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점쟁이가 자신의 집 도둑을 맞은 이유는? 본문
옛날 어느 마을에 용한 점쟁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점쟁이는 세상일을 모두 미리 내다볼 수 있는 재주가 있다고 알려져 있었죠. 마을 사람들도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이 점쟁이에게 찾아가 미래를 알려달라고 부탁하곤 했습니다. 물론 많은 금액의 복채를 내면서 말이죠. 어느 날 이 마을을 지나던 나그네가 이 점쟁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이 혀를 내두르며 용하다고 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나그네는 살짝 궁금해졌습니다. 이 점쟁이가 정말 그렇게 용할까. 그래서 이 나그네는 마을 장터에서 점을 보고 있는 점쟁이를 찾아갔습니다. 그러고선 점쟁이에게 이렇게 말했죠. “제가 점을 보기 위해 오던 중 마을동쪽에서 가장 큰 빨간 벽돌집의 문이 활짝 열려있고 안에 있는 물건이 모두 밖으로 나와 있더군요. 아무래도 도둑이 든 것 같아요.”
이 소리를 듣자마자 점쟁이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마을동쪽 가장 큰 빨간 벽돌집은 자신의 집이었기 때문이죠. 점쟁이는 나그네를 밀치며 죽자 살자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집은 멀쩡했죠. 그때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나그네가 말했죠.
“이보시오. 자신의 일도 내다보지 못하면서 어찌 남의 운명을 알 수 있단 말이오.”
이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도 점쟁이의 실체를 똑똑히 알게 됐습니다.
실제로 자신의 운명까지 정확히 아는 점쟁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주팔자나 타로카드 등도 통계학에 기반을 둔 것으로 과거를 맞힐 수는 있어도 완벽하게 미래를 점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도 하죠. 그래서 일부 점쟁이들은 사람들이 듣고 싶은 것을 말해준다고 실토합니다. 심리상담사처럼 사람들의 불만이나 괴로움을 듣고 그 사람에게 맞는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거죠. 당연히 미래를 점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점쟁이가 또 있습니다. 바로 경제연구소들입니다. 경제연구소를 점쟁이라고 하다니 말도 안된다고요. 사실 경제연구소가 점쟁이처럼 예측하지 않는 것은 맞습니다. 엄청난 데이터와 분석, 통계, 방정식 등으로 써서 정밀하게 계산해내죠. 그래서 소수점 한자리까지 붙여서 딱 부리지게 발표합니다. ‘몇 점 몇 퍼센트’라고 말이죠.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계산해낸 숫자에는 엄청난 설명이 따라붙습니다. 이렇게 예측한 숫자의 근거에 대해 자세한 해설까지 한다는 이야기죠. 따라서 경제연구소가 경제전망을 내놓으면 거의 모든 언론이 받아쓰기 바쁩니다. 이 전망치에 따라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할지, 호황에 대비해야 할지 등을 상세히 분석합니다. 재미난 것은 한 달 뒤, 한 분기 뒤도 아니고 일 년 뒤도 쉽게 내다본다는 점이죠. 심지어는 몇 년 후 전망까지 내놓습니다. 이를 토대로 정부는 예산과 세제 등 나라 살림의 기반을 잡고 기업은 경영전략, 사업계획 등을 만듭니다. 가계도 내년에는 지출을 늘려야 할지 말지를 검토하기도 하죠.
그런데 경제연구소에서 발표하는 전망치가 얼마나 정확할까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수재들이 모인 경제연구소에 발표한 전망치이니 만큼 틀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기상청 날씨 예보가 틀리면 난리를 치지만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틀리는 것을 발견해도 아주 예외적인 일이겠거니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설마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틀릴 리가 있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산업연구원은 지난 27일 2017년 경제산업전망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내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2.5%입니다. 올해 전망치 2.7%보다 0.2%포인트 내린 수치죠. 반기별로 보면 상반기는 2.4%, 하반기는 2.7%로 ‘상저하고’(上低下高)의 흐름을 띨 것으로 내겠다고 예상했습니다.
산업연구원은 내년 국내 경제가 움츠러드는 주된 이유에 대해 올해 성장을 견인했던 건설투자가 대폭 둔화하고 가계부채 부담과 구조조정의 여파 속에서 가뜩이나 부진한 소비가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특히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다 보니 국민의 지갑은 더욱 꽁꽁 닫힐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내년 민간소비 증가율 전망치를 올해보다 0.4%포인트 하락한 2.1%에 그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군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정국 혼란 장기화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은 성장률을 더 떨어뜨릴 수 있는 하방 위험 요소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더 끌어내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전망치를 끌어내릴 수 있다는 말이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아니 전망은 한번하면 끝 아닌가요. 상황이 바뀌었다고 전망치도 바꾼다는 것이 말이 되나요. 심할 경우에는 분기별로 내년도 전망치를 바꾸는 경제연구소도 있습니다. 이건 어제 맑을 것으로 예보했는데 아침에 빗방울이 보이면 예보를 다시 바꾸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예보를 중계라고 해야 하듯이 전망이 아니라 측정이라고 해야겠죠.
