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일본 부동산 거품이 빠진 진짜 이유는 ‘00 실종’? 본문
요즘 부동산 시장이 심상치 않다는 사실은 다들 아실 것입니다. 그동안 부동산 불패, 오늘이 가장 싸다를 외쳐왔던 언론들도 얼마전부터 태세전환에 들어갔는데요. 지난주 금요일에는 ‘2차 하락 현실화?…서울 아파트값 29주만에 꺾였다’며 30년 전 일본의 부동산 거품 붕괴를 떠올리는 듯한 기사가 쏟아지더라고요. 정말 일본처럼 부동산 거품이 꺼질까요?
그런데 여기서 잠깐. ‘일본 부동산 거품은 왜 꺼쪘을까요?’ 금리 때문인가? 플라자 합의 때문인가? 아마 지협적으로는 알고 있는 분들도 계실테지만 전반적인 흐름은 대부분 모를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일본 패전 이후의 경제사를 살펴보면서 부동산 버블이 왜 생겨났고 왜 꺼질 수 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떤 대비를 해야 하는지 등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애청자 여러분들은 일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고려시대 왜구,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등 우리에게 도움되는 나라는 아니었죠. 오히려 우리를 발판 삼아 발전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으실텐데요.
근현대사를 봐도 그렇습니다. 미국에게 까불다가 원폭 한방에 나가떨어진 일본은 그야말로 악몽같은 전후를 맞이합니다. 미군의 공습이 거의 모든 산업 시설은 파괴됐죠. 특히 그동안 무수히 수탈했던 우리 농산물이 사라지자 먹고 살기조차 힘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본이 갑자기 경제가 좋아졌습니다. 물론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에 많은 지원을 하기 했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일본 경제가 극적으로 살아난 계기가 있거든요. 다들 짐작하다시피 한국전쟁. 우리에게는 동족상잔의 비극이지만 일본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였죠.
한국전쟁을 위한 군수품을 보급할 수 있는 기지로 일본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일본에는 수많은 공장이 생겨나고 산업이 발전하게 되죠. 게다가 평화헌법으로 군대를 가질 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엄청난 국방, 군사비는 미국이 맡게 됐죠. 일본은 이 돈을 경제 발전시키는데 쓸 수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가 발전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였죠. 미국으로써도 일본, 그리고 한국까지 경제가 발전해야 공산화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대규모 원조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https://youtu.be/UfK0Xv5FWBI?si=-2SwheAGp-kWajtz
이때 일본이 눈독을 들인 산업이 바로 반도체입니다. 일본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졌죠. 미국도 원천기술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으니 일본이 반도체 제조하는 것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 1980년대 전세계 반도체 상위 1~3위는 물론 10개 기업중 5개를 차지하죠. 이를 바탕으로 일본은 전자왕국으로 우뚝서게 됩니다.
문제는 이런 일본의 성장세를 용인해 왔던 미국의 심경변화였죠. 좀 키워줄까라고 생각하면 귀엽네라고 바라보다보니 자칫 사자새끼를 키운 것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죠. 특히 미국 경제가 괜찮았다면 이런 의심을 하지 않았을수도 있었겠지만 미국은 1960년대 후반부터 무려 15년 간이나 베트남 전쟁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면서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했거든요. 1971년 미 대통령 닉슨이 금본위제를 폐지할 정도로 말이죠.
여기에 중동전쟁까지 겹치면서 달러 가치는 폭락하고 폭발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달립니다. 그러자 그 유명한 연중 의장 폴 볼커가 하루밤 사이에 금리를 4%포인트나 끌어올리는 등 기준금리를 20% 가까이 금리를 올려야만 했죠. 이 때문에 미국 중소기업의 약 40%가 도산하는 등 극심한 혼란에 빠집니다. 이런 고금리정책으로 달러 가격이 급히 치솟아 미국의 많은 산업 군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오프쇼어링 현상까지 벌어지죠. 그야말로 미국 제조업이 초토화 돼 버렸죠.
