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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디커플링’ 거부하고 ‘디리스킹’ 선언한 이유는?

경불진 이피디 2023. 5. 25.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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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범죄도시' 한장면

 

조폭 영화를 보다보면 간혹 이런 장면이 있죠.

상대 조직을 치러 갈 때 행동대장이 앞장을 섭니다. 그래서 행동대장이 호기롭게 상대방 조직과 한판 하려고 가장 먼저 달려 나갔는데 뭔가 느낌이 싸하죠. 그래서 뒤를 돌아보니 한명도 없습니다. 상대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해서 다들 도망가 버린 것이죠. 그러면 앞장섰던 행동대장은 어떻게 될까요? 죽도록 맞을 수 밖에 없죠.

 

최근 외교 무대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혼자서 나섰다가 죽도록 맞는 행동대장이 우리일 수 있다는 점인데요.

 

전략적 모호성에서 전략적 명확성으로.
디커플링에서 디리스킹으로.

 

최근 국제 정세를 다루는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우선 전략적 모호성에서 전략적 명확성으로는 우리 정부의 정책 기조 변화를 뜻하죠. 그동안 우리나라의 외교정책은 전략적 모호성을 토대로 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라는 세계 최강 4국에 둘러싸인 지리적 환경 때문입니다. 전 세계에서도 우리나라처럼 주변에 강대국이 많은 나라도 없잖아요. 이런 환경에서 한쪽 편을 든다는 것은 도박일 수 밖에 없죠. 과거 인조가 망해가는 명나라 편을 들었다가 병자호란이라는 참사를 당했던 것처럼 말이죠. 따라서 그동안 많은 외교 전문가들도 전략적 모호성은 우리나라로써는 최선이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일부 강대국을 제외한 다른 대부분의 국가도 비슷한 선택을 하고 있죠.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이 기조를 바꾸고 있습니다. 화끈한 것을 좋아하는지 모호한 것은 싫다며 전략적 명확성으로 외교 기조를 급하게 바꾸고 있는데요. 그래서 윤 정부에서 내세우는 것은 가치외교. 그런데 가치외교가 도대체 뭘까요? 듣기는 많이 들었는데 어떤 개념인지 아시나요? 전략적 모호성은 중립외교라는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가치외교는 명확하지 않잖아요.

 

https://youtu.be/BTNc94SnoIA

이에 대해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과 평화 등을 열쇳말로 합니다. 국익과 부딪칠 수 있는 면이 있을 수 있지만, 가치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게 장기적으로 우리 국익에 부합합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과 평화 등과 외교가 얼마나 관련 있는지는 차지하더라도 국익을 해칠 수는 있지만 전략적 명확성이란 가치를 꾸준히 유지하자는 이야기죠. 그래야 결국 이득이 될 것이라면서요. 마치 무조건 충성하는 우직한(?) 행동 대장처럼 말이죠.

 

그런데 한시가 다르게 급변하는 외교무대에서 이런 우직함이 과연 미덕이 되고, 결과를 낳을 수 있을까요?

 

지난주 끝난 G7 정상회의에서 가장 두드러진 장면이 뭘까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을 포함해 G7 정상이 히로시마 원폭자료관 방문한 것,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한인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참배한 것, 한미일이 정상회담을 했는데 2분 만에 엄청난(?) 이야기 나눈 것, 정상회의 두 번째 세션에서 윤 대통령 자리에 박진 외교부 장관이 떡하니 앉자 있었던 것 등 많은 것이 생각 나실텐데요.

 

가장 주목받은 장면 중 하나는 지난 20G7 정상회의 공동성명 중 중국과 관련된 내용을 발표할 때입니다. 그동안 미국과 일본이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을 강력 반대한다고 외쳐왔기 때문에 이 내용 위주로 발표될 것으로 기대했거든요. 한마디로 중국이 대만 침공 야욕을 버리라는 거죠. 대만을 절대 침략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지 않으면 중국을 왕따 시키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디커플링하겠다.

