 쌍둥이 적자인데도 종부세 깎아주고 법인세 낮춰주느라 재정이 바닥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만이 아닙니다. 대학교를 다니거나 대학생 자녀를 둔 가정에는 학자금 고민이 클 수 밖에 없죠. 연간 1000만원에 육박하는 학자금을 가지고 있는 돈으로 낼 수 있는 가정도 드물 것입니다. 그래서 학자금 대출을 이용하곤 하는데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학자금 대출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학자금이자면제법을 발의했다고 합니다. 요지는 정부가 대학생에게 빌려준 학자금 이자를 소득수준에 관계 없이 취업할 때까지 면제해주고, 폐업·실직·육아휴직 등으로 소득이 없어지거나 불가피하게 상환을 유예해야 할 경우 면제해주는 건데요. 그러고 어제 국회 교육위원회(교육위)를 통과했는데요.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국정을 책임져야 할 여당인 국민의힘이 표결에 불참했다는 데요. 도대체 이유가 뭘까요?
정부·여당은 교육재정 부담을 키우는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주장합니다.
국민의 힘 이태규 의원은 “고졸 이하 청년은 이런 대출 혜택 자체가 없고, 서민 소액대출도 이자율이 3~4%인 것을 감안하면 학자금 대출 1.7%의 이자를 중산층 청년들까지 면제하자는 것은 포퓰리즘이란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는데요.
여기에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ICL(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의 근본취지와 맞지 않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고졸 이하 청년에게는 혜택이 없으니 대학생도 혜택을 줄 수 없다는 것은 “저기 굶는 애들이 있으니 니들도 굶어야지”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요? 게다가 대출 이자 1.7%를 면제해 주면 포퓰리즘이라는데 그렇게 받는 혜택이 한사람당 평균 한 달에 만 원이라고 합니다. 만원도 포퓰리즘인가요? 또 일각에서는 ‘소득수준 상관없이’를 문제 삼던데요. 이러면 재드래곤 같은 재벌 자녀도 혜택을 받는 것 아니냐는 거죠. 그런데 재벌 자제들이 학자금 대출을 받나요?
그런데 정부와 여당이 왜 대학생들의 표를 깎아먹을 짓을 할까요? 의심되는 것이 있죠. 앞서 살펴본대로 재정·무역 쌍둥이 적자인데도 종부세 깎아주고 법인세 낮춰주느라 재정이 바닥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돈이 없다는 이야기를 못하니 포퓰리즘이라고 소리치는 거죠.
어제 원희룡 장관이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전세제도 개선안도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원 장관은 전세 수명이 다했다며 제도를 대폭 손보겠다고 했는데요. 이런 개선안이 필요한 이유는 전세사기와 역전세, 깡통전세 때문이잖아요. 세입자들이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금을 돌려봤지 못해 벌써 4명의 소중한 목숨이 희생당했는데요. 전세사기 피해자 분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선구제 후회수입니다. 전세금을 나라에서 먼저 돌려달라는 거죠. 하지만 원장관과 정부는 법원칙에 위배된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가상화폐나 주식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청년층을 구제하는 방안을 추진했잖아요. 청년층 채무조정이란 이름으로. 이건 법원칙에 맞는 건가요?
솔직해져야죠.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도울 돈이 없는 것이잖아요. 재정·무역 쌍둥이 적자인데도 종부세 깎아주고 법인세 낮춰주느라 재정이 바닥났기 때문에.
앞으로 쌍둥이 적자는 더욱 커질 터인데 종부세 법인세를 다시 손 볼 생각은 없는 듯하고 앞으로 어떤 복지혜택이, 민생예산이 사라질지 정말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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