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몰락하는 인텔, 보잉 닮았다?···삼성과 AMD의 차이점은? 본문
4일 새벽 전 세계 IT업계를 뒤흔들만한 뉴스가 전해졌죠. ‘반도체 제왕’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부 매각을 추진 중이라고 하는데요. 영원할 것 같았던 인텔이 이렇게 흔들리는 이유가 뭘까요? 혹시 삼성에게는 기회가 될까요?
많은 분들이 놀라셨을 것입니다. 특히 ‘인텔 인사이드’ 신화를 기억하는 분들은 격세지감까지 느낄 것 같은데요. 1968년 설립된 미국 반도체 제조사인 인텔은 1990년대부터 자사 칩을 넣은 PC는 믿을 만하다는 ‘인텔 인사이드’ 마케팅을 펼쳤죠. PC 성능을 좌지우지하지만 본체를 뜯어보기 전에는 알기 힘든 CPU를 ‘인텔 인사이드’라고 적힌 홀로그램 스터커를 붙여 알려주는 방식이었는데요. 한마디로 ‘인텔 인사이드’ 홀로그램이 있는 PC는 믿어도 된다는 식으로 홍보한 것이죠. 이 마케팅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데 ‘인텔 인사이드’ 광고가 없는 컴퓨터는 ‘짝퉁’으로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덕분에 인텔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반도체 제왕’에 등극했고요.
이런 인텔이 최근 엄청난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올 2분기 128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 전년 대비 1% 감소했습니다. 영업손실도 무려 20억 달러. 이 때문에 주가는 연초 대비 60% 가까이 폭락했습니다. 미래 기업 가치의 척도인 시가총액은 940억4500만 달러. ‘반도체 제왕’인데 글로벌 반도체 기업 '톱10'에서도 밀려났습니다. 특히 엔비디아(2조9300억달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급기야 인텔은 지난 1일 장 마감 후 연 실적설명회에서 전체 직원의 약 15%인 1만5000명을 해고하고, 투자도 대폭 줄이는 구조조정 대책을 내놨습니다. 팻 겔싱어 인텔 CEO는 “AI 흐름을 타지 못했다”고 말했지만 인텔 주가는 2일 26% 곤두박질쳤습니다.
이러자 외신들은 이달 중순 열리는 이사회에서 경영진들이 파운드리 매각을 포함한 구조조정안을 이사회에 보고할 수 있다는 예상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인텔은 왜 추락했을까요?
결론적으로는 예전 방송에서 살펴봤던 보잉 사례와 비슷합니다. ‘보잉이 아니라면 가지 않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안전 대명사로 통했던 보잉 경영진에 월가 출신들이 합류하면서 실적을 따지게 됐죠. 안전보다는 비용절감을 앞세우다보니 여객기 추락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죠. 인텔도 마찬가지입니다.
인텔의 몰락은 2013년부터 시작됐다고 이야기하는데요. 바로 이 때 재무출신인 브라이언 크로자닉 CEO가 취임했거든요. 크로자닉은 엔지니어들에게 원가절감, 단기 성과를 요구했고 2016년엔 대규모 해고를 단행했죠. 모바일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 했습니다. 기술개발을 최우선하던 회사의 기조가 완전히 바뀐 셈이죠, 이밖에 미공개 정보를 활용한 주식 매도 논란, 직원과의 부적절한 관계까지 불거졌습니다. CEO가 할 수 있는 논란 대부분을 보여줬습니다.
더 큰 문제는 2018년 새로 취임한 밥 스완 CEO 역시 재무전문가 출신이라는 점입니다. 스완 CEO 역시 기술개발보다는 원가절감 등에 관심이 많았죠. 이렇게 되니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인텔의 기술력이 흔들거렸습니다. 최첨단 공정 경쟁에서 대만 TSMC, 삼성전자에 밀리기 시작한 것이죠.
특히 2015년 나왔어야하는 인텔의 10nm 공정 제품은 계속 지연됐죠. 한 세대 전인 '14nm' 공정을 고수하면서 '사골국물', '14nm 방망이 깎는 노인'이란 비아냥까지 듣게 되죠. 이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최근 엔비디아가 블랙웰 출시를 한분기 늦췄는데도 난리나고 있죠.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이 때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최신 기술을 원하는 고객사들이 대거 이탈하기 시작했죠.
이러는 사이에 애플이 'M1'이라는 자체 프로세서를 개발해, 성공적으로 안착시켰습니다. 구글 MS 아마존 같은 고객사들이 모두 '자체 반도체 개발'을 선언했죠. 인텔이 구식 CPU를 고수하니까 “인텔 믿었다가는 우리 제품까지 구식취급 받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예 CPU를 직접 개발하자고 나서 성공한 것이죠.