 

윤 대통령도 이번 정상회의 확대 세션에서 자유의 가치와 법치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를 공고히 하는 데 G7 국가들과 긴밀히 협력하겠다며 보폭을 맞췄고요.

 

하지만 여기서 재미난 이야기가 덧붙여집니다. 실제로 이날 발표된 40쪽 분량의 공동성명에는 중국과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배제)을 하지 않는다우리는 경제적 회복력이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위험 억제)과 다각화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인식한다고 적혀있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중국과 선을 긋고 적대시할 게 아니라 중국 리스크를 관리해 나가자는 겁니다. 경제적 관계 등을 감안한 실용적 접근법으로 볼 수 있는데요. 그런데 속내는 이렇습니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 왕따시키고 싶었지만 나머지 국가들이 반대했다는 거죠. 캐나다, 이탈리아를 제외한 독일, 영국, 프랑스 등 나머지 3개국이 중국과 관계를 끊을 수 없다고 반발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독일·영국·프랑스는 유럽을 대표하는 강대국이잖아요. 중국 인권문제에서도 그동안 비판적인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던 것으로 알려졌고요.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일반적으로 유럽은 중국보다는 미국과 더 친한 것으로 인식돼 왔었죠. 그래서 외교무대에서 미국과 유럽의 공조가 굳건할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많으실텐데요. 이 때문에 미국의 요청대로 중국과 디커플링한 유럽 국가들이 많을 것 같죠.

 

하지만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중국을 방문하기 전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표현을 썼습니다.

 

“우리의 관계는 흑백이 아니고 대응 역시 흑백일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디커플링이 아니라 디리스킹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다.”

 

이게 뭔 소리일까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 이어 바이든까지 요구하는 중국과의 디커플링에 유럽은 따를 수 없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마크롱은 한발 더 나갔죠.

 

“유럽이 대만 위기에 휘말리는 것이 가장 큰 리스크다. 유럽은 미국의 추종자가 돼서는 안 된다.”

 

엄청 쎄죠. 외교가에서는 선 넘는 말 폭탄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입니다.

 

시진핑 3기 출범 후 가장 먼저 시진핑을 찾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디커플링에 대한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고요.

 

리시 수낵 영국 총리 역시 이번 G7 정상회의에서 중국은 갈수록 국내에선 권위주의적으로, 국외에선 공세적(assertive)으로 바뀌고 있다면서도 “G7의 대중국 연대는 디커플링이 아니라 디리스킹에 관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유럽을 대표하는 독일, 프랑스, 영국이 미국·일본 주도의 중국 디커플링에 반대한 것이죠. 이어 극우성향의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도 얼마 전 중국의 일대일로에서 발을 빼겠다고 했지만 상반기 방중 계획을 취소하진 않았습니다. 시진핑을 만나서 나도 디커플링 반대셀라고 하지 않을까요?

 

이런 변화에 외신들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서방 국가들이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위협을 논할 때 쓰는 표현이 '디커플링'에서 '디리스킹'으로 바뀌고 있다고 보도했죠. 이러자 미국도 한발 빼는 모양새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G7 정상회의 종료 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중국과 분리(디커플링)하려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제거(디리스킹)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다변화하려고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전략적 모호성에서 전략적 명확성으로 외교 기조를 바꾸면서 미국이 내세웠던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추진중인데 독일, 영국, 프랑스는 물론 미국도 디리스킹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는 거죠. 우리만 다른 방향을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디커플링에 앞장섰던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앞서 언급했던 조폭 영화가 연상되지 않나요?

