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파레토법칙의 역설 본문

경제 뒷이야기

파레토법칙의 역설

경불진 이피디 2019. 11. 15. 17:30
반응형

‘20%80%를 먹여 살린다로 풀이되는 경제이론이 있습니다. 바로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가 주창한 파레토 법칙입니다. 파레토법칙은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현상의 80%20%의 원인으로 발생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28법칙으로 불리죠.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이 법칙이 성실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개미로부터 유래됐다는 점입니다. 개미와 배짱이라는 동화가 있을 정도로 모든 개미는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하지만 파레토가 개미집단을 자세히 살펴봤더니 진짜 열심히 일하는 개미들은 20% 정도였고 나머지 80%는 특별히 열심히 하지 않고 대충 일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탄생한 것이 바로 파레토 법칙입니다.

 

파레토법칙은 미국 경영컨설턴트인 조셉 주란에 의해 일반화됐고, 경영학 분야에 도입돼 다양한 산업에서 마케팅 전략은 물론 인사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20%의 우수직원이 나머지 80%를 먹어살린다는 식으로 말이죠. 이를 극단적으로 표현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한 사람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파레토 법칙은 경제 침체기나 기업이 어려울 때 구조조정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80%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중요한 20%를 찾아내 그것에 투자를 하고 나머지는 과감히 정리를 하면 기업 성과가 증대된다는 생각한 거죠. 이 때문에 실적이 뛰어난 인재들만을 남기고 나머지 직원들을 속아내려는 CEO들은 파레토 법칙을 맹신하기까지 합니다.

 

지난 박근혜 정부가 전방위에 걸친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행하려고 했습니다. 공무원과 교사는 물론 금융 공기업도 대상입니다. 사실 정부는 1999년부터 공무원 성과급제를 시행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지방자치단체들이 공무원 반발 탓에 성과급을 균등 배분해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였죠. 하지만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이 공공부문에서 구조개혁을 선도할 수 있도록 120개 공공기관에 대한 성과연봉제를 확대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우선 기획재정부는 도입 대상인 120개 기관 가운데 15개 기관이 노사합의를 완료했다며 도입을 재촉하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이에 행정자치부도 성과급 활성화를 위해 연간 한 차례 지급하던 성과급을 매월 나눠 지급하고 나눠 먹기적발 시 징계 조치와 형사 고발 방침을 결정했죠. 교육부 역시 지난 12일 교육공무원 성과상여금 지급지침을 전국 교육청에 내려 보냈습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거나 공공기관에 민원을 한번이라도 제출해본 사람이라면 이런 식으로라도 공무원들의 비효율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정부의 이런 조치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한번 봅시다. 일반기업은 물론이거니와 공공기관도 직원들에 대한 평가방식은 파레토 법칙을 따른 상대평가가 주류입니다. 어느 수준이상이면 된다가 아니라 전체 직원을 줄 세워놓고 위부터 %대로 자른다는 것입니다.

 

교육부의 교육공무원 성과상여금 지급지침을 보면 상대평가 방식으로 최고 등급인 S등급은 30%, A등급은 40%, 나머지는 B등급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올해 근무평가에서 최고 등급인 S등급을 받은 교사는 442만원선, 최저등급을 받은 교사는 274만원선으로 상여금의 차이가 168만원에 이르게 되죠. 어찌보면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일 잘하면 더 많이 받을 수 있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현실에서는 일 잘하는 사람보다 윗선에 아부 잘하는 사람이 높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놓습니다. 성과금 등급은 대부분 근무성적평정과 부서장 평가를 합산해 매겨집니다. 일단 근무성적평정의 경우 승진의 잣대로 사용되기 때문에 고참자에게 높게 주는 것이 일종의 관행입니다. 개인의 능력이나 성과와 관계없이 고참일수록 높은 근무성적평정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죠. 부서장 평가라는 완충장치를 뒀지만 믿을 만한 게 못됩니다. 객관적으로 계량화된 평가지표가 없기 때문에 부서장과의 친분에 따라 움직일 소지가 너무 큽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도 있습니다. 성과연봉제를 빌미로 회사의 불만이 많은 직원들을 솎아낼 수 있습니다. 회사의 부조리를 지적하거나 내부 고발은 한 직원은 어찌 되겠습니까. 아무리 좋은 성과를 올려도 부서장 평가를 제대로 받기 힘들 것입니다. 근무성적평정도 마찬가지겠죠. 최하 등급을 주고 이를 빌미로 상여금을 깎아 자존심을 무너뜨려 자연스럽게 나가게 만들고 이래도 안나가면 저성과자라는 낙인을 찍어 퇴출시키는 것도 가능합니다. 한마디로 한번 찍히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정부에서는 이런 의도는 없다고 잡아뗄 것입니다. 기울여져가는 한국호를 살릴 수 있는 비책은 성과 연봉제 도입 말고 뭐가 있느냐고 항변할 것입니다. 파레토 법칙에서 배운 것처럼 하위 80%를 끊임없이 경쟁시켜야 상위 20%처럼 성과를 올릴 수 있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는 파레토 법칙을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파레토 법칙을 탄생시켰던 개미의 습성을 살펴보니 백수가 있는 개미 집단이 모든 개미가 일하는 집단보다 오래 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놀라운 연구결과는 일본 홋카이도대학의 하세가와 에이스케 교수가 영국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게재한 논문에 담겨있습니다.