그러자 JVC, 소니, 파나소닉, 도요타, 혼다, 캐논 등 전세계를 주름잡는 일본 기업들이 꼴보기 싫어진 것이죠. “좀 키워주려고 했더니 기어올라”란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1985년 일본을 비롯해 독일, 프랑스, 영국 등 4개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을 불러 모웁니다. 그러면서 그 유명한 플라자 협정을 하는데요. 한마디로 일부로 환율을 높게 만들어 미국에 물건을 팔아먹는 짓 그만하라고 미국이 협박한 것이죠. 강력한 군사력을 앞세우니 이런 협박이 가능했겠죠. 그런데 협박만이 아니죠. 바로 미국 제조업이 수출할 수 있도록 달러가치를 낮추겠다고 공언합니다. “이에 토 달면 죽음이야”라고 했겠죠. 일본을 비롯해 독일, 프랑스, 영국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겠죠. 강력한 소련이 버티고 있는데 미국 도움이 없다면 당장 공산화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고요.
https://youtu.be/56KrXwlIBFw?si=kyNRtnkBDuBw_OPV
그런데 이걸로 끝이 아니었죠. 1986년엔 미일반도체협정을 맺습니다. 덤핑 방지법과 서스펜션 협정에 의해 공정가격 이하로 반도체 수출이 금지되죠. 또 일본에서의 미국산 반도체 점유율 20% 사용을 약속합니다. 이후 2차 3차 더 강화된 반도체 조약을 체결하면서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사양산업으로 전락하게 되죠.
이러자 경제동물로 불리던 일본 경제가 정말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10%를 넘나들던 경제성장률이 1986년 2.8%로 추락하죠. 이러면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일본 정부와 재계가 들고 나온 돌파구가 좀 이해하기 힘듭니다. “수출이 힘들면 내수로 돌리면 되지”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도 그럴것이 일본은 인구 강국이죠. 무려 1억 2000만명으로 세계 12위. 게다가 1인당 국민소득도 당시 2만5000달러가 넘는 세계 8위 수준이었습니다. 일본 기업이 만든 물건을 사줄 수요가 국내에 충분히 있다는거죠. 그래서 일본 기업들은 자국 국민들 취향에 맞는 제품을 주로 만들게되죠. CD보다 작은 MD라던지 일본에서만 팔리는,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팔리지 않는 독특한 제품이 있잖아요. 그런 제품들을 만들어도 돈을 벌 수 있으니 일본 기업들은 손 쉬운 선택에 빠져듭니다. 아무래도 전세계인 취향보다는 자국 국민 취향을 맞추는 것이 수월할 수 밖에 없죠. 그래서 일본이 동떨어진 섬을 뜻하는 갈라파고스라고 불리는 거죠.
이렇듯 쉬운 선택을 하다보니 일본 기업들 사이에서는 혁신이 사라지고 말죠. 대충 만들어도 일본 국민들이 사주니 게으름과 나태함에 빠집니다. 여기에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기죠.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 놓고 돈 먹기가 확산되기 시작했는데요.
이는 일본 대장성이 큰 실수로 여겨지고 있죠. 우리나라의 기획재정부에 해당하는 대장성이 일반 기업들에게 투금계정을 합법화해줍니다. 투금계정은 투자신탁회사들이 은행에 자금을 유치하고 투신 업무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인데요. 이것을 일반 기업들까지 확대한 것인데요. 쉽게 말해 기업도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할 수 있도록 개방한 것입니다.
