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리얼리티쇼와 북미정상회담 본문
리얼리티 쇼에 대해 여러분은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아마도 리얼리티 쇼하면 무한도전을 떠올리시는 분이 많으실텐데요. 실제로 무한도전은 국내 리얼리티쇼의 원조격이라고 여겨지고 있죠. 그럼 국내 말고 전세계 원조는 어떤 프로그램일까요?
리얼리티 쇼의 원조는 네덜란드에서 1999년 가을에 방영된 ‘빅 브라더’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조지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처럼 9명의 사람들이 100일 동안 한집에 사는 모습을 24대의 카메라와 59개의 마이크로 촬영해 시시콜콜 방영한 최초의 사례입니다. ‘사람이 구경거리가 될 수 있는가’ ‘관음증을 돈벌이에 이용한다’는 비판이 거셌지만 ‘빅 브라더’는 일주일에 여섯 번씩 모두 114회에 걸쳐 방영되면서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죠.
이보다 앞서 1973년 한 가족의 일상을 소개한 미국 PBS의 ‘아메리칸 패밀리’가 원조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대박을 터뜨린 리얼리티 쇼는 2000년 2월에 방영된 폭스 TV의 ‘누가 백만장자와 결혼하고 싶어하는가’였습니다. 백만장자와 결혼하겠다는 여성들을 공개 모집해 한 시간 만에 결혼을 성사시키는 내용이었죠. 2000년 8월 CBS TV의 ‘서바이버’도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이 프로는 한 무인도에서 16명의 사람이 생존 투쟁을 벌이는 게임으로 최종 승자는 100만 달러를 차지하는 형식이었습니다. ‘백만장자’가 현대 미국인의 탐욕을, ‘서바이버’가 처절한 적자생존의 본능을 각각 보여줘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리얼리티쇼는 보통사람들을 출연시켜 그들의 사생활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장치를 통해 시청자의 엿보기 심리를 충족시켜주는 형식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죠. 이같은 형태의 프로그램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 장르중 하나로 각인된 상태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리얼리티쇼는 연예인이나 연예인 가족들이 등장하는 것이 좀 다르지만요.
이런 인기가 대통령을 만들기도 합니다. 바로 트럼프가 대표적이죠. 미국인들에게 도널드 트럼프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결정적 계기는 미국 NBC 리얼리티 비즈니스 쇼 ‘수습사원’이었습니다. 2004년 시작된 이 프로는 참가자 가운데 끝까지 살아남은 한 명이 연봉 25만 달러를 받고 트럼프 회사에 정식 직원으로 채용된다는 내용입니다. 이 프로에서 트럼프는 한 명씩 떨어뜨릴 때마다 “넌 해고야! (You are fired)”를 마구 내뱉었고 이 말은 유행어가 됐죠. 이 리얼리티 쇼가 트럼프의 대중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철저하게 계산된 프로그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그가 대통령에 출마한 뒤였습니다.
그런데 리얼리티쇼가 왜 이렇게 인기있을까요? ‘바보상자의 역습’을 쓴 미국 칼럼리스트 스티브 존슨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리얼리티 쇼의 전율은 ‘정말로 일어나고 있구나’라는 데서 생기는 것이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포르노가 거대 사업으로 성장하기 전, 실제 성행위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떨림처럼 말이다. 거짓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감정들이 밀려와 얼굴에 드러나는 단 0.5초의 시간일지라도 지금 TV에 나오는 사람의 표정은 연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시청자들을 열광케 하는 이유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죠.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황상민도 리얼리티쇼의 인기에 대해 이런 설명을 하죠.
“사람들이 진짜 관심을 가지는 건 정치나 사회, 관습 등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 자체다. 즉, 타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특정 상황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한 것이다. 이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고, 내 마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과거엔 우리 속 동물들을 보며 내 모습을 발견했다면, 지금은 리얼 프로 속의 ‘인간 동물’을 구경하면서 내 모습을 발견한다. 또 낯선 이성에 대한 유혹이나 극단적인 상황에서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는 출연자들을 보면서 평소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숨겨진 욕망을 대리만족하기도 한다.”
