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피해자이자 가해자? CFD의 함정, 금융당국이 묵인한 이유는? 본문
“고객님, CFD 증거금 비율이 마이너스(-)927.4%입니다. 오늘 기준으로 약 43억원 입금하셔야 합니다. 미 입금시 내일 반대매매 주문 나갑니다.”
최근 SNS 상에서 난리난 내용입니다. 임창정까지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SG증권발 무더기 하한가 사태로 이같은 문자를 받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데요. 현재 알려진 인원만 1500여명.
그런데 여기에 ‘0’이 하나 더 붙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의사, 변호사, 중소기업대표 등 자산가뿐만 아니라 청소부 등 일반인들도 여기에 돈이 물렸다는 소문이 돌고 있고요 특히나 안타까운 것은 이들은 피해자이자 가해자일수 있다는 점입니다. 수억에서 수십억씩 스스로도 피해를 입었지만 주변 사람들, 가족에게 같은 피해를 줬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앞으로도 터질 것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에 자칫 전세사기 사건보다 더 확산될 수도 있다는 지적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하실 것입니다. “이건 엄한 곳에 투자한 사람들 이야기지 나랑은 상관없어···.”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일단 이번 사태로 인해 왜 이렇게 큰 손해가 났는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사태로 피해를 본 사람들 10여 명이 처음으로 검찰에 고소장을 냈다고 합니다. 이들 중 한명인 30대 직장인 A 씨는 2019년 말 투자를 권유하는 친척을 믿고 어머니와 함께 3억 원을 투자했습니다. 그런데 재미난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주가조작단이 휴대전화를 건내주며 A씨의 명의로 개통하라고 시켰다는 거죠. 그리곤 개통된 휴대전화와 공인인증서, 계좌를 받아갔다고 합니다. A씨 자신 것은 물론 어머니 것까지. 뭔가 냄새가 진하게 나죠. 하지만 임창정도 주장하듯이 “이 업계에서는 원래 이렇게 하는 가보다”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장기간에 걸쳐 수익이 크게 난 것을 보여주고 여기에 의사, 변호사 등 소위 난다긴다한다는 사람들도 다 이렇게 투자했다면서 A씨를 속인 것이죠. 하지만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과 다를 바 없죠. 얼마든지 주가조작단이 A씨와 어머니 행세를 할 수있도록 모든 것을 다줬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좀 궁금해지죠. 투자를 하는 휴대폰까지 넘겼는데 수익이 났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까요? 주가조작단은 투자를 권유한 친척을 통해 수익금이 찍힌 사진을 보내줬다고 합니다. 직접 보내주면 되지 왜 친척을 통했을까요? 혹시나 외부에 알려질까 두려워 점조직처럼 움직였다는 거죠. 무슨 독립운동도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그래도 황당하죠. 실제 계좌에 접속한 것도 아니고 캡쳐 사진으로 수익을 확인했다니···. 이건 마치 일제강점기 때 사진보고 신랑, 신부감을 골랐다가 서로가 황당해 했던 옛날 결혼 풍습까지 연상시킵니다.
아무튼 이렇게 투자한 일부 중에는 다른 방법으로 확인한 사람들도 있었다는 군요. 그 방법이 뭘까요? ‘마이데이터’. 내손안의 금융비서로 불리는 마이데이터 서비스는 다들 아실 것입니다. 2022년 1월 5일부터 마이데이터가 전면 시행되면서 본인인증만 하며 금융사에 있는 내 계좌정보를 한 곳에서 확인할 수 있잖아요. 따라서 주가조작단이 알려주지 않아도 마이데이터를 통해 투자계좌에 얼마 있는지 알 수 있었다는 거죠. 대부분 한동안 투자한 돈의 몇배씩 불어나는 재미를 맛봤을 것입니다. 임창정도 30억 넣었는 한달만에 58억으로 불어나 신났었다고 했잖아요. 물론 그게 마이너스 5억으로 쪼그라들었지만요. A씨와 어머니도 주가 폭락 사태가 벌어진 후 계좌를 직접 확인했을 때는 두 사람 앞으로 빚이 27억 원 넘게 늘어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도 하실 수 있습니다. “폭락사태가 벌어졌을 때 빠르게 왜 손절하지 못했느냐?”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었다면서요.
하지만 놀라운 것은 주가조작단에게 돈을 맡긴 사람 대부분이 계좌 비밀번호를 몰랐다고 합니다. 계좌를 튼 휴대전화는 물론 공인인증서, 계좌까지 다 맡겼잖아요. 팔고 싶어도 팔 수 없었다는 거죠. 그러는 사이에 빚이 27억원 까지 늘어났고요,
그런데 여기서 또 한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A씨와 어머니가 투자한 것은 3억원인데 어떻게 빚이 9배인 27억까지 늘어났을까요?
비밀은 CFD. 즉 차액결제거래에 있습니다. 주가 조작 의혹 일당은 A 씨 모자의 수익금뿐 아니라 일당이 챙기는 수수료까지 두 사람 명의 계좌로 CFD, 차액결제거래를 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CFD는 주식 등 기초자산을 보유하지 않고 가격 변동분에 대해서만 차액을 결제하는 투자상품입니다. 기초자산이 필요없으니 소위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다는 건데요.
