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당신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본문
“당신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군요. 당신 생각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을 뿐 아니라 객관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아요.”
대화 도중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 불쾌해 하실 것입니다. “맞아요. 당신 말대로 나는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이에요. 내 생각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객관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아요”라고 순순히 인정하는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나만큼 깨어있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라고 생각하시면서 말이죠. 성별, 종교, 인종, 정치적 성향에 관계없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하고 있다고 항변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동안 어떤 평향적인 행동이나 말을 해보지 않았다고 하시면서요.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오늘 살펴볼 책은 ‘우리 뇌는 왜 늘 삐딱할까?’입니다. 책 제목부터 무척 삐딱해 보이죠. 저자 자체가 매우 삐딱한 사람이더라고요. 하워드 J. 로스라는 분인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남성입니다. 하지만 2012년 여성단체 다양성 여성이 수여하는 상을 받았습니다. 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흑인 대학 베넷 대학에서 미국 최초 백인 교수로 일했던 경력도 있군요. 현재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비즈니스 컨설팅을 하는 ‘쿡 로스 주식회사’를 운영하며 메릴랜드주의 도시 실버 스프링에서 아내와 네 명의 아들, 여섯 명의 손자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시죠. 그는 사회적 편견을 받는 흑인, 여성 등을 자주 접하며 직적 목격했던 모든 인간이 지닌 중요한 요소이자 습관 중 하나인 편견, 편향성의 개념과 실체를 이 책을 통해 날카롭게 파해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건의 관찰과 다양한 실험을
가지고 와서 인간의 편견 및 극단적 편향성과 무지함이 야기할수 있는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일들에 대한 주의를 촉구합니다. 이를 통해 저자 자신도 수많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별 차이 없는 인간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의식과 행동을 교묘히 조종하는 편견과 편향성에서 함께 벗어나자며 해법도 제시합니다.
그러면 스스로 편견에 빠져있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다음 내용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2011년 6월 30일, 시카고 텔레비전 방송은 전날 저녁 시카고의 파크 매너 인근에서 일어난 십대 총기 사고에 대한 방송을 내보냈습니다. 몇 년 동안 그 도시에서 일어난 일련의 총기 폭력 사고 중 가장 최근 일어난 사건이었죠. 한데, WBBM은 방송 도중 4세의 어린 흑인 소년을 인터뷰한 내용을 내보냈습니다. 어떤 내용이었을까요?
소년: 난 아무것도 무섭지 않아요.
리포터: 그래? 용감하구나! 어쨌든, 어른이 되면 총을 멀리할 거지?
소년: 아뇨.
리포터: 아니라고? 그럼 어떻게 할 건데?
소년: 총을 가질 거예요.
엄청 오싹해지는 인터뷰 아닌가요? 뉴스 앵커도 “정말 무섭군요”고 소리쳤습니다. “어린아이까지 저런 말을 하다니 와우!”하면서요.
그런데 얼마후 노스웨스턴 대학의 저널리즘 교육을 위한 로버트 메이너드 기관 연구자들이 그 인터뷰 전체를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를 입수했습니다. 그 비디오는 언론인이 아닌 주변 사람들이 인터뷰를 녹화한 것이었죠. 한데 전체 영상을 보니 아이의 진술이 나온 정황은 놀랍게도 완전히 딴판이었습니다.
리포터: 꼬마야, 너는 아무것도 무서워할 것이 없어. 아무튼 어른이 되면 총을 멀리할 거지?
소년: 아뇨.
리포터 아니라고? 그럼 어떻게 할 건데?
소년: 총을 가질 거예요.
리포터: 정말? 그걸로 뭘 하려고?
소년: 경찰이 될 거예요!
리포터: 오케이! 경찰이 되면 총을 가져도돼
완전히 다르지 않나요? 만일 백인 소년이 앞서 대답을 했더라고 이런 식으로 편집했을까요? 우리는 이 소년이 흑인이었다는 이유만으로 훗날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는 편견에 빠졌던 것입니다. 흑인=폭력이라는 잘못된 이미지가 각인된 것이죠. 특히 이런 이미지를 강화시키기 위해 언론이 인터뷰를 짜깁기 한 것입니다. 사회가 망가지거나 말거나 하이에나처럼 자극적인 것만 쫓는 언론의 나쁜 습성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죠.
이는 미국만의 일은 아니죠. 국내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너무나 많습니다. 최근 아름다운재단에서 하고 있는 ‘열여덟 어른’ 캠페인도 이런 잘못된 편견을 이겨내기 위한 것입니다. 흔히 ‘고아’로 불리는 아동들은 아동복지법에 따라 보육원이나 위탁가정에서 생활하다 대부분 만 18세가 되면 퇴소해야만 합니다. 이런 청소년을 보호종료아동이라 부르죠.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매해 2600명이나 됩니다. 그런데 겨우 열여덟살에 혼자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요? 경제적으로 말이죠.
