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기·송혜교 전에 이태백 있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가장 놀라는 것 중의 하나가 ‘음주가무’ 문화라고 합니다. 함께 기뻐할 일이 있을 때는 물론이고 슬픈 일이 있을 때도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모습에 문화 충격을 느끼는 외국인이 많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불건전한 유흥문화라고 부끄러워하기도 하죠.

 

하지만 이같은 음주가무를 부끄러워해야 할까요. 외국인들은 오히려 한국인의 음주가무를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문화에서는 맛볼 수 없는 신바람을 즐길 수 있으니까요. 한국인들의 음주가무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것은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입니다. 거리응원은 전 세계에 수출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외국인들은 거리응원을 직접 체험하고 싶어 월드컵 등 행사가 있을 때 자신의 나라를 재껴두고 한국을 방문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나라에서는 우리나라만큼 신명나지는 않기 때문이죠. 브라질 삼바축제나 스페인 토마토 축제도 우리나라 거리응원만큼 신바람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도대체 우리나라의 음주가무가 이처럼 신명나는 이유가 뭘까요. 전문가들은 한국인들이 음주가무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한국인 특유의 정을 나누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냥 노는 것이야 다른 나라 페스티벌도 마찬가지지만 정을 주고받는 것은 한국에서만 가능하다는 이야기죠. 이렇게 정을 통해 한바탕 신명나게 놀면 일체감을 느끼면서 새로운 긍정적 힘이 생겨납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이같은 음주가무가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역사책에도 신명나는 음주가무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요. 일부 학자들은 ‘한류’를 창출한 근원도 바로 음주가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류와 음주가무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정말 재미난 점이 많습니다. 국사책에는 중국 역사책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동이의 사람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낸 뒤에 ‘며칠을 계속해서 술을 마시고 밥 먹고 노래 부르고 춤춘다’고 기술했다고 쓰여져 있습니다. 제천의식으로서 음주가무를 즐기는 문화가 중국에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신기해서 기록했던 것이죠.

 

우리에게도 익숙한 시선인 이태백도 고구려인들의 춤을 보고 감동해 직접 시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태백은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의 사람입니다. 따라서 고구려춤이 이후에도 중국에서 꾸준히 인기있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죠.

 

고구려(高句麗) 이백(李白)
금꽃으로 장식한 절풍모를 쓰고 백마는 조금 늦게 도네(金花折風帽，白馬小遲回)
넓은 소매 너울너울 춤추니 마치 해동에서 온 새와 같구나(翩翩舞廣袖，似鳥海東來)  

이 덕분에 고구려인들의 춤인 고구려무는 당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마치 현재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우리의 댄스그룹, 비보이처럼 말이죠. 선조들의 ‘음주가무’에 능한 유전자는 현재에도 이어져 우리의 비보이, 댄스그룹 등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합니다. 특히 고구려무가 인기를 얻으니 이들이 입는 패션도 덩달아 주목받았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절풍모이죠. 삼각형으로 된 마름모꼴 모자인 절풍모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나옵니다. 모자 양쪽에 새 깃털을 꽂은 벽화의 그림이 바로 절풍모를 그린 것입니다. 이태백의 시에도 이 절풍모에 대한 묘사가 실려 있습니다.

 

진짜 한류의 기원이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까요. 그보다 앞서 한류의 정의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한류는 한국의 문화가 해외로 전파되어 인기리에 소비되고 있는 현상을 말합니다. 좁게는 한국에서 제작된 영화, 방송, 음악, 패션 등을 일컬으며 넓게는 의·식·주 등 한국 문화 전체를 말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과거 한국의 수출품을 통해 퍼져나갔던 문화도 한류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절풍모와 고구려춤처럼 말이죠.