예를 들어 1주에 10만 원짜리 주식의 증거금률이 40%라고 할 때 일반 주주들은 이 주식 1주를 10만 원에 매수하지만 CFD로는 증거금 4만 원으로 1주에 대한 권리를 부여받게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투자 원금의 2.5배, 종목에 따라 많게는 10배까지도 빚을 내서 투자가 가능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렇게 레버리지가 크면 딸 때는 한몫을 단단히 챙길 수 있겠죠. 하지만 손해를 보면 원금을 날리는 것은 물론 폐가망신 당할 수도 있습니다. 증거금이 부족해지면 반대매매를 당하기 때문이죠. 소위 존버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레버리지가 큰 투자상품하면 떠오르는 게 있죠. 바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으켰던 파생상품. CFD도 투자위험도가 높은 파생상품의 한 종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 교보증권이 처음으로 CFD를 도입한 후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이렇게 위험 상품을 개인도 거래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안 되겠죠. 따라서 아무나 거래할 수 없도록 규제도 있습니다. 개인전문투자자만 거래할 수 있게 한 것이죠. 처음 CFD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는 고액 자산가들에게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금융위가 2019년 투자활성화를 위해 금융투자상품 잔고 기준을 5억 원에서 5000만 원으로 낮추는 등 개인 전문투자자 등록 요건이 대폭 완화되면서 CFD 시장이 급성장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사태가 떠졌고 앞으로 더 터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우리나라에 CFD에 투자할 수 있는 개인전문투자자가 몇 명이나 될까요? 전문이란 말이 있으니 자격증이 당연히 있을 것 같죠. 그래서 얼마 되지 않을 듯 한데요.
https://www.podbbang.com/channels/9344/episodes/24691277?ucode=L-cYlmqQUB
그런데 개인전문투자자가 되기 위한 조건이 너무나 황당합니다.
증권사 홈페이지 등에 개인전문투자자를 알리는 코너가 있는데요. 이렇게 설명합니다.
개인전문투자자란 ‘금융투자상품에 관한 전문성 및 소유자산 규모 등에 비추어 투자에 따른 위험감수능력이 있는 투자자로서 보다 다양하고 폭넓게 자본시장 참여가 가능합니다’라고 돼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이 “전문투자자”로 지정받기 위해서는 일정 요건을 갖추어 금융투자회사에 심사를 의뢰하여야 합니다. 금융투자회사에서 심사 후 개인에게 “전문투자자” 자격을 부여합니다. “개인전문투자자” 자격을 부여 받은 분들은 금융투자상품 거래 시 “전문금융소비자” 혹은 “일반금융소비자”로 선택하여 거래가 가능합니다’라는 설명도 있고요.
그리고 ‘개인전문투자자로 자격을 부여받은 후 전문투자자의 대우를 받으시려면 별도로 전환(지정)신청을 해주셔야 하며, 전문투자자 자격의 효력은 지정된 날부터 2년간 유효하게 됩니다. 연장 혹은 재지정을 원하실 경우 최초 심사와 동일하게 재심사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고 돼 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자격요건이 매우 까다로워 보이죠.
그런데 심사항목이 아연질색케 하더군요. 필수요건과 선택요건이 있는데요. 필수요건은 ‘전문투자자는 금융투자상품 잔고 5000만원 이상을 보유하고, 계좌 개설 후 1년을 이상’입니다. 이건 반드시 지켜야 하고 선택요건은 3가지가 있습니다. ▲연소득 1억원 또는 부부합산 1.5억원 이상 ▲부부합산 거주 부동산 관련 금액을 제외한 순자산 5억원 이상 ▲회계사, 감정평가사, 변호사, 변리사, 세무사, 투자자산운용사, 금융투자분석사, (국내/국제)재무위험관리사 등 전문가 자격증 또는 합격증, 투자자산운용사, 금융투자분석사 1년 이상 등록이력입니다.
그런데 이 3가지 선택요건 중 하나만 충족해도 개인전문투자자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즉 회계사나 변호사 등은 금융투자상품 잔고 5000만원 이상을 보유한 후 1년만 지나면 그냥 개인전문투자자로 변신할 수 있다는 거죠. 금융지식이나 투자관련 공부는 하나도 하지 않아도 말이죠. 물론 자격증 딸 때 민법 등은 공부했겠지만 투자관련 공부는 아니었잖아요. 그런데도 전문이라는 명칭을 달아주며 위험한 투자를 해도 된다고 금융당국이 허락해준 것입니다.
이 때문일까요? 2020년만 해도 1만1626건에 불과했던 개인전문투자자 등록 건수가 2021년에 무려 2만4365건으로 2.1배나 늘었습니다. CFD 거래규모도 2020년 30조9000억원에서 2021년 70조1000억원으로 1년 만에 2.3배나 급증했고요. 이 때문에 국내 CFD 거래의 무려 97.8%가 개인 전문투자자들이 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A씨 모자도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에 개인전문투자자로 등록된 것으로 알려졌고요. 규제가 풀리니 꼼수가 난무한 것입니다. 대못이 사라지니 투기꾼들이 설쳐 된 것이고요.
