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나도 당했다”고 호소하는 임창정···정말 피해자일까? 본문
30억원이 1개월 반만에 58억원을 불어났다가 이제 마이너스 5억원이 됐습니다.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발언이죠. ‘소주한잔’으로 유명한 가수 임창정씨. 임 씨는 JTBC 뉴스룸에서 믿고 투자했다가 엄청난 손해를 봤다고 자신이 주가조작 피해자라고 호소했습니다. 임씨처럼 피해자를 호소하는 연예인은 더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뭔가 좀 찜찜하죠. 이번 손해가 최근 국내 증시를 뒤흔들고 있는 외국계 증권사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대량 매도 폭락 사태와 연관관계가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정말 임씨가 피해자가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거든요. 그래서 관련 내용을 하나하나 뜯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임창정씨는 25일 JTBC 뉴스룸에서 올해 초 자신의 연예 기획사 지분 일부를 50억원에 파는 대신 그 60%인 30억원을 주가 조작 일당에게 재투자했다고 전했습니다. 30억원 가운데 15억원은 자신의 증권사 계정, 나머지 15억원은 부인의 증권사 계정에 넣었다는 것이죠.
특히 임창정씨는 자신과 부인의 신분증을 일당에게 맡겨 해당 일당이 부부 명의로 대리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당연히 ‘그 친구들이 하는 팀들이 하는 룰(규칙)인가보다’ 저는 주식을 모르니 그렇게 다 해줬다”고 털어놨습니다. 참 대단하죠. 30억원이라는 거액을 그냥 맡긴다니···. 배포가 큰 것일까요?
아무튼 요약해보면 “나는 몰랐다, 알아서 투자해준다고 해서 맡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주가조작 세력이었다. 그러니 나도 피해자다” 이런 이야기죠.
그런데 임창정씨의 피해자 호소가 먹힐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쉽지 않다고 합니다. 오히려 스스로 범죄를 자인한 꼴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요?
이번 사태는 SG증권 창구를 통한 대량 매도 물량이 쏟아지면 국내 내노라하는 8개 종목이 급락하면서 불거졌죠. 삼천리, 서울가스, 대성홀딩스, 세방, 다올투자증권, 하림지주, 다우데이타, 선광 등이 24일부터 26일까지 사흘째 급락했는데요. 문제는 이들 종목 대부분이 급락할 이유가 딱이 없다는 점입니다. 시가총액이 높고 펀더멘탈도 나쁘지 않다는 거죠. 그래서 뭔가 냄새가 난다는 소문이 돌았는데요.
이에 금융당국이 조사에 나셨죠. 그래서 어제 이번 폭락사태 일당으로 의심받는 10명에게 출국금지 조치까지 내렸습니다. 또 오늘 아침에는 이번 주가조작 의심에 8000억원대의 현금거래가 오갔고 이 일당에 투자한 인원만 1000여명에 달한다는 주장도 또 다른 제보자를 통해 나왔다고 합니다.
물론 아직 수사단계이기 때문에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주가조작이 실제 의심된다는 거죠. 금융당국은 이들이 2020년부터 투자자 명의 휴대전화로 주식을 사고팔며 주가를 끌어올리는 ‘통정거래’를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통정매매란 매수자와 매도자가 사전에 가격과 매매시간을 정해놓고 주식을 거래하는 것을 말하죠. 한마디로 짜고치는 고스톱. 아마 요즘 유행하는 노래 때문에 통정 매매는 다 아실 것입니다.
“12시에 만나요, 주가조작! 둘이서 만나요, 통정매매.”
과거 브라보콘 광고를 패러디한 이 노래가 누구를 향한 것인지는 말 안해도 아실 겁니다. 그런데 이런 통정매매가 또 있었다는 의심이죠.
통정매매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에 저촉되는 시세조종 혐의에 해당됩니다. 자본시장법(제176조)은 ‘자기가 매도하는 것과 같은 시기에 그와 같은 가격 또는 약정 수치로 타인이 그 증권 또는 장내파생상품을 매수할 것을 사전에 그 자와 서로 짠 후 매수 혹은 매도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혐의가 인정되면 어떻게 될까요? 1년 이상 유기징역이나 위반 행위로 얻은 이익 또는 회피한 손실액의 3배 이상·5배 이하의 벌금 처분을 받습니다. 처벌이 생각보다 약하죠.
실제 처벌은 더 관대합니다. 예를들어 주가조작에 가담했던 증권사 직원 5명이 2018년에 재판에 섰는데 초범이고, 정도가 경미 했다는 이유로 벌금 500만원 선고받았습니다.