더 큰 문제는 사회의 편견입니다. 도둑이 들어도, 강도가 발생해도 주변에서는 따가운 시선으로 이들을 의심한다는 것이죠. 부모 없이 자랐는데 도덕관념이나 제대로 있겠냐는 거죠. 이런 편견 때문에 직장에서 쫓겨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아름다운재단은 우리 사회에 이런 잘못된 편견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호종료아동도 같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애청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편견은 가장 공정할 것으로 여겨지는 스포츠에서도 만연하다고 합니다. NBA를 좋아하는 애청자 여러분들이 많으실텐데요. NBA 심판은 과연 얼마나 공정할까요? 세계 최고의 심판들이 모여 있으니 엄청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 교수 저스틴 볼퍼스와 코넬대 경제학과 대학원생 조지프 프라이스는 1991년에서 2003년까지 12년 동안 치러진 경기를 모두 분석했다고 합니다. 그 수많은 경기에서 선언된 60만 건이 넘는 반칙을 심층 분석한 것이었죠. 그 결과가 놀라운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백인이 심판을 맡을 경우 흑인 선수에게 반칙을 선언한 비율이 백인 선수에게 한 것보다 눈에 띄게 높다는 것이었죠. 그럼 그 반대의 경우는 어땠을까요? 흑인 심판 역시 흑인 선수보다는 백인 선수에게 반칙을 선언한 비율이 높았으나, 백인 심판이 흑인 선수에게 반칙을 선언하는 것만큼 편파적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놀랍죠?
그래서 볼퍼스와 프라이스는 박스 스코어의 스포츠 데이터도 분석했습니다. 그들은 선수들의 포지션, 개인 통계, 뛰는 시간, 올스타 지위를 포함하여 광범위한 요소들을 세밀히 분석했습니다. 그런 다음 각 그룹이 코트에 있는 시간을 검토하고, 홈 경기와 원정 경기의 차이를 분석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인종의 심판이 투입되었을 때 선수들의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턴오버 점수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상관관계도 알아냈습니다. 이 실험 후 그들은 “경기에서 자신과 다른 인종의 사람이 심판을 볼 때 선수들의 활약상이 모든 면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결론을 내렸죠.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도 백인 심판이 있는 경우에는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농구마니아인 안정환 부장님···.
그럼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 인간이 지닌 편견·편향성은 온통 부정적이기만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상황에 따라 편견·편향성은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가진 습관에서 편견·편향성을 완전히 뿌리 뽑는다면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할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심리학자 조지프 레독스는 편향성을 우리가 생각할 기회를 얻기 전에 사람이나 상황의 안전을 결정하는 무의식적 ‘위험 탐지기’로 불렀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아주 먼 옛날 당신이 강에서 물을 긷는 사람과 마주쳤다고 가정해보죠. 당신은 상대방이 적인지 당신 편인지 지체 없이 결정해야만 합니다. 순간의 잘못된 선택은 당신을 위험한 상황에 빠뜨릴 수 있고 자칫 죽음으로 몰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죠. 이런 결정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만큼 살아남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진화 과정에 이런 결정을 자연스럽게 학습한 것입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길을 건널 때 위험에 대해 ‘편향적’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이게 뭔소리일까요?
아이들이 길에서 공을 차며 뛰어가거나 걸어서 학교에 갈 때 커브 길을 만나면 무조건 멈추라고 이야기합니다. 난로가 뜨거운지 뜨겁지 않은지 판단하도록 가르칠 때도 그런 식으로 합니다. 성급하게 덥석 만지지 말고 조심스럽게 만져보도록 반복해서 가르칩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방식은 우리 유전자 안에 각인되어 있으며, 우리 안의 편향성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편향성이 전혀 없는 세상에 산다고 상상해봅시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올 때 그가 친구인지 적인지 어떻게 알아챌 수 있을까요? 천차만별의 수많은 상황에서 어떻게 일일이 올바르게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을까요? 그런 상황에서 우리 안의 편견·편향성은 위험 탐지기 역할을 충실히 감당할 수 있다고 저자는 귀띔해줍니다.
긍정적인 편견·편향성이 원천적으로 빠져 있다면 위험한 상황에서 적절하고도 지혜롭게 대응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는 치명적인 위험에 빠지거나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편견·편향성은 무조건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며,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긍정이 너무 지나쳐 부정적으로 흐르는 편견·편향성인 것이죠. 특히 특정 문화집단, 계층, 성별, 종교, 지역, 연령, 직업군, 국적·나라 등에 대한 편견·편향성이 혐오와 배척으로 나타니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가짜뉴스’와 ‘왜곡’ 현상이 일어나 기존에 가지고 있던 편견과 편향성을 더욱 공고히 다지는 기능을 하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다음 이야기는 최근 우리사회를 흔들었던 공정 논란과도 연결될 듯 합니다. 우리의 선생님인줄 알았던 의사들이 국민을 볼모로 파업을 하며 공정을 거론했잖아요. 국가가 주도하는 의대설립은 불공정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죠. 의사 증가율이 OECD 최고인데 공공의대까지 설립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는 거죠. 인구대비 의사 숫자가 한국의 2배에 가까운 독일은 코로나를 겪으며 의료 인력의 50%를 증원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에 대해 독일 의사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했던 것과는 딴 판입니다. 아무튼 우리나라 의사들은 강조했습니다. 생사를 판가름 지을 중요한 진단을 받아야 할 때 의사를 고를 수 있다면 매년 전교 1등을 하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를 선택하지 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추천제를 통해 공공의대에 입학한 의사는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요. 물론 착각이었죠.