이 설명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고요. 대중들이 리얼리티 쇼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 최강 미국 대통령까지 된 트럼프가 리얼리티 쇼에 직접 출연했고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요?
1987년 트럼프가 40대 초에 낸 자서전 ‘협상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을 쓴 대필 작가 토니 슈워츠의 해석이 재미있습니다. 대필이라고 하니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실 수 도 있지만 외국 유명인들은 자서전을 대필 작가에게 맡기고 이를 공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이 책에는 트럼프가 토니 슈워츠와 함께 썼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무튼 슈워츠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무려 18개월 동안이나 사업가 트럼프를 인터뷰하고 관찰하고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슈와츠 보다 트럼프를 잘 아는 사람이 몇 안된다는 이야기겠죠.
그런데 슈워츠가 트럼프와 자서전 작업을 하며 겪었던 이야기에서 재미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작가가 와서 인터뷰를 한다면 어떨까요?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를 써달라는 의미에서 인터뷰 협조도 잘하고 심지어는 잘보이려고 노력도 하겠죠.
그런데 트럼프는 달랐다고 하네요. 슈워츠는 언론에 대놓고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트럼프와의 인터뷰는 책을 쓰는데 별 도움이 안 됐다고요. 이게 뭔 말일까요? 트럼프는 자기 자서전을 쓰겠다는데도 인터뷰를 따분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트럼프의 대답은 단답형에 그쳤고, 그나마 옆으로 새기 일쑤였다는 군요.
그럼 슈워츠는 자서전을 어떻게 썼을까요? 슈워츠가 고심 끝에 생각해낸 방법이 기막힙니다. 트럼프의 통화를 엿듣는 것이었죠. 트럼프 자리 옆에 트럼프 전화와 연결된 전화를 따로 설치해 두고 전화통화를 엿듣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혹시 오해가 있을까 말씀드리지만 물론 트럼프의 허락을 받고 나서 했던 일입니다. 도청은 아니라는 말이죠. 하지만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죠. 슈워츠도 처음에는 이 방법이 가능할까 의심했다는 군요.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인터뷰는 그렇게 시큰둥하게 반응했던 트럼프가 전화를 했다는 180도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달라졌냐고요. 슈워츠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는 사람들을 가지고 놀았어요. 통화를 하면서 아첨도 하고 협박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화를 낼 때조차 트럼프의 행동은 언제나 계산된 행동처럼 보였죠. 특히 내가 엿듣고 있는 것을 즐기는 듯한 발언도 자주 했습니다. 만약에 30만 명이 엿듣게 할 수 있었다면 트럼프는 훨씬 더 행복해했을 겁니다.”
놀랍지 않나요. 슈워츠를 엿듣고 있다는 것을 알고 더 활기차게 행동했다니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죠. 하지만 트럼프는 이런 관심을 즐겼다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슈워츠가 인상적으로 느꼈던 부분도 재미납니다. 전화통화를 마칠 때 트럼프는 ‘Goodbye’를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사말 대신 이런 말을 했다고 하죠.
“당신은 최고예요!”
이에 대해 슈워츠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트럼프한테는 두 종류의 사람밖에 없어요. ‘쓸모없는 루저(loser)’, ‘거짓말쟁이’거나 아니면 ‘최고(the greatest)’거나.”
트럼프의 평가에서 중간인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죠. 양극단만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생각해보세요. 트럼프가 그동안 언급했던 사람들의 평가를 보면 실제로 양극단만 존재합니다. 이번 김정숙 여사에게 보낸 “Fantastic Woman”이라는 극찬과는 달리 일본 아베에게는 쳐다보거나 악수도 하지 않는 ‘일본 패싱’을 저질렀잖아요. 정말 고소하게도 말이죠. 게다가 김정은에 대한 트럼프의 평가도 극과 극을 오갔죠. ‘꼬마 로켓맨(little rocketman)’에서 ‘사랑에 빠진 사람(fell in love)’으로 돌변했잖아요.