 

하세가와 교수는 안정적인 개미집단에서는 거의 일을 하지 않는 개체가 20~30%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이로 인해 단기적 생산 확률이 낮아지기 때문에 왜 이 개체들이 존재하는가는 큰 수수께끼였죠. 하세가와 교수가 일개미 1200마리를 8개 집단으로 나눠 관찰한 결과, 개미의 일 가운데 알에 금이 발생하지 않도록 돌보는 등의 누군가가 항상 하지 않으면 집단 전체에 치명적 피해를 끼치는 일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일하지 않는 개미가 있는 집단과 없는 집단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비교했죠.

 

그 결과, ‘백수 개미가 있는 집단은 일하는 개미가 지쳐서 휴식을 취할 때에도 알을 돌보는 등의 일을 담당하는 개미를 항상 확보할 수 있어 장기간 존속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 개미의 관찰에서도 일하는 개미가 지쳐서 휴식을 취하면 일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던 개미가 일을 대신 했습니다. 반면 백수개미가 없는 집단은 단기 생산성은 높은 것 같지만 결국 치명적 피해를 입고 무너진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쉬지 않고 일만하는 조직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이야기죠.

 

하세가와 교수는 더 재미난 연구도 했습니다. 아예 열심히 일하는 일개미와 반대로 노는 개미들을 나눠 각각의 집단을 만들어 봤습니다. 당연한 열심히 일하는 개미들이 모인집단의 성과가 클 것이라고 예상한 거죠. 하지만 결과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면 열심히 일하는 개미만 모인 집단에서는 이중 20%가 노는 개미로 전락했고 노는 개미들로만 집단에서도 20%만 놀고 나머지 80%가 열심히 일을 했다고 합니다. 결국 저성과 개미를 솎아내는 것이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바꿔 이야기하면 저성과자가 성과를 못내는 것은 스스로의 문제이기보다 시스템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성과자를 여유인력을 생각하고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다면 효율만 내세워 직원들을 몰아치는 것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말도 됩니다.

 

하세가와교수는 얼핏 필요하지 않다고 보이는 일하지 않는 개미도 집단의 장기적 존속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도 포함해 단기적인 효율을 지나치게 요구해 경쟁만 강요하면 조직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혹시 개미 사회에만 이런 게 아닐까요. 승승장구하다 1992년 창사 이래 첫 적자를 냈던 일본 후지쓰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상대평가의 성과주의를 도입했습니다. 목표를 정해 철저한 상대평가로 성과에 따른 연봉제를 실시하고 저성과자를 솎아냈죠. 그런데 별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급기야 2001년에는 사상 최대의 적자를 냈죠.

 

미국 GM2002년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직후부터 사무직 직원들을 상대로 이른바 서구식 연봉제를 강하게 밀어붙였습니다. 과장급 이상에만 실시하던 연봉제를 2003년 모든 사무직으로 확대했고, 2006년에는 각 개인별 성과주의를 강화해 금융시장의 펀드개념을 도입하기도 했죠. 일정 기간의 능력과 성과를 수익률처럼 환산해 임금 인상 때 반영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10년간 이어온 한국지엠의 성과 중심 연봉제는 막 내리고 과거와 같은 연공급제로 되돌아갔습니다. 과도한 성과주의 실행으로 되려 노동의욕 저하를 초래하고 직원 간 노하우 전수나 멘토링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었죠.

 

스포츠에서도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막강한 자금력으로 최정예 선수들로만 구성된 팀이 반드시 우승하는 건 아닙니다. 최근 한화 이글스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대어급 FA를 영입해 올해 최고 연봉 구단에 올랐지만 성적은 꼴찌입니다. 원정 특별 타격훈련 등 절대적인 훈련량은 최대이지만 실책은 가장 많습니다.

 

이 정도면 인간사회에서도 백수가 있는 조직이 훨씬 더 안정적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이 때문인지 1980년대부터 관리자를 시작으로 공무원 등에 대한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던 영국 등에서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2000년대 들어 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이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정부도 개미가 주는 교훈을 보고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구성원들을 성과에 따라 솎아 내려고 할 것만 아니라 구성원 개개인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자율적인 업무 시스템과 신뢰부터 구축해야 하지 않을까요. 시스템도 갖추지 않은 채 경쟁만 강요하는 것은 조직의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