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콜라파고스’ 아시나요? ‘해외직구 논란’ 숨겨진 3가지 진실 본문
‘갈라파고스’란 용어를 자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남아메리카 동태평양에 있는 에콰도르령 제도로서 살아 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라 불리는 19개의 섬을 뜻하는데요,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1,000km 떨어져 있으며,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준 섬으로 유명하죠.
하지만 요즘 ‘갈라파고스’란 용어는 지역 시장에 특화된 기술과 서비스, 제품이 발전하면서 국제표준과 세계시장에 맞지 않게 되고 결국 기술력과는 상관없이 세계시장에서 고립되는 것을 뜻하죠. 그런데 이런 현상이 유독 일본에서 두드러지면서 ‘젤라파고스’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아직도 팩스를 쓰고 현금을 주로 사용하는 일본을 비하하는 의미로도 쓰이죠.
그런데 일본을 이렇게 욕할 것만 아니라고 합니다. 최근 ‘콜라파고스’란 용어도 확산되고 있다는데요. 콜라파고스는 바로 코리아+갈라파고스. 즉 일본처럼 전 세계와 고립되고 있다는 지적이죠. “에이 전세계에서 개방도가 높기로 유명한 한국이 고립된다고?”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실텐데요. 믿지 못하겠다는 분들도 있으실테고요. 하지만 다음 뉴스를 들으시면 걱정이 될지도 모릅니다.
“흥선대원군 쇄국정책이냐?”
무슨 이야기인지 다들 아실 것입니다. 바로 최근 논란이 크게 벌어지고 있는 해외직구 이야기죠. 정부가 지난 16일 80개 품목에 대해 KC 인증마크가 없는 제품에 대해서는 직구를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한 후폭풍이 이만저만이 아닌데요. 사흘만에 철회하고 대통령실까지 나서서 해명했지만 국민들의 불만은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불만들은 뉴스나 SNS에서 다들 보셨을테니 넘어가고요. KC인증 민영화, KC인증 비용 문제 등도 다들 아실테니 생략하겠습니다. 오늘 살펴볼 주제는 ‘콜라파고스’. 왜 ‘콜라파스’를 언급할까요?
https://youtu.be/qv-KJtSSGMw?si=mIG1xRimGTwwPJ7Q
첫 번째, KC인증 믿을 수 있을까?
KC인증에 대한 신뢰가 또다시 도마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정부는 해외 직구 제품에 대해 KC인증을 의무화하려 했던 이유에 대해 “KC 인증을 받은 제품이 안전하다고 확인이 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KC인증을 받았다고 안전할까요? 아마 많은 분들이 믿지 못하겠다고 하실 것입니다. 왜냐면 KC인증을 받았지만 문제가 있었던 경우를 너무나 많이 봐 왔거든요.
대표적인 예가 2020년, 간과 신장에 해로운 환경호르몬이 기준치의 600배 넘게 검출돼 논란이 됐던 다이소의 아기욕조 제품. 기존 제품보다 저렴하고 디자인도 깔끔해 아기있는 가정에는 필수처럼 여겨졌었죠. 게다가 정부가 강조하는 KC인증마크가 떡하니 붙어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들통났죠, KC인증을 받은 제품이랑 시중에 판매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전문용어로 ‘포대갈이’라고 하죠. 좋은 것으로 통과받고 나중에 포대만 남기고 불량을 섞는 것. 아기욕조도 그랬다는 거죠. 유해물질을 뺀 샘플로 인증을 통과한 후 판매는 유해물질을 그냥 넣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다반사라는 사실을 인증검사 담당자도 당시 인정했었습니다.
실제로 방사능 물질인 라돈이 방출돼 대규모 회수 소동이 벌어졌던 침대 매트리스. ‘공기살인’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질 정도엿던 사회적 참사 가습기 살균제 중에도 KC 인증 마크가 붙은 제품이 있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아이들이 갖고 노는 슬라임과 찰흙 점토, 색종이도 KC인증이 있지만 유해물질이 확인돼 난리가 났던 경우도 무수히 많고요.
실제로 MBC가 KC 인증이 필요한 전기, 생활용품, 어린이제품들 가운데 결함이 발견돼 리콜에 들어간 품목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 봤다고 합니다. 국가기술표준원 자료를 보면 올해 1월부터 이번 달까지 리콜을 실시한 품목은 모두 59개. 이중 KC인증을 받은 제품이 얼마나 될까요? 많아야 10개? 아닙니다. 무려 44개. 결함이 있어 리콜을 실시한 제품 4개 중 3개에 ‘안전하다’는 의미의 KC인증이 떡하니 있었던 겁니다. 특히 현정부가 예로 들었던 어린이제품만 따져도 리콜에 들어간 제품 29개 가운데 절반이 넘는 17개가 KC인증을 받은 제품이었습니다.
도대체 이런 이유가 뭘까요?
KC인증 방식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어린이제품의 경우, 생명에 직결되는 카시트나 구명조끼 등은 정기적으로 기관에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반면에 그 밖의 제품들은 제조업자나 수입업자가 안전기준에 맞다는 자체 검사 결과만 한 번 받으면 그만입니다.