산업연구원만이 아닙니다. 다른 연구기관들도 줄줄이 내년 성장률을 끌어내리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발표된 내년도 성장률 전망치를 보면 한국개발연구원(KDI) 2.7%, 현대경제연구원2.6%, 한국경제연구원 2.2%, LG경제연구원 2.2% 등입니다. 특히 이들 기관의 전망치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본격화되기 전이기 때문에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 재미난 것도 있습니다. 각 연구소 간의 격차가 생각보다 크다는 점입니다. 한국개발연구원 2.7%와 LG경제연구원의 2.2%는 무려 0.5%포인트나 차이나는군요. 이게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엄청난 차이입니다. 우리나라 GDP가 약1666조8600억원이니까 성장률 0.5% 포인트 차이는 GDP 약 8조4000억원이나 차이나는 셈입니다.
그럼 정책 당국은 어떨까요. 현재 기획재정부의 공식 성장률 전망치는 3%입니다. 다른 기관들과의 격차가 상당히 있죠. 최고 0.8% 포인트나 차이가 납니다. 이 때문에 내부적으로는 2%대로 보는 기류가 엄연하다고 하는군요. 3%는 정책의지가 반영된 ‘목표치’이지 순수한 전망치는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도대체 누구의 전망이 맞을까요. 이것마저 또다시 전망해야 하는 불상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쯤되면 뭐하러 돈 들여가면서 전망하는지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실제로 국내외 주요기관의 우리 경제 성장률 전망치와 실제 성장률을 비교해보면 이런 의문이 더욱 짙어집니다. 국내외 9개 기관의 2011∼2015년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와 실제 성장률의 차이를 분석한 결과, 실제 성장률을 정확하게 예측한 기관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5년간 내놓은 성장률 전망치가 무려 45개에 달하는데 하나도 맞히지 못했습니다. 평균 오차는 무려 0.64%포인트나 됐습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가 1.08% 포인트로 가장 부정확했습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도 각각 0.92%포인트, 0.86%포인트로 부끄러운 수준이었습니다. 가장 정확한 것으로 분석된 한국경제연구원과 LG경제연구원의 평균오차도 0.64%포인트나 됐습니다. 학점으로 치면 낙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또 재미난 점은 이들 9개 기관이 5년간 내놓은 45개의 성장률 전망치 중 실제 성장률보다 낮았던 경우는 단 한 차례뿐입니다. 금융연구원이 2013년 성장률을 2.8%로 내다봤지만 실제 성장률은 2.9%였습니다. 나머지 44차례는 모두 전망치가 실적을 웃도는 낙관적 예측이었습니다. 특히 IMF는 2012년 우리 경제 성장률 전망치로 4.4%를 제시했지만 실제 성장률은 절반 수준인 2.3%에 그쳤습니다. 차라리 점쟁이에게 예측을 맡기는 것이 나을 정도입니다.
이에대해 장병화 한국은행 부총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국가에서 경제의 구조적 변화가 나타난 데다 최근 국내외에서 여러 가지 정치·경제적 불확실성 요인이 가세함에 따라 경제 전망의 오차를 줄이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틀릴 수 있다고 실토한 셈이죠.
문제는 이처럼 매번 빗나가는 전망치는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일본은 잘못된 경제 전망 때문에 20년 장기 불황에 빠졌습니다. 1990년대 초반 거의 모든 경제연구소가 경기호전을 예측해 당시 일본 정부는 구조조정을 미루고 단기부양책을 지속했습니다. 결국 부동산 거품이 터졌죠. 유로존 국가들도 2000년대 3년 후 성장률에 대한 오차가 1.9%포인트나 될 정도로 장기전망에 대해 낙관적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위기를 대비하지 않았던 유럽 국가들이 재정위기를 겪게 됐습니다.
따라서 기획재정부나 한은이 터무니없는 전망치를 내놓는 것은 전망능력 부재에 대한 핑계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자칫 살림을 말아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기업경제연구소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번 틀리는 전망치를 버젓이 내놓는 것은 직무유기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의심되는 점도 있습니다. 앞에서 점쟁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한다고 했던 것처럼 경제기관들도 듣고 싶어 하는 전망치만 내놓은 것은 아닌가하는 점입니다. 기획재정부나 한은은 정부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정부에서 듣고 싶어하는 전망치를 내놓기 때문에 기업연구소의 수치보다 높은 것은 아닐까요. 기업연구소도 기업들이 듣고 싶어하는 전망치를 내놓았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특히 최근 법인세 인상 논의가 한창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과세표준 500억원 초과 기업에 대해 법인세율을 25%로 올리는 안을 내놨고, 국민의당은 200억원 초과 기업에 대해 최고세율을 24%로 인상하는 안을 제시했습니다. 이러자 경제계가 국회에 법인세율 인상을 유보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법인세율 인상의 5가지 문제점과 정책대안’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경제성장률이 축소되고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논리죠.
소득 재분배와 국가 재정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법인세는 인상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법인세는 이명박 정부때 낮춘 것을 다시 정상화하는 것입니다. 특히 총 이득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율인 실효세율을 보면 17%에 불과합니다. 이는 OECD 국가 평균이 23%에 훨씬 못 미치죠. 높일 여력이 충분히 있는 셈입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기업연구소에서는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더 낮추고 싶을 것입니다. 실제로 더 낮춘 것 같기고 하고요. 법인세를 낮출 여력이 없다고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이솝우화의 나그네처럼 꾀를 내서 경제연구소들의 실체를 알아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좋은 방법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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