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이재용 구속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본문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인 중국 춘추시대 때 제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든 환공이 포숙아의 진언으로 재상에 임명한 관중을 불러 고민거리를 털어놓습니다.
“나라의 여러 대부들이 엄청난 재물을 쌓아놓은 채 이를 숨기고는 나누지 않으니 이를 어찌해야 하겠는가. 나라의 온갖 재물들이 몇몇 대부들의 손에 들어간 후 나오지 않으니 나라 살림이 말이 아니네. 심지어는 쌓아놓은 양식이 썩어가는 데도 혹시나 들킬까 두려워 방치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리고 말이지.”
이 말은 들은 관중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청컨대, 성양의 대부를 불러들여 그 죄를 물으십시오.”
성양은 훗날 항우와 유방이 건곡일척의 대결을 펼쳤던 요충지로 환공시절 가장 막강한 권력과 부를 지닌 대부가 성양출신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삼성가의 이재용 부회장쯤 되는 거죠.
그래서 환공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성양대부를 잘못 건들었다가는 나라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을 텐데 어떻게 질책한단 말이요”
그러자 관중이 다시 물었죠.
“그럼 대부들이 나라의 부를 계속 빼돌리도록 가만 나두실 겁니까.”
“그건 아니지. 그럼 대부들의 반발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이렇게 말하십시오. 성양대부! 내가 사람을 시켜 알아보니 그대는 총애하는 첩에게 비단 옷을 입히고, 집에서 기르는 거위에게는 사람도 먹기 힘든 귀한 음식을 주며, 종과 북을 울리고 피리와 상황을 불어 음악을 즐긴다고 하오. 그런데 주변에는 입을 옷도, 먹을 음식도 없이 고통 받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고 들었소. 쌓아놓은 재물이 썩어가는 데도 가난한 국민들을 돕지 않으니 그러고도 과인에게 충정을 바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다시는 과인을 찾아오지 마시오. 그런 뒤 성양대부의 직위를 빼앗아 집에 가두고 문 밖에 나오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환공은 긴가민가하면서도 관중의 말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러자 재미난 일이 벌어졌습니다. 성양대부는 물론 이거나와 다른 대부들도 일제히 자신의 집에 쌓아놨던 곡식과 재물들을 앞 다퉈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내놓은 거죠. 덕분에 관중이 활약하던 환공시대의 제나라에서 가난하고 병들어서 죽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태평성대를 누렸다고 합니다.
바로 ‘한 사람에게 벌을 주어 백 명의 사람을 경계한다’는 고사성어 일벌백계의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금방이라도 나라가 절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습니다. 물론 삼성이 최대 광고주인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좀 심하지 않나요. 전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을 볼모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불공정 합병을 성사시켜 경영권을 승계하려한 이재용을 변호하기 위해 거의 모든 언론들이 발 벗고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 어의없고 한심하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허접한 논리이기 때문에 따져보는 것이 시간낭비일수도 있겠지만 이런 논리에 현혹되는 분들이 워낙 많아서 다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재용이 잘못한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 국내 최고 기업은 삼성은 흔들리고 결국 한국경제까지 휘청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특히 이 부회장이 주도했던 세계 최대의 전장 업체 하만 인수가 물건너 갈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또 바이오 업종에서도 깜짝 놀랄만한 인수를 추진 중이었는데 이번 사건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게다가 해외 언론에 삼성을 부패 집단으로 보도하면서 대외신인도도 하락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관중의 충언에 환공이 고민했던 것과 비슷하죠.
하지만 재벌 총수 한명의 부재 때문에 회사가 흔들리고 더 나아가 나라까지 휘청거리면 그게 제대로 된 기업이고 나라일까요. 글로벌 기업이라며 시스템을 강조하던 삼성이 총수 한명 없다고 무너진다면 시스템 자체가 문제가 있는 거죠.
경제학적인 분석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가 최근 발표한 ‘재벌총수 처벌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재벌 총수에 대한 사법처리가 국민경제에 중대한 악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은 실증적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2007년 10월부터 2009년 12월사이의 삼성 스캔들 조사 및 이건희 회장 사법처리기간이 삼성전자의 전형적 재무성과에 통계적으로 의미있는 악영향을 끼쳤는가를 분석한 결과에서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한마디로 삼성스캔들에 대한 수사, 재판, 사면 등의 사건은 삼성전자의 재무적 성과와는 통계적으로 무관하다는 것이죠.
오히려 당시 면죄부를 준 바람에 재벌총수의 무리한 경영승계가 계속 추진됐고 한국경제에 미친 악영향은 켜졌다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전무 시절이던 2008년 2월 28일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사건 등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수사한 조준웅 특검팀에 소환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은 바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특검은 삼성이 한국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업이고, 재벌총수 없이 대안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면죄부를 주고 말았죠.