즉 포대갈이만 잘하면 그냥 통과할 수 있다는 거죠. 이런 허점을 외국에서도 모를 리가 없죠. 따라서 정부가 원래 추진한대로 알리·테무가 KC인증을 받는다고 해도 앞서 설명드린대로 포대갈이를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거죠. 전세계 불량 제품이 한국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콜라파고스’가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국민들의 불안은 가중될 수 밖에 없고요.
https://youtu.be/Cr33V5_vWz0?si=al-awaD4ONUbHqJm
둘째, 후속대책마저 헛발질
‘삼일천하’로 끝나 해외 직구 대책에 대한 해결책도 하품이 나올 정도입니다. 정부가 이번에는 각 부처가 직구 품목의 안전성·위해성 검사를 분담하는 방안을 내놨거든요. 이건 “국민과 언론, 정치권이 뭐라고 하니 이젠 내가 안해”, 빈정상 한 듯한 반응아닌가요?
아무튼 이것도 문제가 심각합니다. 현재 위해제품 검사는 관세청과 서울시 등 일부 기관이 수시로 하는 방식입니다. 특히 관세청의 경우 직원 1인당 1년에 처리해야 할 직구 품목이 42만건에 달해 발암물질 등 안전성 검사가 실질적으로 이뤄지기 힘들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습니다.
이에대해 정부 관계자는 “현재 관세청에서 하는 검사는 아주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전문 기관에서 검사를 하면 지금까지 나온 발암물질보다 훨씬 많은 위해성분이 직구 물품에서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어린이제품과 전기·생활용품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생활화학제품은 환경부가, 의약품·의료기기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직구 제품을 직접 사서 검사한 후 위해성이 확인되면 판매한 온라인 플랫폼에 판매 중지를 요청하고 소비자에게 정보를 알리는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겁니다.
언뜻 보면 합리적이긴 하죠. 하지만 모든 문제가 디테일에 있듯이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겁니다. 관할문제, 즉 전문용어로 ‘나와바리’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겁니다. 한 제품을 놓고 이거 소관은 누구인지부터 따져야하는 혼선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이죠. 언론에 주목받을 제품은 내가 하겠다고 하고 그렇지 않은 제품은 다른 부처 소관이라고 떠넘길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각 부처에서 하루 46만 건에 달하는 제품을 일일이 검사할 만한 인력이 있을까요? 혹시 알바를 쓰려는 것은 아닐까요?
이런 헛발질이 ‘콜라파고스’를 부추기고 있다는 거죠.
https://youtu.be/3mK_hjwy3QE?si=iDcWn7zf0Pfnh5HF
셋째, 국제적 변화와 동떨어진 한국 인증제도.
문제 KC인증같은 우리나라의 법정인증은 몇 개나 될까요? 많아야 10개? 20개?
놀랍게도 257개에 달합니다. 정부가 지난 2월에 기업발목잡는 ‘법정 인증제도’를 손보겠다며 밝힌 보도자료에 떡하니 나와있는 숫자입니다. 너무나 많죠. 이는 외국과 비교하면 더 그렇습니다. 미국(93개)이나 유럽연합(EU·40개), 중국(18개), 일본(14개). 우리나라가 월등히 많죠. 이렇게 인증제도가 많으니 유해제품이 그만큼 없어야 하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유해제품관련 뉴스가 쏟아지잖아요. 숫자만 많고 실속은 없다는 이야기죠.
그런데 여기서 궁금해집니다. 다른 선진국들은 왜 인증제도 숫자가 적을까요? 바로 상호인정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믿을만한 나라에서 품질 인증을 받으면 그걸 인정해준다는 거죠. 예를 들어 판매자가 일본에서 품질 인증을 받은 제품을 미국에서 유통해도 따로 미국서 품질 인증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인증제도가 많지 않아도 되는 거죠.
그럼 우리나라는 상호인정을 안할까요? 상호인정협정(MRA)이란 것이 있는데요. 미국(UL), 일본(PSE), 유럽연합(CE)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각자의 인증에 대한 상호인정협정(MRA) 2단계를 체결하고 있습니다. 각국의 품질 인증을 서로 인정하고 있다는 거죠.
그럼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의 KC인증은 캐나다를 제외한 세계 어느 나라와도 MRA 2단계를 체결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따라서 KC인증을 받아도 수출하려면 대부분의 국가에서 인증을 다시 받아야 하고 수입을 할 때도 또다시 KC인증을 받아야 한다는 거죠. ‘콜라파고스’의 전형적인 모습 아닌가요?
한때 일본을 ‘젤라파고스’라고 놀리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욕하면서 닮는다고 어느 순간 우리나라도 ‘콜라파고스’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해외직구 논란이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도 듭니다. 포대갈이를 걸러낼 수 없는 인증방식이나 너무나 많은 인증제도 등을 정비하고 믿을만한 국가와는 상호인증도 늘려가는 노력을 지금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콜라파고스’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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