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일제 야마토 전함과 한국재벌의 닮은 점은? 본문
문제 하나, 인류역사상 가장 큰 대포를 장착한 배는? 거북선은 아닐 테고 최근 미국이나 중국에서 만든 함선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답은 무려 80년 전인 1937년 일제가 만든 야마토 전함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의 기함이었던 이 전함은 길이만 260미터가 넘었습니다. 축구장 2개 반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죠. 200문이 넘는 대공포와 강력한 장갑 등 갖추고 있는데 특히 무려 28.1인치, 즉 46센티에 달하는 엄청난 주포가 자랑거리였다고 합니다. 성인 남성만한 대포를 발사하는 있는 이 주포는 ‘함선에 장착된 가장 큰 대포’로 기네스북에 올라있으며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당시 일제의 모든 능력을 총동원한 이 전함을 건조하기 위해 들어간 돈도 당시 1억3700만엔에 달했습니다. 이는 당시 일본 전체 국민총생산(GDP)의 1%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죠.
아니 이렇게 강력한 전함이 있었는데 일제는 왜 패망했을까요. 일본인들은 야마토 전함을 ‘비극의 전함’으로 부른다고 합니다. 이유는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전투에는 거의 나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야마토는 제 1차 세계 대전 때부터 몰아닥친 거함 경쟁을 뒤늦게 쫓아가기 위해 서둘러 일제가 건조한 전함입니다. 미국 함선의 대포소리에 놀라 개항했던 충격을 벗어나기 위해서더라도 거함이 필요했었죠.
그런데 야마토 전함이 건조된 후 2차 대전이 발발했는데 전쟁의 양상이 갑자기 바뀌었습니다. 항공모함이라는 신무기가 등장하면서 거함거포는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대신 항공모함에 탑재된 함재기 공중전 시대가 도래 했습니다. 함재기가 날아다니게 되니 엄청난 사이즈를 자랑한 야마토 전함을 오히려 목표물이 되기 십상이었죠. 속도라도 빠르면 좋으련만 너무 느려 터져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일본 군부도 뒤늦게 이를 알아챘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온 국민의 혈세를 쥐어짜 만든 야마토 전함은 전쟁 내내 전투에는 참가하지 않고 선상파티를 하는 장소로 쓰였다고 합니다. ‘야마토 호텔’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죠.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패망으로 치닫게 되자 일본 국민들은 “왜 야마토를 출격하지 않느냐”고 원성을 퍼부었습니다. 결국 일제 군부는 야마토 전함에게 마지막 임무를 부여합니다. 오키나와에 몰려오는 미군을 막으라고 한 것이죠. 그런데 일제 군부가 내린 명령이 희한합니다. 야마토 전함을 넓은 바다가 아닌 오키나와 해안에서 고정 포대 역할을 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키나와까지 편도로 갈 수 있는 기름만 채워줍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장렬히 전사하라고 명한 것이죠. 그런데 더 비참한 사실이 있습니다. 미군의 엄청난 폭격을 받은 후 야마토 전함이 침몰한 위치가 오키나와가 아닙니다. 오키나와로 가기 위해 항구를 나선 직후 일본 규슈 서남 해안에서 연합군 전투기 300여대의 집중 공격을 받고 허무하게 침몰했죠.
결국 장렬히 전사하지도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건 마치 옥쇄를 각오하고 돌격 앞으로를 외쳤는데 적의 총탄이 아니라 자신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 목이 부러져 죽은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트렌드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채 과거에 매달린 결과, 코미디 같은 최후를 맞이한 것입니다. 이런대도 아베 등 일본의 우익들은 종종 야마토를 언급하며 그 시대를 그리워하죠. 비참하게 침몰했던 야마토가 우주시대에 전함으로 등장하는 애니메이션도 있고요. 참 일본답습니다.
그런데 일본만 이렇게 비웃을 일이 아니더라고요. 과거의 추억에 사로잡힌 ‘한국의 야마토’가 트렌드 변화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야마토가 뭘까요. 바로 재벌입니다.
