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올 노벨경제학상의 진짜 의미는?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본문
올해 노벨상에 대한 관심이 유독 크죠.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덕분인듯한데요. 이외 함께 노벨경제학상도 매우 의미 있어 보입니다. 바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연구가 한국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에 대한 언론들의 보도를 보면 참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떻게든 자신들의 편견을 드러내거든요. 다들 아시다시피 이번 노벨경제상에 수상자들의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적인 용어가 ‘표용성’인데 일부 언론들은 이를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왜 표용성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을 만큼 대단한 것인지를 지금부터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대런 애쓰모글루 미국 MIT 교수, 제임스 로빈슨 미 시카고대 교수, 사이먼 존슨 MIT 교수죠. 이 중 애쓰모글루 교수와 로빈슨 교수가 같이 쓴 책이 있습니다. ‘바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2012년에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책인데요. 최근 노벨경제학상 덕분에 다시 인기라고 하더라고요.
이미 읽어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아직 읽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이 책에 던지는 질문을 살펴볼까 합니다.
애청자 여러분은 국가가 왜 실패한다고 생각하세요? 반대로 성공한 국가는 어떤 비결이 있었을까요? 아마 많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갈 텐데요. 독재 때문에 망했다, 지리적 위치가 나쁘다, 지진 등 재해 때문이다 등등.
그런데 이런 국가의 성공과 실패에는 무서운 담론이 담기기도 합니다.
‘프로테스탄트 윤리’. 중고등학교 시절 배우셨을 텐데요. 소위 칼뱅주의로 대변되는 기독교 윤리죠. 매우 간단히만 살펴보면 신에 의해 이미 구원받을 자가 정해졌는데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부의 축적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직업 등에는 의미와 목적이 있다는 소위 ‘소명의식’도 여기서 나온 것이죠. 이런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자본주의를 발전시켰죠.
그런데 여기에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소위 ‘흙수저’로 태어난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금수저’는 가만히 있어도 부를 축적할 가능성이 매우 크죠. 이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죠. 아프리카나 동남아 국가들이 가난한 이유는 신의 소명을 못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리화합니다. 그래서 소명을 받은 유럽 국가들이 식민지배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하죠. 소위 ‘인종주의’ ‘백인우월주의’로 변질될 가능성이 큽니다.
‘총균쇠’의 저자인 제럴드 다이아먼드교수가 주장하는 ‘지리적 요인’은 어떨까요? 제프리 삭스 교수도 지리적 영향이 경제발전을 갈랐다고 강조하는데요. 이는 자칫 운명론으로 흐를 수 있다는 함정이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는 지리적 약점 때문에 영원히 가난할 수 밖에 없다는 다소 ‘황당한’ 주장이 나올 수 있다는 거죠. 경제적 성패와 기후나 지리적 위치 사이에 확연하고 지속적인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역사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싱가포르죠. 지리적으로 매우 열약하지만 세계적인 선진국이잖아요. 반면 아르헨티나는 정반대고요.
그럼 도대체 국가 성패는 무엇이 가를까요? 애쓰모글루 교수와 로빈슨 교수의 주장은 바로 제도입니다. 경제적, 정치적 제도 차이가 국가의 발전을 좌지우지한다는 거죠. 특히 중요한 것은 이런 제도가 포용적이냐, 착취적이냐에 따라 해당 국가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한다는 점입니다.
이를 극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한반도라고 두 교수님은 주장합니다. 포용적 제도를 바탕으로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과 폐쇄적인 제도로 세계적인 빈국으로 몰락한 북한이 그 사례라는데요.
특히 애쓰모글루 교수는 노벨상으로 선정된 후 인터뷰에서 “남북한은 분단되기 이전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서로 다른 제도 속에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 격차가 열 배 이상으로 벌어진 사례”라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한국의 발전이 쉽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면서 “한국의 민주화 과정은 매우 어려웠지만, 한국은 민주화 이후 성장 속도를 더 높였고 성장 방식도 더 건강하게 이뤄졌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이 내용을 다시 요약하면 대한민국은 정치제도 변화인 민주화 덕분에 경제가 발전하면서 선진국이 됐다는 이야기잖아요. 그런데 TV조선과 같은 일부 언론은 황당한 주장으로 합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韓 성장모델 극찬…"박정희 정책에 성장, 민주주의로 제도화“
아니 박정희가 포용적 정치·경제제도를 폈나요? 이는 설명드리지 않아도 다들 아실 것입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도 폄하하는 황당한 세력이 있더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주장을 이런 식으로 왜곡하는 군요.
실제로 애쓰모글루 교수는 2022년 KDI 초청 강연에서도 한국의 경제 발전 배경으로 “시장을 활용하고, 기술 혁신과 인재 육성에 투자하는 제도를 바탕으로 경제 성장을 이뤘다”며 “개방적 민주주의와 시민들의 정치 참여, 강력하면서도 견제를 받는 국가기관이 지속가능한 성장의 기반이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박정희가 독재로 성장시켰다는 내용은 한마디도 없고요.
특히 애쓰모글루 교수는 한국 경제가 극복해야 할 당면 과제가 있다고도 지적했습니다. 포용적에서 다시 착취적으로 변하려는 모습이 모인다는 것인데요. 바로 대기업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지배층과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발전의 성과인 부의 분배에 인색하게 굴고, 폐쇄적인 경제 정책을 통해 부를 세습하기에 급급하며, 폐쇄적인 정치 제도를 통해 국민의 참여를 막는다면 그 나라는 멀지 않아 실패한 나라로 전락할 것이다.”
대기업과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부작용이 갈수록 늘어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걱정스럽지 않나요?
애쓰모글루 교수는 국가의 성공을 위해서는 포용적인 경제 제도뿐 아니라 포용적인 정치 제도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자연스러운 순환을 통해 창조적 파괴가 일어나고 구조와 체제가 변해야만 그 발전이 지속된다는 것이죠. 이러한 사실은 단순히 국가뿐 아니라 회사나 조직에도 적용할 수 있죠.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통해 회사의 경영자와 임원들의 배를 불리기에만 혈안이 된 회사는 그 발전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포용성이 국가는 물론 기업과 사회의 성패도 가른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얘스모글루 교수 등 이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주장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바로 경불진에서도 늘 주창하는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농민운동가인 전우익 선생이 1993년 펴낸 에세이집 제목인데요. 국가를 살찌게 하고 기업과 조직을 발전시키는 해법은 바로 이 말 속에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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