 

우리 역사는 단군조선을 시작으로 부여와 삼국시대,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며 무려 5000년을 자랑합니다. 그런데 각종 기록에 우리민족의 타고난 장사꾼 기질을 엿볼 수 있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기원전 3세기 전에 편찬된 중국의 '관자(管子)'에 기원전 7세기 때 고조선이 제나라와 무역을 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관자에는 ‘발조선(發朝鮮)에서 생산되는 범 가죽은 금같이 귀하니 천금을 지불해야, 8천리나 떨어진 곳에 있는 발조선이 거래할 것이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고조선이 중국과 모피 무역을 활발히 전개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사례죠. 이후 역사서에도 신라, 백제, 고구려 삼한시대부터 외국과의 무역이 더욱 번창했다고 나옵니다. 특히 백제와 고려의 무역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죠. 놀라운 것은 신라도 엄청난 무역을 했다는 점입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신라 적석목곽분에서 나오는 수많은 금팔찌, 금귀걸이, 寶劍(보검), 유리공예품 등이 중앙아시아 초원 루트를 타고 로마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황남대총에서 나온 유리 그릇도 로마에서 수입한 것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신라의 수출품도 로마 등 유럽에 전해졌죠. 800년대 중기 쯤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아랍학자 이븐 쿠르다지바의 저서 ‘제도로 및 제왕국지’에는 신라의 지리적 위치가 상세히 나옵니다. 무슬림들은 신라에서 비단, 검, 사향, 침향, 말안장, 초피, 도기, 범포, 육계 등을 구입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특히 무슬림이 한 번에 100여 명씩이나 신라를 찾아 교역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해양실크로드의 끝은 신라였고 신라가 엄청난 무역국이었음을 증명하고 있죠.

로마에서 한류가 일어났을 것이라 충분히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피가 남아있었던 덕분 아닐까요.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난 우리나라는 1970년대부터 이후 피나는 노력으로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특히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대중문화가 서서히 외국에 알려지기 시작했죠. 1980년대 음악 산업의 발전과 함께 1990년대 영화, 게임, 인터넷 등 대중문화 산업 전체가 급성장하기도 했습니다. 아시아에서 일본 콘텐츠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새로운 한국의 콘텐츠가 홍콩과 대만 그리고 중국의 관심을 끌었던 것이죠.

게다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IT 산업의 거품이 빠지자 새로운 대안이 필요했는데 이를 대중문화 산업이 담당했습니다.

 

1992년 한·중 수교 후 1993년 TV드라마 ‘질투’가 처음으로 수출됐습니다. 1997년부터 ‘사랑이 뭐길래’ 등이 인기를 얻으며 1998년 클론, H.O.T 등의 음반이 발매되기 시작했죠. 이렇게 되자 한류라는 용어도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에서도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열풍이 일기 시작하자 2000년 2월 중국 언론에서 이러한 현상을 표현하기 위해 ‘한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고구려춤의 열풍이 1500여년 만에 되살아 난 셈입니다.

 

이후 한국 대중문화의 열풍은 중국뿐 아니라 타이완·홍콩·베트남·타이·인도네시아·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됐죠. 특히 2000년 이후에는 드라마·가요·영화 등 대중문화만이 아니라 김치·고추장·라면·가전제품 등 한국 관련 제품의 이상적인 선호현상까지 나타났는데, 포괄적인 의미에서는 이러한 모든 현상을 가리켜 한류라고 합니다.

 

심지어 대중문화의 수용 차원을 넘어 한국의 가수·영화배우·탤런트, 나아가 한국인과 한국 자체에 애정을 느껴 한국어를 익히거나 한국 제품을 사려는 젊은이들까지 생겨났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합한족(哈韓族)’이라는 신조어로 부릅니다. 한류열풍을 타고 형성된 한국 팬 집단을 이르는 말이죠.

 

놀라운 통계도 있습니다.

전 세계 나라 수는 세계은행 통계에는 252개국입니다. 하지만 유엔가입국은 193개국, FIFA가입국은 208개국, 코카콜라 판매나라는 199개국에 불과하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235개국에 상품을 수출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무역상대국이 가장 많다고 합니다.

 

또 전세계 흩어져 있는 수는 역시 중국의 화계가 130여개국 4500만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2위는 유대인들로 100여 개국에 730여만 명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재외동포는 175개국에 726만명에 달합니다. 인구비례로 보면 가장 많은 국민들이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셈이죠.

 이 모두가 우리 피 속에 흐르는 음주가무의 끼 덕분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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