주요 외신들도 과거에 매몰된 재벌들의 정경유착 관행으로 인해 한국의 경제 위기가 심해질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말에 열린 재벌 청문회에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재벌기업들이 정부 계획에 돈을 내면서 특혜를 바라는 게 한국 정치의 뿌리 깊은 관행”이라며 “전경련을 재벌들의 사적 로비단체”라고 비난했습니다. 한마디로 재벌들이 늘 강조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스스로 미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AFP 통신도 “재벌 총수들의 특권에 대한 반감과 함께 점차 커지는 빈부 격차의 분노를 폭발시켰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더 나아가 블룸버그 통신은 “정치 스캔들로 한국 경제에 불확실성이 높아졌고, 특히 조선과 해운, 철강 등 기간산업이 우려된다”고 분석했습니다.
하나 같이 재벌들이 한국경제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죠.
특히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3남 김동선씨의 술집 종업원 폭행 사건 등 끊이질 않고 있는 재벌가의 갑질 사건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0여 년 동안 발생했던 재벌가 사람들의 폭행 연루 사건들을 총 정리해 보도할 정도인데요.
WSJ는 “삼성가의 2세대 리더가 두 차례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건희 삼성회장은 1996년 대통령에 뇌물을 준 혐의와 2009년 횡령과 조세포탈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두 차례 모두 김영삼,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사면됐다”라고 전했습니다.
WSJ는 2007년 김승연 한화 회장의 쇠파이프 폭행사건도 소개했습니다. 당시 김 회장은 서울 북창동의 한 클럽에서 술을 마시던 자신의 둘째아들 김동원씨가 시비 끝에 클럽의 종업원 4명에 폭행을 당하자 조폭을 동원해 이들을 청계산 공사현장으로 끌고 간 뒤 쇠파이프로 때려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는데요. 김 회장은 이 사건으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지만, 1년 만인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사면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WSJ는 이어 2014년 발생한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을 거론했습니다.
WSJ는 “이번 김동선 씨의 폭행사건은 일정하게 되풀이 되고 있는 한국 재벌가의 비행들 중 하나”라며 “재벌가 자녀들이 엄청난 특혜를 누리고 있지만 경영능력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직도 구시대적인 ‘귀족놀이’에 심취해 있는 한국 재벌의 몰지각함과 부도덕이 전 세계적인 망신을 산 셈입니다. 문제는 망신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노동자들이 피땀흘려 일궈놓은 이미지를 몰상식한 재벌가 자녀들이 한방에 날려버렸기 때문입니다. 경영능력이 없는데다 부도적하기까지 한 재벌가가 이끄는 회사에 어느 누가 투자를 할까요. 또 이런 재벌가 자녀가 만든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거부감도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자칫 코미디처럼 침몰했던 야마토 꼴이 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대도 많은 국민들이 ‘대마불사’의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외국 나가면 알아주는 것은 삼성, LG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죠. “우리나라를 이정도 잘 살게 만든 것은 재벌들 덕분”이라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물론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입니다. 규모의 경제가 먹혔던 2000년대 초반까지나 맞는 이야기란 말입니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습니다. 세상이 아찔한 속도로 바뀌고 있습니다. 인력과 자본력이 최대 경쟁력이었던 과거와 달리 뛰어난 기술과 아이디어로 시장을 바꾸는 ‘퍼스트무버’, ‘게임체인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페이스북, 테슬라, 우버 등 야마토와 같은 거함을 한방에 물리치는 스타트업들의 사례는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숙박 공유서비스 에어비앤비는 대형 호텔 체인인 힐튼, 메리어트의 시가총액을 이미 넘어섰습니다. 온라인 스타트업인 캐스퍼도 3분의 1에 불과한 가격을 무기로 시몬스·설타·씰리 등의 글로벌 침대 업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급 매트리스를 강력 압축 기술로 작은 박스에 담아 배송해주는데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100% 환불까지 해줘 미국 매트리스 시장을 싹쓸이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이같은 앞으로는 더 늘어나겠죠. 빅데이터, 인공지능, IoT, 핀테크 등 인류를 깜짝 놀라게 하는 신기술들이 속속 사업화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2의 페이스북, 제2의 테슬라, 제2의 우버가 더 많이 등장할 것입니다.