허점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국내 증권사들은 헤지(위험 분산)를 위해 외국계 증권사와 계약해 CFD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투자자가 국내 증권사에 주문을 하면 외국계 증권사를 통해 한국거래소에 실제 주문을 실행했다는 거죠. 왜 이렇게 할까요?
CFD 주문을 외국계 증권사를 통해 넣으면 우리나라 사람이 한 것인데도 황당하게 외국인 거래로 잡힌다고 합니다. 즉 검은머리 외국인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이렇게 하면 자본시장법상 지분 공시 의무를 피할 수 있습니다. 장외거래라는 이유로 증권사의 신용공여한도(자기자본의 100%)에 포함되지 않고 종목별 일거래정보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CFD 거래는 감시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는 것이죠. 이를 금융당국은 방치했다가 사건이 크게 터진 것이고요.
실제로 금융감독원 역시 2022년 발간한 자본시장 위험 분석보고서에서 “주가 변동성 확대 시 CFD 거래의 레버리지 효과 등으로 투자자 손실 발생 소지가 있다”며 “전문투자자 전환에 따른 영향 등에 대한 이해도가 전반적으로 부족해 불완전판매로 인한 투자자 피해 발생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거죠. 이와 관련 개인투자자 대표 단체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는 지난 1일 “3년 전 2020년 코로나19 때 코스피가 1457까지 내려갔을 때도 CFD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으며, 2년 전 '빌 황' 사태 때도 CFD가 증시 뇌관이 될 수 있었다는 여론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빌 황' 사태는 2021년 미국에서 한국계 펀드매니저 빌 황이 CFD 등 파생상품을 통해 보유재산의 5배인 500억 달러(약 63조원) 상당을 주식 투자에 나섰다 파산한 사건을 뜻하는데요. '‘빌 황' 사태가 발생하자 시장에서는 CFD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가 쏟아졌죠. 하지만 당국은 최소 증거금률을 10%에서 40%로 올리는 대책을 내놓는데 그쳤습니다.
그런데 왜 금융당국은 이렇게 CFD를 방치했을까요? 아무래도 증권사들의 로비 때문 아닐까요? 증권사들은 CFD를 새로운 수익원을 생각했다는 거죠. 개인전문투자자들의 CFD 거래를 통해 수수료 수익을 거둘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투자에 적극적인 이들을 사모펀드와 같은 리테일 상품 투자로 연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증권사는 가뜩이나 주식 중개 부문의 수수료 수익 하락으로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할 필요가 있었는데 CFD가 먹잇감으로 들어왔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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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무상
여기까지 들으셔도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를 외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나는 그런 위험한 투자는 하지 않아, 내가 바보야? 휴대전화, 공인인증서, 계좌를 넘기는 짓은 하지 않아”라면서요.
그런데 이번 사태가 안타깝게도 우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일단 애널리스트 분석만 믿고 삼천리, 서울가스 등을 매수한 개인투자자들도 엄청난 손해를 봤을텐데요. 그런데 파장이 여기서 끝나지 않죠. 우리의 노후 자금인 국민연금과 관련있습니다. 국민연금은 이번 사태로 약 1500억원 가량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이 손실 규모는 앞으로 더 커질 수도 있고요. 게다가 각종 펀드나 개인연금 중에서도 이번 사태와 연관된 종목에 투자한 것이 많다고 합니다. 아직 피해규모가 파악조차 되지 않을 정도라고 하는군요.
이번 사태를 보면서 또다시 정치인들의 입에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보수정당에서는 입만 열면 규제를 없애겠다고 난리치죠. 대못을 뽑아야 한다면서요. 여기에 많은 국민들이 박수를 보내죠. 규제하면 무조건 부정적으로 인식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도 “민간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는 과감히 없애겠다”고 시도 때도 없이 강조합니다.
물론 과도한 규제는 없애야 합니다. 그런데 필요한 규제도 있습니다. 금융공학이라는 황당한 이유를 들며 설계한 사람조차 실체를 모르는 파생상품 같은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2008년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도 결국 월가가 마음대로 하도록 규제를 풀어줬기 때문에 발생했잖아요. 금융투기꾼들이 천문학적인 돈놀이를 하다가 파산했는데 이들은 이후에도 보너스 잔치하고 그 뒤치다꺼리를 국민 세금으로 했다는 사실을 다들 아실 것입니다. 왜 이런 일들이 주기적으로 반복될까요?
19세기 초 미국의 정치사상가인 알렉시 드 토크빌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하죠.
“버블과 금융위기는 민주주의 사회의 풍토병이다.”
이번 사태와 같은 투기는 정말 막을 수 없는 병일까요? 경불진을 꾸준히 듣는 애청자 여러분처럼 깨어있는 시민들이 늘어난다면 이를 막을 수 있는 백신, 정치·경제·사회 혁신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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