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영국 노동자가 한국 노동자에게 보내는 충고 본문
최근 기적같이 차트를 역주행하는 영화가 하나 있습니다. 영국 영화계의 거장 켄 로치에게 10년 만에 두 번째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2016)을 안긴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라는 영화인데요. 상영관잡기 힘든 독립영화인데도 무려 6만 관객을 돌파할 정도로 흥행몰이라고 합니다. 5만이란 숫자를 폄하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최근 개봉한 독립영화중 19만 관객을 모은 ‘무현, 두도시 이야기’이후 처음이라고 합니다. 이런 흥행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하나가 정치권의 뜨거운 관심입니다. 문재인 전 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물론 개혁보수신당까지 단체관람을 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 영화의 내용이 뭐길래 이렇게 정치권에서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걸까요.
영화 주인공인 다니엘 블레이크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복지를 자랑하는 영국에서 평생 목수로 일하며 근근이 살아왔던 노동자입니다. 영화는 다니엘이 고용지원금 담당 공무원과 전화 통화하는 목소리로 시작합니다. 다니엘은 심장병으로 당분간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정부에서 지원하는 질병 수당을 받아 가까스로 생활을 꾸려왔습니다. 하지만 복지 대상을 탈락시키는 것에만 의욕적인 담당 공무원의 영향으로 차상위계층으로 분리돼 질병 수당을 받을 수 없게 되고 말죠. “심사 결과가 15점 이상 돼야 하는데 당신은 12점이라 받을 수 없다”며 거부당한 것입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과는 달리 ‘점수’를 채우지 않으면 복지의 대상이 탈락하는 선별적 복지의 희생양이 된 셈이죠. 자신이 얼마나 가난한지, 자신의 삶이 얼마나 처참한지를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를 다시 증명하기 위해 전화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담당공무원은 질병 수당 기각에 대한 항고는 인터넷을 통해 직접 해야 한다고 못 박습니다. 평생을 목수로 살아온 다니엘은 컴퓨터를 다뤄본 적이 없죠. 아무리 하소연해도 법이 그렇다며 담당공무원은 막무가내입니다. 이에 다니엘은 “바닥을 치게 만들어 수당을 포기하게 만들려는 같다”고 한탄하죠.
물론 다니엘은 그냥 주저 않지 않습니다. 자신도 어렵지만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과 연대하려 노력하죠. 복지 급여를 위한 면담 시간에 몇 분 늦었다고 쫓겨나게 생긴 싱글맘 가족의 안타까운 상황을 보고 다니엘은 주변의 양해를 얻어 차례를 양보해줍니다. 하지만 담당공무원은 다니엘에게 오히려 “네 일 아니니 참견하지 말라”고 비난합니다.
다니엘은 복지 급여를 받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항고하다 화장실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져 숨을 거둡니다.
어쩜 이렇게 한국 사례와 똑같을까요. 아니 다르죠. 영국은 영화 속 이야기이지만 한국은 현실입니다. 국제단편영화제에서 상을 타기도 했던 유망한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는 2011년 1월 생활고와 질병에 시달리다가 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바로 영화처럼 차상위계층을 분류돼 선별복지에 희생된 것이죠. 또 전국민을 슬프게 했던 송파의 세 모녀 사건도 또렷이 기억납니다. 이들 모두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가난은 부도덕한 것이다”를 끊임없이 국민들에게 주입하려는 신자유주의에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국내 보수정치인과 언론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손자까지 무상급식을 하느게 말이 되느냐”는 해괴망측한 논리로 실상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보편적 복지는 포퓰리즘에 사치이고 현실적이지도 않다고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비현실적이라고 공격받는 보편적 복지에 대한 과감한 도전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핀란드입니다. 2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올리 캉가스 핀란드 사회보장국 연구실장은 이달부터 2년간 기본소득제를 시범 실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지급 대상은 현재 실업수당 또는 생계보조금 수령자 가운데 정부가 무작위 선정한 2000명으로 이들에게는 매월 560유로(약 70만6000원)를 기본소득으로 지급합니다. 이는 핀란드 민간 평균 소득 3500유로의 16%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특히 일단 대상에 선정되면 수입이나 재산 규모, 고용 여부와 상관없이 2년 동안 지급됩니다. 아무리 이건희 손자라도 받게 된다는 것이죠. 핀란드 정부는 이번 실험이 성공적이라고 판단되면 대상을 단계적으로 늘려 모든 성인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할 계획입니다.
네덜란드도 중부 대도시 위트레흐트시에서 시범 프로젝트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원하는 만큼 일하면서 조건 없이 980달러를 제공받거나 ▲사람들에게 강제로 일을 하게 한 다음 돈을 주거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일할 경우 추가로 돈을 주거나 ▲사람들에게 돈은 주지만 일을 못 하게 하거나 등 네 가지 실험군으로 나눠 기본소득의 효과를 측정하고 있죠. 이 밖에 캐나다, 아이슬란드, 우간다, 브라질 등도 기본소득 논의가 한창이라고 합니다.
