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이피디픽]삼전이 ‘오만전자’에서 벗어나려면···상법 개정안 중요한 이유는? 본문
이쯤되면 ‘삼성전자의 굴욕’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속절없이 떨어지는 삼성전자 주가에 우픈 일들이 연일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때는 9만전자를 노렸던 삼성전자 주가가 4만원대로 떨어지며 사만전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더니 이제는 국내 상장지수펀드(ETF)에서도 ‘편출’ 되는 수모를 겪고 있습니다. 이재용 회장만 풀어주면 주가가 올라갈 것이라고 대부분의 언론과 전문가들이 설레발쳤었는데 완전히 반대로 가고 있는 거죠.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주주’란 한 글자 때문이란 의견도 있습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일까요?
최근 여당인 국민의힘과 재계, 심지어 정부기관까지 나서서 상법 개정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가 더 클 거라는 게 이유입니다. 도대체 부정적 효과가 뭘까요?
일단 상법 개정안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벼르고 있는 법안입니다. 올해 국회에서 꼭 통과시키겠다는 건데요.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도 정부와 국민의힘이 밀어붙이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에 찬성하면서 이런 다짐을 내놨습니다.
“증시가 정상을 회복하고 기업의 자금 조달, 국민 투자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상법 개정을 포함한 입법과 증시 선진화 정책에 총력을 기울이겠다. 이번 정기국회 내에 알맹이 빼먹기를 허용하는 상법의 주주 충실의무조항부터 개정하겠다.”
이처럼 상법 개정안의 핵심은 주주 충실의무조항입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죠.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로 일컫잖아요. 물론 노동자도 포함해야 하죠. 하지만 현재 상법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그럼 누구에게 충실하라고 할까요?
상법 제382조의3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즉 회사에 충실하라는 건데요. 회사나 주주나 도긴개긴이라고 여길 수 있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회사라고 한정지으면 아무래도 소액주주들은 빠지게 되기 마련이죠. 회사 즉 오너 일가에만 충실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그래서 민주당은 회사의 주인인 주주, 특히 소액주주에게도 충실해야 하기 때문에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바꾸자는 거죠.
어차피 회사는 들어가 있고 ‘및 주주’만 추가하는 건데 왜 국민의힘과 재계가 반발할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현재는 이사들이 속한 이사회는 회사에만 충실하면 되죠. 따라서 이사회의 경영 판단으로 일부 주주에게 손실이 생겨도 이사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책임을 물을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죠. 이사회에서 발언권이 가장 쎈 사람이 누군지는 설명드리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사의 충실의무를 확대하면 달라진다는 거죠. 소액주주들도 주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사를 상대로 충실의무를 어겼다면서 소송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회사 오너를 상대로도 말이죠.
그런데 이런 의문을 품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어떤 이사가 회사를 위한 직무를 수행하면서회사에는 손해를 끼치지 않고 일부 주주에게만 손실이 생기는 결정을 할 수도 있느냐”는 거죠.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잖아요.
하지만 이런 황당한 일이 우리 재계에서는 자주 벌어집니다. 예를들어 회사가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거나 일부 사업을 분할할 경우 ▲신주인수권부사채(BW)나 전환사채(CB)를 발행할 경우 ▲기업을 합병할 경우 등을 들 수 있는데요.
특히 눈에 띄는 것이 바로 BW와 CB죠. 바로 이재용 회장과 관련이 깊기 때문입니다. 삼성은 1996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와 1999년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저가 발행을 통해 이재용에게 부당이득을 안겼습니다. 하지만 2009년 대법원은 이에 대해 ‘기존 주주들 간의 문제일 뿐 회사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판결했습니다.
이후 다른 판결에서도 주식회사의 이사는 회사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지만 개별 주주들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즉 현재 상법으로는 ‘주주’들의 이익이 보호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죠. 만일 상법이 당시 개정됐더라면 다른 결론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그런데도 정부와 국민의힘이 상법 개정안을 극렬하게 반대합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요. 첫째 전례가 없다는 겁니다. “세계적으로 이사가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규정을 둔 사례가 없다”고 주장하죠.
하지만 주마다 법이 다른 미국의 경우,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와 주주’로 명시한 곳들이 있습니다. 델라웨어주의 회사법이 대표적입니다.
일본은 법 조문에 이사의 충실의무를 명시하진 않았지만, 법을 해석할 때 ‘회사의 이익은 곧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란 논리를 적용해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별개로 보지 않는다는 거죠.
둘째 이유는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겁니다. “상법은 상장사와 비상장사를 가리지 않고 적용되기 때문에 시장에 혼란을 준다. 자본시장법(상장사에 적용하는 법)만 개정해도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합병이나 물적분할 등 특별한 일이 발생할 경우, 소액주주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핀셋 규제를 만들면 된다는 겁니다. 실제로 2일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명문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니 상법 개정은 필요없다는 거죠.
하지만 핀셋 규제의 한계는 분명합니다. 핀셋의 내용을 조금만 벗어나도 실효성이 떨어지게 되니까요. 특히 비상장사와 불공정한 합병을 한다면 막을 길이 없습니다.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는 거죠. 소위 명문대 출신 전략가들이 수두룩한 상장사에서 이런 빈틈을 그냥 나둘 리가 있나요?
이런 사실을 외국투자자들도 모를리 없죠. 최근들어 외국인 순매도가 줄지 않는 이유중의 하나도 바로 부실한 상법 때문입니다. 오너 일가만 챙기고 주주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데 누가 투자하겠습니까? 주인대접을 받지 못하니 국장 탈출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질문. 삼성전자 주가가 다시 8만전자, 9만전자의 위용을 되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재용 회장이 2번째 구속됐던 2021년 1월부터 8월 삼성전자 주가는 8만~9만원대였는데 이후 하락하다 다시 상승했지만 전고점을 뚫지 못하고 하락했습니다.
특히 오늘 새벽 악재가 또 터졌죠. 미국 상무부가 AI 개발의 핵심 부품인 HBM의 대중국 수출을 통제한다고 발표했는데요. 한국에서 생산되는 HBM도 중국 수출 길이 막히게 됩니다. 그런데 SK하이닉스는 미국에만 수출하고 있어 타격이 없겠지만 삼성전자는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경영진단실을 신설해 측근들을 배치한다고 합니다. 이런 측근 경영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런 모습에 실망한 탓이겠죠. 이재용 회장만 풀려나면 6만전자, 8만전자를 넘어 10만전자까지 갈 것이라 셀레발 치던 언론들과는 달리 5만전자마저 위협받고 있습니다.
오늘 새벽 몰락한 ‘반도체의 제왕’ 인텔의 구원투수로 투입됐던 펫 겔싱어 최고경영자(CEO)가 4년 만에 물러났습니다. 파운드리 재진출을 선언했지만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주가가 올들어 50% 가까이 떨어졌기 때문인데요. 삼성전자의 주가하락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요? 답이 너무나 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