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다른 나라 주는데 우리만 늘어···가계·기업·정부 빚 GDP의 2.5배 본문
“술을 마신 것은 맞지만 운전하는 데는 지장없다.”
지인이 이런 소리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장 자동차 키부터 빼앗아야겠죠. 자칫 본인은 물론 생판 모르는 가족까지 망쳐놓을 수도 있잖아요. 절대 음주운전은 안됩니다.
그런데 어제 한은 보고서를 보면 아연질색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가계·기업·정부 빚이 무려 6033조원으로 GDP의 2.5배에 달하는데도 금융 상황이 전반적으로 안정적이라고 강조합니다. 빚이 1배도 아니고 2.5배. 우리 가계·기업·정부가 2년하고도 반년을 한푼도 쓰지 않고 갚아야 청산할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빚인데도 안정적이라니 정말 기가 막히죠.
물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도 강조했다시피 한은이 지금 정부로부터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죠. 성태윤 대통령실 실장을 비롯해서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까지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리부터 내리라고 압박중이라는데요. 이에 대해 이창용 한은 총재는 크게 반발하는 것도 아니고 지난 방송에서 살펴봤듯이 독일의 푈 총재처럼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소심한 반발만 하고 있죠.
그래서 ‘2024년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도 일단 우리나라 금융상황이 안정적이라고 전제하고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우리 금융시장은 물론 경제 상황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지표가 곳곳에 담겨있습니다. 이번 보고서를 쓴 연구원들이 얼마나 고심했는지가 보일 정도입니다.
그래서 오바인지 모르겠지만 마치 갈릴레오 갈릴레이 같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교회의 압력이 지동설을 부정하면서도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을 남겼다고 하죠. 그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다 떠나 갈릴레이가 교회의 엄청난 압박에 목숨까지 위협받았고 그래서 자신의 신념을 꺾는듯했지만 그가 남긴 저서에는 자신의 생각이 다 들어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처럼 한은 연구원들도 압력에 못이겨 우리 금융시장이 안정적이라고 했지만 “자 봐라, 이런데도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냐”며 곳곳에 증거를 남겨놓은 것은 아닐까요? 저만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요.
아무튼 안정적이라는 말과는 달리 보고서에 실린 지표는 정말 두렵기까지 합니다. 일단 빚의 규모가 상상 초월입니다. 빚이 많은 나라하면 가장 먼저 일본, 그리고 미국 등을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도 그에 못지 않을 지경입니다.
보고서에서는 우리 경제 주체별 매크로레버리지를 현황을 담아놨는데요. 매크로레버리지는 거시경제를 구성하는 가계·기업·정부 부문이 보유한 부채 규모의 명목GDP(국내총생산) 대비 비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비율이 지난해말 기준 기업은 113.9%로 GDP를 훌쩍 넘고요. 가계 93.5%, 정부 43.9%로 기록했습니다. 따라서 우리 경제주체인 가계·기업·정부의 전체 빚이 GDP에 얼마나 되는 지를 따져보니 무려 251.3%. 우리나라 전체 빚이 GDP의 2.5배에 달한다는 거죠.
이게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는 것이 가장 빠르겠죠. 선진국에서 매크로레버리지가 가장 높은 국가는 역시 일본입니다. 무려 398.8%에 달합니다. 그 다음이 의외로 캐나다, 스위스, 노르웨이, 스웨덴 순이고요. 국방비보다 채권이자 비용을 더 많이 쓰고 있는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살짝 높은 수준입니다. 가장 낮은 나라는 208.6%의 뉴질랜드고요.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주요국이 매크로 레버리지를 줄여온 반면, 한국은 정부부채까지 상승했다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더 재미난 점이 있습니다. 정부의 매크로레버리지는 일본(218.3%), 프랑스(107.1%), 미국(106.4%), 영국(92.5%), 캐나다(91.5%), 독일(60.7%), 스위스(26.9%) 순입니다. 우리나라는 43.9%로 뒤에 2번째로 적죠. 이는 가계·기업의 매크로레버리지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이야기잖아요.
93.5%인 가계부문 매크로레버리지는 선진국 평균인 71.8%보다 21.7%포인트나 높습니다. 113.9%인 기업부문 매크로레버리지도 선진국 평균인 88.8%보다 25%포인트나 높고요. 즉 우리나라는 정부가 내야할 빚부담을 가계와 기업이 짊어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경제가 좋다면 이것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빚 부담 때문에 가계와 기업의 연체율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인데요. 보고서는 1분기 가계대출 연체율은 0.98%(은행 0.37%, 비은행 2.17%)로 지난해 3분기 대비 0.09%포인트 상승했다고 지적합니다. “애개 얼마 안되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수치는 2016년 1분기 이후 8년 만에 최고치입니다.
게다가 가계부채의 거의 대부분이 부동산에 몰려 있어 채무상환부담은 선진국보다 매우 높습니다. 이는 수치로도 나타나는데요. 처분가능소득대비 가계부채 비율(DTI)은 203.7%, 자산대비 부채 비율(DTA)은 51%로 선진국 평균(DTI 160.7%·DTA 28.5%)에 비해 1.3배, 2배 가까이 높습니다.
