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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뒷이야기

삼성전자가 몰락해도 한국이 사는 길

경불진 이피디 2019. 12. 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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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에서는 위기가 다가올 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라고 충고합니다. 최악까지 각오하는 자세로 극복해야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죠.

 

글로벌 초일류 기업이 한방에 훅 가는 것은 종종 벌어지는 일입니다. 엔론, 월드컴, 리먼 브라더스 등 2000년대 이후에 파산한 기업도 수두룩합니다. 특히 삼성에 자주 비유되는 노키아도 빼놓을 수 없죠.

 

노키아는 한 때 핀란드 경제의 자랑으로 갤노트7 사태가 있기 전 삼성만큼 잘나갔던 기업입니다. 무려 13년 동안 세계 휴대전화 시장 1위를 지켜왔죠. 게다가 일반인들의 오해와는 달리 게으르지도 않았습니다. 정상에 오른 뒤에도 천문학적 자금을 연구·개발(R&D)에 투입하는 혁신을 추진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스마트폰 시대의 도래를 가장 먼저 인식한 곳도 애플이 아닌 노키아였습니다. 덕분에 노키아의 매출액은 한때 핀란드 GDP4%에 달할 정도로 절대적이었습니다. 세계는 핀란드를 두고 단일 기업 경제 체제라고 불렀습니다. 참고로 2013년 삼성그룹의 GDP 점유율은 4.7%이니 우리나라도 단일 기업경제 체제인 셈입니다.

 

문제는 노키아가 스마트폰 세상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는 점입니다. 복잡하고 콘텐츠도 부족한 스마트폰의 보급은 한참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휴대전화에만 집중했습니다. 애플이 아이폰으로 판을 흔들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죠. 노키아가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점진적 혁신을 추진하다 몰락의 길로 접어들고 맙니다. 어찌보면 노키아는 갤노트7처럼 커다란 위기를 겪지는 않았지만 몰락한 셈입니다.

 

문제는 노키아가 몰락한 다음의 핀란드 경제 상황입니다. 국내 언론들은 최근 핀란드 경제성장률이 추락했다며 아직도 노키아 몰락의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죠. 이 때문에 삼성을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국내 언론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핀란드 경제가 망가진 것은 아닙니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긴 했지만 오히려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여전히 세계 최고수준입니다.

 

일단 통계수치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국내 언론이 지적하는 데로 핀란드의 경제성장률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21.4%, 20130.8%, 20140.7%, 20150.5%로 형편없는 것은 맞습니다. 만일 우리나라가 이정도로 경제성장률이 추락했다면 나라가 절단 날 것처럼 난리가 났겠죠. IMF 위기 때보다 심각하게 여겼겠죠.

 

아무튼 경제성장률이 이렇게 추락했으니 당연한 1인당 국민소득이 추락하고 국민들의 삶의 질도 떨어져야 정상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핀란드의 1인당 국민소득이나 삶의 질은 끄떡없습니다. IMF 기준 2016년 핀란드의 1인당 GDP43492달러로 세계 16위입니다. 27633달러로 세계 29위인 대한민국보다는 여전히 훨씬 높습니다.

OECD가 발표한 ‘2016년 사회지표에서는 국민들 삶의 만족도가 7.4점에 달합니다. 스위스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에 이은 5위입니다. 5.8점으로 OECD 평균인 6.5점보다 훨씬 낮은 대한민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죠.

더 나아가 최근 미국 비영리단체인 사회발전조사기구가 발표한 ‘2016 사회발전지수에서 핀란드는 133개국 중 가장 살기 좋은 나라 1위에 올랐습니다. 기본적 인간 욕구(영양 및 기본 의료지원, ·위생, 주거, 개인안전), 웰빙의 기반(기초지식 및 정보·통신 접근성, 건강과 복지, 생태계 지속가능성), 기회(개인의 권리, 고등교육 접근성, 개인의 자유와 선택, 관용과 포용)분야 등을 종합 평가한 이번 조사에서 핀란드는 20157위에서 여섯 단계나 뛰어오른 셈이죠. 반면 우리나라는 26위에 불과합니다.

 

이런 수치가 무엇을 나타낼까요. 노키아의 몰락으로 핀란드 국가경제는 흔들렸는지 모르지만 국민들의 삶에는 전혀 변화가 없고 오히려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노키아 단일경제에서 다변화된 경제로 변하니까 경제 체력은 증가한 것입니다. 운동과 다이어트를 통해 군살이 빠지고 근육이 늘어난 것처럼 말이죠.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 국가 전체, 국민들도 고통 받게 된다는 성장론자들의 주장이 거짓임을 증명하는 셈입니다.