그럼 궁금증이 하나 생깁니다. 트럼프에게 이 양극단을 가르는 기준이 뭘까요? 한때 트럼프의 개인변호사였던 로이 콘의 이야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트럼프보다 19살이나 많은 로이 콘은 지난 1986년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로이 콘은 트럼프의 멘토로 불리죠. 실제로 트럼프는 자신의 사무실에 콘의 사진을 걸어놓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콘의 이력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1950대 미국 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있죠. 바로 미국판 ‘빨갱이 사냥’으로 불리는 매카시즘이잖아요. “국무성 안에는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황당한 주장으로 시작된 매카시즘은 미국 정치사에 큰 상처를 낳았죠. 이 매카시즘을 주도했던 인물이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인데요. 매카시의 대표자문을 맡았던 사람이 바로 로이 콘입니다.
실제로 콘은 1951년 스물네 살 나이에, 원자폭탄 설계도를 소련에 넘긴 혐의로 체포된 로젠버그 부부를 기소해 유죄 판결을 이끌어 내면서 유명해졌습니다. 이 일로 연방수사국(FBI) 에드거 후버 국장의 눈에 띈 콘은 매카시의 수석보좌관으로 발탁된 뒤 국방부 내 공산주의자 색출에 나섰다가 역풍을 맞고 물러났죠. 이후 고향 뉴욕에서 변호사로 개업한 그는 1960, 70년대 뉴욕에서 마피아 두목이나 돈 많은 유명인사들의 변론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마의 변호사’로 유명해졌습니다.
그럼 트럼프와 콘은 언제 만났을까요? 뉴욕에서 부동산 사업을 막 시작한 트럼프는 1973년 아버지의 소개로 콘을 만났다고 합니난다. 이후 콘은 흑인에 대한 부동산 임대를 고의적으로 회피했다는 소송부터 트럼프가 첫 아내 이바나와 결혼할 때 ‘이혼 시 트럼프로부터 받은 모든 재산을 포기한다’는 결혼 전 각서 작성까지 트럼프의 골치 아픈 일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았죠. 두 사람은 의뢰인과 변호인의 관계를 넘어 단짝이 됐습니다. 하루에도 다섯 차례 이상 통화하고 당시 유명 디스코텍이던 ‘르 클럽’의 단골로 생일파티도 함께 했죠.
이 덕분에 둘 사이엔 비밀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놀랍게도 콘은 동성애자로 1986년 사망 사유도 에이즈였습니다. 극소수만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트럼프도 그중 한 명이었죠. 콘은 죽기 두 달 전 과거 자신이 저지른 비리들이 들통 나 변호사 자격이 박탈됐습니다. 트럼프는 당시 콘을 위해 증언대에 섰죠.
이런 콘에게 트럼프가 배운 것이 뭘까요? ‘철저히 이익에 따라 행동하라’입니다. 로이 콘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트럼프는 상대방이 도움이 되면 좋아하고 그렇지 않으면 덤벼듭니다. 그건 개인적인 친분이랑 상관없습니다. 상대방이 뭘 해줄 수 있느냐가 중요한 거죠.”
실제 최근 트럼프의 행동은 보면 그렇지 않나요? 자신의 재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에게는 살갑게 대하지만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는 아베는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잖아요.
이런 행동은 슈워츠가 트럼프를 위해 쓴 ‘협상의 기술’에서도 미리 예견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 기간 ‘협상의 기술’을 앞에 내세울 정도로 좋아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대선 기간 중에 이런 이야기도 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협상의 기술’을 썼던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웃기지 않나요? 정작 협상의 기술을 쓴 사람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슈워츠잖나요. 실제로 슈워츠는 이런 트윗도 날렸다는 군요.
“도널드 트럼프, 저한테 대통령 출마를 권유하시다니 고맙기도 하시지. ‘협상의 기술’은 제가 쓴 거니까요.”
아무튼 트럼프가 협상의 기술을 앞에 내세운 이유가 뭘까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중국과의 무역적자를 보세요. 이란 핵협상을 보세요. 저는 협상을 성사시켜서 부자가 된 사람입니다. 협상은 제가 하는 일이고, 잘 하는 일입니다.”
