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불진 이피디의 경제공부방
홈쇼핑처럼 변하는 대출시장···정부·은행·언론의 합작품? 본문
“고객님들 서두르셔야겠어요. 마감 임박입니다.”
홈쇼핑에서 쇼호스트들이 이런 멘트를 날리면 심장이 뛴다는 분들이 꽤 계시더라고요. 엄청난 할인에다 사은품도 많이 준다는데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 못하는 것 아닌가 걱정도 되고요. 사려고 했거나 당장 필요한 제품은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전화 주문을 하게 되기도 하죠.
그런데 이렇게 산 물건을 만족할까요? 제품의 성능을 떠나 마감임박이라더니 찾아보면 해당 쇼핑몰 홈페이지 등에서 계속 판매하는 경우가 많죠. 다른 쇼핑몰에서 더 싼 가격에 살 수 있기도 하고요. “당장 필요도 없는 괜히 샀네”라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갑자기 홈쇼핑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습니다. 최근 홈쇼핑처럼 변하고 있는 시장이 있기 때문인데요. 바로 우리나라 금융시장. 좀더 구체적으로는 대출시장에 마감임박이란 멘트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에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하실 수 있는데요.
‘영끌족’의 귀환… “돈 꿔줄 때 빚내서 집사자”(조선비즈)
“2%대 주담대, 이제 마지막?”…5일새 대출잔액 1.3조 불었다(헤럴드경제)
제목이 매우 자극적이지 않나요? “돈 꿔줄 때 빚내서 집사자”는 풀어보면 앞으로는 대출 받기 힘드니 지금 빌릴 수 있을 때 대출 받으라는 건데요. 이건 홈쇼핑에서 마감 임박이라고 외치는 것과 너무나 비슷하지 않나요? 또 “2%대 주담대 이제 마지막”도 “앞으로는 이런 기회 없을 거여요”라고 외치는 쇼호스트 멘트처럼 여겨지죠.
그런데 언론들이 왜 이런 기사를 쓰고 있을까요? 물론 건설사가 소유인 언론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부와 금융당국이 이를 조장하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에이 정부와 금융당국이 대출을 조이겠다고 하는데 무슨 소리냐”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감이 임박하지 않았는데도 매출을 올리기 위해 숫자까지 조작(?)해가며 마감임박을 외치는 일부 홈쇼핑처럼 겉으로는 대출 규제를 외치면서 뒤로는 대출을 대거 푸는 이중적인 태도를 정부와 금융당국이 취하고 있거든요. 그 근거를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역마진 보는 은행들?
최근 주담대금리가 많이 내려왔다고 하죠.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혼합형(5년 고정) 주택담보대출 금리 하단이 연 2.88%. 지난 3일(2.93%)에 비해 0.05%포인트 하락했습니다.
언론들은 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하락한 것은 시중금리 영향이 크다고 설명합니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를 살펴보면 5년 고정 혼합형 금리의 준거금리가 되는 은행채 5년물(무보증·AAA) 평균금리는 전날 3.385%를 기록했다. 5개 채권평가회사 평균치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23년 1월 9일 이래 최저치입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은행들이 돈을 빌려오는 은행채 금리가 3.385%인데 돈을 빌려주는 주담대 금리는 2.88%. 비싸게 빌려 싸게 빌려주는 셈이잖아요. 은행들이 어려워진 서민들을 위해 산타클로스가 된 것 일까요? 그럴리 없죠.
얼마전 방송 ‘기준금리보나 낮은 주담대 하단?···그 불편한 이유는?’에서 알아봤듯이 은행들은 지금 정부의 압박에 한은이 곧 금리를 내릴 것에 배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금 은행에서 주로 빌려주는 주담대는 변동형이 아니라 고정형. 현재보다 금리가 내린다면 지금 당장은 은행이 손해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큰 이익을 은행이 챙길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금리를 내리면서 마감 떨이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점도 있습니다. 주담대 하단 금리가 언제 2.8%대 였을까요? 기록을 찾아보면 2021년 3월입니다. 무려 3년 4개월 전으로 주담대 금리가 돌아간 셈이죠.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2021년 기준금리가 얼마였을까요? 현재는 3.5%잖아요. 그런데 2021년 기준금리는 0.5%. 대한민국 역대 최저금리였습니다. 당시 미국 기준금리가 0.25% 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금리죠.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
그럼 궁금해지죠. 당시 은행채 금리는 얼마였을까요? 1.8%대 였습니다. 즉 은행들이 1.8%대로 자금을 조달해 2.88%에 빌려줬으니 약 1%포인트의 마진을 챙긴 것이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3.385%에 자금을 조달해 2.88%에 빌려주는 황당한 마케팅을 하고 있다니···. 뭔가 이상하죠.
참고로 미국은 어떨까요? 미국은 기준금리는 5.5%인데 혹시 미국 주담대도 우리나라처럼 저렴할까요? 미국 국책 주담대 업체 프레디맥 사이트에서 확인 30년 만기 주담대 평균 고정금리는 6.95%입니다. 기준금리보다 훨씬 높죠.
