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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전’에서 노동자들이 배워야 할 교훈은?

경불진 이피디 2019. 12. 4.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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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미 삼백석에 팔려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전은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심청이의 효심에 하늘도 감복해 아버지인 심봉사가 눈을 뜨고 심청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엔딩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많이 읽어주기도 하죠. 심청이같은 효녀 딸을 원하면서 말이죠. 따라서 효를 이야기할 때면 눈먼 아버지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심청을 떠올리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심청전의 불편한 점을 짚어 볼까합니다. 심청전에 무슨 불편한 점이 있을까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얼마 전 심청전을 읽어줄 때 제 딸이 던진 질문에서 크게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역시 아이의 눈으로 보니 세상이 달리 보이는 것 같습니다. 딸이 질문을 던진 것은 이 대목에서 입니다.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가 용왕의 도움으로 연꽃 속에서 부활하는 장면 다들 아실겁니다. 연꽃에서 부활한 심청이는 왕궁으로 들어가죠. 그리고선 왕과 결혼해 왕후가 됩니다. 이 때 제 딸이 물었습니다. “부활했으면 빨리 아빠부터 찾아야 하는 거 아니어요. 눈이 안보여 혼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할텐데

 

맞습니다. 심청이가 왕후가 되는 사이 심봉사는 뺑덕어멈에게 갖은 수모를 당하죠. 공양미 삼백석도 빼앗기도 쫓겨나기 까지 합니다. 진정한 효녀라면 이런 상황도 예측할 수 있었을텐데 심청전의 심청은 왕후가 되는데 많은 시간을 써버리고 맙니다. 그러고선 한참 후에야 전국 맹인들을 위한 잔치를 벌이죠. 물론 아버지를 찾겠다는 목적이긴 했지만 이 대목도 이해되지 않는군요. 왕후라는 신분이라면 그냥 아버지를 찾을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죠. 도대체 효녀라는 심청이는 왜 이렇게 했을까요.

 

 

지난 13일 동아일보가 재미난 기사를 실었습니다. 제목은 실업자 절반이 대졸중기 79%는 인력난이었죠. 제목만 봐도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감이 잡힙니다. 바로 일자리 미스매칭의 심각성을 전하는 기사였죠.

 

일단 기사부터 요약해 보겠습니다.

 

한국의 사회동향 2016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심각했다. 한국의 2564세 인구 중에서 전문대 이상을 졸업한 고등교육 이수자 비율은 45.0%(2014년 기준)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었다. 독일(27.0%), 오스트리아(30.0%), 핀란드(42.0%) 등 유럽 선진국을 앞섰다. 하지만 2564세 인구 증 관리·전문·기술직 종사자 비율은 21.6%로 독일(43.5%), 핀란드(45.2%) 등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이 때문에 국내 실업자의 절반가량은 전문대 졸업 이상의 고학력자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3분기(79) 기준 실업자 총 985000명 중 전문대 졸업자 이상 비중은 44.5%에 이른다. 4년제 대학 졸업자로만 추려도 전체 실업자의 32.0%에 달한다.

반면 고졸 수준이 맡아야 할 일자리는 인력 공급이 부족해 향후 고질적인 인력난을 겪을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향후 10년간 고졸 인력 210만 명이 부족할 것으로 추정도 있다. 실제로 중소기업은 뽑을 사람이 없어 지금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달 취업포털 사람인이 중소기업 155개 기업 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78.7%(122)채용 시 어려움을 겪는다고 답했다.’

 

동아일보는 산업구조가 고학력자 증가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이같은 미스매칭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중소기업의 임금과 복지수준이 대기업에 미치기 못하기 때문에 구직자들이 대기업을 외면하고 있다는 이야기죠. 실제로 부산의 한 4년제 대학을 나온 A 씨의 사례도 전했습니다. 3년째 취업준비생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는 A씨는 거의 모든 국내 유명 대기업에 지원했지만 서류전형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지만 고용이 불안정한 중소기업은 아예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고 합니다. 이어 첫 직장이 중요하다는 선배들의 충고에 따라 당분간 공공기관 시험에 몰두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고 전했습니다.