실제로 트럼프는 대통령이 된 후 중국과의 무역 분쟁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또 오바마의 업적이었던 이란 핵협상은 보기 좋게 뒤엎어버렸고요. 엉터리 ‘Deal’이라며 틈만 나면 오바마를 조롱하기도 하죠. 즉 협상의 천재는 자신인데 자신이 주도하는 협상이 아니면 다 무시하는 것이죠. 즉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유는 보다 큰 협상을 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국가나 국민, 평화 등 거창한 목적이 아니라 보다 더 큰 협상을 위해서라는 것이죠.
실제로 트럼프의 행동을 보면 G20에서 별 논란거리가 없는 다른 나라 정상을 만날 때는 활력이 없어 보이더니 뭔가 협상해야 할 나라의 정상을 만날 때는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중국 시진핑이나 일본 아베를 만날 때 말이죠. 뭔가 큰 것을 얻어내야 하는 협상가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엿볼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김정은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죠. 오바마 등 전임 대통령도 해결하지 못했던 북핵문제를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를 증명하려는 열정도 보였고요. 한 마디로 트럼프는 협상을 할 때 가장 대통령다웠다는 말이죠. 대통령이 채신머리없다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트럼프 같은 센터욕심이 큰 자기과시형 인간에게는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따라서 트럼프는 앞으로도 자신이 주목받을 수 있는 협상의 달인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어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고요. 그동안 역대 어느 미국 대통령도 다루지 못했던 골치 아픈 북한과의 협상이 성공하는 모습으로 협상의 달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죠. 덤으로 내년 재선 성공이 따라올 것이라 여기고 있고요.
협상의 달인 이미지를 원하는 트럼프에게는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주면 됩니다. 어려운 협상을 트럼프의 결단 덕분에 이끌어낸 것처럼 보여주면 된다는 것이죠. 이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배려가 빛나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이런 성격을 알고 이번 제 3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조연 역할을 자처하신 것 아닙니까?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이었던 것이죠. 실제로 지난해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제기됐을 때 “노벨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받고 우리는 평화만 얻으면 된다”고 이야기하셨잖아요. 만일 조연이라고 폄하하고 있는 자한당이나 보수언론의 주장처럼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회담에서 전면에 나섰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졌을까요? 센터를 빼앗겼다고 분노하며 김정은은 만나지도 않고 그냥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아무튼 슈워츠가 트럼프를 위해 쓴 ‘협상의 기술’이나 트럼프의 멘토 콘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트럼프에게 주목받을 수 있는 자리만 계속 만들어 주목받을 수 있게 만들어 주면, 트럼프에게 협상의 달인이라는 칭송이 쏟아지게만 만들면 종전선언은 물론이고 한반도 평화는 곧 다가올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런 기대를 하게 되는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트럼프는 제3차 북미정상회담을 마친 뒤 곧바로 오산 미 공군기지로 이동했는데요.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장병을 격려한 것인지 자신이 격려 받은 것인지 좀 헷갈렸는데요.
아마 보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트럼프의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죠.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등장이었습니다. 록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전용 헬리콥터 ‘마린 원’까지 연단까지 진입했고요. 그리고 문이 열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하자 뜨거운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마치 BTS 등장처럼 말이죠.
이런 함성을 트럼프는 마음껏 즐기는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도 했죠.
“역사적이고 훌륭한 순간이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넘을까요?’라고 물었고 나는 ‘영광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군사분계선을 넘었고, 뒤를 돌아 모두 행복해하는 걸 봤습니다.”
이후 트럼프는 그동안 갈고 닦은 리얼리티 쇼 진행자다운 모습을 뽐냈죠.
“폼페이오 장관 나오세요. 그리고 또 누가 있을까요? 이방카라고 아세요?”
폼페이오 장관과 함께 딸인 이방카 선임 보좌관을 소개한 것입니다. 오산이 떠나갈듯한 함성이 터진 것은 물론이고요.
멋진 쇼를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간 트럼프는 또다시 트위터에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지난 사흘간 너무 많은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며 미국을 위해 굉장한 일로. 많은 것이 성취됐다.”