복지천국이라고 불리는 핀란드·네덜란드가 왜 기본소득을 추진하고 있을까요. 기본소득을 보장해주면 사람들을 더 게으르게 만들고 재정악화를 가져오지는 않을까요. 물론 이런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기본소득으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고 핀란드 등의 정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고용 여부와 무관하게 기본소득을 보장해줄 경우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 일부러 취업을 기피하는 현상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죠. 실제 핀란드인들은 실업 후 재교육 기간에 하루 최대 18유로까지 제공되는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 일용직 일자리 등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하게 되면 실업수당을 못 받으니 당연히 그냥 놀게 되는 거죠. 따라서 핀란드 실업률은 지난 2013년 7월 이후 7% 밑으로 떨어지지 않고 있죠. 하지만 기본소득은 노동자들이 실업수당을 잃는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목표라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얻어도 기본소득을 계속 지급합니다. 영화에서처럼 일용직 일자리를 했다가는 차상위계층으로 분류돼 오히려 실질소득이 줄어드는 일이 없어진다는 이야기죠. 기본소득이 보장되는데다 일용직이라도 일하면 소득이 생기는데 이를 마다할 노동자는 없을 것이란 판단입니다. 핀란드 정부는 기본소득제 성공 여부를 판단할 기준으로 실업률을 꼽고 있습니다.
게다가 기본 소득을 보장해주면 노동자가 상황에 쫓겨 나쁜 조건으로 노동 계약을 맺지 않아도 됩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지 않고 개개인이 진짜 원하는 일을 찾아갈 수 있어 직업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노동 기본권이 강화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적어도 기본 소득보다는 많은 소득을 보장해주어야 사람을 고용할 수 있으니까 고용하는 쪽에서도 노동 조건을 개선할 수밖에 없죠.
더 나아가 알파고 시대의 해법으로도 기본소득이 등장합니다. 인공지능(AI) 기술과 함께 인간의 육체·사무직 일자리가 차츰 없어지면서 로봇과 인간이 품위 있게 공존하려면 기본소득이 필수라는 이야기죠. 그래야 최고은 시나라오 작가 같은 창의적인 사람도 먹고 살 걱정없이 창작을 할 수 있을테니까 말이죠.
그럼 재원문제는 어떻게 될까요. 핀란드 정부는 또 기본소득 도입으로 각종 명목에 따라 분리된 복지체계가 일원화되면 장기적으로 재정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약 60%를 차지하는 복지비용이 기본소득제 전면도입으로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이런 얘기를 드리면 왜 스위스 국민들은 기본소득안을 부결시켰냐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스위스는 지난해 6월 성인 국민에게 300만원, 미성년자에겐 80만원을 매달 주는 국민소득 지급 헌법 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쳤다가 부결됐습니다. 당시에도 말씀드렸지만 300만원은 우리 국민에게 놀고먹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액수이지만 적어도 선진국인 스위스 국민들에게 그렇지 않습니다. 스위스의 물가는 우리의 두 배가 넘습니다. 따라서 단순 계산으로도 300만원의 현실적인 수치는 150만원 이하입니다. 150만원 가지고 놀고먹을 수 있을까요. 게다가 스위스의 복지는 이런 기본소득을 받지 않아도 충분할 정도입니다. 오히려 노동자들은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다른 복지가 줄어들 것을 우려했습니다. 그래서 기본소득을 반대한 것이죠. 공짜 돈이 일할 동기부여를 사라지게 해 결국 스위스 경제를 고꾸라트릴 것으로 우려한 결과라는 국내 보수 언론들의 주장과는 매우 상반됩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기본소득은 핀란드나 네덜란드, 스위스 같은 선진국보다는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한국에서 더욱 효과적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최고은 작가처럼 복지사각지대에 놓은 서민층이 우리나라에 너무나 많기 때문이죠. 특히 무작정 퍼주기가 아니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바로 소비되기 때문에 경제에 윤활유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부자감세를 통해 세금 감면해줘 받자 금고에 현금을 쌓아두는 것과는 완벽하게 다르죠.
게다가 선별적 복지를 위해 엄청난 재원과 인력을 들이는 한국에서는 기본소득으로 필요없는 행정낭비를 대폭 줄이는 효과도 있습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마지막은 다니엘이 항고 법정에서 읽으려고 써서 가져왔던 편지가 장례식장에서 싱글맘의 입을 통해 나지막이 울려 퍼지면서 끝납니다.
“나는 의뢰인도 아니고, 고객도 아니고, 서비스 이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아니고 사기꾼도 아니고 거지도 아니고 도둑도 아니고, 보험 번호도, 화면 속의 신호도 아닙니다.
나는 사회적)책임을 다했고 그렇게 할 수 있어서 자랑스러웠습니다. 나는 굽실거리지 않았고 이웃을 동등하게 대했습니다. 제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 나는 사람이지 개가 아닙니다. 나는 나의 권리를 요구합니다. 나를 존중해줄 것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물론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대한민국의 복지정책은 다니엘의 호소처럼 선별복지를 받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가난한 지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죽여야 복지를 받을 수 있었죠. 인간이면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받는 기본이 기본인 사회가 불가능할까요. 최순실 일파에게 쓴 돈만 있어도 충분히 시작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핀란드·네덜란드 같은 선진국이 아닌 헬조선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해 세계적인 성공사례가 되길 기원합니다.
'경제 뒷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제 야마토 전함과 한국재벌의 닮은 점은? (0) | 2019.12.09 |
---|---|
AI로봇으로부터 일자리 지키려면 ‘탈노동’ 필요? (0) | 2019.12.09 |
가짜뉴스를 감별해내는 방법 (0) | 2019.12.04 |
‘심청전’에서 노동자들이 배워야 할 교훈은? (3) | 2019.12.04 |
마우스랜드의 비극 (0) | 2019.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