아무튼 의사들은 이 때 거부했던 의사고시도 다시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또 떼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도 사회를 위해서 봉사도 많이 했고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가혹하다면서요. 이를 소식을 저자가 들었다면 어떻게 답했을까요?
저자는 “나는 평등의 가치를 믿어요. 그렇더라도 어떤 학생은 왜 특정 인종이라는 이유로 가산점을 받아야 하죠? 다른 학생들이 더 좋은 성적과 더 좋은 SAT 점수, 그리고 더 많은 교과외적 활동을 했는데도 말이죠”라고 말했던 명문대 학생의 사례를 제시합니다. 이 학생은 평상시 인종차별에 반대하며 빈민들을 위한 봉사도 열심히 했던 학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저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자 저자는 종이 한 장을 꺼내 그에게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적게 했다고 합니다. 질문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숙제할 때 부모님이 얼마나 오래 함께 시간을 보내시나요?
·어떤 수준의 교육이 학생의 부모님에게 가능했나요?
·집에 몇 권의 책을 가지고 있나요?
·과외 활동에 쓰라고 돈을 주는 가족을 걱정해본 적이 있나요?
·집에 좋은 컴퓨터가 있나요? 그리고 인터넷은?
·컴퓨터를 처음 소유했을 때는 몇 살 때였나요?
·그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는 몇 살이었나요?
·그것은 개인 컴퓨터였나요, 아니면 가족들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컴퓨터였나요?
·그 당시 하루 몇 시간이나 컴퓨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나요?
·가족들을 위해 일을 한 적이 있나요?
·만일 그랬다면 몇 시간 동안이나 했나요? 그리고 일을 처음 시작했을때는 몇 살이었나요?
·가능한 한 최고 득점을 하려고 몇 번이나 SAT를 보았나요?
이같은 내용의 40겨 가지 질문에 답을 하게 했던 거죠. 질문지 작성을 모두 끝냈을 때 저자는 그중에서 학생이 자원 봉사한 푸드 뱅크가 있는 지역에서 성장한 평범한 아이가 누릴 수 있는 사항을 모두 체크해보라고 했습니다.
답을 체크 했던 학생의 대답은 “와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제야 명문대생은 자신이 상당히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죠. 저자는 강조합니다. “지배 집단 구성원들의 태도는 거의 언제나 이런 식이다. 그만큼 생존에 절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역학 구도를 두드러지게 만드는 것은 지배 집단 구성원들이 비지배 집단구성원들만큼이나 자주, 혹은 분명하게 집단 정체성을 보지 못한다.”
우리나라 의대생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런데 의대생만이 아니죠. 우리 스스로도 이런 편견에 빠져있지는 않을까요?
그럼 이런 편견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자는 6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1. 편향성이 인간 경험의 정상적 부분임을 인정하라.
2. 자신을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을 발전시켜라
3. 확실하지 않은 것을 생활화 하라.
4. 어색함이나 불편함을 유심히 살펴보라
5. 잘 알지 못하는 집단의 사람들, 혹은 당신이 편견을 가진 사람들과 관계를 가져라.
6. 피드백과 데이터를 확보하라.
6가지 비법은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상당히 많습니다.
위대한 과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내게 문제를 풀 시간이 한 시간 주어진다면, 그리고 내 목숨이 그 답에 달려 있다면 55분 동안 어떤 효과적인 질문을 던질지 고민하며 보낼 것이다.”
대단한 통찰력을 지닌 말입니다. 실제로, 어떤 문제든 일단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알면 문제를 푸는 데에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막 닥뜨리는 많은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작동하는 편견·편향성이 알아서 하게 나두지 말고 우리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요?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질문이야”라는 명언처럼 말이죠.
따지고 보니 ‘우리 뇌는 왜 늘 삐딱할까?’는 경제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도 질문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경제시그널’과 일맥상통하는 군요. 다가오는 한가위 연휴 곤란한 질문을 일삼는 친적분들이 있다면 이 책에서 읽으신 내용을 떠올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책 행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들이 죽기 전 바이든 대통령에게 약속해달라고 한 까닭은? (0) | 2021.03.01 |
---|---|
생각을 빼앗긴 세계 (0) | 2020.11.21 |
나폴레옹은 왜 모든 우편물을 3주 뒤에 확인했을까? (0) | 2020.07.21 |
더 나은 세상 (피터 싱어) (0) | 2020.06.23 |
탈세의 세계사 (0) | 2020.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