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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

경불진 이피디 2019. 8. 16.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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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기술격차가 50년이다.”

 

일본 아베의 무역도발에 대해 정부가 일본 기술을 빠른 시간 내에 따라잡고 자립하겠다고 하자 지난 4일 자한당이 내놓은 황당한 논평입니다.

일본은 노벨상만 24개나 받았다우리 정부가 소재와 부품산업을 키우겠다지만 어떻게 짧은 시간 안에 기술 개발을 한다는 것인가. 혹시 정부에는 말만 하면 소원을 들어주는 마술사 지니라도 갖고 있는 것인가라고 정부 대책을 비꼰 것이죠. 한마디로 우리가 일본을 따라잡으려면 50년은 걸릴 것인데 자신들이 살아생전에는 안될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자한당이 이런 비판이 사실일까요? 우리 정부는 과학기술기본법에 따라 1999년에 설립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을 통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11개 분야, 120개 과학기술별로 10명씩 총 1200명의 전문가를 학계와 또 산업계에서 선정해 두 단계에 걸쳐서 심도 깊은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 여기에 기술 관련 논문이나 특허 같은 숫자로 매길 수 있는 이런 객관적인 자료까지 함께 분석을 합니다. 따라서 이 조사는 과학기술 격차를 살펴볼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것으로 꼽힙니다.

 

이 평가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의 과학기술 격차가 자한당의 주장처럼 50년이나 벌어져 있을까요? 종합성적표에서 세계 최고 기술 보유국인 미국과 우리나라 기술격차는 3.8년입니다. 미국과 일본과의 기술격차는 1.9년입니다. 즉 우리나라와 일본의 기술격차는 자한당의 주장처럼 50년이 아니라 1.9년에 불과합니다.

 

혹시 분야별로 볼 때는 50년 차이 나는 것이 혹시 있을까요? 120개 분야를 전부 살펴본 결과 가장 격차가 큰 것은 우주항공 분야입니다. 우주발사체의 개발기술은 한국과 일본 격차가 10년 그리고 우주 탐사 및 활용기술은 6.5년 차이입니다. 50년이나 격차가 나는 것은 눈을 씻고 봐도 없습니다. 평가 방식이 조금 다르지만 99년부터 2016년까지 같은 조사 결과를 봐도 이렇게 크게 차이가 나는 경우도 없고요.

 

그럼 자한당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50년이란 주장을 했을까요? 객관적인 최근의 연구나 언론 보도는 아예 없고 비슷한 것이 1969년에 우리 공업화 단계가 일본보다 50년 낙후됐다 이런 분석이 있습니다. 1987년에 한일 기술 격차가 22년인데 이게 계속 벌어지다가 2050년에 격차가 49년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긴 합니다. 그런데 이 전망과 달리 우리나라 과학기술 수준은 빠르게 성장해 격차는 현재 1.9년으로 줄었고 2050년이면 오히려 우리가 앞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마디로 자한당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낡은 자료를 가지고 현재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강산이 적어도 5번은 변했는데도 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과거에 사로잡혀 아직도 우리가 일본에 엄청나게 뒤져있다고 주장하는 것이죠. 지난번 우리나라와 일본의 국력 차이 얼마나 될까?’에서 전경련이나 윤증현이 했던 오류를 그대로 범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걱정도 듭니다. 토착왜구와 자한당으로 이렇게 욕하고 있는 우리 자신도 세월의 흐름을 무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는 않을까?

 

갑자기 이런 걱정이 드는 것은 최근 읽었던 책 때문입니다. 편견이 거의 없다고 자부했던 제 스스로도 아직 많은 편견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책이거든요. 어떤 책인가 궁금하시죠?

 

책 제목을 알려드리기 전에 문제를 내보겠습니다. 책에도 나온 문제인데요. 책에는 13문제가 나오는데 다 하긴 힘들고 5문제만 드리겠습니다,

 

1. 오늘날 세계 모든 저소득 국가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여성은 얼마나 될까?
A: 20% B: 40% C: 60%  
2. 세계인구의 다수는 어디에 살까?
A: 저소득국가 B: 중간소득국가 C: 고소득국가  
3.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A: 거의 2배로 늘었다. B: 거의 같다. C: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4. 오늘날 세계 인구 중 0~15세 아동은 20억이다. 유엔이 예상하는 2100년의 이 수치는 몇 명일까?
A: 40B: 30C:20
5. 세계 인구 중 어떤 식으로든 전기를 공급받는 비율은 몇 퍼센트일까?
A: 20% B: 50% C: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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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C, B, C, C, C

 

여러분은 몇 개나 맞추셨나요? 아마 다 맞추신 분은 없을 듯합니다. 대부분 1개 또는 두 개, 아마도 모두 틀리신 분들도 많으실테고요. 저는 솔직히 1개를 맞췄습니다. 책에 있는 13개 문제에서도 제가 맞춘 것은 총 3개더라고요. 13개중 3개면 23, 처참한 점수죠. 그래도 나름 경제학과 출신에 신문기자생활만 15년 가까이, 그리고 팟캐스트도 5년째 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기 까지 합니다.