경쟁사들이 치고 나오자 2016년 브라이언 크로자닉 CEO는 1만2000명을 해고하면서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습니다. 문제는 이때 능력 있는 고연차 연구원들이 대거 AMD와 애플로 이동했다는 점인데요. 그냥 사람만 갔을까요? 인텔의 40년 노하우는 그렇게 경쟁사로 넘어간 것입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투자 오판도 이어졌는데요. 2017년 오픈AI는 인텔에 지분 15%를 10억달러에 사달라며 협업을 제안했습니다. 만약 성사됐다면 인텔의 살아날 기회를 잡을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인텔은 거부했습니다. ‘빠른 시간 내 투자금 회수가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는 데요. 바로 비용절감이 회사의 절대 원칙으로 자리 잡으니 미래도 내다보지 못한 셈입니다.
여기에 인텔에게 카운트 펀치를 날린 곳은 바로 AMD.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AMD는 ‘싸구려 CPU 기업’으로 여겨졌습니다. ‘인텔 인사이드’ 마케팅이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면서 AMD가 들어간 PC는 성능도 떨어지고 저가로 통했죠. 하지만 2010년대부터 상황이 급변합니다. 대만계 미국인으로 MIT 박사이자 엔지니어 출신인 리사 수가 AMD CEO가 되면서 ‘가성비’를 앞세워 플레이스테이션 등의 납품에 성공하죠. 10년 전 한 자릿수였던 AMD의 서버용 CPU 점유율은 지난 1분기 24%로 뛰었습니다. 인텔 점유율은 그만큼 떨어졌고요.
이는 주가에 그대로 반영됐죠. AMD의 시총은 2404억4200만 달러로 한때 자신을 무시하던 인텔의 3배에 육박할 정도입니다. 인텔은 무시했던 AMD의 펀치에 다리가 후둘 거릴 정도고요.
이런 상황이니 앞서 언급했던 파운드리 사업 포기 이야기까지 나오는 것입니다. 문제는 파운드리 사업은 인텔 부활의 마지막 승부수일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재무통 CEO들이 망쳐놓은 회사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인텔은 2021년 내부 엔지니어 출신 팻 겔싱어 CEO를 취임시켰습니다. 종합반도체 기업으로의 ‘부활’을 공언하면 고객사들에게 설계 주문을 받아 반도체를 제작해주는 파운드리 사업도 다시 시작했죠. 200억 달러를 투자해 2030년까지 삼성전자를 꺾고 시장 1위 업체인 TSMC에 이어 2위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전임 CEO들이 망쳐놓은 여파가 너무 큽니다. 과거 인텔이라면 문제가 없을 정도이지만 이젠 매출이 너무 쪼그라들어 파운드리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 지경이죠. 특히 지난 2분기 파운드리 사업에서만 28억달러(약 3조7000억원)에 이르는 적자를 낸 것이 컸습니다. 과거 반도체 제왕일 때는 충분히 감당했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는 거죠.
업계에서는 인텔 파운드리가 낸드 플래시와 같은 운명이 될 수도 있다고 예측합니다. 인텔은 2020년 SK하이닉스에 낸드 사업부를 약 10조 원에 매각한 바 있습니다. 당시 인텔은 주력 사업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주변사업을 정리했는데요. 다만 문제도 있습니다. 인텔은 파운드리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으로 미국 정부로부터 85억 달러의 지원금을 약속 받았습니다. 미 정부의 반도체 부활 전략 중심에 인텔이 있어서 파운드리 매각은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 사업부가 분할·매각될지 수순은 지켜봐야 한다는 거죠.
아무튼 삼성전자에게 기회가 오는 것일까요? 물론 인텔에서 이탈한 고객사를 삼성전자가 흡수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삼성전자는 당분간 TSMC를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파운드리 업체로 손꼽히기 때문이죠. 실제로 현재 3나노 공정에서 반도체를 만드는 회사는 두 곳밖에 없습니다.
특히 삼성전자는 종합반도체기업(IDM)의 강점을 살린 메모리와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 등 AI 반도체 생산을 일괄 수행할 수 있는 ‘턴키(Turn Key)’ 전략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고객맞춤형 제조가 핵심인 AI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력이 뚜렷하다는 거죠.
하지만 삼성전자도 인텔과 비슷한 문제가 엿보입니다. 삼성전자는 2017~2018년 반도체 슈퍼 호황기에 엄청난 호실적을 올렸죠. 하지만 기술 혁신을 게을리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현재 가장 핫한 HBM연구 개발을 지속해오다가 예상보다 수요가 없고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자 2019년 팀을 해체했죠. 마치 인텔이 비용절감을 외치며 구조조정한 것처럼 말이죠. 이 때문에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린 상태입니다.
2019년 이재용 삼성전자 당시 부회장이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1위에 오르겠다는 비전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10여년의 시간 동안 TSMC를 따라잡겠다는 계획을 세운 건데요. 하지만 TSMC와의 격차가 더 벌어졌습니다.
이 때문에 인텔 다음으로 삼성전자가 걱정된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데요. 이를 해소시킬 대안을 이재용 회장이 제시할 수 있을까요? AMD의 리사 수 CEO 같은 엔지니어 출신의 전문경영인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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