 

동아일보가 이런 기사를 쓴 이유가 뭘까요. 우선 미스매칭의 심각성을 강조해서 일 것입니다. 구직자와 구인자의 눈높이가 다르니 이를 어떻게든 맞추자는 이야기죠. 물론 일리 있는 지적입니다. 그런데 이 지적은 벌써 10년째 반복되고 있습니다. 2005817일 아이뉴스24취업난 속 고졸 구직자 설자리 없다라는 기사를 통해 일자리 미스매칭의 심각성을 전했습니다. 10년 전 부터 지적됐는데도 왜 개선되지 않았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눈높이를 맞출 생각이 양쪽 다 없기 때문입니다. 구직자도 눈높이를 낮추고 싶지 않고 구인자인 회사도 눈높이를 조정할 생각이 추호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아일보 기사에서는 취업준비생의 멘트를 통해 구직자들이 너무 눈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3년째 취업준비생인데도 공공기관 시험에 몰두하고 있다는 멘트를 전하면서 이게 제정신이냐고 속으로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쯤되면 포기하고 중소기업에라도 들어가라고 부추기는 거죠. 중소기업의 임금과 복지수준이 대기업에 못미치기 때문에 구직자들이 대기업을 외면하고 있다는 설명을 붙여놓긴 했지만 왜 중소기업의 임금과 복지수준이 개선되지 못하는지는 지적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의 임금과 복지수준이 부족한 것은 당연한 것이니 그냥 받아들이라는 이야기일까요.

 

미스매칭이 나올 때마다 주목받는 것이 매칭이론입니다. 201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앨빈로스가 주창한 이론인데요. 국내에는 알키에서 출간한 매칭이란 책을 통해서도 소개돼 있습니다. 일자리 미스매칭에 매칭이론이 등장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매칭이론을 통해 일자리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 때문이죠. 어떻게 가능할까요. 단순화하기 위해 남녀간 연예문제로 풀어보겠습니다. ‘식탁위의 경제학자들이란 베스트셀러의 저자 조원경 박사의 설명을 참조했습니다. 우선 매칭이론은 게임이론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특히 어떤 결과가 바람직한가를 공동의 이익 관점에서 살피는 협조적 게임이론이 근간이죠. 아직도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주인공 유시진(A)과 강모연(B)이 있다고 가정합니다. 그리고 인기가 별로 없는 남자(a)와 여자(b)가 있습니다. 4명이 어떤 식으로 짝짓기를 해야 가장 안정적일까요? 인기 있는 사람끼리(A-B), 인기 없는 사람끼리(a-b) 파트너가 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서로 섞일(A-b, a-B) 가능성도 있습니다. 4가지 조합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유시진이 b와 짝이 되면, 유시진은 강모연을 그리워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마침 자신의 파트너(a)가 만족스럽지 않은 강모연도 유시진을 원해 어디선가 유시진과 재결합하기를 원할 것이고요. 이는 불륜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두 커플 모두 깨질 확률이 높죠. 따라서 가장 안정적인 상태는 (A-B), (a-b)로 커플을 이루는 것이라는 게 매칭이론의 결론입니다. 그럴싸하죠.

 

이를 일자리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죠. 누구나 탐나는 인재 A와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하는 기업 B, 보통인 구직자 a와 중소기업 b가 있을 경우 앞에서처럼 A-B, a-b로 매칭이 된다면 안정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현재 일자리 미스매칭도 이처럼 매칭만 잘하면 바로 해결된다는 주장입니다. 구직자와 기업이 서로의 상태를 정확히 공개해 탐색비용을 줄인다면 가능하다는 이야기죠.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유시진-강모연 커플은 그럴싸한데 일자리 문제로 치환되니 뭔가 불편합니다. 능력없는 구직자는 불안한 기업에 만족하며 살라는 이야기가 되니까 말이죠. 따져보면 이런 생각도 듭니다. 유시진-강모연 커플만이 행복할까요. 유시진이 평범한 여성을 사랑할 수 있지는 않을까요. 박근혜가 좋아했다는 드라마 시크릿 가든도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고 합니다. 재벌 2세와 스턴트우먼의 불편한 사랑이죠. 어찌보면 심청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왕후라면 최소한 귀족 출신이어야 하는데 심청은 평범보다 오히려 아래에 있는 집안 출신입니다. 그런데도 행복한 결말입니다. 신델렐라도 마찬가지죠. 신분을 뛰어넘는 사람에 다들 감동받으면서 왜 유시진-강모연 같은 사랑만 안정적일 것이라고 생각할까요. 또 평범한 구직자가 좋은 기업에 들어가면 왜 불편할 것이라 생각할까요.