그런데 국내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많은 전문가들이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떨구죠. 시장규제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가장 큰 원인은 재벌에게 있습니다. 조금만 가능성을 보이면 아이디어를 훔쳐가는 것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래도 안되면 규제장벽을 높여서 말라죽게 만들죠. 정경유착·부정부패 고리가 공고한 덕분에 가능한 일입니다. 정부도 스타트업보다는 재벌들의 눈치 보기에 바쁘죠. 규제 완화랍시고 재벌들의 골목상권 침해를 못본 척 하기 일 수입니다. 이렇게 땅집고 헤엄치기식으로 규모를 키운 재벌들이 결국 야마토처럼 겉만 화려하지만 실속은 없는 전함으로 전락하고 있는 거죠.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본격화되면 야마토와 같은 코미디 같은 운명에 처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도 재벌들이 외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온다고 안쓰러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글로벌 매출과 이익이 늘어나는 것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하고요. 이것이 자랑스러우려면 외국에서 번 돈에 대한 세금을 우리나라에 내야 하겠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겨레 신문 9일 보도에 따르면 국내 매출액 상위 10위권에 드는 ‘초거대기업’이 최근 5년간 부담한 세금 중 20%는 외국에 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외국에 내는 세금 비중은 해마다 가파르게 늘어나 2015년 현재(신고 기준) 무려 31%에 이릅니다.
이처럼 외국에 내는 세금 비중이 늘어났기 때문에 이들 초거대기업이 국내에서 낸 세부담을 따진 실효세율은 2015년 현재 12.05%에 불과합니다. 이는 전체 기업의 평균인 16.8%보다 4.75% 포인트나 낮은 수치입니다. 한마디로 삼성 등 재벌들이 내는 세부담이 저희같은 스타트업보다 적은 황당한 상황이 벌이지고 있습니다.
물론 재벌들이 외국 사업에서 벌어들인 이익 비중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자칫 이중과세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고요. 그렇다면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니 대형 태극기를 내거는 등 심심하면 국민들을 현혹시키는 애국마케팅은 하지 말아야죠. 일반 기업들보다 세금부담이 적은데도 한국기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재벌기업들이 외국에서 제대로 세금 내지도 의문입니다. 지난해 공개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파나마 페이퍼스(조세회피문건)’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기업들도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은 자금을 맡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들 기업 대부분이 재벌가 소속입니다. 따라서 이중과세가 아니라 탈루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이런데도 재벌 물건이나 서비스를 사는 것을 애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지난 50여년간 한국 경제가 재벌과 함께 성장한 것은 사실입니다. 대기업의 성장을 기반으로 한 국가경제의 발전이 한국의 경제력 향상에 기여한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한국 재벌은 이미 몸을 주체할 수 없는 공룡이 돼 버렸습니다. 30대 재벌그룹은 한국 기업 총매출의 약 40%를 차지하며, 국가 총자산의 37%를 가지고 있습니다. 재벌의 자산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95%에 달합니다. 이러다보니 한국은 전 세계로부터 재벌공화국이라는 질타를 받고 있습니다. 계란을 한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투자격언조차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 각국의 전함들이 전투태세를 갖출 것입니다. 미국·중국 등의 스타트업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현란한 신무기로 적들을 놀라게 할 것입니다. 인도·이스라엘·독일·프랑스·영국 등도 마찬가지고요. 이들과 맞설 수 있도록 국내 재벌들도 빨리 변신해야 합니다. 사이즈만 자랑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불투명한 소유·지배구조에서 빨리 벗어나야 하죠. 가장 빠른 방법은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재벌가는 소유만 하고 경영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합니다. 글로벌 기업답게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르라는 이야기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재벌 청문회에서 “저보다 나은 인재가 있다면 언제든 다 넘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 과연 진심일까요. 국민들을 속이기 위한 전략적 ‘쇼맨십’이 아니길 바랍니다. 삼성이 야마토 전함처럼 크기만 자랑하다 어이없게 몰락하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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