미국 엔론 주가조작 사태에선 회장은 45년형, CEO는 185년형 때렸습니다. 심지어 중국마저도 주가조작이 걸린 베이바다오그룹은 1조에 가까운 벌금을 부과했고요. 여기에 비하면 우리나라 처벌은 그야말로 솜방망이죠. 이러니 통정매매, 주가조작 세력들이 설치는 거죠. “걸려도 벌금 내고 말지”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주가주작을 직접 한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 투자한 사람, 즉 임청정씨같은 피해호소인은 어떨까 될까요?
일단 이들은 주가조작 세력에게 자금과 명의를 빌려줬습니다. 이같은 행위가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더라도 주가조작으로 이어지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 의견입니다. 즉 전혀 몰랐다고 주장을 해도 미필적 고의 등은 피할 수 없다는 거죠. 게다가 임창정 씨의 경우도 더 심각할 수 있죠. 빌려준 액수가 무려 30억원. 이렇게 큰 돈을 “알아서 투자해주세요”라고 맡긴다는 것은 상식을 벗어나는 행위죠. 혹시 소주한잔아니라 에서 했더라고 말입니다. 하다못해 대포통장을 만들어도 처벌 받는데 신분증까지 맡겼다니···. 고양이 한테 생선 맡기는 것도 아니고 이건 말이 안되죠.
실제로 ‘미필적 고의에 따른 처벌’ 관련 대법원 판례도 있다고 합니다.
2007년 11월29일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매매거래를 유인할 목적은 유가증권의 매매거래가 성황을 이루고 있는 듯이 잘못 알게 하거나 그 시세를 변동시키는 매매거래를 의미한다’고 판시돼 있습니다. 즉 주가조작세력이 가지고 논 종목이 뭐였는지 알았다면 미필적 고의가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임청정씨는 주가조작 세력들이 운영하는 방송 채널에도 출연했거든요. 또 이들이 인수한 해외 골프장에도 투자한 정황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이 사실로 드러나면 처벌 가능성이 높아지는 셈입니다.
다만 형량은 미미할 가능성이 크다는 군요. 앞서 주가조작 세력에게 내려진 처벌도 솜방망이 였는데요. 가담자에게 내려지는 처벌은 물방망이 수준도 안될 것이란 거죠. 실제로 임창정씨가 주가조작 세력에게 자금을 대주고 통상적인 금융기관처럼 이자만 받는다고 사전 계약을 했다면, ‘방조’가 성립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럼 거의 처벌을 받지 않게 되는 거죠.
https://www.podbbang.com/channels/9344/episodes/24684938?ucode=L-cYlmqQUB
물론 주가조작 세력과 이익금을 나누겠다고 계약을 했다면, ‘공범’이 성립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익금을 나눈다는 자체로 범죄 공동체가 돼버린 셈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더 나아가 시세조종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면 형량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조차 솜방망이 처벌일 가능성이 크고요.
어제 검찰,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은 한국거래소와 함께 종목별 매매 현황을 살펴보고, 이들 8개의 회사 관계자와 주가조작 세력들에 대한 집중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주가 본격적으로 상승한 기간 등의 매매 내역을 전반적으로 들여다보는 등 조사에 박차를 가한다는 건데요. 이 사건과 관련해 서울남부지검은 일당 10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임창정씨는 출국금지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벌써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죠.
오늘은 최근 SG증권발 폭락사태와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주가조작 세력에게 투자했다가 손해를 입었다는 임창정씨의 피해호소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몰랐다, 피해를 입었다고 피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특히 오마하의 현인 버핏은 “모르는 주식에는 절대 투자하지 말라”고 충고하는데 주식을 하겠다는 사람이 이를 모른다는 것은 가수가 악보 볼 줄 모른다는 것과 같지 않나요?
더 나아가 예를들어 제가 능력이 없지만 곡을 하나 만들었는데 알고 보니 임창정씨가 만든 노래와 비슷해 표절의혹이 있을 경우 “난 몰랐다, 곡 자체로 수익은커녕 오히려 손해봤다”고 호소하면 그냥 넘어갈 건가요?
특히 임창정씨가 투자아니 투기했다는 돈은 30억원이라는 일반인들은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거액이잖아요. 이를 신분증까지 주고 맡기면서 “알아서 굴려주시오”라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잖아요.
따라서 주식투자의 기본, 결정도 스스로 책임도 스스로를 명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남았죠. 일반 투자자들은 원칙을 잘 지키지만 미꾸라지 같은 투기꾼, 즉 통정매매, 주가조작에 대한 처벌이 미흡하다 못해 거의 이뤄지지 않는 점이죠. 투기범들이 먹잇감을 노리면서 설쳐도 그냥 나두고 있다가 피해가 알려진 다음에 조사하고 처벌도 솜방망이. 이번에도 이런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면 금융당국, 검찰 당국도 투기의 공모자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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