 

폴란드 출신의 케임브리지 경제학자 미할 칼레츠키는 이미 70여년 전에 이런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아무리 매칭을 잘해도 완전고용이 달성되기 힘들다고요. 칼레츠키는 ‘완전고용의 정치적 측면’이라는 논문에서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지출 등을 통해 유효수요를 만들어냄으로써 고용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은 가능하지만 결코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이유는 경제적 논리와 무관한 정치적 문제라는 것이죠. 자본은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는 본래부터 희소한 것이며 따라서 일자리를 베풀어준 자신들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항상 설교해왔습니다.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도 일자리 창출에 나선다고 선전하는 보수언론들이 바로 이런 이야기를 확산합니다. 그런데 만약 고용수준을 끌어올려 완전고용에 가깝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노동자들이 자본에 감사할리 없습니다. 자본입장에서는 노동자들을 마음대로 부리기 힘들어지는 것이죠. 칼레츠키는 이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완전고용은 허상에 불과하다고 강조합니다. 아무리 자본주의가 발달해도 태생적으로 일자리는 항상 부족하게 된다는 설명이죠. 노동자를 길들이기 위해 일부러 완전고용을 피하면서 어느 정도의 실업을 유지하려는 대기업과 정치권력의 결탁, 또 이에 동조하는 경제학자와 언론 때문에 노동자들이 아무리 눈높이를 낮춘다고 해도 일자리 부족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매칭만 잘하면 일자리 문제가 해결된다는 매칭이론보다 현실을 잘 설명하는 것 같지 않나요. 그럼 노동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심청전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버지를 바로 구할 수도 있었는데 심청이가 한참을 기다린 이유가 뭘까요. 추측컨대 심청이는 신분상승의 위험을 알았을 것입니다. 미천한 신분으로 왕후가 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말이죠. 언제든 정적에 의해 쫓겨날 수 있다는 것을 눈치 챘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아버지를 찾는 것도 신중했을 것입니다. 왕후의 아버지가 봉사라고 소문나면 문제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심청은 와신상담을 하면서 전략을 세운 것 같습니다. 일단 왕의 마음 사로잡은 후 봉사 잔치를 열자고 부탁합니다. 심청을 사랑하는데다 백성들에게 점수를 딸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왕으로써도 마다 할리 없죠. 심청은 이 자리에서 아버지인 심봉사를 만납니다. 백성들이 다 지켜보는 자리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공개한 것이죠. 심청을 싫어하는 정적들도 이 자리에서 감히 심청을 비난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공양미 삼백석의 미담의 주인공으로 백성들이 감동하고 있는데 찬물을 끼얹을 용기를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죠. 왕도 마찬가지 였을 것입니다. 심청과 심봉사, 왕이 독대를 했다면 심봉사를 장인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심청에게도 실망했다고 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잔치에 참석했던 백성들이 왕과 왕후를 칭송하는데 이럴 수 없었겠죠. 심청은 이미 이런 것까지 계획하고 잔치를 벌이지 않았을까요.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취업됐다고 좋아만 하는 것은 심청이가 부활한 후 바로 심봉사를 찾아나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랬다가는 몇 년후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기 십상입니다. 취업이 안된다고 눈높이를 낮춰서도 안되고요.

 

심청이처럼 장기적인 계획을 통해 판을 바꿔야 합니다. 정치적 목적에서 실업을 방치하는 대기업과 정치권력의 결탁을 막아야 합니다. 이에 동조하는 경제학자와 언론도 가려내야 하고요. 정치적 목적에 의해 경제문제인 실업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으니 정치부터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촛불로 점화된 민심을 박근혜 끌어내리기에 그칠 게 아니라 재벌 개혁까지 이끌어내야 합니다. 심청이가 봉사 잔치를 연 것처럼 말이죠. 이렇게 정유유착의 큰 뿌리를 발본색원해야 다시는 구직자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는 강요를 더 이상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효녀인줄만 알았던 심청이에게 노동자들이 많이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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