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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경불진 이피디 2019. 9. 30.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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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화면캡쳐

2의 가습기살균제 사태가 또다시 일어나지 않게 징벌적손해배상제 도입이 필요하다.”

최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같은 의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11일에는 공익법률단체인 공익인권법재단 공감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도 동일한 주장을 하고 있죠. 도대체 징벌적손해배상제가 뭐길래 가습기살균제사태와 같은 기업의 악의적 행위를 막을 수 있는 방태로 떠오르고 있을까요.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가해자 또는 가해 기업의 죄질이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이라고 판단될 때 부과되는 처벌적 배상 제도를 뜻합니다. 기업이 불법행위를 통해 영리적 이익을 얻은 경우 이익보다 훨씬 더 큰 금액을 손해배상액이나 과징금으로 부과해 유사한 불법행위의 재발을 억제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죠. 지하철 무임승차를 하면 원래 요금에 30배의 벌금을 부과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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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꽤 오래전부터 시행돼 왔습니다. 1763년 영국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영장 없이 압수·수색을 당한 출판업자 허클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를 냈습니다. 이 때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됐죠. 당시 영국 법원이 판결문에서 징벌적 배상이라는 표현을 쓴 이후로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주로 영미법계 국가로 파급돼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법을 링컨법이라고 부릅니다.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대통령 링컨의 이름이 왜 들어갔을까요. 1863년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을 한창 지휘할 때 부정한 방법으로 정부계약을 따내고 재정보조를 받은 기업이 적발됐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이 기업에게 정부가 입은 손해액의 3배를 환수하라고 명령했다고 합니다. 이 덕분에 징벌적 배상에 링컨이란 이름을 붙었다고 합니다. 최근 미국 법무부 통계국에 따르면 전체 손해배상 청구소송 가운데 약 10%가 징벌적 손해배상 형식으로 청구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2002년 범죄수익 환수법률(Proceed of Crime Act)이 제정돼 범죄수익 환수를 위한 재산환수청을 설치해 범죄수익을 몰수 또는 환수하고 있습니다.

 

그럼 징벌적 손해배상 대표적 사례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미국 존슨앤드존슨의 베이비 파우더 사건이 유명합니다. 미국의 한 소비자가 지난 40년간 베이비 파우더를 여성위생에 사용하다가 5년 전 난소암 진단을 받은 뒤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의 법원은 베이비 파우더와 난소암의 관련성이 인정된다면서 존슨앤드존슨 회사 측에 약 630억 원을 배상할 것을 판결했습니다. 도대체 이런 천문학적 배상액의 근거가 뭘까요. 630억 원 가운데 60억 원은 피해 보상에 해당하고, 570억 원은 징벌적 손해배상액에 해당합니다. 존슨앤드존슨이 활석 가루의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파우더의 성분을 바꾸거나 위험을 경고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고객들의 건강과 안전보다 이익을 우선한 존슨앤드존슨에 철퇴를 내린 셈이죠.

1992년 맥도날드 사건도 대표적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꼽힙니다. 미국의 한 할머니가 커피를 구입한 뒤 뚜껑을 열다가 엎질렀는데 이 과정에서 수술이 필요한 정도의 화상을 입었습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일반 손해금에 추가해 64만 달러(65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습니다. 맥도날드가 커피가 너무 뜨겁다는 소비자 불만을 수백 건이상 받고도 제대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연간 매출이 거의 50조원에 달하며 세계 제약업계 1, 2위를 다투는 거대제약사 화이자도 최근 징벌적 손해배상의 제물이 됐다고 합니다. 화이자는 지난달 27일 미국 법무부와 78500만 달러(8932억 원)를 미국 정부에 배상해주기로 합의했습니다.

화이자의 자회사 와이어스가 영세민 의료보호제도인 메디케이드에 약값 바가지를 씌운 혐의로 미국 법무부가 민사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지 7년 만에 법적 분쟁을 접고 바가지 씌운 금액의 3배가량을 '징벌적 배상금'으로 내기로 한 것이죠.

이 때문에 화이자의 지난 4분기 실적이 7000억원 흑자에서 196억원 적자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2011년에야 처음으로 하도급법에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유망기술을 가로채 유용한 경우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채택했습니다. 이후에도 경제민주화와 소비자권익 신장 차원에서 확대적용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으나 자본의 방해에 막혀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자 박근혜 대통령은 안전사고 책임과 관련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검토하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의 후속 검토에 이은 입법은 전경련 등 생산자단체의 전방위 로비 때문에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사회 이슈화되면서 또다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논의가 표면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현재의 손해배상제도로는 배상액이 미미해 기업들의 악의적이고 지속적인 불법행위를 막기 힘듭니다. 따라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야 대기업처럼 구조적 강자에 의한 불법행위를 뿌리 뽑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 악의적이고 지속적인 불법행위를 억제하고 예방하는 효과라는 측면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형벌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환경 또는 인권 침해 등 실제 손해를 입증하기 어려운 사건도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현행법에서는 소송과정에서 소비자가 피해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죠. 가습기 살균제 경우에도 문제가 있어서 우리 아이가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라고 하는 것을 피해자 측에서 증명해야만 합니다. 억울해도 그냥 넘어가라는 얘기죠. 따라서 집단소송제도 동시에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집단소송제는 피해자 중 한 사람 또는 일부가 가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하면 다른 피해자들은 별도 소송 없이 그 판결로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입니다. 개개인이 별도로 소송을 할 경우 비용과 노력의 낭비가 발생하는 것을 막고, 소송가액이 크지 않아 포기하기 쉬운 소액피해자들에게 재판의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동일한 피해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일한 배상을 받는 게 상식에도 맞고요. 우리나라는 2005년 증권 분야에 국한해 집단소송제를 도입했으나 소송 요건이 까다로워 지금껏 소송 실적이 6건에 불과한 상태입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를 도입하려는 시도는 여러차례 있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19대 국회에서 여러 관련 법안을 제출했습니다. 서영교 의원은 기업의 제조·광고·담합·판매 등에서의 불법행위로 인한 소비자 피해에 대해 집단소송제를 적용하는 소비자집단소송법을 대표발의했습니다. 우윤근 의원은 민사소송법에 집단소송 특례를 도입하는 집단소송법을, 김기준 의원은 증권집단소송제의 소송 요건을 완화한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 개정안을 제출했죠. 백재현 의원은 제조물 결함 피해에 최대 12배 이내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게 하는 제조물책임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물론 일각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도입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사회 저변에 확산되고 있는 반기업 정서와 맞물려 소송 남발이 우려된다는 지적입니다. 나아가 배상금이 너무 과도하게 부과되는 등 그 폐해가 클 것으로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 수치로 손해배상청구소송 건수가 어느 정도 늘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제도가 가지는 억제 기능도 고려돼야 할 것입니다. 과중한 손해배상금의 부담으로 인해 악의적이고 고의적인 불법행위를 어느 정도 제한하는 순기능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과도한 배상금에 대한 염려 역시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법률 규정으로 징벌적 손해배상 금액을 실손해액 대비 일정한 배수 한도 이내 금액으로 설정하는 방법 등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실정에 맞는 제도를 도입한다면 순기능이 역기능보다 많지 않을까요. 기업하기 좋은 나라 이전에 국민이 살기 좋은 나라가 우선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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