 

노키아가 망했지만 핀란드 경제가 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AP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노키아의 많은 직원들이 실업급여를 2년가량 받으면서 재취업하고 벤처기업을 창업하면서 핀란드 경제의 허리와 하체가 튼튼해졌습니다. 게다가 앵그리버드, 클래시오브클랜 등 핀란드산 게임들이 대박을 터트린데 힘입어 많은 신생 게임 개발회사들이 핀란드 경제에 에너지를 불어넣었습니다. 공룡기업 노키아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노키아의 빈자리를 작고 빠른 벤처기업들이 메꾸면서 핀란드 경제체력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고 AP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삼성이 망해도 걱정 없을까요, 우리나라 경제도 더욱 강해질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전제조건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죠. 지금처럼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절단날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삼성 체제를 굳건히 하려고 하면 오히려 우리경제는 망가질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경영권이 비정상적인 총수일가의 지배체제 유지를 용인하는 것은 경제적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삼성과 한국경제를 망치는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갤노트7 사태 이전에 삼성전자가 몰락해도 한국이 사는 길’(미래를소유한사람들 펴냄)이란 책에서 삼성 위기론을 설파했던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위기를 벗어나려면 지금이라도 총수일가를 정점으로 한 수직계열화 지배구조부터 타파해야 한다는 주장이죠. 삼성전자 부품의 상당부분은 수직계열화에 따라 계열사나 내부거래에서 조달하고 소유구조는 총수일가가 삼성생명과 삼성물산 등 계열사를 통해 지배하는 형태는 위기가 닥쳤을 경우 치명적이라고 박 교수는 지적합니다. 혁신이라는 그럴싸한 명문을 내세워 지배구조 개혁을 등한시했다가는 더욱 나락으로 빠질 수 있다는 이야기죠.

 

더 나아가 현재처럼 삼성집중력이 큰 상태에서 삼성이 몰락한다면 우리경제의 충격은 IMF보다 더 클 것이라고 예견합니다. 스마트폰 판매 부진 등으로 인해 삼성전자 주가가 최전성기 대비 70% 하락할 경우, 삼성그룹 지배 체제의 핵심 고리인 삼성생명과 삼성물산 주가도 각각 70%, 63% 급락하고 하청업체가 줄도산할 것이란 예측이죠. 삼성전자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도 19조원에 달하는 손실을 보며 무너지게 되죠. 여기에 은행 부실도 필연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박교수는 한국경제가 노키아 리스크를 극복했던 핀란드와는 다른 상황이라고 강조합니다. 박교수의 지적처럼 핀란드는 재벌지배구조가 없었기 때문에 창조적 파괴로 살아날 수 있었지만 삼성은 아직도 총수 일가의 말 한마디에 그룹전체가 휘둘리죠. 실제로 블룸버그는 최근 갤노트7 사태를 언급하면서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던 이재용 부회장의 리더십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삼성의 관련부서 임원들 가운데 아무도 잡스 시절 애플의 팀 쿡과 같은 권위를 갖지는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마디로 애플은 스티브 잡스 시절부터 관리의 대가인 팀 쿡을 2인자로 키우면서 리스크를 관리해 왔는데 삼성은 2인자가 없는 일방독주를 하다 이번 위기를 맞았다는 주장이죠.

 

이런 상황부터 극복해야 자칫 삼성의 위기가 오더라도 핀란드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박 교수는 구체적인 해법도 내놓았습니다. 이스라엘의 경제력 집중법처럼 기업 소유 지배 구조 개선, 금산 분리, 경제력 집중 우려 기업의 참여 자격 위원회 설립 등을 지금 당장 실행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현시점에서 삼성이 갤노트7사태를 잘 마무리하고 오래오래 일등기업으로 살아남는다면 가장 좋은 시나리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일등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국내 언론들의 지적처럼 혁신만 하면 삼성 갤노트7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역사적으로 봐도 영원할 것 같던 로마도 몰락의 길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삼성도 예외일 수 없죠. 혁신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노키아가 트렌드 변화를 감지하지 못해 몰락한 것처럼 삼성전자도 갤노트7 사태로 인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장담하기 힘듭니다. 혁신이란 말로 지배구조 개혁을 외면하면 갤노트7 사태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요약해보면 국내언론의 호들갑처럼 삼성이 몰락한다고 우리경제가 바로 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체력이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엔 전제조건이 필요하죠. 삼성의 창조적 파괴를 말이죠. 이런 점에서 갤노트7 사태가 한국경제의 천운일 수 있습니다. 노키아처럼 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몰락했을 경우 충격파가 엄청 날텐데 갤노트7 사태로 삼성전자에 대해 온 국민이 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삼성도 위기를 겪을 수 있구나”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란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고요. 창조적 파괴란 말처럼 삼성의 지배구조를 창조적으로 파괴한다면 오히려 삼성도 살고 대한민국 경제도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요. 위기는 기회란 말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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