이게 뭐가 문제냐고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큰 파장을 낳게 됩니다. 열심히 기술 개발하고 수출하고 영업해서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손쉬운 방법이 생겨났기 때문이죠. 투금계정 합법화로 인해 기업은 자본이득세를 한 푼도 안 내고 증권사 투금계정에 돈을 넣으면 재테크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이런 재테크로 큰 돈을 번 기업들이 어떻게 했을까요? 기술개발이나 수출 등 본업에 투자했을까요? 그럴리 없죠. 이 돈을 부동산을 구입하는데 쏟아 붙습니다. 돈을 더 불리기 위해서죠. 이런 방식으로 기업들은 떼 돈을 벌었죠. 재무재표 상에는 자산이 크게 늘어납니다. 이를 본 투자자들은 기업이 영업을 잘 한 것으로 착각하고 주식을 사모으기 시작했죠. 그러자 주가가 뛰기 시작했죠. 한마디로 기업들은 본업을 제쳐두고 돈 놓고 돈 먹기를 통해 큰 돈을 만졌습니다.
https://youtu.be/IyGMX0I0c30?si=vU_Y9w4LZ9n1yK8X
때마침 플라자합의로 환율이 떨어지자 일본 정부와 은행은 금리 인하를 단행합니다. 나빠진 수출 경쟁력을 설비투자 확대, 소비 증대 등으로 만회하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이미 주식과 부동산이 뛰고 있는데 금리까지 낮아지자 은행에서 돈을 빌려 주식과 부동산을 사는데 모든 기업과 국민들이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죠.
특히 당시 일본은 LTV(loan to value raton, 주택담보대출비율)가 얼마였을까요? 무려 120%. 예를들어 1억짜리 집을 사기 위해 돈을 빌리러 가면 1억2000만원을 대출해준다는 이야기인데요. 도대체 말이 안되죠. 하지만 당시 일본은행들은 최소한 집값이 1.2배 상승한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이러니 부동산을 사지 않으면 바보라는 분위기까지 조성되죠.
다만 여기에 문제가 있죠. 일본 기업이 혁신을 한 것도, 기술개발을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경제펀더멘털이 더 나빠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불편한 진실은 사상 최대의 호황이라는 지표로 가져진 것이죠. 그러는 사이에 바닥부터 일본 경제는 썩어 들어간 것이고요.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동서 냉전이 종식될 무렵, 당시 일본이 전 세계 부의 20%나 차지했습니다. 일본 도쿄 땅을 팔면 미국 전체를 다 사고도 남는다는 황당한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였죠. 그런데 당시 시가총액 기준 전 세계 10대 기업 중 7곳이 일본 기업일 정도 일본 경제는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일본의 경제 호황은 가파르고 험난한 내리막길을 타고 내려가죠. 그런데 이런 일본 경제 추락의 주범에는 일본 정부의 오판이 빠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https://youtu.be/x7jHfOqAE48?si=sIYFc4v0jgUBUBaj
앞서 부동산을 사지 않으면 안 사면 바보라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자산 보유자와 비보유자 간 격차가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도시와 지방 간의 격차도 벌어지게 되고요. 지금의 한국처럼 말이죠. 당시 대도시에서 집을 사기 어려워진 일본 서민들은 일본 정부와 여당을 향해 불만을 드러냅니다. 도대체 뭐하냐는 거죠. 그러자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은 자산 거품을 없애야 한다는 것을 숙원 사업처럼 생각하게 됐죠.
1989년 새로 취임한 일본은행 총재 미에노는 연 2.5%까지 내려와 있던 기준금리를 연 3.25%로 이어 10월에 3.75%에서 4.25% 1990년에는 6%로 급격히 올립니다. 금융긴축 의지를 분명히 했고 부동산대출총량 규제까지 제도화 했는데요. 금융기관이 대출 상황을 감독 당국에 보고하도록 의무화까지 했습니다. 부동산 거품을 빼겠다고 나선 것이죠.
여기에 1989년 3% 소비세까지 신설했습니다. 사회보장 재원 마련을 위해 오랜 세월 진통을 겪었는데 인플레이션 압력도 뺄 겸해서 만든 것이죠. 긴축이 필요했기 때문에 필요한 조치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속도. 일본 경제의 펀더멘털이 무너진 상태에서 주식과 부동산 투자로만 돌아가고 있었거든요. 바로 탈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시중에 돈이 마르고 주가는 곤두박질치며 대출 규제로 추가 대출을 받을 수는 없고 금리 상승에 의해 이자와 원금을 감당하지 못한 매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며 지가는 가파르게 하락했죠.
