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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뒷이야기

끔찍한 아동노동착취···투표하듯 소비하면 끝낸다

경불진 이피디 2019. 12. 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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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파나라마' 한장면

숨 막히는 더위가 한창인 터키 이스탄불의 의류공장 지하. 에어컨도 없는 곳에서 10살 남짓한 아이들이 힘없이 재봉틀을 돌리고 있습니다. 주위에 있는 다른 아이들도 고사리 손으로 옷을 다짐해 힘겹게 포장하고 있죠. 또 한편에서는 얼굴에 마스크조차 착용하지 않은 어린 소년이 청바지를 표백하기 위해 위험한 화학물질을 뿌리고 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녀야 할 아이들이 왜 공장에서 일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놀라운 장면이 눈에 목격됩니다. 포장지에 자라, 망고, 막스앤드스펜서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로고가 보였기 때문이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영국 사회가 이 영상 때문에 발깍 뒤집혔습니다. 자신들이 즐겨 입는 옷이 누구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지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24(현지시간) BBC 탐사프로그램 파노라마는 터키에 있는 시리아 난민 어린이들이 유럽 대형 의류·유통업체 공장에서 이같은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열약한 환경에서 하루 12시간씩 공장에서 일하지만 시급이 터기 최저임금의 3분의 1에도 훨씬 못 미치는 4리라(1500)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 불법이 가능한 것은 지난해 터키에 들어온 시리아 난민 300만명 중 아동 40만명이 불법 노동에 동원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현재 터키에 있는 66만명의 시리아 난민 아동 중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15%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IS(이슬람국가)의 착취를 피해 목숨을 걸고 도망 왔지만 또다시 노동착취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죠.

 

파노라마가 전한 뉴스를 더 따라가 보겠습니다. 시리아 난민 아이들은 새벽부터 인력시장에 나가 일거리를 찾습니다. 중개상의 선택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공장 주변을 맴돌죠. 올해 13살이 된 소년은 파노라마와의 인터뷰에서 오늘은 운이 없어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학교에 가고 싶지만 돈을 벌지 않으면 가족이 살아갈 수 없다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또 다른 난민 소년도 우리도 스스로 학대받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해결책을 모른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럼 아이들의 부모는 뭐하고 있길래 아이들이 이렇게 방치하는 걸까요. 아이를 공장에 취직시킨 한 부모는 가족이 살기 위해서는 다른 선택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어른들이 일을 하면 풍족하지는 않으나 먹고 살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죠. 하지만 파노라마가 난민촌의 실상은 정말 참혹합니다. 유럽 대형 의류 업체 공장들이 난민 어른들을 쓰면 될테지만 임금이 비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아이들이 쓰고 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난민캠프에서는 어른들은 일자리가 없어 놀고 있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금의 아이들만 노동착취를 당하는 비정상적인 일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파노라마 제작팀은 터키에서 난민 아이들이 일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긴 했지만 실제로 목격한 상황은 너무 열악했다심지어는 7~8살 아이들도 공장에서 일을 했다며 고개를 떨궜습니다.

이런 아이들의 노동착취로 만들어진 제품은 버젓이 글로벌 브랜드의 로고를 달아 영국과 유럽, 전 세계로 팔려갑니다. 파노라마에 의하면 터키는 의류업으로 지난해 4000억달러(452600억원)이나 벌어들였습니다.

 

이에 대해 유럽의 대형 의류업체들은 어떤 해명을 할까요. 평소 윤리적인 기업운영 원칙을 강조했던 막스앤드스펜서는 터키에 감독관을 보냈을 때 아동 노동자는 한 명도 보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파노라마에는 10대 난민 어린이들이 막스앤드스펜서 터키 공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나옵니다. 그럼 이들은 유령일까요.

아소스, 넥스트, 자라, 망고의 답변도 비슷했습니다. 물론 터키 현지 공장들이 대부분 하청업체이고, 감독관이 나오면 아동 노동자들을 잠시 숨기는 식으로 조사를 피해간다고 하지만 이것으로 책임을 무마할 수 있을까요.

 

“기업들은 옷이 어디에서 또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지는지 알고 감시해야 할 책임이 있다”

 

기업 윤리를 감시하는 영국 비영리단체인 기업·인권 자원 센터의 대니얼 맥뮬런은 파노라마에서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잔혹한 전쟁을 피해 자신의 나라에서 피난 온 난민 어린이들을 따뜻하게 보살피지는 못할망정 자신들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니 정말 잔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른들도 견디기 힘든 12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가혹한 현실에 가슴까지 아려오고요. 그런데 이렇게 노동착취에 동원되는 어린이들이 시리아 난민 어린이들만일까요. 안타깝게도 더 있습니다.

 

특히 여러분들이 쓰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자동차도 어린이 노동착취의 산물이 들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올해초 국제앰네스티는 삼성, 애플, 소니 등 대기업에서 사용하는 상당수의 리튬 배터리가 심각한 노동착취를 통해 만들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국제앰네스티가 아프리카의 자원 개발을 감시해온 비정부기구 아프리워치와 함께 다국적 브랜드 16곳에 공급된 것으로 보이는 리튬 배터리에 쓰인 코발트를 추적한 결과 이런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코발트는 전자제품 배터리에 필수적으로 쓰이는 원료입니다. 그런데 전 세계 공급량 절반 이상이 장기 내전에 시달렸던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생산되죠. 그런데 국제앰네스티가 재래식 광산 5곳을 살펴본 결과, 무려 17명의 어린이가 노동에 동원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하루 1~2달러의 품삯에 마스크나 장갑도 제공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서 12시간씩 일하고 있었죠. 특히 7살짜리 어린이가 등을 펴지 못할 만큼 무거운 짐을 나르고 있는 장면도 목격됐다고 합니다. 일부 어린이들은 회사가 배치한 감시요원들에게 두들겨 맞고, 무허가 광산에서 일한 대가로 벌금을 강탈당하기도 했다고 국제앰네스티에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끔찍한 노동착취를 통해 캐낸 코발트가 여러 단계를 거쳐 삼성SDILG화학 등 글로벌 배터리 제조업체에 공급된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글로벌 업체가 없다는 점이죠. 삼성SDI도 국제앰네스티의 지적에 대해 아동노동 위반에 대해서는 일체 타협하지 않는다면서도 공급망의 복잡한 체계 때문에 현실적으로 삼성SDI로 조달된 코발트가 노동 착취 광산에서 온 것인지 자체적으로 확인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발뺌을 했습니다.