더 큰 문제는 기업. 1분기 기업대출 연체율은 무려 2.31%(은행 0.48%, 비은행금융기관 5.96%)에 달합니다. 2023년 3분기 1.72% 대비 0.59%포인트 오른 수치이자 2012년 6월 2.48% 이후 역대 최고치. 특히 비은행의 연체율 상승폭은 1.73%포인트에 달했고 은행도 0.06%포인트 상승했습니다.
이유는 다들 아실 것입니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 삼각 파고에 영업이익이 쪼그라들고 이자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2023년 말 기준 2588개 상장기업의 매출액은 전년대비 3.4% 감소했습니다. 매출액영업이익률도 2.9%를 기록해 전년대비 2.0%포인트 하락했죠. 따라서 기업의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은 3.3배로, 선진국 평균(5.9배)보다 낮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번 돈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는 기업, 일명 ‘좀비기업’이 속출하고 있는데요, 2023년 기준으로 이자보상배율이 1미만인 기업비중은 41.4%에 달했습니다. 이 수치는 2013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 특히 중소기업은 이 비중이 55.2%로 과반을 넘어섰고요. 심지어는 대기업 중에서도 좀비기업이 있는데요. 비율이 무려 29.2%에 달합니다. 대기업 10곳 중 3곳이 번 돈으로 이자도 못 낸다니 정말 심각하지 않나요?
더 심각한 곳은 체감 경기의 바로미터인 자영업자. 1분기 기준 자영업자 대출 규모는 1055조9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경신했습니다. 1년 전보다 2.1%가 늘었습니다. 가계대출 증가율(전년동기대비 1.6%)과 비교하면 증가속도가 여전히 더 빠릅니다.
빚이 늘어나도 장사가 잘돼서 잘 갚으면 문제가 없겠지만 빚을 못갚는 자영업자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2022년 2·4분기 말 0.5%에서 올해 1·4분기말 1.52%로 3배 증가 했습니다. 가계대출 연체율이 같은 기간 2배 가량 증가한 것에 비해 가파른 상승세.
특히 여러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저소득층이거나 신용 상태가 낮은 취약차주를 중심으로 빠르게 증가했는데요. 취약 자영업자 차주의 연체율은 2021년 3분기 3.97%까지 떨어졌다가 올해 1분기말 10.2%로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연체율이 10%가 넘는다니 정말 장난아니죠. 게다가 취약 차주의 비중도 가계(6.4%)보다 자영업자(12.7%) 중심으로 높아졌고요.
이에 따라 자영업자 연체차주의 1인당 평균 연체액은 1억2200만원이나 됩니다. 지금같이 내수 침체가 계속되면 이 빚을 갚을 수 있을까요?
보고서는 평균 연체액 보다 최근 자영업 대출에서 연체하는 사람들 수와 연체기간이 모두 늘어났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자영업 대출에서 신규연체 진입차주는 2021년 4·4분기에 0.51%에 불과했으나 올해 1·4분기 말에는 1.52%까지 늘었습니다. 전분기에 이어 계속 돈을 갚지 못하는 연체지속률도 올해 1·4분기 말 74.6%로 2017년 이후 6년만에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그런데 보고서는 또다시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아마도 압력 때문일 듯 한데요.
금융시스템의 단기적인 안정 상황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금융불안지수(FSI)와 중장기적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을 나타내는 금융취약성지수(FVI)가 각각 15.9와 30.5를 기록해 둘다 완만한 하락세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은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이라는 거죠. 게다가 스트레스DSR 2단계 시행 연기에 따른 가계부채 위험성도 크지 않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 군요. 가계부채가 빠르게 확대될 경우 DSR 범위 확대를 검토해야 하고 기업부채도 최근 빠른 속도로 늘어난 만큼 금융기관들이 산업별 위험관리를 철저히 해야한다고 강조합니다. 안정적이라더니 말이죠.
지금까지 살펴본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 어떠셨나요? 정말 안정적이란 생각이 드시나요? 가계·기업·정부 부채가 GDP의 2.5배에 달하고 가계·기업의 연체율은 최고로 치솟고 있고 빚으로 빚을 갚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과는 너무나 다르지 않나요? 정부의 압력에 어쩔 수 없이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심정으로 여기저기 위험성을 경고한 것 같은데 좀더 용기내야 하지 않을까요? 안정적이라는 이번 보고서를 보고 정부는 금리인하를 더욱 압박할 것 같은데 그랬다가는 물가와 환율이 폭등하는 정말 IMF급 위기가 닥칠지도 모릅니다. 한은이 그런 위기의 방관자가 돼서는 안되겠죠.
그리고 우리도 보고서의 제목이 아니라 행간을 읽으면서 위기를 대비해야 할 듯 합니다. 그리고 “술을 마신 것은 맞지만 운전하는 데는 지장없다”는 식으로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정부와 금융당국에 제대로 경고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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