그럼 왜 우리나라 은행들이 역마진을 할까요? 앞서 언급한 금리인하 기대와 함께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최근 금융당국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의 옥석 가리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언론들이 전하죠. 김진태발 레고랜드 사태 때 해결해야 할 것을 미루고 미루다 지금에야 나서는데도 속도를 내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금융당국이 이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PF부실 규모가 손댈수 없을 만큼 너무 커졌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23조를 언급하다가 230조원으로 부실규모가 더 드러났잖아요. 이것보다 더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요. 이런 부실을 털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음은 아프지만 생존 가능성이 없는 사업장은 과감하게 정리해야 합니다. 동상이 걸려 발가락이 썩어 들어가고 있는데 머뭇거렸다가는 발 전체를 잃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이건 뇌피셜이긴 하지만 현정부는 발가락이 너무 아픈가 봅니다. 영끌족을 부활시켜 이를 해결하려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죠. 영끌족들이 분양을 받고 아파트를 대거 산다면 부실PF 사업장도 버틸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합니다. 정부의 압박을 강하게 받은 은행들이 역마진을 보면서까지 이에 동조하고 있고요. 그래서 주담대 금리를 크게 내리고 있다는 거죠. 여기에 언론들은 마감임박을 외치며 호객행위를 하고 있고요. 여러분들의 판단은 어떠신가요?
https://youtu.be/sv0wYaQQjoE?si=g94t8Qn4zAM1YCHY
두 번째. 빚내서 집사라2.
최근 가계부채가 급등한 배경에는 정책상품의 역할이 컸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 것입니다. 신생아특례대출이 대표적이죠. 2023년 이후 아이를 낳은 가구에 한해 9억원 이하 주택에 5억원까지 주택담보대출을 지원하는 정부 상품인데 일반 대출과 달리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적용되지 않고 금리도 최저 1%대로 낮습니다. 따라서 신생아특례대출은 올 상반기에만 6조원에 가까운 실적을 기록했죠,
이 때문에 걱정스러운 현상도 나타났습니다. 올해 1~5월 전국에서 생애 첫 집합건물(아파트·오피스텔·다세대·연립주택 등)을 구입한 이들은 총 16만993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2만8078명)보다 32.6% 증가했는데요. 특히 30대 매수자가 가장 큰 폭으로 늘었습니다. 7만6850명으로 지난해(5만5355명)에 비해 38% 늘면서 전체의 45.2%를 차지했거든요. 아이를 낳은 30대가 신상아특례대출을 받아 첫 집을 구입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지난해에도 이런 정책대출이 있었잖아요. 바로 특례보금자리론. 무려 40조원 넘게 풀어 집값을 잔뜩 끌어올려놨죠. 그런데 또다시 신생아특례로 27조원을 풀어놨으니 가계대출이 급등하고 집값이 안오를 수 없었는데요.
이러자 정부가 스트레스DSR를 추진한다고 설레발을 쳤잖아요.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으니 3단계 걸쳐 시행할 것이라고 언론에 강조했는데요. 그래서 은행권 주담대에 적용되는 1단계는 지난 2월에 시행됐고 2금융권과 신용대출까지 확대되는 2단계를 지난 1일부터 시행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들 아시다시피 시행 일주일 앞두고 돌연 연기를 했죠. 3단계도 아니고 2단계에서 멈춘 것입니다. 물론 정부는 2달 뒤인 9월에 재개할 것이라고 하지만 이걸 누가 믿을까요?
그런데도 언론들은 이런 설레발을 치고 있죠.
‘영끌 막차, 두 달 뒤로…대출 줄이는 '스트레스 DSR 2단계' 9월로 연기’(뉴스원)
두달 뒤에는 대출 받기 힘들테니 지금 빨리 돈 빌려 집사라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이런 설레발을 치는 이유가 정말 무주택자들 실수요자들을 위해서일까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무너지는 건설업을 어떻게든 떠받치기 위해서란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영끌이 살아나야만 버틸 수 있을 정도로 건설업 PF부실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방증이기도 하고요.
문제는 특례보금자리론, 신생아특례대출이 확산되면서 집을 사는 수요층이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과거 부동산은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춘 40대가 주 수요층이었습니다. 하지만 30대가 이젠 주 수요층이라고 합니다. 아직 경제력이 부족한 30대가 영끌을 해서 집을 사고 있다는 거죠. 그러면 다음 정부의 빚내서집사라3가 걱정되지 않나요? 이젠 20대에게 집을 사라고 해야 하는데 대학생 특례대출이라도 내놓을까요? 한마디로 정책자금으로 부동산 펌프질하는 것이 이젠 한계에 다달은 것같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정부나 언론에서 펌프질한다고, 마감임박이라고 성급히 매수를 결정하지 않는 것이 현명해 보입니다. 물론 대출 없이 실수요로 산다는 분은 예외입니다. 그리고 매수한 이후 가격이 떨어져도 상관없다면 지금 당장 매수해도 됩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수요자라면 대출막차라고, 대출 받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끌어서 집을 샀다가 혹시 가격이 떨어진다면 감당 가능할까요? 매달 대출 갚으라는 문자가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집을 대출 받을 수 있을 때 사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필요하고 가격이 낮을 때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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