 

문제는 우리 대통령실이 이런 변화를 아직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어제 국무회의에서 G7 정상회의를 언급하는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정적이고 회복력 있는 공급망 구축을 위해서는 다변화가 핵심이다. 우리는 보다 많은 국가들과 가치와 신뢰에 기반한 공급망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디리스킹이란 용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합니다. 디스리킹은 단순히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앞서 언급했던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의 말처럼 세상을 흑백으로 나누지 말자, 즉 아군과 적군으로만 가르지 말자는 이야기가 핵심입니다. 빨주노초파남보라는 무지개 색깔처럼 각국의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말입니다.

 

프랑스·영국·독일이 이렇게 나서는 이유가 있습니다. 크게 두가지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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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경제적 실리 때문이죠.

마크롱은 쎈 발언 뿐만 아니라 시진핑과 비공식 2차 회동을 가지는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이를 통해 프랑스에 큰 선물을 안겼습니다. 중국이 유럽의 항공기 제조사인 에어버스에 무려 26조 원 상당의 여객기 160대를 구매해준것이죠. 오는 게 있으니 가는 것도 있겠죠. 프랑스도 중국 조선소에 4조 원가량의 컨테이너선 16척을 발주하며 화답했습니다. 프랑스와 중국이 서로 경제적 실리를 챙긴 것이죠.

 

독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올라프 총리 역시 폴크스바겐, 지멘스, BASF 등 독일 대기업 CEO를 포함한 대규모 경제 사절단을 이끌고 중국에 방문해 선물 보따리를 두둑이 챙겼는데요. 독일이 주력하는 녹색 전환에 청정에너지 분야 제조 역량 최고, 즉 배터리와 태양광 패널 세계 1위가 중국이거든요. 이들과의 협력을 따냈다는 거죠.

 

에너지 위기에 봉착한 영국도 중국을 통해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다고 합니다.

 

둘째, 미국에 대한 불신입니다.

미국이 자국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의 이익을 해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거죠. 특히 이런 인식은 프랑스에서 매우 강한데요. 디리스킹을 선언한 프랑스의 경우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외교에서만큼은 독자노선을 추구해 왔습니다. 드골주의, 프랑스의 이득을 가장 앞세워 이에 반하면 미국의 요구도 종종 거부해왔죠.

 

특히 최근 들어서 이런 불신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미국의 행보 때문인데요.

 

독일과 프랑스는 유럽 국가 중에서도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입니다. 독일은 72%, 프랑스는 44%나 됩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무역의존도는 독일과 비슷한 73%입니다. 특히 이들 국가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중국과 교역 규모가 1~3위를 왔다갔다합니다. 미국보다도 더 큰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미국 바이든 정부 추진하는 인플레이션감축법, IRA 법은 한마디로 중국과 교역하지 말라는 거잖아요. 중국과 교역이 많은 나라에 하지 못하게 하면 경제적 손실이 생길 수 밖에 없죠, 독일과 프랑스는 각각 약 80억 유로 규모의 손실이 예상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손실을 미국이 채워주나요? 이러니 프랑스나 독일이 미국 말을 들을 리 없죠.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중국과 놀지 말라고 압박했던 미국의 지난해 중국과의 교역 규모가 약 6,900억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나가 싸우라고 부치기던 대장이 뒤로는 딴 주머니를 찬 것이나 마찬가지죠. 이러니 미국을 믿을 수 있을까요? 유럽이 미국에 맞서 유럽판IRA를 추진하는 것도 이 이유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나라도 IRA 타격을 입고 있잖아요. 특히 미국의 압박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현 정부들어 탈중국을 선언하면서 무역적자가 역대급으로 악화되고 있고요. 그런데 우리나라만 여전히 디커플링을 외치며 선봉장을 자처하고 있다는 점이죠.

 

자칫 맨 처음 언급했던 조폭영화처럼 우리나라만 두들겨 맞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이라도 흑백논리에서 벗어나서 독일·프랑스처럼 우리만의 색깔, 우리만의 가치를 찾아야 합니다. 가치외교라는 황당한 용어만 만들어내지 말고요.

 

https://www.podbbang.com/channels/9344/episodes/24702451?ucode=L-cYlmqQ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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