그러자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한 은행과 증권사들도 연쇄적으로 도산하고, 그 은행에 담보를 맡긴 사람들도 함께 파산을 해요. 버블이 붕괴되면서 대출이 묻은 곳은 모두 파국이었죠.
자산시장이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폭락하게 됩니다. 1990년 주가부터 급락하기 시작해 1992년 6월 초 1만 6000대를 찍어 고점 대비 반토막이 났고 2002년까지 78%로 하락했습니다. 땅값은 1985년부터 1990년까지 3배로 뛰었는데 1990년부터 10년간 연평균 10%씩 떨어졌고 2000년에는 1985년 수준으로, 2016년까지 연속 하락했습니다.
집값은 1992년 하락세로 돌아선 뒤 2005년 바닥을 칠 때까지 계속 떨어졌으며 2006년부터는 도쿄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오르락내리락했지만, 2015년 기준 1993년의 60% 수준으로 30년간 40% 폭락했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잃고 빚 부담을 지게 됐으며 기업은 1991년부터 1996년간 5만 개 넘게 파산하며 잃어버린 30년을 겪게 됩니다.
잃어버린 30년간 일본의 1인당 GDP는 겨우 1.02배 성장하는데 그쳤죠.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인해 이때 일본의 저출산이 굉장히 심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집들도 작아지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https://youtu.be/wAVSbzp02a4?si=loQYjzFzMEtlPa_4
정리해보자면 일본은 한국전쟁과 소련을 막기 위한 미국의 지원으로 경제발전을 이뤘지만 지나친 성장에 미국이 플라자합의로 제동을 걸었죠. 이 때 일본이 산업구조를 좀 더 혁신적으로 개선할 기회가 있었지만 쉬운 길을 선택합니다. 1억2000명이라는 내수 시장만 바라보는 갈라파고스화된 것이죠. 기업들이 혁신을 점점 멀리하고 있을 때 이를 되돌려야 할 일본 정부가 기업들에게 주식과 부동산 투기의 장을 열어줬고 일본 국민들마저 주식·부동산 투기에 매몰됩니다. 하지만 지나친 호황에 불안감을 느낀 일본 정부가 거품을 빼기 위해 금리인상과 소비세 신설에 나서자 혁신이 사라져 펀더멘털이 약해진 일본 경제가 급격히 흔들립니다. 소비는 급감했고 주식과 부동산은 폭락해버렸죠. 일본은 30년 장기 불황에 빠져든 과정입니다. 즉 미국의 플라자 합의 강요라는 외부 변수도 있었지만 일본 스스로 혁신을 버리고 투기를 선택한 것이 장기 불황의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많은 면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신가요? 정부는 내년도 R&D 예산을 무려 17% 가까이 줄여버렸죠. 기업들도 내년 사업 계획을 세우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합니다. 그런데 기업들의 사내 유보금을 갈수록 늘어나고 있죠. 올해 초엔 삼성전자의 사내 유보금이 145조원을 넘어서면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을 정도인데요. 기술 개발 등 투자는 멀리하고 돈 놀이에 빠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많은 국민들과 기업들이 부동산을 사면서 가계·기업부채는 무려 1800조가 넘죠. 무역수지 적자는 195억 달러에 달하고 경제성장률은 3분기에도 0.6%에 머물렀고요. 오히려 일본보다 펀더멘탈이 더 나쁜 상태죠. 따지고 보면 일본이 30년 불황에 빠지기 전보다 더 상황이 나쁩니다. 이럴때일수록 정부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경제살리기에 나서야 할텐데요. 가장 힘든 서민들을 보살필 정책을 내놔야 할텐데요. 그런데 이런 경제 위기를 만든 주범이 바로 현정부이니 큰 기대를 하기 힘들지 않을까요? 일본과 같은 장기 불황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뭔가 빠른 선택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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