 

이 정도면 소비자들도 각성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린이 노동착취로 만들어진 제품을 사용하는 것을 거부해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이런 소비자 운동 덕분에 아동 노동 착취를 개선했던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글로벌 기업 나이키 이야기인데요. 1996년에는 조막만한 손으로 나이키 축구공을 바느질하는 아이의 사진이 미국 라이프지에 실려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당시 아이들은 시간당 15센트(120)만 받고 하루 11시간의 노동을 해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이키는 파키스탄의 하청업체가 아동에게 노동을 시킨 것이기 때문에 본사는 책임이 없다고 발뺌했었죠. 그런데 나이키의 어이없는 해명은 전 세계의 분노를 일으켜 나이키 불매운동이 일어나는 계기가 됐습니다. 결국 나이키는 매출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나서야 아동노동 금지 규칙을 선포했습니다. 이후 전 세계 공장에 소방시설과 비상구 등 안전시설을 갖추는 작업환경 개선에 나섰다고 합니다.

 

그런데 터키나 콩고민주공화국의 어린이들은 1996년 파키스탄 어린이들보다 1시간이나 더 극심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역사가 오히려 퇴보한 셈이죠.

 

물론 이런 항변도 가능할 것입니다. 자라나 망고 같은 저렴한 옷과 삼성·애플 같은 스마트폰을 거부하고 살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죠. 쉽지 않은 일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상품의 가격과 질만 따지던 기존 습관에서 벗어나 상품이 어떻게 생산됐고 생산과정에서 문제는 없었는지에 대한 관심을 가진다면 어려운 일만은 아니죠. 특히 최근에는 윤리적 소비를 하자는 운동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공정무역인증마크 부착해 파는 제품들도 이제는 쉽게 접할 수 있죠. 이런 운동에 동참하는 것만으로도 아동노동 착취를 일정부분 막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마크가 있다고 무조건 믿는 것도 안됩니다. 윤리적인 기업운영 원칙을 강조했던 막스앤드스펜서도 시리아 난민 어린이들이 착취하는 잔인함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를 쓴 코너 우드먼은 당신이 마신 이 커피가 우간다 부사망가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 줍니다라는 문구가 진짜인지를 직접 확인했습니다. 중국, 아프가니스탄, 콩고, 니카라과 등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위험한 나라 9개국을 누비며 공정무역 과정을 역으로 추적한 것이죠. 목숨을 건 여정에서 그가 목격한 것은 자본주의의 가장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의 비참한 현실이었습니다.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인 소비를 자신의 마케팅 수단으로 삼는 동안,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가난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공정 무역을 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세계 2위의 식품회사 크래프트 푸드의 자회사 캐드버리가 정작 사회 부담금으로 지급하는 비용은 초콜릿 1개당 2원도 채 안 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우드먼은 대기업은 스스로 착해지지 않는다소비자들이 현명해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현명한 소비자가 늘어날수록 기업도 윤리적으로 변하고 생산자들을 공정하게 대우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참 어렵죠. 공정무역이라는 가면을 쓰고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대기업들의 꼼수를 피할 현명한 방법은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합니다. 이에대해 세상을 바꾸는 착한 거래란 부제가 붙은 책 윤리적 소비는 쇼핑을 투표처럼 하라고 권합니다. 소비자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소비하라는 것이죠. 물건을 하나 사고 서비스를 하나 사용할 때도 싸고 좋은 것만 찾지 말고 좋은 일을 하는 기업과 남을 생각하는 착한 물건을 선택하라는 이야기입니다. 너무 쉽게 선택하지 말고 대통령이나 국회위원을 뽑을 때처럼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특히 싼게 비지떡이 아니라 지나치게 싼 것은 착취일 수 있다는 깨달음도 가져야 합니다. 물건 값을 저렴하게 만들기 위해 생산자들을 착취하는 대기업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비싼 것을 선택하라는 이야기는 더 더욱 아닙니다.

 

물건과 서비스의 생산자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는지를 확인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자라나 삼성처럼 생산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포기하면 안됩니다. 소비자 게시판 등을 통해 끊임없이 요구해야 합니다. 또 공정무역협회, 아름다운 재단 등 소비자 운동에도 관심이 기울여야 합니다. 꼼수를 부리는 대기업을 상대하려면 개인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기업은 태생적으로 돈을 건넬 소비자들의 움직임에 민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소비자들이 윤리적 소비에 관심을 보인다면 기업들도 윤리적 생산을 하게 됩니다. 대기업들이 스스로 착해지지 않는다는 주장처럼 대기업들도 소비자들 하기 나름입니다.

 

투표로 정치를 바꿀 수 있듯이 소비로 대기업들의 윤리도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귀찮다고 불편하다고 투표를 하지 않으면 정치도 바뀌지 않듯이 기업들의 광고만 보고 가격이나 품질만 따져 소비하면 끔찍한 아동착취도 끝없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아동착취를 끝내는 일도 바로 소비자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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