이 때문에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지급하고, 최순실 딸 정유라의 말과 승마장 구매 비용 등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국민연금을 주무르는 등 박근혜와 뇌물 거래를 하고 범죄를 저지른 정황이 속속 드러나게 됩니다.
이에따라 전 교수는 “경영승계를 목전에 둔 현대차 등 다른 재벌의 국정농단을 예방하기 위해 재벌총수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고 처벌해야 한다”며 “삼성을 처벌하는 것이 삼성에게도 국민경제에도 도움된다”고 주장합니다. 관중이 환공에게 충언했던 일벌백계를 요구한 것이죠.
그래도 이재용 부회장이 불쌍하다고 여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재용이 직접 잘못한 것이 아니라 밑에 놈들이 잘못한 것이라면서 말이죠.
미국에는 기업들이 두려워하는 ‘리코법’이란 게 있습니다. 1970년에 제정된 법으로 우리말로 풀이하면 조직범죄처벌법입니다. 그런데 왜 미국 기업인들이 이 법을 두려워할까요. 합법과 불법을 교묘하게 넘나드는 기업 범죄를 단죄하기 때문입니다. 리코법은 일단 명칭에서처럼 조직범죄를 소탕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미국도 요즘 조직범죄란 것이 대놓고 총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다 기업이라는 그럴싸한 쉴드를 치고 몰래 범죄를 저지르죠. 영화 ‘내부자들’처럼 말이죠. 다들 영화 속 상상이라고 여겼던 참혹한 범죄가 최근 들어 하나하나 현실이라는 것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지 않습니까. ‘민중은 개돼지’라는 영화대사가 그대로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 입에서 나와 논란이 되기 하고요.
신자유주의 본산인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미상 21회, 골든글로브 3회를 수상하며 미국 역사상 최고의 드라마 중 하나로 꼽히는 ‘소프라노스’는 기업의 탈을 쓰고 잔혹한 범죄를 일삼는 마피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유료 방송사 HBO에서 방영하는 이 드라마는 케이블 TV사상 최고인 1300만의 시청자 수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죠. 이 드라마가 이렇게 인기를 끈 이유도 바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소프라노스의 주인공인 마피아 조직의 중간 보스인 토니 소프라노는 조직과 가정, 두 패밀리를 이끌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억척스러운 아내, 사사건건 반항하는 딸, 사고뭉치 아들, 자기중심적인 어머니, 욕심많은 삼촌 등에게 끊임없이 시달리고 밖에서는 조직 내의 갈등과 여러 적들과의 분투로 지쳐가죠. 그동안 헐리웃 영화에서 보던 화려한 갱들의 세계는 없고 추악하고, 더럽고, 계산적이고, 지저분한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집니다. 화려한 비즈니스로 치장한 기업범죄의 흉측한 면모가 이 드라마를 통해 다 드러난 것이죠.
이 드라마에서도 리코법이 등장합니다. 리코법에 걸려 안절부절 못하는 마피아 보스의 불안감이 종종 드러나죠. 이처럼 미국에서 리코법은 1970년대 마피아를 소통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기업 엘리트 조직범죄 소탕에 이용되고 있죠.
미국이 기업범죄에 리코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기업범죄가 사회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지속적으로 주지만 적발도 처벌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업범죄는 은밀하게 지시하는 자와 실행하는 자가 다르다는 특징이 있죠. 따라서 리코법은 조직범죄 집단이나 기업이 이익을 얻었을 경우 스스로 그 적법성을 밝히지 못하면 이익을 전부 몰수합니다. 더 나아가 형사적으로 최고형까지 구형할 수 있고 내부 고발을 장려하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제보자를 철저히 보호합니다. 또 범죄로 인해 직접적 손해를 입은 사람은 3배 이상 손해배상을 받도록 함으로써 피해자의 소송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죠. 기업범죄 등 범죄 조직은 한두 사람을 잡아넣어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업총수의 경우 막강한 변호사를 앞세워 법망을 빠져나가는 경우가 다반사죠. 이재용 부회장이 청문회에서 보여줬던 나는 모르는 일이고 다 밑에서 나 몰래 한 일이라고 발뺌할 수도 있고요. 이런 말도 안되는 사태를 막는 것이 바로 리코법입니다. 걸렸을 때 위부터 단죄를 해야 범죄를 소탕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죠. 반면 아래에는 관대합니다. 범죄사실을 내부고발하면 형량을 면제해주기도 하고 포상금까지 줍니다. 미국은 이 법을 활용해서 기업의 담합범죄, 금융사기, 공무원의 뇌물과 접대 같은 적발이 어려운 조직범죄를 성공적으로 통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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