 

그런데 책의 저자는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합니다. 2017년에 14개국 12000명에게 물어본 결과, 평균 정답률은 고작 2개였다는 군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찍는 것보다 못한 결과라는 의미죠. 특히 고학력 전문직종이나 정치권 고위 의사결정자들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음에 위안이 되긴 하지만 좀 이상하죠. 저는 물론이거니와 애청자 여러분 대부분, 그리고 정치권의 고위 의사결정자들의 점수도 침팬지가 그냥 찍는 것보다 낮은 이유가 뭘까요?

 

그 이유를 알려드리기 전에 책 제목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영사에서 펴낸 팩트풀니스란 책인데요. 막연한 두려움과 편견을 이기는 팩트, 그 중요성을 일깨운 세계적 역작이라는 소개가 있군요.

 

저자가 궁금하시죠? 앞서 문제를 보니 경제학자나 사회학자, 아니면 통계학자일 것 같죠. 그런데 놀랍게도 저자는 스웨덴 국적의 의사출신인 한스 로슬링입니다. 스웨덴 웁살라에서 태어났지만 인도 벵갈루루 성요한의과대학교에서 공중 보건을 공부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죠. 이후 모잠비크, 콩고 등 내전 등으로 의사가 부족한 나라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했던 활동자죠. 이런 활동 중에 우리 스스로가 잘못된 오해와 편견에 얼마나 많이 빠져있는지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책에는 이와 관련된 다양한 사례가 나옵니다. 아무튼 이 때문에 막연한 두려움, 확증편향에 빠져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경우도 많고요. 이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명확한 데이터와 통계를 통해 세상을 정확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깨달았다는 것이죠.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으로 심각한 무지와 싸운자는 취지를 가진 갭마인더재단을 세우기도 했고요. 또 세계적인 강연 프로그램인 테드에서도 멋진 강연으로 3500만 조회라는 놀라운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팩트풀니스를 아들, 며느리와 함께 썼고요. 안타깝게도 한스 로슬링은 지난 2017년 돌아가셨더군요. 그래서 지난해 며느리가 한국에 방문해 한국 독자들은 만나기도 했습니다.

 

저자에 대해서는 알아봤으니 앞서 던졌던 질문의 답이 궁금하시죠. 우리가 침팬지가 찍는 것보다 낮은 점수가 나온 이유 말이죠.

 

로슬링 박사는 그 원인을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10개의 편견과 오해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잘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로 나뉘어 있다는 간극본능,
타고난 특성이 사람, 국가, 종교, 문화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운명본능,
모든 것을 단순화시키는 단일관점 본능, 세계는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부정 본능,
어떤 증가나 감소 추세가 직선 그래프일 것이라는 직선 본능,
끊임없이 범주화하고 일반화하는 본능,
두려움을 자극함으로 인한 공포본능,
비율을 왜곡하여 사실을 실제보다 부풀리는 크기본능,
안 좋은 일에는 나쁜 의도가 숨어있을 것이라는 비난 본능,
지금이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다급함의 본능 등이 사실을 왜곡시키고,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게 하는 10가지 이유라고 설명하는 것이죠.

 

그럼 10가지 이유를 하나하나 살펴봐야겠죠. 그러면 김영사로부터 혼이 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따라서 한 가지만 살펴보고 나머지는 책에서 확인해 주세요.

 

여러분은 아프리카, 동남아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는 가요? 경제적으로는 개발도상국이란 생각을 많이 하실 텐데요. 과연 이런 생각이 맞을까요?

 

앞서 세계인구의 다수는 어디에 살까?’란 문제 기억나시죠? 정답은 ‘B: 중간소득국가였잖아요. 실제로 데이터를 보면 중간국가에 사는 인구가 무려 75% 달합니다. 숫자로는 50억 명에 달하죠. 그런데 이런 중간국가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선진국, 개발도상국이라는 이분법적인 분류가 합당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이렇게 강조합니다. 중간층에 사는 50억 인구가 잠재적 소비자로서 삶의 질을 높이며, 샴푸·오토바이·생리대·스마트폰 등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그저 가난한사람으로 치부한다면 큰 시장을 쉽게 놓쳐버리는 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그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네 단계 명명법을 제안합니다. 소득수준에 따라 분류하는 것인데요. 구체적으로는 하루 얼마나 버는지에 따라 나누는 것입니다.

 

1단계는 하루 1달러에서 4달러 이하입니다. 여기에 포함된 사람들은 1시간 거리에 있는 더러운 진흙 구덩이에서 물을 길어 오기 위해 하나뿐인 플라스틱 양동이를 들고 맨발로 몇 시간씩 왔다 갔다 해야 하죠. 거무스름한 죽으로 끼니를 때우고요. 아파도 병원에 가기 힘든 상태입니다. 오늘날에도 약 10억 인구가 이런 식으로 살고 있죠.