이와 함께 판문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악수를 나누면서 김 위원장의 어깨를 툭툭 치며 친근감을 나타냈던 모습. 김 위원장의 안내를 받으며 군사분계선을 넘어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북한땅을 밟은 장면. 김 위원장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거나 악수를 하는 도중에 김 위원장의 손등을 두드리는 모습 등을 담은 1분짜리 편집 영상도 트워터에 올렸더라고요.
특히 김정은을 만나기전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비무장지대 오울렛 초소에서 개성공단을 바라봤던 장면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문 대통령과 함께 김정은을 배웅했던 모습도 나오고요. 물론 철저히 트럼프 대통령 위주로 편집됐지만요.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리얼리티 쇼의 성공 비결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리얼리티 쇼를 좋아했거나 좋아하셨나요? 그 이유는 뭔가요? 아마도 국내 시청자들중 상당수는 리얼리티 쇼하면 아직도 무한도전을 꼽으실 것입니다.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하하, 정형돈 등 다소 덜 떨어져 보이는 연예인들이 불가능해보이는 도전을 성공시키는 장면에 재미는 물론 감동까지 받았었죠.
특히 2010년에 도전했던 프로레스링은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힙니다. 일곱 명의 멤버들은 1년간 깨지고 다치고 부딪치며 레슬링을 익혔고, 장충체육관에서 실제 시합까지 선보였잖아요. 그 과정에서 흘린 땀과 눈물을 미니시리즈 형식으로 담은 ‘레슬링 특집’은 예능을 넘어 한편의 드라마 또는 다큐멘터리라는 찬사를 받았고요. 그런데 이런 찬사를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연출이나 꼼수를 배제하고 실제로 멤버들이 땀과 눈물을 흘리며 도전했기 때문입니다. 레슬링의 레도 모르던 멤버들이 동작하나 하나를 익히고 그 과정에서 부상을 당하는 장면들이 진정성을 부여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리얼리티쇼가 그냥 쇼가 아니라 진짜라는 공감을 시청자들에게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반면 말만 리얼리티쇼라고 하고 지나친 연출을 가미했던 프로그램은 줄줄이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시청자들이 진정성을 느끼지 못해 공감하지 못한 탓입니다.
진정성과 공감에 대해 마케팅 컨설턴트인 비키 쿤켈은 ‘본능의 경제학’이란 책을 통해 이렇게 질문합니다. 국가 운명을 책임질 대통령을 뽑기 위한 토론 프로그램이나 아카데미 시상식보다 리얼리티쇼가 인기있는 비결이 뭘까요? 그냥 재미있기 때문에?
쿤겔은 심리적 현장감으로 설명합니다. ‘심리적 현장감’이란 실제로 그 현장에 있는 것이 아닌데도 마치 자신이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을 말하죠.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타인의 행동이나 의도, 감정을 머릿속에서 재현, 추측, 모방하며 그로 인해 인간의 공감 능력을 담당하는 신경세포인 ‘거울 뉴런’ 덕분에 이런 심리적 현장감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울 뉴런은 대통령 토론 프로그램이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정형화된 형식에서 잘 짜여진 각본같은 연출에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하지만 무한도전이나 수습사원과 같은 날 것 같은 리얼리티쇼를 볼 때면 우리가 마치 도전자가 된 것처럼 감정이입을 하며 마음 졸이며 TV를 봅니다. 심지어는 우리가 레슬링을 하고 있다는 착각까지 하게 되죠. 유재석이 고통을 당하면 나도 아픈 것 같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거울 뉴런의 작용으로 심리적 현장감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무려 11년 동안이나 리얼리티 쇼 ‘수습사원’을 진행했던 리얼리티쇼의 달인 트럼프가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습니다. 시청자들의 거울 뉴런을 자극하고 심리적 현장감을 선사해야 리얼리티 쇼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안다는 것이죠. 또 진정성을 잃으면 한방에 훅간다는 것도 트럼프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트럼프에게는 북미정상회담 등 김정은과의 협상은 그야말로 리얼리티 쇼입니다. 미국인은 물론 전세계 시청자들의 거울 뉴런을 자극하려면 진정성이 반드시 담보돼야 한다는 것이죠. 잘 짜여진 정상회담보다는 이번과 같이 날 것같은 깜짝 만남의 정상회담이 더 효과적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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