 

2단계는 하루 4달러 이상 16달러 미만입니다. 먹을거리를 직접 기르지 않고, 돈으로 살 수 있죠. 아이들에게는 샌들과 자전거를 사주고, 플라스틱 양동이도 더 구입합니다. 전기가 들어와 전구를 켜놓고 숙제를 할 수 있죠. 하지만 전기 공급이 너무 불안정해서 냉장고를 쓰기는 어렵습니다. 삶은 이제 훨씬 나아졌지만, 아직도 매우 불확실하죠. 어디가 아프기라도 하면 가진 것을 거의 다 팔아 약을 구입해야 합니다. 자칫 다시 1단계로 추락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약 30억 인구가 이런 식으로 살고 있습니다.

 

3단계는 하루 16달러 이상 32달러 미만입니다. 저축도 제법 하고, 수도도 설치해 물을 길러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전기도 안정적으로 공급되어 아이들은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냉장고를 구입해 음식을 보관하면서 날마다 다른 요리를 할 수 있습니다. 돈을 모아 오토바이를 산 덕분에 급여가 더 나은 도심 공장에 나가 일할 수도 있죠. 취직을 하면, 이를 축하하기 위해 온 가족이 생전 처음 해변에 나가 오후 한때를 즐기는 것도 가능합니다. 오늘날 약 20억 인구가 이런 식으로 살고 있습니다.

 

4단계. 이제 하루에 32달러 넘게 법니다. 부유한 소비자입니다. 교육은 12년 넘게 받고, 비행기를 타고 휴가를 떠난 적도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은 외식을 하고, 차를 살 수도 있고요. 물론 집에서 온수와 냉수를 모두 쓸 수 있죠. 아마 경불진 애청자 분들도 대부분 이 단계의 삶을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4단계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약 10억 인구가 여기에 해당 됩니다.

 

4단계 명명법 어떻습니까? 기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두단계로 나누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 않나요? 가장 큰 차이가 뭘까요? 두 단계로 나눌 때는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깔려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후 실제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간 사례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시피 하잖아요.

 

하지만 4단계 명명법으로 보면 다릅니다. 1단계에서 2단계를 거쳐 3단계, 4단계 차근차근 올라가는 것이 가능해보입니다. 마치 게임에서 레벨을 올리는 것처럼 말이죠. 실제로 1단계에서 2단계, 3단계에 올라간 나라는 대만, 칠레 등 몇 나라가 벌써 생각나지 않나요? 그런데 이런 생각마저 아직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저자는 인류 역사 자체가 1단계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10만 년이 넘도록 누구도 1단계를 넘어서지 못했고, 아이들은 부모가 될 때까지 살아남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는 것이죠. 200년 전만 해도 세계 인구의 85%가 여전히 극도로 빈곤한 1단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현재 대표적인 선진국이 스웨덴조차 1920년대만 해도 1단계였다가 1950년대에 와서 2단계, 60년대 거치면서 3단계 식으로 레벨을 높였다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미국이나 영국 등도 대를 거쳐 1단계에서 4단계로 레벨을 올려왔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국가만이 아니라 한 국가 내에 국민들 간에도 1단계에서 4단계가 다 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후진적인 국가에도 4단계 국민이 있고 선진국에서도 1단계 국민이 있으니까요. 따라서 어느 국가는 선진국, 어느 국가는 개발도상국, 어느 국가는 2단계 등으로 나누는 것보다는 정확한 데이터와 통계를 바탕으로 접근해야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로슬링 박사는 지적합니다. 특히 과거에 사로잡혀 현재를 왜곡해서 바라봐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앞서 우리나라의 기술수준이 일본에 50년이나 뒤졌다는 50년 전 자료를 가지고 설치는 자한당처럼 말이죠.

 

로슬링 박사는 세계를 낙관도 비관도 아닌 사실에 입각해 볼 것을 권합니다. 세상에 대한 무지와 잘못된 인식을 바꾸고 비합리적인 막연한 두려움을 잠재우고, 사람들의 힘을 건설적 활동으로 돌리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이죠. 이런 싸움을 위해 만든 무기는 애청자 여러분들이 김영사에 팩트풀니스를 직접 읽으시면서 하나하나 득템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사족을 좀 붙이자면 로슬링 박사는 오늘날 세계가 과거에 비해 급격히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수치로 보여줍니다. 1단계에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70억 인구중 10억명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물론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정도면 자본주의 발전이 인류에게 큰 선물을 줬다고 생각할 수도 있죠.

 

하지만 21세기에 아직도 10억명이 빈곤에 허덕인다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요? 특히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에서 유엔 인권 위인인 장 지글러가 지적한 것처럼 아직도 우리 지구에서는 5초 만에 1명씩 어린 생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숫자 뒤에 놓인 이 참혹한 현실도 우리가 결코 외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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